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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아, 너희가 정녕 춤을 아느냐 (3)

2002.1.11.금요일
딴지 문화부 선무당

 



임오년 말띠해를 맞아 말만한 처자이자 말 많은 처자가 새해문안 여쭌다. 꾸벅, 새해 복국 많이 잡수시라. 명랑 춤 문화 건설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헌해에 이어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에, 그럼 오늘은 춤의 과거를 살포시 돌이켜보고자 한다. 허나, 역사를 줄줄이 꿰느라 독자덜을 지루하게는 할 수 없는 것. 무릇 역사라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이유는 작금의 위치를 돌이켜보는데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니, 과거의 춤 형태 하나를 간략히 돌이켜보고, 그 속에서 오늘날로 이어지는 우리네 춤 하나를 돌이켜보도록 하겠다.






자, 그럼 선사시대로, 휘리릭.


필자가 앞서 주장하였다시피, 춤은 옴니프레젠트, 그러니까 노상 존재했던 것이다. 아, 안 말했던가. 암튼간에 옛날옛날에, 부족국가 시대였을 때도 춤은 있었다. 심지어 춤은 부족사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어떤 학자는 선사시대를 "춤이 시대정신을 반영했고 인프라를 구축한 유일한 시기"라고도 한다.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구? 바로 춤은 제사, 신께 올리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이건 저번 시간에 우리가 논의했던 짝짓기 춤 보다도 더 큰 의미다. 제발, 아니라고 우기지 마라.


문명화가 덜 된 곳일수록 사람들은 세상을 통제하는 절대권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의 전 직장에서는 분명히 이런 게 있었다..아, 아, 우리를 노예처럼 부려먹기 위해 감시하는 큰 오빠-빅부라더가. 우리 귀에는 도청장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가 안 오거나, 이웃 부족이랑 전쟁을 하거나, 부족에 큰 우환이 있을 때에 제사장을 앞세워 자신들이 신이라 부르는 절대권력에게 제사를 올렸다. 헌데 할 말은 많은데, 그걸 어떻게 말로 전달할까. 예나 지금이나 이심전심하기에는 바디랭귀지만큼 효과적이 것이 없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기도문은 춤이었다. 제사장은 우리네 무당마냥 춤추는 사람이었다. 







여러분덜도 다큐멘터리에서 많이들 보아서 알겠지만, 당근 접신상태의 춤이란  얌존 점잔 우아하다기 보다는 격렬하기가 다반사다. 무당 보시라. 방울에 부채에 대나무에 온갖 소도구까지 쳐들고 아래위로 뛴다. 그러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져서 이른바 접신상태에 이르는데 (이를 엑스타시라 한다. 아마 경험해본 분덜 있을 게다), 이런 과정에서 신에게 요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거다. 사실 이 와중에 누가 누구랑 먼 말을 하는지는 그야말로 신만이 알 일이다.


암튼간에 이 격렬한 제의과정은 지역마다 매우 다양하고 엽기적인 전통을 갖고 있는데, 처녀를 제물로 바치거나 집단 성교 같은 일들이 그런 거다.


(필자가 모처에서 눈을 허옇게 뒤집고 스피커 위에 올라가 지 부라자를 풀어던지는 뇨자를 보았을 때도 나름대로는 신의 지엄한 계시를 받을 것일까 의심해보았었다)    


헌데, 이 춤이 마냥 제 기분대로 내키는대로 추는 것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는 고다. 무대춤에 익숙한 우리에게 정교해 뵈지 않아서 그렇지 나름대로 내용과 순서가 있다. 스토리(악어를 사냥한 전설적인 선조의 삶이라던지, 마을이 탄생한 전설 같은 것덜)가 있어서 극적인 성격을 띄기도 하고, 동작도 어느 정도  안무가 되어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한 섬마을에서는 나이 많은 노인들이 화살을 들고 앉아있다가 순서가 틀리는 넘이 있으면 화살을 쏘아 죽여버린다. 왜냐, 그들에게 춤이란 신께 보내는 메시지기 때문이다. "하늘님, 비좀 내려주세요" 해야 되는데,  "하늘님, 비듬 내려주세요" 하는 엉뚱한 넘을 어찌 고냥 살려둘 수 있겠는가.  






아아, 그랬다. 선사시대 춤의 대표적인 의미는 주술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춤은 주술의 의미는 점차 퇴색되어가고 춤의 오락적 성격이 부각되게 된다. 고것은 무대 형식의 춤 뿐 아니라 삶 속의 춤 역시 마찬가지다.


