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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비평] 일밤 개릴라 콘서트, 여태 개기고 있냐?



2002.4.1.월요일

딴따라딴지

 







 릴라 콘서트. 일요일 저녁시간 안방극장을 책임지고 있는 테레비 쑈푸로 중에서도 꽤나 잘나가는 모냥이다. 재작년 말에 엠비쒸 일요일 일요일 야간에의 한 꼭지로 출발해서, 뭐 몇 번 하다 말겠거니 했는데 1년이 훨씬 넘도록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토록 개길 줄 알았다면 진작에 손봐줬을텐데 말이다.


수시로 물갈이되는 테레비 쑈푸로의 생리를 비추어 볼 때,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안 짤리고 굴러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 코너를 본다는 얘기. 그럼 저 애청자들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저 푸로를 봐주고 있는 건가?


여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감동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심지어, 단지 울기 위해서 매주 꼬박꼬박 저 시간에 저 채널로 말뚝박는 분들도 계시단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건덕지에 감동하고, 사서 눈물까지 흘려 준단 말인가?...
 







 주 오랜 시간동안 고뇌에 장고를 거듭한 듯한 표정의 가수가 개릴라 콘서트 참가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본 코너가 시작된다. (이때 가수는 테레비 무시했다간 생명 보전이 어려운 아이돌의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히 새 앨범을 발표하고서 프로모션 기간중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본 푸로 담당 피디가 나서서 가수에게 친히 임무를 내린다. 특정 지역에서 제한시간내에 홍보하여 일정 숫자의 관객을 모으면 콘서트의 기회를 주고 못 모으면 꽝이라는 계시다. 요로코롬 신의 계시를 받은 가수는 조빠지게 사람 끌어모아서 개쪽 안팔리도록 해야할 지상과제에 본격적으로 투입된다.


신의 계시 - 요게 핵심이다. 개릴라 콘서트라는 쑈푸로 코너 안에서 위의 저 조건들은 하늘이 1/2쪽 나도 어그러뜨릴 수 없는 자연법칙이다. 날짜건 시간이건 꼴리는대로, 바둑이 한 마리가 오건 사람 천 명이 오건 공연을 하고 안하고는 가수 지 맘일텐데, 그 자율권과 결정권은 방송에다 당연시레 맡겨놓고 시작한다. 심지어 모 신인가수의 경우는 인원수에 따라 활동 중지까지 조건으로 내 걸렸던 적이 있었다지.


상식적으로는 협잡에 가까운 조건이더라도 테레비라는 매체가 아니면 설 땅이 없는 존재들로서는 고개 수그리고 길 수밖에 없다. 적어도 개릴라 콘서트라는 코너 안에서 대중음악은 완전히 방송의 졸(卒, 노예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해서 다른 표현을 쓴다)이 된다는 얘기다. 애초에 본지가 티비야, 대중음악에서 손을 떼라에서 우려했던 내용이 아주 악질적인 방법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런 어거지 조건들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방송에 목매달아야만 하는 아이돌 가수 무리들만이 아니다. 매주 개릴라 콘서트를 보며, 사서 눈물 흘려준다는 감동의 애청자들도 대중음악을 굴복시킨 방송의 힘에 감격할 따름인 또 하나의 졸인 것이다.







제한시간동안 조빠지게 콘서트 홍보를 마친 가수가 무대에 선다.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다. 애초 계약만큼의 머릿수가 왔는지 안 왔는지, 가수는 알 길이 없다. 테레비를 쳐다보는 시청자도 알 수 없다. 근데 이 대목에서부터 가수는 울먹거리기 시작하고, 애기 하나 울면 옆엣 애기 따라 울 듯이 애청자들도 코끝이 찡해진다. 여기서부터가 하이라이트다.







사회자는 존나 개기면서 참석인원의 숫자를 카운트한다. 화면에 빨려들어가도 상관없을 듯 몰입되어 있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최대한 조마조마하게 만든 뒤 드디어 숫자가 공개된다! 딱 여기서 하이라이트 상황 종료다.- 쪽수가 합격점을 넘었건 못 넘었건 가수는 대성 통곡을 하고, 애청자들도 따라서 운다.


가수들의 경우, 쪽수가 모질라서 콘서트를 못하게 된 넘은 쪽팔리고 안타까워서 운다 치고, 숫자가 합격점을 넘어서 콘서트를 하게 된 넘은 팬들의 사랑에 감격해서 운다고 볼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왜 덩달아 우는가?










이 코너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가, 우상으로 군림하던 우리의 스타께서 흔치 않게, 팬들앞에 비굴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다. 우리의 스타들, 공연장에 규정인원만큼만 모인다면 영혼이라도 내다 팔 자세로 길거리 홍보에 나선다. 여기서 우리는 방송이 가진 딴따라 지배력의 막강함을 재확인한다. 방송이 아니면 감히 누가 이들을 이 지경으로 굴릴 수 있으랴.


