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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오부풰임 특집] 쌍팔년도 청춘팝스타 열전


2001.2.18.월요일

딴따라딴지 홀오부풰임 어쏘시에이션

 


 딴따라딴지 홀오부풰임 어쏘시에이션 특별위원회 편
 


빠순이라는 말이 아이돌 연예인에게 광적인 애착을 보이는 2차 성징기의 여성을 일컫는 용어로 정착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만, 실질적인 빠순이 역사는 유구한 전통을 자랑한다. 요런 계열의 얘기만 나오면 울궈먹는 스토오리 1969년 10월 클리푸 리차드 내한공연 사태를 빠순이 집단의 사회세력화, 그 기원으로 볼 수 있을 듯.


이후 시대별로 5년 안쪽 정도의 기간을 주기로 하여 여러 국내외 아이돌 가수들이, 당시 막 가슴이 커지고 골반이 발달할 나이또래 소녀들의 마음을 포로로 잡았다가 놔주는 싸이클이 반복되었다. 그 아이돌들의 출신지가 국내쪽으로 편중되기 시작했다는 변화가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주기는 돌고 있고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지구가 자전하는 한은 빠순이라는 용어가 없어지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9시 뉴스만 켜면 원형탈모증 말기 환자를 볼 수 있었던 그 풍운의 1980년대에, 중고딩 여학생들의 책받침 단골 모델로 맹활약했던 아이돌 뮤지션 다섯 팀과 그 영광의 시절을 함께 했던 음반들을 추려 보았다. 왬, 아하, 듀란듀란, 컬쳐클럽, 프린스...가 바로 오늘의 쥔공 5인방들인데, 우덜이(기자 다섯 명이 출동하여) 얘네들을 굳이 역사속에서 끄집어 낸 것은 비슷한 시기에 위명을 떨쳤던 외국 팀들이라는 공통점 말고도 다들 비스무리한 발전 혹은 쇠락의 길을 걸어 왔기 때문되겠다.


대중들의 구미에 맞는 음악과, 출중한 미모를 바탕으로 인기몰이를 한다...는 것은 아이돌 가수 야전교범 제 1장 제 1과에 공통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조항이라 전세계 어떤 사례를 디벼봐도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근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뒤의 이야기다.


고만고만한 음악 계속 어영부영 만들면서 반짝 청춘 시절에 한밑천 단단히 잡고 요바닥 떠 버리면 남은 여생 편안히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데 오늘의 쥔공 다섯팀은 하나같이 저 단계에서 안주하지 않고 아리스트로의 발전을 위해 몸부림쳤었다는 거다. 그 결과, 일부는 아이돌 시절을 능가하는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고, 일부는 전만큼은 아니지만 그 변신에 대해 응분의 갈채를 받았고, 또 일부는 아이돌 시절의 이미지 때문인지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모두들 그후 인기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만의 진지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뼈를 깡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다가, 아이돌에서 아리스트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저 동네의 딴따라판 구조에서 우리는 장차 울나라 딴따라판이 나아가야 할 이상향을 본다. 본지, 지금껏 아이돌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태에 대해 입이 헐도록 씹어 온 것도 다 보기 싫으니까 썩 꺼져라는 게 아니라는 거 아직 몰겐냐? 우리도 정말 쟤네들이 생각 바로박혀서 진짜배기 음악을 위해 매진하는 그런 모습이 진작부터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구.


하여튼 우쨌든간에 각설하무네, 상기의 목적과 취지일랑 가슴 한 구석에 아로새기고들,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심신 수련과 건전한 이성교제의 장으로서 큰 역할을 했던 로라장의 배경음악, 코팅 책받침, 라디오 녹음 테이프의 꼬질꼬질한 음질로 기억되는 쌍팔년도 아이돌 오빠들을 만나러 추억 여행을 슬슬 떠나 보도록 하자.
 






 "FANTASTIC" - WHAM!









