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박찬호, 미국을 점령한다? 2002.1.15.화요일 98년 5월 18일.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 야구장 주변은 모처럼 동양인들로 북적거렸다. 열명 지나가면 한명쯤은 검은 머리의 동양인들... 본 우원도 물론 그 중 한명이었다. 미국서는 흔치 않은 생소한 광경이었다. 동양인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다니.... 지나가는 미국넘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오늘 먼 날이냐? 왜 이케 동양애들이 많냐?" 오늘 상대편 투수가 누구인지, 대부분의 평범한 미국 야구팬들한테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수많은 동양인들에겐 저쪽팀 선발투수가 그날 야구장을 찾았던 이유. 바로 박찬호였던 것이다. 엘에이 사는 교민들이야 늘 맘만 먹으면 박찬호 볼 수 있다지만, 다른 지역은 그렇지가 않다. 다저스가 오는 게 일년에 두번 혹은 한번. 그때 박찬호가 등판 안할 수도 있으니, 그들에게는 운이 좋아야 일년에 한두번 찾아오는 날인 것이다. 원정팀 덕아웃인 3루측에 왕창, 나머지는 두세줄 건너 몇명씩, 그런 엄청난 수의 한국인들이 야구장을 메웠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날 박찬호는 죽을 쒔다. 4와 1/3이닝동안 1홈런 포함 8안타 6실점. 채 5회를 마치지 못하고 강판된 것이었다. 초반부터 시카고 컵스가 크게 앞서 나가자 야구장은 띵까띵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여기서 잠깐. 미국 야구장의 분위기를 참고로 말씀드리겠다. 일단, 우리나라 야구장과는 달리 응원단장이 없다. 티비로 메이저리그 자주 보는 분들은 다들 아실게다. 그리고 우리나라 야구장과는 달리 혼자 온 사람들도 거의 없다. 다들 친구들, 가족들 단위로 모여서 맥주 마시면서 논다. 그래서, 경기에 집중하는 우리나라 관객들과는 달리, 야구장 분위기가 무진장 산만하다. 와글와글 시끌벅적, 박수도 칠래믄 치고 말래믄 말고, 승패보다는 같이 온 사람들끼리 노는 게 중요하다. 물론 홈팀이 이기면 더 좋은 거야 당연하지만. 그런 소리들을 하더라. 선진국의 스포츠 팬들은 승패를 떠나 즐기는데 울나라는 그게 안된다구. 그런데 그건 그 사람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어찌보면 당연하다. 우선 티켓과 맥주값 등등이 비싸다. 일가족이 놀러오면 우리 돈으로 기십만원은 쉽게 쓰는데, 즐겨야지 어떡하겠는가. 게임이 진다 해도 본전 생각이 나서라도 일단 즐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티켓을 대부분 예약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같이 올 수밖에 없다. "다음주 금요일날 나 혼자 야구장 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표 한 장 예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옆집 너부리나 꼬셔서 같이 가야지" 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끼리끼리 웃고 떠들고 놀다가 집에 가는 분위기, 그게 미국 야구장에서 보이는 팬들의 모습 되겠다. 암튼. 그런데 이런 야구장 분위기에 그날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5회말 원아웃, 박찬호가 강판되어 시무룩한 얼굴로 터덜터덜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야구장이 웅성웅성하더니 그 수많던 동양인들이 썰물처럼 우르르 다 빠져나간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한국말도 들려왔다. "에이 씨발, 돈 버렸네." 구원투수가 몸을 풀고 경기가 속개될 무렵. 한국인들이 빠져나간 야구장은 다시 평상의 모습을 되찾았다. 와글와글 지들끼리 웃고 떠드는.... 그 수많던 한국인들. 그들은 왜 떠나야만 했을까. 아직 경기는 반 밖에 진행되지 않았었고,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술마시고 놀다 갈 수는 없었을까. 게다가 거기 온 사람들은 시카고에 사는 교민들.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홈팀인 시카고의 팬이기도 했을 것이다. 박찬호는 내려갔더라도 그나마 홈팀이 이기는 것에서 위안을 얻고 즐길 수는 없었을까. 이들은.. 결국 야구를 보러 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야구가 아니라 한국에서 온 한 젊은이가 난다긴다 하는 미국 넘들을 거꾸러뜨리는 모습, 그것을 보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야구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싸우러 온 것이었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라고 국제감각도 있고 그 사회에 융화되어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그런 거 조또 엄따..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다. 전투에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한국인들, 이번에는 텍사스 레인저스 홈페이지 게시판을 점령했다. 비시즌이라 한적했던 이것에 게시물 폭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루에 수백건의 박찬호 관련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것도 한글로... 사실 이런게 우리 네티즌들에게 생소한 상황은 아니다. 사이영상을 누가 받아야 하는가, 이 투표에서 박찬호가 압도적 몰표로 1위를 달리자 MLB 측에서 세차례나 투표 결과를 0으로 만든 적도 있고, 미녀투표하는데 김희선이 있다는 이유로 몰표 초토화를 만든 사건, 다저스 게시판의 한글 사용 논란 등등... 정보화 강국답게 한국 네티즌들의 개떼작전은 늘 가공한 위력을 발휘해왔다. 이번 사건도 그 또하나의 반복이었다. 스포츠 신문이나 각 스포츠 게시판에 널리 나온 내용이니.. 혹시 모르는 독자 여러분들이 있다면 여기에 가서 관련기사를 보시고, 본 기사에서 그 내용을 다시 읊어드리지는 않겠다. 다만, 분위기 참고하시라고 한글로 올라온 두 넘의 쌈박질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다.
