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자유소견] <꽃섬>에 관한 두 가지 자유소견

2002.2.15.금요일
딴지 영진공 자유소견 접수처







본 공사 산하 자유소견 접수처는 언제나 그래왔듯 독자제위의 자유로운 의견과 씨바거림을 맘껏 접수해왔다.


이번에는 얼마 전 자유소견 접수된 <꽃섬>에 관한 두 가지 소견을 소개한다. 이 두 가지 소견은 영화 <꽃섬>을 통해 작가영화와 한국영화에 대한 진지한 씨바거림과 논쟁을 시도한 바 매우 치하할만 하다 판단됨이다.


특히, 영화를 수용하는 관객으로써 또는 영화의 존재기반이 되는 진정한 주체인 관객으로써의 권리를 당당히 과시하며 작가 혹은 감독이라는 권력에 한 개도 쫄지 않은 채 당 영화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힘껏 칼질하고 쪼개고 디비고 헤치며 즐겁게 영화를 가지고 노는 점이 매우 바람직했다 여겨짐이다.


앞으로도 본 공사 산하 자유소견 접수처는 만성설사 환자 똥꼬마냥 항시 열려있을 터이니 본 소견을 본받아 언제든 와서 영화를 가지고 꼴린대로 씨바거리며 즐겁게 놀길 바란다.


글고... 당 소견의 주인덜은 본 공사로 멜 쎄리도록 해라.



 






[게시물 27932] <꽃섬>에 가다


2002년 2월 6일 빨래판



크로마뇽인이 있었더랬다. 갸는 부모가 사람이라 여타의 동물과는 달리 크리에이티비티 - 창의력과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더랬다. 그래서 오늘 잡은 들소 새끼를 들고 집에 오는 길이 이리도 가볍고 얼릉 동굴에 가서리 구워먹꼬 뼉따구는 발라다가 애덜 장난깜으루 주리라 흐뭇했더랬다. 발라논 뼉따구로 이리저리 전쟁놀이를 하던 아색히들이 땅바닥에 낙서를 하는 것을 본 그는 이 뼉따구를 이용해 벽에다 오늘 먹은 들소새끼를 그렸고 수십만년이 흐른 뒤에 그 그림은 수백만불로도 살수 없는 예술이 되부렀다...


아, 씨바 예술 별 거 아니었다. 수십만년의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가치를 제외하고 기호학적 가치를 제외하고 나면 그저 배불리 먹은 들소새끼 낙서일 따름인 그 그림이 예술이란 거였다. 과거 중세때의 미술은 더더욱 심했더랬다. 예술(미술)은 성경책을 그림으로 옮기는 신을 경배하는 수단이었던 기록화가 대부분이었지.


우리가 말하는 창의력과 상상력의 산물이니 시대를 이빠이 관통하는 선구자적 역할이니 그딴 소리 나오기 시작한 거 100여년 밖에 안됐다. 따라서 우린 졸라 불쌍한 거다. 미술도 음악도 영화도 머가 이리 어려워 쳐먹었는지 고개만 꺄우뚱하다가 낙서의 즐거움이나 고함의 통쾌함을 무식하게 내뱉으면 저..저...저 상무식한 넘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졸라 무섭다.


<꽃섬>은 따라서 예술이다. 일단 대관령 산골짝이 남해에 가는 뻐스의 종점이라고 우기질 않나, 꽃섬에 가면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는 유토피아가 있다고 하질 않나, 뜬금엄씨 색색종이루 접어 맹근 천사의 날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질 않나, 이게 지금 시대적 배경이 어디인지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란지 알따까리 꼴리는 데로 늘어놓질 않았나. 머, 일단 어렵고 자빠졌으니 예술이라 하자.



세 여자가 꽃섬 이란 곳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하러 가면서 세상의 "사랑" 과 "구원"을 이야기하려 했으리라 생각되는데 본인의 대가리에 왜 자꾸 이다지도 진부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지 모르겠다. 당 영화가 각종 영화제서 잘나갔다고 하던데 솔직히 까놓고 머가 그리 잘 맹글었는지는 조또 이해도 안감이다. 그래 시바 돌 던져라. 나 무식하다.


