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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생태학을 생각한다 2006. 6. 22.(목)
<저주의 몫>이라는 그 자신의 책 제목만큼이나 조르주 바타이유는 저주받은 사상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예술가다.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은 무엇보다 신체와 정신, 사회체에 가하는 가공할만한 폭력이다. 상징적 금기를 넘어서는 것, 죽음충동, 그리고 생명이 ‘죽지 않기 위해 죽는’ 집단적 소멸의식. 닭의 목에서 피를 따 자기 몸에 흩뿌리고, 처녀를 제단에 바치고, 집단난교를 하고, 재산을 불태우는 종교적 제의이자, 전쟁기계의 도입으로 인한 광폭한 카니발이 바로 에로티즘이다. 축제라고 하는 이 일시적 시공간은 상징적 금기체계에서 해방된다. 모든 신성한 것(상징체계)을 모독하기 위한 反-신성으로서의 신성한 제의(신성한 것을 모독하는 폭력이지만, 이것이 기묘하게 종교적 제의라는 신성한 수단을 통해 이뤄졌다)로서의 축제가 없었다면 생명과 사회체의 생태는 지탱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신성함의 상징체계에 우뚝 솟아있는 것이 노동과 부의 축적(불멸성과 영원성)이다. 그래서 에로티즘은 노동과 대립되고, 부의 축적과 대립된다. 에로티즘은 잉여로서의 생산이며, 잉여에 대한 목숨을 건 소비다. 원시사회에 도입됐던 이러한 에로티즘으로서의 폭력, 폭력으로서의 에로티즘이란 매카닉(기계)이야말로 생태학적 진실에 훨씬 가까운 셈이다.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시장이 생태학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을 예외로 한다. 그 한가지 예외는 야만인들도 알고 있는 것이지만, 현대인은 잘 모르는 그것이다. 바로 자본이다. 스스로 증식하는 자본, 축적되는 화폐만큼은 생태학을 거스른다.
화폐는 우리시대의 사회체에 우뚝 솟아있는 상징권력이다. 또한 이것은 금기다. 화폐를 불에 태우는 것은 대역죄에 해당하며, 반대로 화폐를 추구하는 것조차 윤리적으로 금기시된다. 모든 상징권력이 그렇듯 화폐는 이중선택을 강요한다. 태워도 안 되고, 가져도 안 된다! 바티이유를 따르자면 우리는 화폐를, 폭력(에로티즘)을 통해 넘어서야 한다. 모든 사물과 생명은 소멸되고 생성되지만, 유독 화폐는 그렇지 않다. 100원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떨어지지만, 1985년도에 제작된 100원과 2006년에 제작된 100원은 똑같은 100원이다. 이것만큼 생태학을 거스르는 것이 또 있을까? 영원불멸의 생명, 그것이 화폐다. 주식도 마찬가지로 영원불멸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기업이 투자를 얻기 위해 발행하는 초기의 주식을 제외하면 주식시장은 기업의 투자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주는 기업을 흔들어댈 권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폭력이 필요하다. 그렇다. 이것은 불쾌하게도 히틀러의 생각, 바로 그것이다. 파시즘적이다. 공황은 재축적을 위해 자본이 일으키는 폭력이다. 그리고 파시즘의 전쟁은 한편으로 에로티즘이 작동한 것이었지만, 불행히도 그릇된 방식으로 표출된 폭력이었다. 그러나 공황, 파시즘적 전쟁 이 모든 폭력은 생명의 이질발생을 통해 진화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체계를 재구축한다. 욕망 생산, 소수자 정치가 압살되고 사회는 경련을 일으킨다. 반대로 생명과 사회체가 원하는 것은 축제로서의 폭력이다. 화폐에 영구적 폭력, 그러나 부드러운 폭력을 가해야 한다. 영구불멸은 없다. 다른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화폐는 생태계 흐름에 숙명적으로 종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아마도 화폐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리라. 생명이 부여된 화폐는 늙고 죽는다.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생태학적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화폐로 하여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죽게 하는 법칙을 화페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이자로 도저히 상쇄될 수 없는 마이너스 인센티브를 화폐에 도입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폐를 폐기하고 새로운 화폐로 환전하는 시스템, 주식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 주식시장에 주식을 내다팔 때 중고차 시장과 동일한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것. 이런 것은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신성하고 부드러우며 유머러스한,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폭력이다. 이와 유사한 아이디어가 지역화폐론이다(여기에 관심 있는 이들은 <녹색평론>에서 소개한 가라타니 고진의 시민통화운동 관련 글을 보시라. 펠릭스 가타리 같은 이는 유로통화가 만들어진 현실에서, 유럽각국의 화폐를 지역통화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화폐권력의 아래로부터 화폐의 이질발생을 촉진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지역화폐론보다 화폐에 생태학을 적용하는 게 더욱 바람직해 보인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지역화폐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화폐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 이걸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태화폐?
