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탄] 미국은 폭력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2002. 2. 6. 수요일
2002년 미 의회에서의 연두 국정연설. 부시의 이 오만한 연설로 세계는 발라당 뒤집혔다.
미 대통령이 전세계에 중계된 국정연설로 특정 국가를 찍어서 사악한 국가라고 했다면, 그것은 거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전례없는 발언이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싸우는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한 시간 넘게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연설하면서 부시는 오사마 빈 라덴을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알 카에다 라는 단어는 단 한번 지나가는 말로 등장했다. 당연하다. 망하고 없어졌으니까... 전쟁 상대는 없어졌는데 전쟁이 계속된다고 강변하는, 세계 최강국이 허깨비와 전쟁하는 희한한 광경을 우리는 목하 목도중이다.
2002년 2월 4일. 예산안 제출. 2월 4일, 국회에 사상초유의 국방비 증액 예산안을 제출한 부시는 에글린 공군 기지로 가 군인들 앞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결국 부시가 아무도 없는 링에서 혼자 주먹 휘두르며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방방 뛰는 이유는, 혹은 아무나 관중석에서 끌어내어 두들겨 패려고 준비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국방비 증액에 있다는 얘기 되겠다. 내년은 올해 대비 12%, 480억불 증액으로 국방비 총예산 3790억불을 사용하고, 이것을 점차 늘려나가서 5년 후 2007년에는 4510억불을 쓰겠다는 것이 부시의 계획이다. 신무기 도입에만 내년에 700억불을 쓰고 (올해 무기도입 예산은 610억불), 2007년에 이르면 990억불어치 새 무기를 사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자, 너무 액수가 크니까 감이 안 오지? 3790억불이라고 하면 우리 돈으로 492조 정도 된다 (1300원 환산). 그래도 모르겠으면 이렇게 얘기해 드리겠다. 세계 국방비 지출액 1위는 단연 미국이다. 2위부터 16위까지 15나라를 다 더한 합이 미국 한 나라의 지출액보다 작다. 미국이 위협 국가라고 하는 7개국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북한, 수단, 시리아) 의 국방비를 전부 합친 것의 23배가 된다. 이 7개국에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거대국가의 국방비를 합쳐도 미국 국방예산의 3분의 1이 된다. 이런 나라가 이란과 이라크, 북한을 위험하다고,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된다고, 무기를 만들어 판다고, 사악하다고 한다. 이란과 이라크가 쓰는 국방비를 합쳐도 중동에 짱박힌 미국의 친구 이스라엘이 쓰는 돈보다도 적다. 북한? 남한은 북한의 무려 9배를 쓴다. 이런 나라들이 미국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믿는 바보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부시가 국정연설에서 지목한 세 나라, 이란 이라크 북한이 악의 "축"을 이루고 있다는 발언에 대해 처음에는 미국 언론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란 이라크는 서로 앙숙인 데다가, 북한은 그쪽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동아시아의 소국인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 셋이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인가? 축(axis)이라는 용어는 2차 세계대전때 독일 이태리 일본의 동맹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인데, 이란 이라크 북한은 동맹은커녕 아무런 공통의 이해나 연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저 위 부시의 국정연설에도 나오듯이,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테러조직 하마스, 헤즈볼라, 지하드 등등의 이슬람 단체들하고 북한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부시의 연설 이후 이어지는 미국 고위층의 강경발언들을 보면 "북한이 미사일 을 수출해서" 라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하하, 이 대목에서 한번 웃어주자. 미국이 무기 수출을 말하는가? 2000년 미국은 369억불어치 무기를 수출했다. 이 액수와 다른 나라들의 수출액을 비교해 보시라. 러시아 77억불, 프랑스 41억불, 독일 11억불, 영국 6억불, 중국 4억불.... 북한은 최대로 잡아야 몇천만불 수준밖에는 되지 않는다. 미국의 500분의 1이나 될까? (미국은 북한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킨 상태이고, 북한이 미사일을 수출한다는 미국 주장의 신빙성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슬람 넘들에게 무기를 팔았다면 그들 맘에 안 들 수는 있겠다. 그러나 한국과 동아시아를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어 경제 안정을 해치고, 전 세계를 상대로 감놔라 배놔라 하기 위해서는, 즉 자기 혼자 잘 살겠다고 남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다면, 거기엔 최소한의 명분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아니, 다른 나라 국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엄청난 국방비를 적어도 자기네 국민들에게 세금으로 강요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미국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세 약소국들... 이들이 두들겨 맞을 상대자로 억지로 링 위로 끌려나오게 된 데는 테러 동맹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밖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여기서 잠시 지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잠시 되돌아 가 보자.