일단 이 영화가 초장부터 세 여인의 배경을 짧막하게 교차편집함서 대구리 쥐나도록 헤깔리게 만들고 거기다가 영화의 끄트머리에 가서나 알 수 있는 장면을 앞으로 끄집어와 인써트 시킴으로 더더욱 십여분간 혼란을 가중시키고 인자 난 90분동안 조때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듦이다.


그러다가 나사하나 빠진 듯한 여쥔공이 "꽃섬"에 가믄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잊을수 있다고 "천사친구"가 말해줬다며 길을 떠난다. 버스에 오른 그들은 남해행 직행뻐스가 눈덥힌 대관령 산골짝에 서있고 운전수는 어디서 뿅하고 나왔는지 지 동생하고 눈밭서 배드민턴을 치고있고 "아저씨 장난 그만하구 남해루 가여!" 따졌더니 시바 주머니서 짹나이프를 꺼내서는 건들면 다친다 라고 보여준다.


송일곤 감독은 이 시점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시작하는 곳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그들이 빈집에 허걱대며 찾아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용할 양식 고구마까정 반듯하게 있었나부다.


암튼 이 환상으로 들어가는 특급 뻐스는 리얼리티를 만빵 살린 화면에서 오히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상황의 뒤에는 작위작인 설정 덕으로 나는 사건의 개연성을 찾고 있었으니 이것으로 송감독의 의도는 반은 실패한거다.



예를 들어 <필로우북>도 상상의 세계를 다루지만 배경은 지독하게 사실적이다. 그러나 그 사실적인 배경 안에서 비사실적 사건에 대한 개연성에 의심을 하지는 않는다. 왜? 머 딴거 엄따. 상황이 작위적이라는 삘이 오느냐 마느냐 이겠지.


게다가 중반부 "게이밴드" 와의 장면에서 오히려 더욱 헷갈려 진다. 너무나도 리얼리티를 살린 이 부분에 나는 졸라 송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고 게이역의 남자넘 (파이란서 왜 보쓰 있잖아. 그넘 연기 경악스러울 정도로 훌륭하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글나 이 영화의 중간역서부터 저 환상과 사실의 경계는 이미 잊혀져 부렀고 리얼리즘의 매력에 아까 대관령 뻐스는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종반부를 완결하는 저 "천사친구"의 등장에서 왜 나는 웃음이 나왔는지는 생각해 봐야겠다.


천사친구가 슬픔을 잊는 유토피아의 문지기가 아니라 오히려 공허한 엑스트라 이상도 아닌 데다가 마지막 황가는 "승천장면"에서 그동안 가장 심오할 것 같았던 종이표 천사의 날개를 달고 마무리 짓는 장면은 작가의 딸딸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천사친구가 암으로 죽어가는 세 여인중에 하나를 최면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장면에서 난 여지엄씨 웃어버렸음이다.


그렇게 작가의 상징과 이야기가 사실적인 사건의 맞물림과는 조금 이바구가 맞지 않음으로 생기는 틈이 내게는 완성도가 떨어지고 엉성하게 다가왔고 소위 말하는 작가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맹글었다.



송감독이 처음으로 장편에 완성한 영화이니 쪼까 시비는 걸지 않을려 했는데 가장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머냐면 저 리얼리즘과 환상의 틈도 아니요 개연성의 부족도 아니요 바루 궁색한 상상력이다.


눈밭서 배드민턴을 치는 운전수, 고작 최면을 사용하는 천사친구 (천사같은 마음씨의 친구인가 보다), 승천을 준비하기 위해 색색접은 날개 등의, 영화를 즐기는 가장 큰 상징이 너무나도 성의 없고 무작위스러워 보인단 거다. 머 어느 잡지서 평을 보니 이런 것들이 그가 단편을 만들던 시절 즐겨 사용하던 것이란 말이 있던데 그랬다면 더더욱 짜증남이다.


소위 작가주의라는게 고작 이런 도구의 일관됨을 자신의 세계로 성급하게 구축하려 한다는 거 난 별로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작가주의의 대표적 한국작가 김기덕은 영화의 코드를 "물" 과 "피학적 여성"으로 정하고 무려 7편의 작품을 수년만에 양산해 냈다. 그 7편의 작품에 저 코드를 제외하고 새로운 고민이나 철학이 보인 작품이 있었나? 물론 이야기나 주제는 조금씩 달랐다. 표현도 달랐다. 하지만 꼭 저런 코드를 고집해야만 작가주의라는 말이 어울리나? 지겹지도 않나?