생태화폐는 환경의 개선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특정 화폐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확하게 화폐생태학의 도입이라고 부르는 게 옳을 것이다. 화폐생태학은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화폐에 생명을 도입하고, 그리고 늙어가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겪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화폐는 이미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냐고 말할지 모른다. 1백 원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1백만 원의 가치는 현재의 1백만 원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목임금과 실질임금의 대비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은 가치의 순환을 의미할 뿐, 화폐 자체의 생명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통념과 달리, 화폐는 죽지 않는다. 화폐는 영원불멸의 삶을 산다. 그럼으로써 권력을 획득한다. 자, 당신이 1백만 원을 받는 월급쟁이라고 해보자. 당신은 노동을 해서 방금 싱싱하고 따끈따끈한 1백만 원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이 돈의 대부분은 소비에 투여될 것이다. 화폐를 소유함으로써 생기는 당신의 권리나 권력은 소비를 하는 권리다. 당신은 화폐를 사용함으로써 상품의 즉각적인 사용가치를 얻는다. 만약 당신이 저축을 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당신에게 필요한 다양한 사용가치에의 투여를 하지 않는다면 즉,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 돈은 축적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당신이 소비에 투여하지 않는 돈이 많을수록 화폐축적은 늘어난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축적을 많이 할 수 없다. 싱싱한 돈을 싱싱한 상태에서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축적을 하는 사람은 싱싱한 돈을 냉동보관하는 것이다. 방금 잡은 생선을 지금 먹지 않고 냉동보관하는 사람이 싱싱하지 못한 생선을 먹으리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화폐에서는 이것이 통용되지 않는다. 생태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축적되는 자본은 냉동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되어 증식하게 된 것이기에 싱싱한 것이라고 말이다. 부분적으로는 맞다. 축적되는 자본이 투자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우리가 건강이 나빠지고 늙고 병드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무리 병원에 다녀도 싱싱해지지는 않는다. 병은 피할 수 없고 늙음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화폐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화폐가 오로지 가치법칙에만 충실하고 모든 사물이 가져야 할 생태학적 법칙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의 경우를 좀 더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비즈니스를 위해 회사를 차리기 위해 동업자들을 구했다. 그런데 초기 자본이 부족하다. 당신은 이것을 투자를 받음으로써 해결하려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투자자를 구해 3억을 투자받았다고 치자. 그 순간 당신 회사의 권리는 6:4 정도로 투자자에게 회사 권력에 대한 지분 중 6정도로 넘겨주고, 당신 회사의 구성원들은 4의 권력을 가진다고 하자. 그로부터 5년이 흐르고, 당신 회사는 성장했다. 그러나 그 부와 결실은 풍요롭지 못하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5년 전 3억을 투자했던 투자자는 여전히 6의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생태계 법칙을 적용했다면 5년 전 3억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그리고 6의 권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3으로, 2로, 1로 마침내 죽어야 한다. 당신의 회사는 싱싱한 것을 생산하고 또한 싱싱한 돈을 벌어들인다. 그리고 당신 회사의 노동자들은 싱싱한 상태의 돈을 거의 즉석에서 소비해버릴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런데 당신 회사에 투자된(소비된) 투자자의 돈은 그렇지 않다. 만약 그 투자자가 당신 회사의 성장을 기반으로 해서 6의 권력을 다른 투자자에게 30억을 받고 파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때야말로 화폐가 죽지 않음으로 해서 생기는 모순이 더욱 극대화된다. 당연히 그 30억의 돈은 당신 회사로 투자되는 돈이 아니다. 이제 당신 회사는 30억을 주고 6의 권리를 산 투자자의 보상을 위해 좆나게 뺑이를 쳐야 한다. 주식시장이란 이런 것이다. 