자 그럼, 우리네 삶 속에서 대표적인 춤 두 개를 뒤집어 보자. 독자덜의 우레와  같은 성원에 의해 특별히 간택된 <왕지현의 디지털 댄스와 김또식씨의 관광버스 춤>이 오늘의 토픽되겠다. 그러나 잘 고려해보시라, 과연 그녀가 추는 게 디지털 댄수인지, 그리고 저질 오락으로 뵈는 관광버스 춤이 단순무식한 오락인지........  


농한기가 되면, 시골에는 유독 관광버스 패키지 여행이 늘어난다. 대개 근교로 가는 온천욕 같은 건데, 여행의 묘미는 온천욕이 아니라 오가며 즐기는 오락들이다. 불행하게도 이 격렬한 관광버스 춤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비일비재하였고, 작년에 일어난 대사고 이후에 결국 도로교통법으로 금지되었다.  









     "아싸~ 흔들어 흔들어~~!!"


실제로 관광버스 여행을 즐겨 가는 박 여사(58,덕촌부락거주.가내수공업)의 증언에 따르면, 여흥을 이기지 못한 아줌마덜이 앞으로 달려나가 운전을 방해하거나, 운전기사님 수고한답시고 술이나 노래를 권장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 춤의 격렬함은 말 그대로 땅을 흔들 지경으로, 탑승자의 증언에 따르면 버스가 기우뚱거린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경고와 주의를 줄라치면, 일사분란하게 팁을 거두어 상황을 무마시키고 다시금 춤에 전념한다고 한다.   


그 위험천만한 상황이야 두 번 다시 없어야 할 것이지만, 냉철한 눈으로 보자,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춤에 미치게 하는 것일까. 


사실 이 관광버스 패키지는 불륜남녀들의 탈선의 장이라기보다는 농촌의 갑남을녀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일 년 내내 농사일에 시달리는 이들이 농한기에 날잡아 스트레스를 풀러 가는 거다. 앞서 말했듯 여행의 피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 버스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여행지에서 미처 풀지못한 여흥과 평상시에 쌓인 울분과 스트레스를 불살라버리는 것이 바로 이 관광버스 춤이라 하겠다. 허니 이것이 격렬의 극을 달릴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이 귀가길의 무도회가 성에 차지 않으면, 마을 인근에서 터를 잡아 계속 이어지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그 놀이의 명칭이 다르나 서부경남 일대에서는 "후렴잔치"라고 한다.- 







자 그런 이 춤을 형태적 측면에서 보자. 이 관광버스 댄서들의 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어깨춤이다. 이처럼 리듬에 맞춰 어깨를 앞뒤로 흔드는 것을  전문용어로 좌우새라 하는데, 이 좌우새의 기본적 골격이 바로 전지현이 추었던 소위 "디지털 댄스"의 시조 되겠다. (그러나 사실, 고런 춤이 디지털 댄스일 리가 없다. 아무리 춤이 시대에 못따른다 해도 디지털 시대의 춤추기가 고작 그거라는 건 농담이다. 그건 그냥 도리도리 춤이다. 4차원적이고 인터렉티부하고, 하이퍼텍스트적인 "디지털 댄스" 에 대한 시도들은, 머 요런 것덜이다. 무대위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상 속의 무용수와 무대위의 무용수가 함께 듀엣을 춘다던지, 컴퓨터로 입력한 레이저 무용수와 춤을 춘다던지, 무대는 비어있고 영상으로 다른 장소에서 춤추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던지 하는 허걱 놀라운 작업들.. ) 


허나, 우리민족의 깊은 예술성은 전지현의 가짜 디지털 도리도리 춤의 가벼움과 결코 비견될 수가 없다.   


우선, 소위 디지털 댄스가 음악에 맞춰 칼같이 냉정하게 좌우로 움직임으로써 치졸한 2분법적 가치관에 얽매여있다면, 우리네 관광버스 춤은 춤 기조가 되는 뽕짝의 박자가 주는 2박에의 강박을 대담하게 뿌리친다. 어찌 세상이 나와 너, 악과 선, 하늘과 땅 요로콤 양분될 수 있으리... 만물을 아우르는 화해의 정신으로 댄서들은 음악에 연연하지 않고 개인적인 감흥과 신체적 특성에 따라 각자의 독특한 음악적 해석을 보여준다. 춤과 음악이 따로, 그러면서도 함께 가는 상생의 정신이라 하겠다.


그들이 보여주는 좌우새의 엇박과 여린내기 같은 자유로움(이것을 몸이 음악을 따라잡지 못해 일어나는 음악과의 괴리라고 단정짓는다면, 참춤의 정신을 읽지 못하는 편협한 관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은 바로 굴곡진 삶의 애환을 유연하게 넘어서는 우리의 열린 사고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전체적 군무를 표방하면서도 결코 개개인의 안무에의 참여를 제어하지 않는다. 그런 자율성과 자발성의 존중은 군무의 춤사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어느 누구도 김복달씨와 김또갑씨의 춤사위가 같아야 한다고 훈계하지 않는다. 전체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우러지고, 개인을 존중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이 마인드야말로, 춤 속에서 참 민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던가.    