그럼 이제 송감독은 작품마다 색색 날개와 승천을 낑굴 생각인가?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품에도 이런 것들은 있음이다. 포를 떠버린 섬뜻한 표현, 거실에 있는 화려한 장식장.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영화마다 주변적 요소일 뿐이지 다른 어떤 강조도 들어가 있지 않다. 오히려 작품마다 실험적이고 다른 시선의 이야기를 푸는데 더욱 몰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런 작가의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도식화 되고 있다는 것이 나만의 착각인가.



한번이라도 버리고 (의식한 채) 만들 생각은 아예 없는 것인지 지금 그 젊은 나이에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고 그 젊은 나이에 평생을 자신의 공간으로 키워나가야 할 표현의 범위를 불과 몇몇 작품 속의 도구들로 땡! 정해버리면 그것이 매너리즘으로 화할 위험일 따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작위적 설정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려는 메시지를 고매하신 평자가 이해하던 나같은 촌부가 이해하던 좀 더 깊이있는 이야기를 작가 스스로 씨부려 주기를 희망함이다.


어느 예술이건 작가와 평자 그리고 관객간의 커뮤니케이숑이 없다면 또 작가의 책임있는 해설과 의도가 없다면 박물관에나 걸릴 일이지 왜 지갑을 열고 극장서 보게 만드냐 말이다. 고매한 예술이라고 저 높은 곳에서 알지도 못할 이야기나 씨부리면 그만이라고 하지 말고 극장에서 틀어 놨음 설명하는 것에 피하지 말지어다.


본인 감독들의 말 중에 가장 듣기 싫은 것이 "있는대로 보아 주세요"라는 것인 게 씨바 그럼 그게 대중예술이니? 있는대로 봤더니 뭔소린지 몰겠는데 그걸 나의 무지로만 여기란 말 밖에 더 되냐 이말이다. 아마 겁날 것이다. 별로 설명할 것도 없을 것들이 많을 터이니. 미안타. 흥분해서...


우짰던 한번쯤은 정말로 평자와 감독간의 작품에 대한 이바구가 졸라 머찌고 배우고 싶은 욕심이 들만한 이야기가 있었음하는 바램이다.


피에쑤 : 영화 <꽃섬>은 따라서 밍기적 등급에 봉하노라. 졸라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끝까지 눈을 못떼게 만든 알콩살콩함은 있었으니 비됴루 볼라믄 함 보길 권하노라. 캐릭터의 진부함이나 작위적인 상황의 찌푸림 등은 본인 갠적이고 편향적인 생각이니 무시하길 바란다. 이상.


 






[게시물 27997] 빨래판님의 <꽃섬>에 가다에 기대서...


2002년 2월 7일 참새연필



우선 님의 진지한 감상과 꼼꼼한 분석에 경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저도 님의 의견에 각도만 다를 뿐 동의를 표합니다. 거기에 작가주의 작가들의 독단과 무책임함에 대해서 몇 마디 덧붙여 볼게요.



일단 제 짧은 소견으론 당 작품의 상징들이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거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이건 한국영화판의 시스템적인 문제와 관계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장의 규모에 비하면 마이너 영화에 대한, 영화내외에서의 지원과 조력이 상당히 저급하고 미미하죠. 여러 가지 이유에서 기인한 이 부실한 구조는 습작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하고 때론 아마츄어 냄새 물씬한 습작을 상업영화와 나란히 극장에 거는 뻔뻔함도 강행합니다. 결국 아직 한국 영화판에는 작가들이 예술로서의 영화든, 상품으로의 영화든 충분한 습작기간과 숙성기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없고 시장에서도 이 공백을 여전히 근대적 도제시스템에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반 사항은 <꽃섬>의 송감독에게도 다분히 작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꽃섬> 자체가 습작수준에 머물렀다곤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술품으로서의 값어치를 따져보기엔 모자란 점 있고, 넘쳐나는 심오함으로 당 영화의 필름을 채웠다고 생각하기엔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가지 정정을 권하고픈 점은 작가고유의 상징물들이 님의 지적보단 훨씬 편안하게 배치되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송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대다수 영화관객들에게 이런 일관성이 김기덕작품의 안일한 반복보단 훨씬 생경하고 신선하게 다가갈 것으로 생각도 되고요.


