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 통장 잔액이 어김없이 세 자릿수를 가리킨다. 부모님께 손을 벌린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젠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하나 사 먹을 돈도 없다. 냉장고는 텅텅 빈지 오래다. 주머니에 남은 몇 백 원, 가방 구석에 숨어 있던 몇 백 원을 모아 마트에서 천 원짜리 콩나물을 사왔다. 팔팔 끓인 물에 콩나물을 넣고 소금을 뿌리고, 냉동고에 묵혀뒀던 청양고추도 꺼내 잔뜩 넣었다. 그래야 국 한 숟갈에 밥이라도 잔뜩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사흘 내내 매장에서 팔다 남은 빵과 콩나물국으로 버텼다. 일주일에 5일씩 출근하며 돈을 버는 데도 대체 왜 이 서러움은 매달 반복되는 건지. 내가 최저임금 받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여서 그런 걸까. 수십 억짜리 금수저 대신 평범한 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그런 걸까.
주휴수당, 4대 보험이라는 꿈
매일 아침 일곱 시, 집을 나선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파리바게트로 달려가 동료들에게 인사를 한다. 옷을 갈아입으면 일이 시작된다. 30여 종에 달하는 빵들이 내 손에서 만들어져 매장에 진열된다. 물론 그것이 내 일의 전부는 아니다. 조리기구들을 깨끗이 설거지하고, 조리실을 쓸고 닦는 것도 내 몫이다.
월화수목금에 5시간씩 일해서 받는 돈은 55만 원 남짓이다.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벌레가 나오는 7평 남짓한 내 자취방의 한 달 월세는 25만 원이다. 각종 공과금에 통신비, 교통비, 식비까지 내고 나면 저축은 생각할 수도 없다. 집에 쌀이 떨어지지 않는 것만도 다행스럽다. 왜? 나는 최저임금을 받아먹고 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니까. 그것도 감히 공부까지 하겠다는.
(사진: 알바연대)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법은 머나먼 이야기다. 근로기준법? 현실을 모르는 이들의 책 속에나 존재하는 꿈같은 권리이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기본적으로 보장된다는 4대 보험, 주휴수당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트 면접을 보러 간 날, 사장은 나에게 말했다. “우린 주휴수당 못 받는다고 동의해야 채용해요”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4대 보험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하루는 매장에 노무사가 찾아왔다. 나 이외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모두 1주일에 14시간만 일한다. 15시간이 넘으면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였다. 주방보조 일을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 나 혼자 5일을 일하고 있었다. 노무사는 사장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주5일이었던 근로계약서는 주3일로 바뀌었다. 근로계약서만 바뀌었다. 일하는 시간? 당연하게도 그대로였다. 그나마 그것도 어림잡은 시간이었다. 빵이 많이 팔리지 않는 날에는 일찍 퇴근해야 했다. 월급도 당연히 들쑥날쑥했다. 내 월급은, 곧 내 삶은 매장의 운영 상황에 달려 있었다. 물론 빵이 잘 팔려 추가로 근무하는 날이라고 연장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다쳐도 참았는데, 해고라니요
뿐만 아니다. 일의 특성상 뜨거운 기름을 매일 다루어야 했다. 좁은 주방에서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일해봤자 허사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손을 다쳤다. 한 번은 오븐에 팔 한쪽을 크게 데였다. 시뻘건 화상 자국이 올라왔지만 그저 찬물로 식힐 뿐이었다. 산재보험에 가입시켜달라는 말은커녕 치료비를 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일하다 다쳐 치료비를 요구했다가 일자리를 잃었다던 친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저 집에 있는 화상 연고를 조금씩, 조금씩 발라가며 다친 팔에 기름이라도 튈세라 조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내 월급을 쪼개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들어갈 만 원, 이만 원이 나에겐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기에. 치료를 받자고 병원에 가면 그달은 다른 공과금, 교통비, 식비를 제때 낼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래서 참았다. 참고 일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지난주로 잘렸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였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도중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요새 빵이 잘 안 팔려서 주방보조를 안 두기로 했거든. 이번 주까지만 나와라.” 이번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잘리고 싶지 않다고 잘리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대신 고민과 걱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당장 일자리는 어떻게 구하지. 공부는 또 어떻게.
균열이 생긴 일상은 하루빨리 복구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해고당한 후의 삶은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 한 명 정도야 쉽게 잘라버릴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잘려버린 나의 삶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었다. 모두가 아르바이트를 임시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 삶은 임시가 아니다. 빵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울분을 뒤로하고, 나는 어떻게든 내 삶을 건사하기 위해 혼란 속을 걸어야 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는 1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도 나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내가 해고당하던 날
2014년의 9월은 나에게 서러운 달이었다. 오랜만에 서울에 있는 부모님 댁을 찾아 저녁을 먹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유 모를 불안감이 스쳐 왔다.
“가현아. 나 점장님인데,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매장으로 잠깐 올 수 있겠니?”
다음 날 아침, 일정을 앞당겨 다시 부천으로 향했다. 짐작 가는 일은 있었다. 당시 나는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의 한 명으로서, 또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패스트푸드 업종의 노동실태를 증언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했었다. 기자회견 이후 한번 점장에게 불려가, “회사 유니폼 입고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혼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그날 들었던 이야기는 내 예상 밖의 것이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였다. 이유는 노동조합 활동 때문이었다. 딸 같아서 하는 소리라고, 얼른 노동조합에서 발 빼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황스러웠다. 당장 그 주의 근무 스케줄도 정해진 상황이었다. 매니저와 일할 시간을 더 늘리자고 이야기하고 휴학까지 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일에 문제가 있으면 고칠 테니 일하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점장은 “일도 잘해줘서 고마웠는데 본인도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답했다. 화가 났고 서러웠다.
