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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록 추천0 비추천0

 

 

 

 

[파업] 힘의 균형으로 해결하자

2003.8.23.토요일
딴지 사회부


비단 현대차 노조 뿐 아니라 요즘 노동계에 대한 공박이 심하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경제신문들까지 나서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주기에 바쁘다.

 

현재 경제 위기는 마치 전부 노동자들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고 노조에게 자제를 요구한다. 그러나, 정말 한국의 노조가 나라 말아먹을 정도로 잘못하고 있는가?

 

이걸 따져보기 위해서는 생각해야할 문제가 많다. 경제 주체간의 균형, 한국 경제 구조의 특징, 세계 주류 경제의 흐름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번 따져보자. 참고로 이 글은 최근 언론에서 매일 쳐대는 노동계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에 대한 반론이다.
 

 

 

우선, 파업에 대해 썰을 풀고 싶다. 경제 주체는 노동자, 소비자, 사용자의 삼각 구도이고 여기에 정부가 부가적으로 개입된다. 이 세 경제 주체의 균형이 잘 맞아야 경제가 안정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노사 관계에서 한쪽이 불만을 가지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사용자측은 노동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해고, 감봉, 좌천 등을 할 수 있다. 실로 막강한 권한이다. 그러면 노동자는 어떻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까? 노동자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두 가지다. 사표, 파업. 사용자가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 한다면 노동자는 사표 쓰고 나가서 다른 직장 찾거나 아니면 파업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단이라는 게 혼자서는 큰 힘을 가지기가 힘들다. 노동자 한 명 나가면 사용자는 새로 채용하면 그만이다. 여기서 노동 시장의 균형 문제가 나타난다. 만약 일자리는 넘쳐나는데 일할 사람이 적다면 사용자의 입장에서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사표도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인란보다 구직란이 훨씬 심각한 상태에서 사표는 카드빚 자살과 동의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파업 뿐인데, 이것도 사표와 비슷한 성격이 있다. 혼자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 하나쯤 일 안하면 짤라버리면 그만이다-_- 그러나, 전체 노동자가 단결해서 파업을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당장 사용자에게는 큰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는 것이다. 사표든 파업이든 혼자서는 안되기 때문에 노동자는 단결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 파업은 실질적으로 협상에서 노동자가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다. 파업을 하지 않는다면 사용자는 노동자가 무슨 요구를 해도 안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파업에 대한 비난 중에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파업하지 왜 파업부터 하냐는 비난은 에시당초 노사 관계의 힘의 균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비난이다. 노조는 단지 유일한 협상 카드를 내민 것 뿐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위해 정리해고를 쉽게 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카드를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장한다는 것 자체는 당장은 노동자들에게 힘든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런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발전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카드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한다. 그래야 균형이 맞는 것이다. 물론 실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도 필요할 것이고.
 

 

 

파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이번 철도파업에서도 나타난 현상인데 철도파업으로 인해 서비스가 중단되면 사용자들이 불평을 노조 쪽에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소비자와 기업의 관계를 잘못 파악한 것이다.

 

철도의 운송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철도청이다. 당신은 나이키 신발 샀는데 밑창에 구멍나 있으면 나이키에 항의할 것인가? 아니면 동남아 공장에서 착취당하면서 신발 만드는 어린애들한테 항의할 것인가?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파업으로 인해 지하철이 안 다니면 그건 지하철공사가 책임질 일이다. 왜 비난이 지하철 노조에게로 가는가? 파업이란 것은 기업의 내부 문제다. 소비자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화살의 방향을 돌려야한다. 철도가 안 다니면 철도청에 항의를 해야하고 빨리 노사 문제를 처리 하지 못한 책임을 철도청에 물어야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파업이 불법인지 아닌지도 상관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정부와 철도청, 노사가 해결할 문제일 뿐이다. 에시당초 사측이 법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노조만 법 지키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현대차 노조도 마찬가지다. 현대차 노조로 인해 한국 경제가 휘청거리건 말건 당신들이 무슨 상관인가? 이건 개인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나의 행동의 정당성은 그 자체로 평가받는 것이지 그로 인해 국익이 왔다갔다 하는 걸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유의 개념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도덕 교과서에서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비자발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맥도날드가 햄버거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롯데리아의 등장으로 맥도날드 매출이 줄었다면 롯데리아가 잘못한 것이냐하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이것은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 것 뿐이다. 그로 인해 국가 경제가 흔들리건 말건 그 책임은 현대차 노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민에게 있어 그 행동이 국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해야한다는 의무 같은 건 없다.

