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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깡, 욕망미시사에 한 획을 그은

2006. 6. 22.(목)
욕망-미시정치연구소

 

 

 

 

세일러문, 그녀들 주목하라

 

남성조직들의 횡포함이 극을 달하고 있을 때 여성들의 비밀결사가 조직된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응집력과 조직화의 수준, 전투력은 막강해져간다. 남학생들은 그 조직의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 조직의 공격대상이 될 것이라고 꿈에도 꾸지 못한다.

 

B라는 학생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남성들의 권력은 일상적인 파시즘의 수준에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힘만 믿고, 뒤에서 좀 놀았다고 동료아이들을 괴롭히던 B의 상황이 꼬이게 되었던 것은 반 여자애를 괴롭히면서 시작된다. 이윽고 세일러문이 소집되고, 이들은 무장을 갖추고, 먹이를 기다리는 야수처럼 덫을 놓고 B를 기다린다.

 

이 때까지도 B는 자신이 무슨 일에 말려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떤 여자애 A가 자기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할 때조차 여성에 힘에 대해서 그는 한 번도 인식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반에서 힘 센 자신이 좋아서 데이트를 하자고 하는 줄 알고 있었을 뿐이다. B는 너무 좋아서 A를 따라 나선다. A가 으슥한 곳으로 이끌수록 깊어만 가는 B의 흑심.

 

 

그런데 아뿔싸!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십 수 십 명도 넘는 세일러문들이다. 일단 세일러문은 B를 공격하여 완전히 무장해제한다. 그녀들의 공격은 예리하고, 훈련되어 있고, 대담하다. 정의를 위해서 조직된 사조직인 세일러문은 쓰러진 B를 몇 대 더 가격하고, 그에게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 것을 요구하며, 더 이상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사방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주지시킨다. 이 쯤 하면 세일러문의 승리처럼 보인다. 여기까지 시나리오는 여깡조직이 이미 상시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남성들만의 조직에 맞서기 위해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스토리이다.     

 

 

 

조폭마누라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여깡이 등장했던 것은 1970년대였다. 사람들은 여깡조직을 남성 깡패의 파트너나 양아치 조직 정도로 보기 쉬운데, 사실상 70년대 개발독재기에 여깡조직이 극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억압의 응축과 투쟁의 과정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당시 여성은 여공, 가정주부, 여학생, 창녀, 버스안내원, 경리 등 이 사회의 마이너리티로서 억압의 최첨단에 직면에 있으면서도 인내와 굴욕을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남성들의 일상적인 폭력적 미시파시즘에서 여성의 폭력이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자생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철거촌의 아줌마들은 빨래집게와 식칼을 들고 폭력에 맞섰고, 여성 노동자들은 눈물의 단식투쟁과 결속으로 맞섰다. 그런데 삶의 분자적 수준에서 변화가 생긴 것은 어머니와 언니들의 저항을 폭력에 맞선 폭력의 수준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여학생들의 조직들,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여깡 사조직을 결성하고, 조직적으로 남성조직들에 맞선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한다.

 

실지로 <조폭마누라>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여깡조직이 등장한 것도 1970년대 이후였다. 이 유신시절을 위태롭게 했던 것도 여성노동자였던 YH여공들의 강고한 투쟁이었다. 그들은 남성조직들의 야합과 타협의 관계 외부에 있었으며,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있었다. 이 여성들이 보여준 삶의 무늬와 결은 달랐으며, 저항의 폭력의 수준에서 대항폭력을 조직하고 있었다.

 

물론 여깡을 그저 미화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깡의 등장은 오히려 욕망의 미시정치사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남성들만이 독식하였던 폭력의 수준까지 변동시킬 만큼 남성-여성의 역할모델의 변동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깡 조직의 비밀과 은밀성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그러한 여성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깡조직 결성의 비밀은 가장 최하단의 하층여성노동자의 조직과 훈육 권력 하에 있던 여학생조직들의 만남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새로운 만남은 억압이 사회적으로 공존하고 있고, 도처에 있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에서부터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사조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대항권력의 프로그램을 원했으며, 언니들의 조직들을 따를 수 있는 사적인 결속을 공모하기 시작했다. 매우 자생적 수준에서 이루어졌던 사적 폭력의 공유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흠집을 낸 것이다.

 

 

 

여깡이 젠더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우리가 성을 생각할 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성sex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성gender는 생물학적 성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약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고 하더라도, 후천적인 성이 여성인 사람이 존재할 수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사람이 후천적인 성이 남성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젠더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주어진 성을 갖는다 할지라도 남성과 여성의 양성의 젠더를 다 가지고 있다. 여깡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성에 대한 미시적 의미를 재구축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되었다. 남성사회는 여성에 대해서 가학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은 피학의 입장에서 남성들의 결정사항에 대해서 혹은 국가를 비롯한 남성들로 구성된 조직의 결정에 따라 인내를 감내야해 했다. 남성-사드와 여성-마조흐라는 욕망의 프로그램은 여성들을 가족이라는 신경증적 프로그램의 피해자가 되게끔 했다.

 

그런데, 1968년 혁명이라는 전 세계적 수준의 새로운 욕망혁명의 역습에 남성조직들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여깡 조직이 1970년 초에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등장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가학모델, 폭력을 남성이 독점하던 욕망모델은 뒤흔들렸으며, 사회적 운동으로 패미니즘이 등장하게 된다.

 

사실 패미니즘도 제도화하기 전에 권총을 빼들고 남성들의 조직인 의회로 향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패미니즘은 사회운동으로서 제도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점차 수렴되어갔다. 그에 반해, 여깡은 분자적 수준에서 욕망의 혁신을 추구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깡의 등장은 사드-여성이라는 새로운 역할모델을 보여주면서, 레즈비언 운동의 욕망을 활성화시키게 된다. 레즈비언 운동은 여깡의 언니들로부터 사회적으로 최하단에 있는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으며, 그 조직에 자연스럽게 흡수되기도 했다. 여깡은 실질적으로 레즈비언운동의 욕망미시정치의 교두보이자 새로운 여성의 코드이기도 하다.

 

 

 

소수자운동의 혁신적 위상을 위하여

 

그렇지만 분명히 해두어야 할 점이 있다. 여전히 남성코드의 기득권은 사라지고 있지 않고, 여전히 상대적인 우위 속에 있으며, 전반적으로 여성은 사회적 소수자로 규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여깡은 피학의 입장에 선 피해자 여성의 욕망의 수준에서의 대항폭력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여성노동자조직인 언니들과, 철거깡패와 맞서는 어머니들의 부대들이 맞서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무언가 미시적인 수준에서 무장되어야 한다는 자생적 감수성을 가진 여학생들의 조직으로부터 시작하였다는데 특징이 있다.

 

그녀들이 한 행동의 구체적인 폭력사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의 미시적 수준에서 사회적인 성 역할에 대해 균열을 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성역할의 족쇄를 풀어내며, 욕망의 가학-피학 모델을 재구성해낸 여깡의 미시적 수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소수자운동 차원에서 그녀들의 조직이 공유한 감수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레즈비언운동이 사실 여깡의 미시적 수준의 성장과 매우 긴밀한 관련을 맺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여깡의 등장은 소수자운동이 결속되고 새로운 행동에 나설 새로운 욕망의 지도를 만들어냈다. 그 지도 위에서 욕망의 미시정치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욕망-미시정치연구소
적수(
redsh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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