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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성격갑옷을 해체하는 무기

2006. 6. 22.(목)
욕망-미시정치연구소

 

 

 

 

 

 

우리는 공장, 병원, 학교, 가족 등에서 페르소나라는 위장된 가면을 쓰도록 권유받는다. 또한 우리는 갑옷처럼 두꺼운 성격갑옷을 정체성이라는 미명하에 강요받는다.

 

성격갑옷을 선택할 것인가? 페르소나를 선택할 것인가?

 

필자는 페르소나가 낫다고 본다. 성격갑옷의 정체성보다 우리는 페르소나를 욕망의 기예로 느끼고 있다. 매우 친절한 이미지를 주는 안내도우미의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지만, 정작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가면은 정체성이 아니고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오히려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얼굴을 벗어버리고 천개의 가면이라는 페르소나의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2005년 6월 1일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다. 점장 아저씨가 친절과 웃음을 누누이 강조하신다. 난 명랑하고 친절하게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동네 주민들이라 수더분하고, 좁은 지역이다 보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워낙 명랑하고 미모도 되니까 남자들이 나를 따라다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껄떡거리는 남자가 있어도 미소로서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첫 번째 알바를 성공리에 마치리라. 그런데 첫날부터 재수 옴 붙었다. 어떤 수더분하게 생긴 아저씨가 물건을 사고 나서 나의 가슴부분을 뚫어져라 보는 것이다. 그러더니 정말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수난의 알바여!

 

우리 동네 편의점에 새로운 예쁜 알바생이 들어왔는데, 내가 문을 열자마자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에게 한 번 더 미소를 짓고, 내가 물건을 고르는데, 나에게 미소의 시선을 떼지 못한다. 나를 좋아하는 눈치다. 나의 인기란... 나도 그 알바생을 자세히 보니 눈부시게 예쁘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나의 작업이 시작되는가 보다. 내가 가슴 쪽에 달린 이름표를 보니까 안소희라고 써져 있었다. 이름도 예쁘다. 계산을 하면서도 나에게 눈길을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소희도 나를 사랑하고, 나도 소희를 사랑하고... 므흣.

 

  2005년 7월 5일

 

편의점에 자주 들락거리는 변태가 있다. 첫날부터 내 가슴을 뚫어져라 보더니, 나의 주위를 배회하고, 자주 들락거리며, 할 일 없이 볼펜 한 자루를 사는가 하면, 하루에 라면을 세 번 처먹는다. 오늘은 그 변태랑 나밖에 없어서, 나는 무척 두려웠다. 그렇지만 나는 다정한 미소로 다행히 그를 물리쳤다. 하느님, 저에게 왜 수난을 주시나요?

 

  2005년 7월 7일

 

편의점에 소희가 오늘 안보였다.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미소가 더 다정해 지던 소희, 오늘따라 무슨 일이 있을까? 내가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니 몸이 아프다고 한다. 그 가냘픈 몸이 아프다면, 내 마음도 아파오는데....내일은 소희에게 나의 마음을 전달하리라.

 

  2005년 7월 8일

 

오늘은 변태자식이 안 보인다. 다행이다. 어제 감기에 걸려 아팠는데, 누군가 편의점 내 앞으로 꽃다발과 쌍화차 세트를 보냈다. 제발 그 사람이 변태자식만 아니기를.....

 

  2005년 7월 9일

 

나에게 다정한 미소를 보내준 사람은 이제까지 몇 명 없었다. 내가 실험적으로 하루 안 갔었는데, 오늘은 소희가 “안녕하세요.”하면서 더 쾌활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걸 보니 나를 기다렸었나 보다. 아마도 어제 준 선물에 너무 기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희도 내가 보내 준 걸 눈치 채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05년 8월 9일

 

점장님에게 변태자식에 대해서 얘길 했다. 점장님은 지역사회는 좁으니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라고 하신다. 차라리 눈길을 피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눈길을 안 맞추려고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고객인 변태자식에게 친절하지 않는다면, 점장님한테 야단맞을 거 같다. 나의 알바는 왜 이렇게 괴롭단 말인가? 흑흑

 

심증에서 확증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나에게 오늘도 명랑한 인사를 하였지만, 얼굴이 발그레 변하면서 나의 눈빛을 피했다. 내 친구에게 물어보니까 분명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때, 눈길을 피하고 얼굴이 빨개지는 거라고 한다. 이제 그녀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선 최대한 그녀가 나에 대해서 그리움을 느끼도록 해야 하겠다. 열흘 동안 나는 그녀를 만나지 않으리라.

 

  2005년 8월 19일

 

열흘 동안 변태자식이 안 나타나서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 갑자기 나타나 나는 화들짝 놀라서 물건을 우르르 떨어뜨렸다. 귀신은 뭐하나 모르겠다. 저런 변태 안잡아가구.

 

그녀는 정말 나를 좋아하나보다. 나를 보자마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당황해 하는 모습이라니....그러나 나에게 보내준 특유의 미소는 더 다정스러웠다. 그렇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조차 없다. 내일 나는 그녀에게 대시하리라. 

 

 


 

 

 

다음날 편의점에 미소 짓는 소희에게 혜정이도 미소를 같이 지으며 다가갔다. 그리고 영화표 두 장을 보여주면서 좀 어색하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한 장은 제 건데, 다른 한 장은 누구 거라고 생각하세요?"

 

미소짓는 소희.

 

"잘 모르겠는데요, 손님."

 

"바로 당신 거예요."

 

그러자 그때까지 다정스레 짓던 미소는 소희 얼굴에서 싹 사라졌다.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찬 목소리가 소희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 씨바, 나 알바 안해. 자꾸 이러면 경찰 부를 거야, 아저씨."

 

 

 

 

 

 

 

-욕망-미시정치연구소
문봉구(
redsh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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