 

애국심이 밥 먹여주진 않는다.
 

 

 

문제는 현대차 노조의 행동이라기보다 경제 구조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수출은 2차산업의 비중이 높다. 그런데, 이 2차산업은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 무한정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력을 보유한 중국과의 경쟁에서 한국의 2차산업의 경쟁력은 며칠 남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의 해결방법을 임금에서 찾는다면 방향을 크게 잘못 잡은 것이다.

 

국민의 정부 목표가 국민소득 2만달러라고 하지 않았던가? 4인가족에 수입원이 가장 혼자라면 혼자서 8만달러, 거의 억대 가까이 벌어야하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의 달성을 위해 경제성장을 해야하고 그를 위해 경쟁력을 확보해야하기 때문에 임금 인상을 저지해야한다. 본말전도라는 사자성어를 가르치기에 아주 훌륭한 예제다.

 

누구를 위한 2만달러인가? 기업주 혼자 벌어서 평균만 맞추기 위한 2만달러인가? 다시 생각해보아야한다. 임금인상 저지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다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양보하는 사태가 일어나선 결코 안된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리는 상황에서 균형을 맞춰가야한다. 그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쨋든 임금 인상 저지 혹은 삭감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굳이 대안을 말하자면 인력의 고급화다. 중국에서 연봉 몇 만원으로 일하는 노동자와 연봉 4000만원을 받는 한국의 노동자가 같은 생산력을 보인다면 한국의 노동자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재계에서 이렇게 파업이 잦으면 임금 싼 중국으로 공장 옮기는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해야한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다. 이 또한 기업주의 권리다. 한국에 앉아 있으면서 불평할 게 아니라 좋은 조건으로 떠나야한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별 수 있나, 노동자들도 자기 살 길을 찾아야한다. 연봉 4000만원 값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그러자면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남들은 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자기 몸값 높이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왜 자기들만 매년 똑같은 일 하면서 몸값 높여달라고 하는가? 노동자들도 경쟁해야한다.

 

결국은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 자체가 점차 변해가야한다. 경쟁력 떨어지는 2차 산업 공장들은 점차적으로 중국으로 이주를 하고 노동자들은 자기계발을 통해 점차적으로 기술수준이 높은 산업에 종사해야한다. 노동자들이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을 품는다면 당신은 사람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2차산업 노동자들이 컨베이어 밸트 앞에서 단순 노동만 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그들 능력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변해야하는 시기가 오면 살아남기 위해 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농민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추곡수매가를 보장한다고 농민들의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농민들 스스로도 꾸준히 노력해야한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잘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가 세계적으로 상당한 상품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식품 산업, 수공예 산업에서 명품 브랜드화를 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더이상 미국, 베트남과 쌀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한국 전통 식품을 발굴하고 개발해서 경쟁해야한다. 김치처럼.

 

수공예품도 그렇다. 소위 초고급 명품이라 불리는 것들은 수공예품이 많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이태리제 가죽 쇼파 같은 것. 한국의 장농 같은 것도 개발하기에 따라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이 될 수 있다. 고부가가치라고 해서 첨단 과학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통을 이어 받은 장인의 솜씨 역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2차산업의 공백으로 인해 남는 노동자들은 이런 산업으로 투입되어야한다. 김치를 기계만으로 만들 수는 없다. 어차피 2차산업은 점점 자동화되어가고 인간이 해야할 일은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이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하는 산업이 많이 남아 있다. 나사조립 같은 건 임금 경쟁력이 좋은 중국에 맡기고 한국의 노동자들은 고임금을 받는 만큼 더 복잡하고 기술이 필요한 산업으로 옮겨가야한다.
 