아프간과의 전쟁, 그 목적은? 전쟁 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탈레반 정권 최대의 원조자였다. 2001년 미국이 탈레반에 원조해 준 액수는 무려 1억 2400만불이었다. 작년 5월만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에 가뭄이 들자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4300만불의 추가 원조를 발표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반체제 그룹이 "미국은 탈레반 정권에 대한 지원을 당장 중지하라"고 요구하던 상황이었다. 즉 탈레반 정권과 미국은 화해 무드였다는 것이다.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원조에 화답하여 국내 아편 생산을 금지시켰다.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었다. 2000년만 하더라도 350톤의 아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었으며, 돈없고 굶주린 농민들의 최대 소득원이 바로 아편이었다. 역대 아프간 정권들은 국민 대다수인 아편 생산자들의 반발이 두려워 감히 이를 금지하지 못했었다. 당시엔 오사마 빈 라덴 따위보다는 이것이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사이의 최대 쟁점이었다.
그런데 탈레반 정권이 놀랍게도 아편 생산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이 조치를 미국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아프간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해 주기 위하여 경제 원조를 쏟아붇는 등, 양국 사이는 화기애애한 무드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테러 정권이며,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정권이라며 공격하기 시작했고, 끝내 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게 된다(정권 잡자마자 미국으로 달려가는 거 보시라... 이거 우리도 평소에 어디서 많이 보던 거 아닌가?)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최근에 출판된 책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값을 올리기 위하여 미국 기업인 유노칼과 아르헨티나 기업 브리다스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계속해 왔다. 미국측 대표는 협상 과정에서 "금 카펫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폭탄 카펫(융단폭격) 아래 묻어주겠다"고 했고, 9.11 테러가 일어나기 바로 한달 전 탈레반과 유노칼의 관계는 깨졌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약속대로 탈레반을 폭탄 카펫 아래 묻어주었다. 부시는 거대 에너지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반영하는 정책을 펴는 인물이다. 우선 부시 집안이 석유 사업으로 갑부가 된 사람들이고, 부통령인 딕 체니는 과거 걸프전 당시 국방장관이었으며, 그 후 5년여동안 거대 석유회사인 핼리버튼에서 일하며 6천만불을 벌어들인 사람이다. 라이스 안보 보좌관은 엑슨 사의 디렉터였다. 상무장관인 에반스는 석유회사인 Sharp Drilling의 이사 출신이다. 결정적으로 새로 아프가니스탄 임시정부 수반이 된 카르자이는 유노칼에서 일하던 사람이다.
부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아프가니스탄과의 협상에 힘을 기울여왔다. 연방정부의 석유 보유량을 늘리고 알래스카의 석유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해서 석유회사들의 주식을 엄청나게 높이는 정책이 펼쳐졌고, 석유와 에너지 고가 정책을 고수하여 에너지 회사들이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해 주기도 했다. 석유는 부시 행정부의 제 일의 과업이다. 이쯤되면 대충 그림이 나오지 않는가? 게다가 아버지 부시를 비롯해서 미 행정부의 국방 관계자들은 모두 칼라일 록히드마틴 보잉 등 거대 군수회사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석유와 군수산업이 만났을 때...그것은 전쟁이다.
동맹국에서 악의 축으로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은 사실은 석유전쟁이었다. 이라크와의 걸프전쟁이 그랬듯이. 명분은 테러 위협, 쿠웨이트 보호, 자유수호, 국제질서 보호 등등이었지만. (걸프전 당시에도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묵인하기로 약속해 놓고 나중에 이를 번복했다. 이라크는 미국이 만든 전쟁에 끌려들어갔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진 않겠지만, 9.11 테러는 너무나 미국에게 시기적절했다) "악의 축"으로 지목된 한 당사자인 이란의 경우도 비슷하다. 부시의 국정연설 이후,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아야토 호메이니는 부시를 "피에 굶주린 인간"이라고 했다. 이란의 또다른 지도자인 아야톨라 지나티도 이렇게 반박했다. "이란이 알 카에다를 도왔다니 미국 대통령은 미친 게 틀림없다. 이것보다 멍청한 말이 어디 있는가? 알 카에다와 우리는 오랜 적이고, 서로 증오하며,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실제로 이란은 전쟁 이전 2백만 이상의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였으며, 반 탈레반 군에 무기를 지원해 왔다. 이번 전쟁에서도 반 탈레반 노선을 분명히 취했고, 수색과 구조작전에 있어 미군이 자국 영토를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하였다. 그래서 미국으로부터도 동맹국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테러를 지원한다는 3개국 중 하나로 지목받았을까? 지난 1월 10일경 부시 대통령은 이란에게 "친미 아프간 임시정부를 흔드는 짓을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적이 있다. 이란이 자국의 영향력을 아프간 지역에 확대하기 위하여 돈과 무기를 은밀히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란은 이 혐의를 부인했다. "무슨 소리냐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다."