열아홉 청춘스타의 후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멜로디에 울나라 소녀들의 마음이 녹아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이틴 잡지에 나온 죠지마이클 사진을 찢어 참고서 겉장을 포장하고, 문방구서 사온 앤드류 리즐리 사진을 코팅해 책받침으로 쓰며, 고놈들이 착용했던 스노우진 청바지와 에레이 겨 반농구화와 팔목에 찼던 아대를 따라 했었다. 그것이 당시 으샤으샤 심각하던 대학생 형들을 이해할수 없었던, 80년대 우리 사춘기 어린 청춘들의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잘 흘러가고 있는 팝음악의 흐름을 굳이 10년 단위로 끊어 한마디씩으로 요약하라 한다면, 60~70 년대는 음악자체의 실험과 창작에 골몰했던 시기였다 할테고, 반면 80년대는 MTV의 등장으로 음악외적인 개성이 강조되고, 본격화된 경영과 마케팅으로 음반시장이 번성하면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수히 쏟아져나온 스타들 속에서 옥과석이 공존하던... 그야말로 "영광과 오욕의 전당 - Hall of Fame+Shame" 이라는 홀오부페임의 본뜻에 제법 어울릴 만한  그러한 시대였다고 본 기자 조때로 정리해 본다.


개중 "왬!"의 해산이후 죠지마이클이 보여준 음악적 성숙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80년대의 아이돌 청춘스타가 세월따라 어떻게 성장해 가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모범사례라 할만하다. 그러나 뭐가 옥이고 뭐가 돌이네 판단해 줄 눈금같은게 있을리 없는 주관이라는 잣대로, 굳이 이 음악은 성숙했네 저 음악은 미숙했네... 가려내려 애쓸 필요는 없겠지? 어쨌거나 그들은 본 기자의 철없던 날들을 함께 해주던 추억의 존재들이니까. 누가 모라하든, 내가 좋아했던 바로 그 "왬!"이니까...









앤드류 리즐리...이 분 요새 머해먹고 사는지 아시는 독자들은 멜 주시라...


이 앨범 "FANTASTIC"(82년제작.발매는83년)은 재주많은 느끼남 죠지마이클(George Michael)과, 얼굴마담 꽃미남 앤드류 리즐리(Andrew Ridgeley), 요 1963년생 동갑내기 단짝친구가 전부터 함께했던 아마츄어밴드 "The Executive" 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큰물에서 놀게된 "왬!(WHAM!)"의 첫 데뷔앨범 이다. [Wake Me Up Before You Go-Go], [Freedom], [Careless Whisper], [Last Christmas] 등등 초특급 메가히트곡들이 실리게 될 이후 앨범들에 비해 이렇다할 히트곡들은 없지만, 이 앨범에는 아직 세련된 자제에 물들지 않은 통제안된 재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는 이 앨범을 통해 "청춘로맨스 외화시트콤" 한편 보는 듯한 그들의 열아홉 혈기왕성한 치기를 맘껏 느껴볼수 있다. 가죽잠바 싸나이가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와 문을열고 들어서는 [Club Tropicana] 의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기며, "WHAM!"과 함께 그대들을 말도많고 탈도많았던 80년대의 추억속으로 초대한다!


- 구의동 국제로라장을 추억하는
김흥꾹 기자
(hotqna@hotmail.com)



 "HUNTING HIGH AND LOW" - A-HA







아하(a-ha)하면 젤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화와 실사를 합성한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테이컨미 Take on me]일 것이다(왜 용필이형도 어떤 CF에서 흉내냈었잖아..). 당대에 뮤직비디오의 덕을 그것도 한곡으로 대박을 터뜨린 뮤지션은 아마도 아하 하나 뿐이 아닐까...


게다가 아하를 상대할 라이벌이 없던(당시 많은 뮤지션들 중 듀랜과 컬쳐, 왬과 티어즈포피어즈라는 라이벌 등식은 성립했지만 아하는 그야말로 비교대상이 없던 다른 분류의 그룹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그룹들이 영국계인데 비해 놀웨이 출신이라는 희소성까지..) 것도 컸다. 아님 모두가 라이벌이라고 볼 수도 있고 가끔 듀랜듀랜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그거야 듀랜이 가장 앞서는 뮤지션이었으니깐 괜히 한번 건드려보는 거였지.


물론 [테이컨미]외에 [The Sun Always Shine On TV], [Love is Reason] 등이 국내외에서 히트함으로 뮤비의 성공만으로 뜨는 단발성 그룹의 의심을 벗어나기에 충분했고, 이후 발표되는 앨범마다 [Mahattan Skyline], [Cry Wolf], [The Living Daylights(사상최악의 제임스본드인 티모시달튼 007의 주제가로 쓰인)], [Crying In The Rain(Everly Brothers의 곡을 리메이크한)] 등의 히트곡 등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보컬인 모튼하켓(왜 있잖냐.. 역시 리메이크 곡이지만, 콘헤드와 몇년전 줄리아로버츠와 멜깁슨이 주연한 컨스피러시의 삽입곡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히트시켰던)이 솔로 활동에 들어가면서 부텀 사실상 팀은 해체하기에 이른다. 몇년전 7번째 정규앨범 <Minor earth major sky>를 발표했지만 잠깐 반가운 마음만 들었을 뿐 크게 빛을 보진 못했다.