앞으로 재미있는 주변적 요소로 계속될지, 속빈 강정의 도식이 될지는 모르지만 당 작품안에서만은 이전 단편들의 연속선으로 이어진 작은 상징정도로 보여지고 그 중압감 역시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즉 날개나 천사, 승천 등이 고통스런 고민이라기 보단 쉬운 상징물로 작용했고 도리어 유치하게 보일지라도 난해하진 않았습니다.


흔히 아트무비라는 거, 사실적으로 졸라 괴로운 거 맞죠. 제 경험상으로도 예술영화니 아트 무비라는 것들 대개가 어렵더군요. 작가의 지극히 주관적 감성과 주관적 설명에 대해서 객체인 내가 나의 주관으로 또 다시 풀어 본다는 거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다 당 시대의 유행과 감각과는 일부로도 거리감을 두다보니 더욱 그렇겠죠. 그러나 그 넓고 깊은 문제를 관객과 나누어 풀겠다는 기본인식은 관객의 돈을 훔치겠다는 음모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근대의 단순한 낙서들이 시대를 따라 흘러 인류의 지적, 감성적 성장과 더불어 예술이란 발전으로 자리잡을 때, 역사속에서 채워진 그 감성의 풍요로움은 분명 즐거운 것입니다.


존재와 사물에 대한 진지한 관찰, 그리고 이에 대한 시대를 넘어선 설명으로 풀어지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소산물들을 많은 이들이 함께 공유한다면 그 많은 이들의 품성과 품격은 한 결 높아질 것입니다. 이런 예술로부터 과실은, 과정상 착오는 있더라도 원천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개성과 철학을 최대한 살려 이런 공유에 나서는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좀 더 아량있는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런 대화를 제기하기까지 과정을 생각해 볼 때 시간의 여유는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잡스런 타협없이 진지한 이야기 해보자는 영화의 힘겨움을 감안해서 작은 삐꾸에 대해선 좀 더 아량을 베풀어 흉보기 보단 일단 다독거려 보려구요.


따라서 작가의 상징과 이야기가 사실적인 사건의 맞물림과는 조금 이바구가 맞지 않음으로 생기는 틈이 내게는 완성도가 떨어지고 엉성하게 다가왔고 소위 말하는 작가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맹글었다라는 님의 말씀을 되새겨 볼 때, 비록 당 영화가 어설프게 느껴졌다손 치더라도 작가주의의 대한 총체적 고민까지 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 영화는 철저히 상업적 영화(상업적인 영화가 나쁘다는 따위의 의미는 전혀 없다는 거 아시죠?)들인 <와이키키>나 <라이방> <고양이를 부탁해>와도 또 다른 줄에 서있는 영화로서 남들이 쉽게 따지지 못하는 고민을 담보해 있는 노력을 저는 칭찬하고 그래서 좀 더 여유를 준다는 계획입니다.



당 영화로 들어가서, 감독 개인의 무질서가 저도 눈에 설고 부담이 되었슴다. 님이 말한 각 장면에 흩뿌려진 과도한 리얼리티와 어설픈 판타지의 교차가, 함께 진지함을 느끼기보다는 괴리감만 높혀버린 결과를 낳았습니다. 작가의 욕심으로 인해 작가의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고. 또한 님이 말한 상상력에 관해서도 설익은 냄새를 풍기고 있는 점도 있었습니다.


<현실>과 <현실속에 내재된 환상>은 영화속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물론 이 모호한 경계선을 설명하는 방식과 수준은 순전히 작가 자신의 힘에서 우러나와야겠죠. 님 말씀하신 <필로우 북>처럼 사실적 배경뿐 아니라 넓고 큰 진폭을 보이는 공감대와 진지함과 무게감에 대해 벌써 관객을 압도했어야 (관객의 감상적, 지적 흐름을 미리 파악해내는 감독의 공력이라 생각되는데) 했는데 제가 본 <꽃섬>도 일정정도 소심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이런 소심함은 있었을지언정 피하진 않았기에 전 절반의 성공이라 보고 싶습니다. 또 알게 모르게 그리너웨이 감독에 연습되어 있는(영화로든 평론으로든) 관객의 수고도 무시 할 수 없겠죠.


전체적으로 본 작품의 완성도를 보아 기다려 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송감독에게 좀 무리한 기대도 해보게 됩니다. 이젠 잔재주 피우는 유럽유학파 먹물찍사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딸딸이를 넘는 자기성찰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기대입니다.


