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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파의 역사적 대타협이 남긴 것 2006. 6. 22.(목)
1968년 혁명 이후 욕망은 전 지구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였다. 이제 정치행위로서 좌우파에선 이 욕망의 인물들을 추방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서유럽 정치가 많은 경우 역사적 대타협, 상생과 화해라는 이름으로 노사협조주의 혹은 좌우파의 타협정치로 갔던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욕망의 인물들이 거리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좌・우파 정치가들의 회의가 긴급소집되었다. 오른편에서는 억압을, 왼편에서는 권위를 말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체제의 인물들로 바꾸어야 한다고 좌우파는 소리 높였다. 그들은 욕망이 거리를 점령하면, 대의제 일반이 위협을 당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좌파냐 우파냐를 떠나 의제와 권력의 여타 유형들 속에서 생존하던 사람들은 욕망이란 말이 공공연히 사람들에게 유포되는 것이 매우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치 일반이 부정되고, 욕망의 정치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처럼 유포된다는 것 또한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기존에 거리를 점령했었던 좌파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현재의 행동들은 그들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관련이 없다는 게 점점 분명해졌다. 그러나 좌파는 자신의 관련성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즉, 자신들에게 정치력, 다시 말해 대중을 포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거다. 좌우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도, 욕망의 인물들에게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보다 더 정교한 포획장치를 만들기로 합의한다. 좌파는 자신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당, 노동조합, 학생회, 사회단체 등을 통해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청년노동자들과 실업의 상황에 있는 대학생들의 저항을 재코드화시키고 제도 내로 포섭하려고 한다. 우파는 당, 가족, 시민단체, 관변단체, 종교단체를 통해 그들을 초월적인 권위에 복속시키려 한다. 그러나 욕망의 인물들은 수많은 제도들과 질서들, 기구들이 갖고 있는 포획장치들의 역할들에 대하여 비교적 쉽게 그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들과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었으며, 그것을 벗어나 알 수 없는 지대로 향한다. 그 지대는 기성의 원리로는 식별불가능한 지대였으며, 기존 공리계로는 파악할 수조차 없는 지대였다. 좌우파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청년들의 욕망의 역량들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욕망의 인물들에게 화폐를 회수하고, 욕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회수해 가는 일련의 조치들이 뒤따른다. 좌우파의 정책은 결국 욕망의 인물들이 꼼짝하지 않고, 기성의 제도에 무기력하게 두 손을 들고 항복하기를 염원했다. 체제의 입장에서는 젊은이들을 더 바쁘게 움직이도록 하고, 경쟁으로 내몰아 노동거부 및 전반적인 체제에 대한 사보타주의 여지를 차단하려 노력한다. 역량을 빼앗긴 상태로 현실에 결박당한 채 젊은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가족 시스템이나 교육 시스템에서 머무르며 끊임없이 교육과 재교육을 명분으로 한 통제를 반복적으로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모는 좌파의 활력을 급격히 빼앗아가고, 그들에 대한 배신행위에 대한 전반적인 공감대를 조성한다. 좌파는 체제 내로 급격히 이동하고, 신자유주의라는 재난적 상황에 대해 공모하지만, 스스로 무덤을 판다. 의회의 좌파는 욕망의 활력을 빼앗긴 신경증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적 물신주의, 즉 도착증에 맞서 신경증적으로 안정된 사회를 이룩한 존재로 자신을 보여주지만, 대중들은 철저히 안정의 토대를 잃어간다.
좌우의 공모는 필연적 실패 앞에 마주선 거시정치의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왜냐하면 대의제 일반이 욕망의 내재적 혁명 과정에서 그 기반을 상실한 이상, 남은 것이라고는 분자적 욕망의 정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욕망의 인물들은 자신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통제정치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활력 없는 정치 일반에 대해서 참여를 하지 않는다. 특히 그들은 좌파가 무엇을 배신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좌파가 겉으로는 진보를 말하지만 정책적으로는 철저히 욕망에 대한 통제에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청년실업자 집단들은 대부분 화폐를 회수당함으로써 욕망의 시간을 회수당하고 있지만, 좌우파의 공모 아래 진행중이던 재난과 같은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반드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서막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그 일반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응답일지도 모른다. 그 간주곡은 두더쥐 좌파가 보여주었던 비밀과는 전혀 색깔이 다른 새로운 비밀들과 은밀성으로 응답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가족과 제도와 체제를 잠식시키는 욕망의 행위들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보이지 않는 집단적 새로운 행동들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다. 예를 들어 청년들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금방 결혼으로부터 벗어나버릴 것이다. 가족이라는 체제의 기본단위들은 흔들린다. 심지어 저 불경스러운 스와핑과 같은 행위로 비밀스럽게 가족제도의 계약 제도를 뒤집어 버리고 그것의 위선을 고발할지도 모른다. 탈안정화, 즉 탈영토화되고 탈코드화된 욕망의 인물들은 가상공간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늘 네트워킹의 상태, 늘 간주곡으로서의 이동의 상태 속에서 존재하는 욕망의 인물은 현실의 기반 위를 둥둥 떠다니며 무리짓기 하는 풍선들처럼 들떠 있으며, 욕망의 사건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 누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 수 없도록 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가 감추고, 모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기존 포획장치들에게 비웃음을 던지는 가상공간의 게릴라가 된다. 욕망의 인물들의 재도전에 응답하는 좌우의 재공모는 필연적인 것이다. 마치 겉모습은 진보와 보수의 하모니, 근대성의 완결로 보일 것이다. 역사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승리와 진보와 보수의 조화로운 상생을 위대한 근대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좌우가 공모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원리 자체에서 스스로가 역사의 종말을 말하듯이, 제도내에서도 끝나버린 역사이다. 진보와 보수 그런 식의 역사는 종결된 역사이며, 실제로 지금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조차 없는 패러다임이다. 비의회 좌파나 비제도적 사회주의자들 또한 종결된 패러다임 내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비타협적 질서가 정당성을 갖고 있는 양 얘기를 한다.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파시즘적인 일련의 질서에 투항해 들어가면서 과거로부터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다. 우파나 좌파, 특히 좌파에 대해서 거리감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욕망의 인물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정치라는 포섭행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좌우를 떠나 그들은 혁명, 혹은 진보를 말하면서도 욕망이나 쾌락을 추방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 공모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기억해 두어야 할 점 한 가지. 욕망의 인물들이 지상에 나타날 때 붉은 깃발을 들었던 것은 반체제적인 욕망의 패러다임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지, 좌파의 이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좌파들은 68년 혁명이 갖고 있는 욕망의 혁명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감추거나 그 역사를 자신의 역사인 양 치장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파와의 공모를 통해 욕망의 인물들을 영원히 역사에서 퇴출시키는, 역사적 대타협을 성사시켰다.
-욕망-미시정치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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