그리고, 지금까지 한마음으로 스타 섬기기에만 전념해 왔던 울 시청자들도 덩달아 역전의 기회를 마련한다. 우러름과 동경 대신 동정과 연민의 마음,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가학적인 심리상태에서 저 넘 어케 되나 함 보자라는 자세로 시청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뚜껑을 열어보는 하이라이트 대목에서 시청자들은 한때나마 - 단지 개릴라 콘서트라는 푸로를 통해서만 - 악어의 눈물을 흘릴 기회를 갖는 것이다. 혹은,


그게 아니고 단지 출연 가수에게 일백푸로 몰입되어서, 또는 아이돌 바라기의 입장에서 울 오빠 잘되야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우리 시청자들이 울고 웃는다고 치자. 그건 결국 자신도 모르게, 어거지 콘서트 무대에 서 있는 가수들과 똑같이, 본 코너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방송의 어거지 절대법규에 동의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식으로다가, 방송이라는 사이비 하나님의 계시는 애청자들까지 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썰한 개릴라 콘서트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가면 본 푸로는 고기서 시마이다. 머릿수 채우기에 성공한 가수의 콘서트? 광고 끝나고 방송 자막 크레딧 지나가면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잠깐 보여진다. 그나마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해서 립싱크로 때워 버린다. 그리고 한 바탕 울만큼 운 시청자들도 가수가 공연을 어케 치렀냐는 관심도 없다. 코너 간판이 개릴라 콘서트다만, 여기에서 콘서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말 나온김에, 그럼 여기에 개릴라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적합한가 살펴보자. 개릴라 콘서트의 정의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펼쳐지는 콘서트란다(아직 백과사전에 저 어휘가 안 올라와서, 엠비쒸 일요일 일요일 야간에 - 개릴라 콘서트 소개편에서 고대로 뽑아왔다).


자 근데 아시다시피, 방송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저 개릴라 콘서트의 올바른 정의는, 자기네들이 만들어낸 어거지땜에 뼈도 못 추림이다. 콘서트 성사를 위한 정족수 확보라는 사명을 띠고 시간과 장소에 대해 존나 예고때리는 장면에 본 푸로의 반 정도를 할애하는 것 또한 개릴라 콘서트의 중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요로코롬 티켓까지 찍는 마당에 개릴라는 개뿔이 개릴라냐.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내용 및 사진 변조)


결국 개릴라 콘서트 푸로에는 개릴라도 없고, 콘서트도 없다. 정작 가수가 보여주어야 할 음악과 공연은 여기서 완전히 쑈의 들러리로 전락한다는 얘기다.



 리하자. 개릴라 콘서트라는 코너, 야바위에 가까운 조건을 내걸고 대중음악과 시청자들을 졸로 삼으려는 방송계의 야욕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푸로되겠다. 문제는 전썰한 바와 같이, 본 코너가 새 앨범을 발표한 지 얼마 안되서 프로모션 기간에 있는 아이돌 가수를 주요 출연진으로 포섭하고 있는 바, 가요 순위 프로그램과 같이 팬층의 규모와 열성을 확인하는 척도이자,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제의로서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거다. 그러는 와중에 음악이라는 알맹이는 점점 팬들에게서 멀어지고 말이다.


물론 예전부터 본지가 목놓아 부르짖어 온 것처럼 방송 스스로가 알아서, 딴따라 위에서 군림하려는 저런 뻘짓 시마이해준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다만, 결국 방송 푸로라는게 시청율에 자지우지되는 것. 그러니, 음악과 가수를 좋아하는 팬이자 시청자로서, 지금 가수가 방송으로부터 어떤 짓을 당하고 있는 건지, 음악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 건지, 그리고 그거 보고 질질 짜는 감정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얘기다. 괜히 비장한 척 부니기 잡는 푸로다만 그 개릴라 콘서트라는 푸로를 성립하게 만드는 전제 자체가 야바위라는 걸 안다면, 이건 정말 한 편의 코미디 아닌가?


이제부터는 개릴라 콘서트라는 푸로를 혹 보게 된다면, 괜히 질질 짜지 말고 여유있게 웃어줄 지어다. 그것도 비웃음으로.
 






1969년 1월 어느날, 비틀즈는 자기네들 음반을 녹음해 왔던 애플 스튜디오 건물 옥상에다가 무대를 설치하고 난데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이미 유명세는 누릴만큼 누렸고, 팀 해체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는 터라 금새 행인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천하의 비틀즈건 뭣이건 간에, 사전 신고도 없이 고성방가를 시작한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도 출동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이때 연주한 곡은 이들의 마지막 정규 앨범 <Let it be>에 실려 있는 [Get Back]이었다. 뮤직 비즈니스 시스템에의 염증과 멤버간에 서로서로 눈덩이처럼 커져 버린 반목을 털어 버리고,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get back) 보고 싶어한 그들의 소회 -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정규 공연장이 아니고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대로변을 택했다.







그리고, 이 돌발적인 퍼포먼스를 가리켜서, 사람들은 게릴라 콘서트라 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딴따라딴지 상임 논설위원
카오루 (meanjune@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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