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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b들과 함께 똥폼을 잡고 싶나요?

2006. 7. 21.(금)
욕망-미시정치연구소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당시에 조다쉬 청바지가 유행이었다. 당시에는 상당히 고가였던 이 청바지를 입고, 흰 셔츠를 입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면 아무래도 폼이 났다. 운동화도 브랜드가 있으면 아무래도 폼이 났다.


그랬던지라, 당시 자취를 하던 나도 조다쉬 청바지를 사기 위해서 돈을 모았다. 그러나 너무 비싼 청바지 가격에 결국 시장에서 조대쉬라는 짝퉁 청바지와 나이카라는 짝퉁 운동화를 사 입었다. 당시에 뭔가 있는 척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브랜드 옷을 입는 것은 반드시 필요했다.


부르주아계급의 자기과시는 스노비즘(snobbism)이라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스노비즘에 대한 한국어의 번역은 속물근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이러한 번역에는 문제가 있다. 스노비즘은 원래 캠브리지 대학에서 자기계층에 속할 만한 ‘체면’을 갖추지 못하거나, 내숭을 떨고, 흉내 내려는 부르주아 학생들을 일컫는 말로 통용되었다고 한다. 즉, 있는 척, 아는 척, 일종의 똥폼 잡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스노비즘은 강남지역에서 부동산 등으로 졸지에 부자가 된 졸부들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들은 1세대 스놉을 형성하였는데, 그들은 문화적으로 아직 부르주아계급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동남아 여행 다니며 보신관광과 섹스관광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등, 이른바 ‘어글리 코리안’ 이미지나 심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기껏 만들어낸 게 ‘명품문화’였는데, 자기들이 소유한 명품이 마치 그들의 계급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 있는 척하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명품문화는 있는 척 보이려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에 단순하고 손쉬운 방법이었으나, 스놉으로서의 과장된 행위들에 대한 희극성을 감출 순 없었다.


명품을 걸치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스노비즘 속에서 살아남겠다고 생겨난 게 바로, 짝퉁이란 또다른 스노비즘이었다. 짝퉁은 명품과 아주 똑같이 복제를 했기 때문에, 겉만 봐서는 구별되지 못하는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두 부류의 스놉의 진품명품 게임 속에서, 명품은 유치하고 과장된 욕망게임을 증폭시켰다.


이 1세대 스놉들은 명품에 중독된 자신들의 문화적 욕망이 얼마나 단순한 욕망의 지도를 그리고 있으며, 자본주의 문화에서 부르주아계급이 차지한 중요한 역할과 동떨어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명품 브랜드를 입기만 하면 부르주아계급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은, 명품에 대한 중독현상도 만들어냈다.


이전에 한 번 강남 사는 한 친구가 아파서, 문병차 방문을 하게 되었다. 친구의 지인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서로 알고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들은 명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명품을 갖고 있으며, 어떤 명품이 진정한 명품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2시간여 진행된 그 강남친구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나는 그들의 욕망이 과연 어디서 시작됐는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그들은 자기동일성을 명품 브랜드의 소유 여부에서 찾는 사람들이었으며, 이를 근거로 무언가 있는 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들의 자녀들로 대학 등의 고등교육을 받은 2세대 스놉은 1세대 스놉들과 다르다. 문화향유계급으로서 부르주아라는 자기정체성을 비로소 찾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 문화의 발전에 분명 부르주아 스놉들은 일정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전시관과 공연장, 서점들을 다니면서, 무언가 아는 척 하는 스노비즘을 형성하고,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2세대 스놉의 문화향유 행위는 가난한 예술가나 작가들에게는 아주 가뭄에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예술이나 창작행위도 이 2세대 스놉의 고상한 취향과 기호에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2세대 스놉들은 아주 예술적이며, 철학적이고, 문화향유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문화에 대한 소비를 자기과시로 알고, 자신의 취향들을 과장되게 드러내 보인다.


사실 1세대 스놉이 보여주었던 동남아 보신관광이나, 자기과시적인 명품문화의 유치함은 이 두 세대 간의 세대 차이를 만들어 주었고, 별로 친근할 수 없는 두 세대 간의 갈등의 요인이 되었다. 음악작품, 미술작품, 공연, 도서 등이 이 2세대 스놉을 타깃으로 기획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폼을 잡기 위해 미술작품 하나를 사주는 것이 가난한 미술인들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나아가 부르주아 문화 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스노비즘의 욕망, 똥폼 잡기의 욕망은 외피에 집중하면 할수록, 그 모양새가 우스워진다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들 스놉들은 자기과시의 고도의 방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한다. 스스로의 패션과 코드를 찾고, 상식과 교양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자기과시를 극대화시킬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짜릿하게 과시의 욕망을 성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척, 아는 척 하는 이들의 욕망은 물론 아주 유치한 것들이지만, 자기나름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려는 계급적 본능이다. 스놉들의 욕망의 지도는 단순 유치하지만, 그 포장은 매우 현란하다. 그네들의 과장된 레퍼토리들은 외피를 통해서나마 단순한 욕망의 고리들로부터 필사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욕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욕망-미시정치연구소
문봉구(
apep@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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