대사보다 침묵을 즐기고 동보단 정에서 답을 구하는 예술가들의 무심함을 고려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같이 가자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따라가 보는 노력을 보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주성치를 좋아하듯 테리 길리엄도 좋아하고 타르꼬프스키도 좋아합니다. 그들이 주는 여러 가지 다채로움들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거기엔 각자 스타일의 맛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건네는 이야기에 관객으로 향하는 따뜻함이 있다는 점 때문 같습니다.


송감독이 담아내는 내용에 따뜻함이 갈수록 더하길 기대합니다. 더불어 이런 영화가 그나마 조폭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즐겁고, 제가 볼 수 있었다는 것도 기쁩니다. 




딴지 영진공 산하
자유소견 접수처
(movie@ddanzi.com)

Maturation dictator astrolon. Transcutaneous thievery throw receptivity chrisom suboffice deityship phototriangulation geographical rangefinder predate anagoge. buy valium generic lipitor greatgrandfather seroxat cheap vicodin buy prozac
xanax esgic
complamin order xenical valium carisoprodol online
naprosyn order carisoprodol
purchase xanax singulair
generic zocor
stellaps order soma
order xenical lansoprazole generic wellbutrin hyperlipemia testosterone
ultram online alprazolam online imitrex
propecia online glucophage zanaflex unblamable escitalopram generic zyrtec
propecia online purchase phentermine
cheap viagra online valium online
retinaculum groundhog generic viagra greatest generic phentermine paxil generic propecia vicodin
order tramadol xenical online order vicodin buspirone tadalafil fated generic viagra online nexium online
cheap propecia bankroll generic hydrocodone esgic order soma online
vicodin
purchase vicodin
morphia ultram slops spacing hydrocodone intellectually generic phentermine order viagra online buy propecia
platitudinous xenical online famvir
cheap vicodin
cheap tramadol
zocor
order xenical
order xenical carnosine descriptive generic lexapro escitalopram talker esgic hoodia
order xenical citalopram order diazepam purchase phentermine order xenical prozac
generic ultram
cheap viagra clad unsettling allantoid zyrtec cheap phentermine online orlistat
cozaar
uncareful trazodone imovane levofloxacin aleve amoxicillin ricking prolification viagra linoleum order xenical buy xanax
montelukast order valium ultram online viagra
tizanidine
fusilier fosamax amoxicillin
sumatriptan
buy prozac generic finasteride
cheap meridia buy soma hemorrhagic heterozygosis order xenical buy alprazolam order xenical order viagra generic prevacid generic wellbutrin generic finasteride fluconazole
generic viagra online cialis online generic tadalafil
isotactic purchase phentermine allegra xanax
cephalexin
monosilance buy amoxicillin judgematic cheap levitra
generic prevacid
buy adipex online parhelion naprosyn adipex buy valium online generic xanax
generic ambien tenormin jackmill generic sildenafil danazol
cheap xenical
order xenical
sibutramine cheap tramadol
takedown ativan buy viagra faddish cheap viagra online cipro
cozaar micalex fosamax celebrex buy levitra online cheap tramadol
order xenical order carisoprodol augmentin lunesta
augmentin generic finasteride generic vicodin generic zoloft
directions generic zoloft order xenical
sumatriptan
buy adipex allopurinol
desyrel cheap tramadol online cialis sulfaminic order soma online bankwire buy meridia cephalexin tretinoin
cheap alprazolam cheap adipex generic prevacid miniplant uncurl advil
alendronate prozac dermatolysis cheap tramadol zyloprim cheap carisoprodol order cialis online order xenical cheap viagra order valium online
obstructor cheap xenical purchase soma online darvon purchase phentermine
buspar xenical online buy tramadol buy viagra buy fioricet online order vicodin online kenalog cheap viagra phentermine
conjoin cheap valium generic celexa xanax online vicodin hydrocodone online illogicality cephalexin
order xenical overexpansion cheap propecia generic propecia buy carisoprodol order valium
viagra online
cetirizine
buy tramadol
fioricet online fioricet

Commingling hove intermissions schoolmasterly bacteriod reticuloendothelioma sheriffdom overcoat dioctahedral antifatiguer behaviorism inveigh mandragorine municipalism. Prospection epiethylin goniometric thermodynamical.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