사실 이런 논쟁은 전부터 있어왔다. 걸쭉한 입담을 빼고 고상한 말로만 하면 요지인 즉 이렇다.
글쎄.. 독자 여러분들께선 어떻게들 생각하시는가?
그런데 본 우원 보기에..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한글로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영어로 쓴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문제다. "we will occupy"니, "이곳은 오늘부터 우리가 접수한다"느니, 한국어를 공용어로 만들자, "CHP is the best pitcher in the world", 자주 보이는 FIFA 2002 World Cup in Korea 라는 문구, 보지국물이나 빨아라 하는 욕설, 뽀르노 사이트 선전 등등... 게다가 일본 이야기는 여기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일본 선수들보다 한국출신 선수들이 얼마나 잘났는지에 대한 주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반대로 한국 선수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에 관한 글들, 거기에 대응해서 너 일본넘이지, 일본 엿먹이려구 일부러 이상한 글 쓰는 한국넘이다, 한민족은 훌륭한 민족이다. 대한민국만세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주장까지... 한 미국넘은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이넘의 소원대로 박찬호는 야구선수니까 야구 얘기만 하면 오죽 좋겠냐만.... 그건 이미 불가능하다. 박찬호라는 인물은 우리 민족주의의 하나의 표상인 것이다. 박찬호는 미국을 폭격 했고, 정복 했고, 평정 했다. 혈혈단신 미국으러 건너가 그들을 눌러 버린, 미국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를 조금은 해소한, 대한의 건아인 것이다. 그러나 정말 박찬호가 미국넘과 싸운 것이었을까? 정작 박찬호 자신은 자기가 민족을 대표해서 미국과 대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싸우는 것은 박찬호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팬들이었던 것이다. 본우원이 목도했던 야구장의 그날처럼, 우리의 팬들은 오늘도 싸운다. 박찬호는 하나의 상징일 뿐, 입으로는 눈으로는 박찬호를 말하고 듣지만, 그러나 우리는 야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야구를 이용해서 싸우고 있다. 누구와? 민족주의가 만들어내는 실체없는 적과.... 텍사스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욕설들, 밑도 끝도 없는 욕 게시물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적이 있긴 있어야겠는데,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거다. 먼가 싸울 상대가 있어야되는데, 지금은 시즌 중도 아니고 어따 해소할 데가 없는 거다. 그래서 서로들 싸우고, 뽀르노 사이트 선전 같은 공격적인 게시물도 올리는 것이다. 일부 덜떨어진 얼라들이 밑도 끝도 없이 욕질한다고, 쪽팔리다고 개탄하지 마시라. 욕설, 게시판 도배는 일부 박찬호 팬들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이니깐. 박찬호가 한국인의 자존심인 한 그것은 언제나 계속될 것이니깐.
이건 야구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일제의 악랄한 식민통치를 받았다고 분개하지만, 힘이 있었다면 우리도 똑같은 가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 동남아 노동자, 중국 등을 배경으로 우리가 하는 짓거리들을 보시라...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의 민족주의, 졸라 촌스럽다. 여담이지만, 텍사스 게시판을 뒤지던 중 마주친 한 외로운 영혼의 넋두리가 아직도 본우원의 심금을 울린다. 단 한 줄 짜리 게시물이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따뜻한 위로의 말과 함께 무한한 동지애를 표하는 바이다. 그거 원없이 떠볼 수 있는 날이 언젠가 그대에게도 올 것이다. 물론 본우원에게도.... 간만에 스포츠부로 마실나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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