암튼지 그건 머 비틀즈라도 지금 앨범 발표한다고 히트가 보장되는 건 아니니깐...


그래도 넘들의 앨범중 넘버원을 가리키라면 데뷔앨범인 이 "Hunting High and Low"를 추천한다. 이유는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했고, 많은 히트넘버가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으며, 어느 곡 하나 버릴 수 없는 완성도, 신인으로서의 신선함과 모튼하켓의 몽환적인 보컬(머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이 참 독특하다) 등 아하를 가장 잘 말해주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가장 추억할 수 있는 앨범이고.


동명 타이틀 [Hunting High And Low], 마치 동요를 듣는 듯한 [And You Tell Me]나, 당시 데우 계열의 캐주얼웨어 하이파이브의 CF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Living A Boys Adventure Tale] 등 하나라도 제쳐두면 서운하다.


앨범 전체적으로 신디싸이저와 드럼퍼커션이 강조되어 자칫 기계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모튼의 보컬이 교묘하게 보완해주고 있다.


- 원미동 기자(gozara@ddanzi.com)



 "ARENA" - DURAN DURAN







뭐니 뭐니 해도 듀란듀란의 최고 대표 앨범은 요 "아레나" 앨범 아니겐냐....


1980년에 결성된 Duran Duran은 Nick Rhodes (keyboard) John Taylor (bass) Roger Taylor (drums), Andy Taylor (guitar)  Simon LeBon (vocals)의 와꾸로 시작하였다.


당대 이들의 경쟁 상대는 이 근처 어디엔가 기사화되있을 컬쳐 클럽 쯤 되겠다. 여성스럽고 가벼운 컬쳐클럽에 비해 듀란듀란은 강열한(Wild Boys) 힘과 꽃미남 퍼레이드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히트곡도 무지 많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듀란듀란의 음악적 특징이라면 키보드가 주도하는 팝 밴드로서, 카스(Cars), 시카고, 포리너, 러버 보이 등의 미국적 스타일과는 달리, 짜임새있는 영국식 뉴웨이브 냄새를 풀풀 풍겼다는 걸 꼽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대표곡 하나만 골르라면 007시리이즈 14탄 주제가였던 [A View to a kill]을 뽑아 주련다.







얘네들은 가만히 있었어도 돈 끌었을 밴드였는데,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두 개의 프로젝트 밴드로 잠시 갈라서게 된다. 기실 듀란듀란 공식 웹사이트 가봐도 별 언급이 없는 "파워 스테이션"과 "아르카디아"로 말이다. 밴드 내에서 조금 밀린 존 테일러(베이스)와 앤디 테일러(기타)는 최근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로버트 팔머와 파워 스테이션이라는 밴드를 조직해 그들의 록적인 면을 과시한다.


파워 스테이션이 외부인사 2인을 영입해 만들어 듀란듀란의 서자 취급을 받은 반면 아르카디아는 오로지 나머지 3명(사이몽 르봉-보컬, 로져 테일러-드럼,닉 노즈-키보드)과 세션맨을 기용하여 듀란듀란의 적통대군임을 팬들에 의해 책봉받았다.


본 기자, 요 대목에서 서양 대중음악 시스템을 쳐다보며 절망할 수밖에 없음이라. 어차피 보이 밴드로 출발해서 그냥 팀간판만 달고 있었어도 돈방석 보장되었을 밴드였는데, 음악적 견해 차이를 명확히 밝히고 잠재적으로 두개의 팀으로 갈라지는 그런 모습, 이건 얼마전에 진통을 겪었던 에쵸티의 그 모습과도 다르다. 돈때문에 갈라져 고만고만한 음악과 세숫대야로 승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가,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 새롭게 무장해서 정당하게 승부했던 서양 노땅 뮤지션들의 예전 모습을 떠올려 보면, 듀란듀란은 정말 음악을 음악으로 보고 덤비는 사람들이라는 깨우침이 들수밖에 없다는 거다.


- 배불뚝이 기자 (jazzphil@shinbiro.com)
 


 "KISSING TO BE CLEVER" - CULTURE CLUB









요 얼굴봄서 딸잡던 넘덜도 있었겠지....