 

 

우리 나라의 노사 관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사측이 많이 강하며 이것은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 이는 줄줄이 이어지는 하청 구조 속에서 노사 관계와 유사한 갑과 을의 힘의 균형 문제가 발생하는데 여기서 을의 약함은 노사에서 노의 약함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그로 인해 을에서의 노사 관계 역시 심각할 수 밖에 없다. 하청구조의 문제는 노동시장의 문제보다 훨씬 어렵다. 유연성도 훨씬 떨어지며 을끼리의 단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혈 경쟁, 제살 깎아먹기로 나가게 되며 그로 인해 하청구조의 말단으로 내려갈수록 노동자들은 점점 암울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노동자들은 곧 소비자이기도 하다. 고임금은 곧 소비 촉진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결국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노사관계가 좀 개선이 될 법도 하다. 그런데 왜 기업주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건 비단 기업주들의 식견이 짧아서만은 아니다.

 

현재 한국 경제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2차산업이며 이 2차산업의 핵심은 내수가 아닌 수출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가난하건 말건 기업의 입장에서 매출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하청 구조가 복잡한 산업일수록 그 소비자는 고소득층이기 쉽다. 말단 하청업체의 임금을 한두푼 올려준다해도 당장 그 기업이나 관련 기업들의 매출에는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이키가 동남아,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아무리 착취해도 그들의 매출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이 문제는 더더욱 해결하기가 힘들다. 현대차와 그 하청업체간의 문제에서 현대차가 양심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물론 현대차 노조가 양보하길 바라는 것은 아예 상관도 없는 문제다. 문제는 현대차에 맞설만한 카드를 하청업체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까진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쨋거나, 현대차 노조의 파업으로 하청업체가 어렵건 말건 그걸 노조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막말로 어려우면 사업 접는 게 여러 사람 돕는 길일 수 있다. 거기서 용감하게 사업을 접어야 다른 하청업체가 그나마 좀더 유리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어떠한 해결책도 미봉책일 뿐이다.

 

요즘 IT에서 SI 업계가 많이 암울하다. 제한된 수요에 비해 과도한 공급으로 단가는 계속 낮아지고 출혈 경쟁이 반복된다. 이런 과정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력 없는 SI 업체들이 빨리 망해버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청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나날이 어려워지고 비전도 없다면 빨리 망하라.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윤을 내지 못한다면 망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결국 힘의 균형이고 이건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이게 시장 경제고 자유주의다. 약자가 권리를 찾으려면 약자가 나서서 싸우는 수 밖에 없다. 현대차는 그 약자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현대차 노동자보다 훨씬 더 약자인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하지 말아야될 이유가 있는가?

 

가끔 파업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배가 불러서 저러느니 하는 분위기가 될 때 난 정말 짜증이 난다. 그러면 매일매일 끼니걱정해야하는 사람만 파업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파업이 유일한 카드이고 사용자가 협상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하찮은 문제라도 파업할 수 있다. 그게 노동자의 권리인 것이다. 파이를 키웠는데 키운 사람이 나눠먹을 수 없다면 파이의 논리는 폐기 대상이다.

 

이제 나누어야 더 커질 수 있는 시대다. 노동자들도 인식이 달라져야한다. 나보다 잘 사는 넘들이 파업하는 걸 보고 짜증낼 게 아니라 나는 왜 파업 못하나, 나는 바보인가하고 고민해보아야한다.

 

조중동은 이에 대해 이런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면 사회 전반에서 파업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서 국가 전체가 공멸할 것이라고. 그러나, 이것 역시 힘의 균형이 해결할 문제다. 무분별한 노조의 파업으로 기업이 파국을 맞게 된다면 그 노동자들은 다 일자리를 잃는다. 그들이 다음 직장에서 또 그렇게 할 것인가? 모든 것은 힘의 균형이 해결해가야하는 것이다. 조중동에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 자체는 그리 욕할 일은 아니다.

 

다만 반대의 입장을 열심히 떠드는 사람들도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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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록(creativeidler@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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