화폐에 생명을 도입하는 화폐 생태학은 3억의 돈으로 산 6의 권리와, 권력이 영원불멸의 상태로 지속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권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야 하며, 결국은 일정기간 내에 죽어야 한다. 화폐생태학은 전혀 이상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개념이다. 가령, 지적재산권을 보자. 지적소유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멸한다. 죽음으로써 모두의 자본이 되고 그것을 토대로 또 다른 생성을 도모할 수 있게 한다. 지적재산권은 그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것에 생명을 도입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지적소유권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가 어떤 발명품이나 새로운 것을 창안해내고, 또 그것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 그러나 지적소유권을 영원히 보장하지 않는다. 소유권이 사라지고 죽는 시간을 도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화폐에 대해 그렇게 못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사적인 필요의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필요화폐량을 넘어서는 일정한 화폐소유액에 대해 지속적으로 그것의 가치를 강제적으로 하락시키는 환전시스템을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며,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해 투자된 화폐로 취득한 권력에 대해서도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권력을 죽이는 방안이 도입될 수 있다. 화폐생태학의 좋은 점은 소비를 촉진시키며, 즉각적인 사용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활동(가난, 질병에서 즉각 구출될 수 있는 소비)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투자의 활성화를 가져오며, 투자에 의한 부가 점점 더 사회 공통의 것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투자 활동에 있어서도 이윤 창출(결국은 개인의 화폐소유분을 많게 하려는 축적의 목적)의 목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공생을 통한 창의적 경쟁으로 경제활동이 자리잡을 수 있다. 공생과 같이 협력의 토대를 발전시키는 것과 경쟁을 통한 변화와 혁신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을 부정할 필요도 없으며, 사적인 소득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 돈에 대한 욕망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투자에 의한 권리를 배제할 필요도 없다. 가장 나쁜 것은 이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것이다. 계획경제는 생태학적 카오스계에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 없고, 무능한 권력의 폐색상태에 이를 뿐이다. 카오스계의 질서는 패턴(생태계는 욕망의 자기조직화 경향을 갖는 끊임없는 리듬에 의해 형성되는데, 이것이 바로 질서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원불멸의 화폐권력은 욕망의 자기조직화 경향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시스템이었다. 그것은 잘못되었고, 사회체를 압살하고 있다. 화폐생태학의 제기는 전자화폐의 도입과 함께 사회적 쟁점으로 적극 제기되어야 한다. 현재 전자화폐는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 영원불멸성의 화폐권력을 쥐고 있는 자 모두에게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게 전자화폐의 도입에 따르는 화폐생태학의 제기는 부를 공유하고 사회적으로 공생하는 기반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화폐생태학의 전망에 입각한 자본의 영원불멸의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와 투쟁이 필요하다. 국가와 자본가조차 인정하고 있는 사회소득(소득기본권. 모든 사람이 일정한 소득을 가져야 하며,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정책)과 같은 쟁점도, 그것을 더욱 급진적으로 만드는 것은 화폐생태학이라는 비전일 것이다. 소득체계의 정비와 화폐개혁, 이 영역은 대대로 엘리트와 정치권력의 손에 순전히 맡겨져 왔다. 그러나 이제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이 영역의 투쟁은 사회적 부를 진정한 우리의 무기와 부로 틀어쥘 수 있는 제도투쟁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은 이런 투쟁으로 재편되고 다시금 활성화돼야 한다.
-욕망-미시정치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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