컬쳐클럽...벌써,20년전의 그룹이 되어 버리다니...본 기자도 나이 꽤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본 우원 컬쳐클럽을 첨 본건, 쌍팔년도 케베쑤 코미디프로 "쇼 비됴 자키 "가 끝날무렵 김광한씨가 소개해준 비디오에서였다.곡목은 [Do you really want hurt me?]


그후, 엠비쒸에서 해줘떤 아메리칸뮤직어워드에서 컬쳐크럽이 부른 [karma chameleon]이 나가면서 컬쳐클럽 또한 국내에서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그당시 TV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지금 생각해보니,불쌍타 그당시 비디오가 있나,인터넷이 있나??)


개인적으로 컬쳐클럽의 팬이었던 본 기자의 형이 하루종일 1집, 2집, 3집을 틀어놔서 세뇌될 지경까지 갔었는데, 팝앨범으로서 1, 2집은 모두 훌륭하다고 본다. 물론 빅히트한 싱글 [karma chameleon] (박영규의 "까멜레온"과 혼동하진 말자)이 포함된 2집 <Colour by Numbers>가 국내에서 더 떴고 전체적으로 좋은노래들이 많지만, 본 기자는 개인적으로 명곡이라 생각하는 [Do you really want hurt me?]가 포함된 데뷰앨범 "Kissing to Be Clever"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지금도 들을 정도로 맘에 드는 노래니까. (특히 흐느끼듯 "i have danced inside your eye" 로 시작되는 부분이... )









최근의 보이 조지 아주머니 행색 - 살이 조금 빠진듯.


보이 조지를 제외한 3명의 멤버들도 용모로써는 뭐 크게 뒤지진 않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머지 멤버들은 보이 조지 한 명을 위한 들러리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이쁘장한 용모로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보이조지.1,2집 이후로는 이렇다할 히트곡도 없고 동성연애 사건이다 ,뭐다 말도 많더니 "Crying game"으로 재기했나 싶었는데 살이 뒤룩뒤룩 쪄 버려, 이젠 아줌마 같아진 (솔직히 말하면,앙두레 김처럼 되어버린) 그를 보며, 지금은 씨름선수같이 되버린 잉베이 맘스틴도 타이즈입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뜬금없이 떠오르면서 여러 가지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 일본 요꼬하마 특파원
더티핸드 (dirtyhand@hanmail.net)



 "1999" - PRINCE







프린스의 대표작은 물론 6집인 <퍼플레인>이지만, 그에게 있어서 5집인 이 앨범이 없었다면 과연 <퍼플레인>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을까라는 의심이 든다.


82년 당시 그렇다할 성공을 이루지 못하고있던 흑인 락커가 2장짜리 LP를 발매한다는것은 상당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내용물이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을 짬뽕해서 비벼낸 생경한 사운드일 경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어쨋든 결과는 대 성공이었고(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성공에 오토매틱으로 따라오는 인기 또한 그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지금은 다 늙어서 젊은이들에겐 인기도 없고 원로 취급받는 프린스이지만, 당시 공연을 보면 음악이 안들릴 정도로 함성을 질러대는 젊은 팬들의 환호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기억나시는가? 프린스 전용 총 마이크..


그 인기의 원인은 물론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뭇 젊은이들을 사로잡게 된 데는 그의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이미지도 상당한 역활을 했을거라 짐작된다.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털투성이 가슴, 157cm 작은 키에 높은 하이힐, 그리고 스타킹과 레인코트, 그리고 성행위를 상징하는 기타 퍼포먼스등이 바로 그것이다.


당 앨범에 수록된대다수의 곡들이 무한 반복의 일렉트로 훵크 넘버들로 채워져 있는데, 주목할만한 트랙이라면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도 올라가 있는 훵크 락넘버 [Little Red Corvette]와 모 변비약 CF에 삽입되어 우리에게 친숙한 [Delirious], 그리고 타이틀곡 [1999]등을 꼽을 수 있겠다.


당시 유행이었던 뉴웨이브와 디스코, 그리고 훵크, 락, 소울이 여러 취향들을 골고루 충족시켜주는 앨범으로 음악에 맞춰 몸 흔들어대기에도 딱일 것이라 사료된다.


- 박희봉 기자 (heebong@hanmail.net)



 


딴따라딴지 홀오부풰임 어쏘시에이션 (music@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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