두 춤의 스텝 역시 분석해 볼 필요가 있겠다. 디지털 댄스가 양 다리를 고정시킨 채 무게중심의 이동만으로 가벼운 눈속임을 한다면, 관광버스 춤의 스텝은  훨씬 과학적이고 치밀한 안무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댄서들은 버스의 진동을 몸으로 흡수하여 지엄한 관성의 법칙을 춤사위에 응용하는 한편, 간간히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아 자칫 루틴해지기 쉬운 춤에 활력을 부여한다. 이 다이아몬드 스텝 역시 얕잡아 볼 것이 아니다. 교습 과정에서는 우리나라의 지역명을 활용, 단순한 스텝이 아니라 국토순례의 경건함 맘을 다잡으며, 목포와 서울, 부산과 대구 등, 전 국토를 아우르며 지역 간의 유대감을 고취시킨다.







또한 양 춤이 포함하는 이념 역시 상반적이다. 소위 디지털 댄스가 강한 머리돌림으로 세상을 거부하는 네거티브한 이념을 갖고 있다면, 우리네 춤은 만물을 아우르는 듯한 넓은 어깨 벌림과 유연한 좌우새로 개체간의 합일을 강조하는 포지티브한 성격을 띤다. 거기에 덧붙여지는 고개의 주억거림(상하로 움직이는)은 디지털댄스의 뿌리깊은 자기부정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긍정적인 가치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댄스가 만물의 어지러움 속에서 시선을 땅으로 돌리거나 눈을 감는 현실도피적이고 반사회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면, 우리네 춤은 서로가 서로를 다정히 응시하며 힘겨운 세상과 함께 맞설 것을 격려한다. 또한 격렬한 춤사위 와중에서도 따뜻한 박수로 상대 댄서에 대한 예우를 갖추니 어찌 동방예의지국의 정신이 춤으로 우러나온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아.  


바로 이런 춤들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정신의 힘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대체 어디에 눈깔이 빠져도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며 험한 내세의 삶을 포기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낙천적인 민족이 있겠는가. 그들은 요런 춤들을 추며 삶의 시름을 잊고 서로의 고달픈 삶을 위로하였던 것이다.






자,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의 귀중한 정신적 유산을 기려야 할 역사적 사명이 여러분덜의 가슴에 들끓고 있음을 필자도 안다. 반면에, 일부에서는 또 이런 반론 있겠다. 야, 너 이런 무시무시한 춤을 계속할 것을 조장하는 고냐. 니가 사고나면 책임질 거냐. 아니닷, 사실 이 관광버스 춤은 비단 관광버스 안에서만 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고.


서부경남의 한 부락에서 유년기를 보낸 필자의 필드웍에 따르면, 그러한 춤이란 사람들의 삶 속에서 노상 벌어지는 것이었다. 결혼식, 백일, 회갑을 비롯한 각종 연회에서는 물론이고 새참에 걸친 낮술 한 잔에도 어영부영 벌어지는 것이 바로 그런 춤판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멱살잡이 쌈이 일어나거나 아이가 오줌 위에 엎어져있는 자기 엄마를 발견해 울고불고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춤판은 삶이 고달픈 이들의 축제였다. 사람들은 그 흥건한 잔치 뒤에는 다시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갔다. 한바탕 잘 놀았구만.하면서 말이다. 즉, 이들의 춤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었다. 그런 춤철학을 담는 대표적 노래도 있다.









"근심을 털어놓고 다 함께 차차차"


어찌 이게 단순 오락이란 말인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근심"을 털어준다는데.






아아, 고단한 삶의 위로이자 가난한 이들의 낙인 춤이여.. 이제 독자덜께서도 우리 삶 속의 춤의 가치로움을 숙지하셔야 하겠다.


또한 일시적 춤유행에 탐닉하여 한낮 의미 없는 몸부림에 스스로의 몸을 무가치하게 내던지는 일도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자, 그럼 다음 시간에는 고대를 건너뛰어 중세의 춤으로 달려가보겠다. 광기와 괴기가 있었던 중세의 "죽음의 춤"으로. 그리고 그 춤의 연장선에서 왜 오늘날의 맛조니들이 춤현장에서 그토록 광기어린 춤사위를 펼치는지를 이해하게 될것이다...


자, 그럼 이만총총.


휘리릭. 



새해에는 더 많은 격려 메일을 받고싶지만
말하기에는 쑥스러운
선무당(balletto@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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