게다가 얼마전 50톤의 무기를 싣고 팔레스타인으로 밀반입 하려던 배가 적발된 사건에서 (팔레스타인은 그 배와 자신들이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무기의 대부분은 이란제였다. 미국은 이 사건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아라파트 의장을 테러단체로, 이란을 테러 지원국가로 규정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무기 "밀수입"은 "테러행위"이면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주는 군사 원조는 "평화적"인 것이라 강변했음은 물론이다. 이란은 강력 반발했다. "우리 앞길은 우리가 간다. 우리는 친 팔레스타인 정책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 댓가로... 이란은 "악의 한 축"이 되었다. 동맹국에서 불과 몇달만에 악의 축으로 바뀐 셈이다.
세계의 반응과, 그리고 우리... 문제가 된 세 국가 뿐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부사의 일방적 연설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 나토는 "미국이 전쟁한다고 해서 우리가 끼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중국은 "9.11 테러와 아무 관련없는 북한을 끼워넣지 말라"며 반대했고, 기타 영국, 독일, 이태리, 러시아 등등의 주요 국가들이 부시의 노선을 견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강력하게 나오는 것이 러시아이다. 왜냐하면... 이라크와의 돈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최대의 석유 회사인 루크오일은 97년 UN의 대 이라크 경제 제재가 시작된 이후, 시추권을 가지고 있는 이라크 영토 내 유전에서 한방울도 석유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 회사 부회장의 말. "미군이 이라크에서 군사행동을 시작하면 우리는 그 권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후세인이 쫓겨가면 미국 석유 회사들이 그 자리에 들어올 것이다." 이것은 200억불짜리 문제이며, 그 이유로 러시아는 UN에서 후세인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다. 경제 제재를 강화하는 것도, 군사행동을 개시하는 것도, 모두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한다. 이번 부시의 연설에 대해서도 러시아 국방장관은 "어떠한 확전에도 반대하며, 미국은 반드시 UN 결의를 거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월포위츠 미 국무성 부장관은 이렇게 응수했다. "UN 결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공격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군사행동은 정당화된다....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위라는 것은 예방적인 행동을 의미할 수도 있고 선제공격을 의미할 수도 있다." 러시아가 미국의 이런 일방 노선에 반발했음은 당연하다. 독일 국방장관도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 보다는 정치적 해결을 선호한다고 하면서,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은 "잘못" 이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이렇듯, 부시의 연설이 불러온 파장은 강대국들 간에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대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과 한 편에 섰던 우방들도 미국의 "우리는 계속 전쟁중이다" 라는 무모한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거나 매우 미심쩍은 눈을 보내고 있다. 미국 석유 군수 산업과 강경 우파를 뺀 그 누구도 부시의 비상식적인 발언에 불편해 하고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우리의 자랑스런 좃선과 동아... 좃선은 물을 만난 고기 같다. 2월 6일 좃선 사설, "집권측의 대미 반발"을 보자.
국회에서 여당 대표가 연설을 했는데 "집권측"이라는 용어 자체도 이상하지만, 그 내용이 더 가관이다. 그러니까, 북한이 잘못하고 있으니까 미국이 저러는 거 아니냐 하는, 미국 최고 강경파의 발언을 그대로 한글로 번역한 작문 되겠다. 위의 사설을 보고 눈을 오른쪽으로 돌려 3면을 보면 커다란 글씨로 여, 대미 불만 확산 이라는 헤드라인이 뽑혀 있다. 저 기사는 내용을 볼 것도 없이 불만이라는 단어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다. 비판도 아니고 불만이란다. 그리고 그 불만을 공개적으로 언급한단다. 어째 이 신문을 보고 있으면 미국에 대한 불만은 드러내지 말고 쉬쉬하며 숨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세계 각국이 미국의 깡패 외교에 제동을 걸고 나오는 이때, 좃선만은 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지 알 수가 없다. 뭐 좃선 만이 아니라 동아도 마찬가지고, 한나라당도 똑같다. 김용갑 우원께선 심지어 부시 지지 성명까지 발표하셨다. 얼마나 기뻤으면 우원 개인 이름으로 성명까지 발표하셨을까. 우리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종속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북한 문제까지 얽힌 당사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정책 방향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현실주의적으로 사고하고 대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판단과 행위를 미국에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쟤네 사악해" 한다고 우리까지 똑같이 맞춰줘야 한다면, 그것은 현실주의가 아니고 무뇌아적 매국행위에 불과하다. 미국은 자기들 이익과 입맛에 따라,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악(evil)의 딱지를 붙이는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전세계가 반발하고 있는 이 때, "잘못은 북한에게 있다"며 덩달아 날뛰는 그들을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기를, 전쟁이 터지기를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당장 이 폭력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그리고 독자들이여, 미국의 일방적 폭력에 부화뇌동하지 말자. 우리는 지켜야 할 재산과 이익과 미래가 있다. 부시가 evil 이라는 용어 쓸 때마다 기분 오묘해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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