해피밀을 만들면서 행복할 수 없는 이유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곳부터 바꾸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맥도날드 본사를 향해 지적한 문제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적지 않고, 적더라도 교부하지 않는 것은 일상이다. 심지어 몇 개의 근로계약서는 대필되곤 했다. 뿐만 아니다. 같은 알바들끼리도 ‘급’을 나누어 누구는 불고기 버거를, 누구는 더블불고기 버거를 먹었다. 자본주의의 경쟁은 동료들 간의 식사마저 차별했다.
17분 30초 배달제도도 문제였다. 맥도날드는 본사 방침으로 고객이 햄버거를 주문한 지 17분 30초 이내에 고객에게 배달하게 한다. 말은 쉽다. 아니, 말만 쉽다. 그 말 때문에 내가 일했던 매장에서도 몇 번씩 라이더들이 다치곤 했다. 시간을 못 지킬 경우 매장 점수는 떨어졌다. 올해는 배달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도 있었다.
제멋대로인 근무시간 역시 노동자들을 힘들게 했다. 꺾기는 그중 일부이다. 꺾기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무급으로 조기퇴근을 시키거나 휴식을 보내는 것이다. 손님이 많을 때는 다른 일이 있더라도 출근해야 했고, 손님이 없을 때에는 예정된 근무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퇴근하기 일쑤였다. 내 출근과 퇴근시간, 심지어 출퇴근 여부까지 매장의 사정에 따라 달라졌다. 심지어 출근하는 날 당일에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들은 적도 있다.
동시에 내 시간은 내 통제를 벗어났다. 아니, 그것은 내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섣불리 가지 못했다. 다음의 내 스케줄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곧 나는 내 삶의 시간을 통제할 주체성을 상실했다. 내 근무시간은 스케줄을 정하는 매니저의 시간이었고, 나는 맥도날드가 멋대로 주무르고 배치할 수 있는 노동력이 되었다. 심지어 그 근무시간을 기록한 표는 노동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조작되곤 했다. 덕분에 내 월급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다음 달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얼마나 일하게 될지, 삶의 계획을 세우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정당한 문제 제기에 돌아온 건 부당해고였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는 근로계약 만료였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 의사만 있으면 근로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됐다. 업무평가도 좋았고 일할 의사도 있었던 나만 유독 연장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선 한다는 소리는 노동조합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알바도 노동자다
작년 가을에 이어, 올 가을에도 해고당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럴 리 없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해고는 일상이다. 실수를 하든 하지 않든, 열심히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심지어 법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참아도, 갖가지 이유로 잘린다. 살충제 앞에 선 파리 한 마리의 목숨만큼 가볍다. 노동자의 사정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이들이 매장의 사정을 들먹이며 나가 달라고 말한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이 올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612명의 응답자 중 11%가 부당해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임금체불은 28%, 최저임금 미준수는 25%에 달했다. 명백한 불법행위에도 법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외면하거나, 뒤늦게 아는 척할 뿐이었다.
이렇듯 사회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우리 역시 낮은 임금과 유연화된 노동으로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 사실은 너무나 쉽게 잊힌다. 사람들은 우리를 ‘알바생’이라고 부른다. 노동자가 아닌 학생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근로계약서, 4대 보험 따위는 노동자가 아니기에 필요 없는 것이 된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노동자라고 외치면, 해고당한다.
그러나 여기, 그 누구도 모르는 척 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알바‘생’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알바도 노동자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이 자연스럽고도 간단한 말은 2013년 생긴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가장 먼저 내세웠던 구호다. 2년이 지났지만 이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일, 노동자의 권리를 망각 당하는 일. 지금 우리의 눈앞엔 당연해선 안 될 일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펼쳐져 있다.
불안정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
살충제의 향을 처음 쐬는 파리는 아주 쉽게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살충제를 자신의 유전자에 아로새긴 파리라도 그럴까.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오늘이 힘들다고 부당함에 눈을 감는다면 결과는 어떨까. 곧 다른 부당함이 나를 덮쳐올 것이다.
해고당한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또 해야 하는 일은 자신과 같은 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싸워내는 일이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지라도 말이다. 최규석의 웹툰 <송곳>에서 노동상담소 소장으로 등장하는 구고신은, 해고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 모가지가 얼마나 질긴지 보여줘야지.” 내 모가지 굵다. 나도 그렇게 쉽게 ‘잘릴’ 마음은,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의 해고 소식을 듣고 탄원서를 보내주었다. 같은 매장에서 일했던 이들, 같은 경험을 공유했던 맥도날드의 노동자들은 공감을 표하며 직접 거리로 나와 함께 행동했다. 맥도날드뿐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 편의점, 고시원, 소매업 등의 다양한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또한 열악한 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의 저항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근로계약서, 주휴수당, 4대 보험, 최저임금, 노동조합 가입 및 단체행동.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가 유독 ‘아르바이트 노동자’만 빗겨나갈 이유는 없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다. 노동자에게 노동자의 권리가 주어지는 세상을 위해, 다시 한 번 외친다.
(사진: 알바연대)
“알바도 노동자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이 목소리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해결이 말이다.
편집부 주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개최한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의 당선작입니다. 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널리 공유하고자 글쓴 분들의 동의를 구하고 이곳에 싣습니다. 이 글들은 <한겨레>와 <프레시안>에도 실립니다. 센터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비정규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길 기원합니다. |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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