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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칼기 폭파, 그 진실은?

2001.12.15.토요일

딴지 정보부(DIA) 비밀요원
 






 칼기 폭파 사건


지난 9.11테러.


이때 우리가 진짜 쫄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침공하고 덕분에 세계 경제가 쫄딱 거지꼴 날까봐 우리가 부들부들 떨었나?


실상은, 저 흥분한 미국넘들이 북한도 테러국가야 라면서 미사일 쏴 올릴까봐, 그래서 졸지에 한반도가 대리 화약고로 변해버릴까봐 쫄지 않았나?


북한도 이 분위기에 적당히 꼬랑지 내리고 "테러 나빠"라고 말할 정도였다. 화난 사자앞에서 콧털을 건드린다는 건 미친 짓이었겠지.


그러나 우리의 좃선..머라구 했드라?


북한은 테러 나빠라고 말하기 전에 지난 테러짓거리 사죄하라고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다들 쉬쉬하고 있던 바로 그 사건, 대한항공 폭파사건을 아예 노골적으로 씨부리며 북한은 테러국가애여 라고 선전했드랬다. 좃선 사옥은 미국 백악관에 위치해 있어서 한반도 전쟁에 안전한 건지, 아님 방씨 일가가 모두 전쟁나면 미국으로 튈 익스프레스 미국 비자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는지 알수 없다만 참 물불 안가리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다시 요즘.


멀쩡하게 살다 살해당한 여자가 간첩으로 누명을 쓰고, 자살했던 설대 교수가 조사를 받던중 타살되었다는 보도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중심에 안기돌이가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역시 안기돌이가 중심이었던 사건, 대한항공 858기 사건이 있었다.


혹시나 80년대 이후 출생한 독자열분 몰러 씨바야 하기 전에, 지금 당장 주위의 어른들께 물어보시라. 간략하게나마 다음과 비스무리한 당시 사건의 개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대한항공 858기 사건>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멀쩡하게 미얀마 뱅골 상공을 잘 날고 있던 대한항공 858기가 "45분 뒤에 방콕에 도착한대이~" 라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뱅기 안에는 승무원 포함하여 115명이 타고 있었고, 승객의 대부분은 중동지역에서 근무하던 우리 근로자들이었다.


그 순간 총알같은 경제속도 60km/h로 달려간 우리의 안기부가 마침내 이 의혹을 밝히고야 말았으니 그것은..... 북괴가 자유대한의 올림픽 유치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지른 항공기 폭파 만행이었던 거시여따. 독한 북한 공작원뇬넘들은 끝까지 음독 자살을 기도했으나, 결국 뇬은 살아남아 그 모든 사실을 자백하고야 말아따....


그뇬의 이름이 바로 김현희여따. 


자 이제 14년 전, 87년 겨울에 일어난 이 천인공노할 만행이 떠오르시는가. 그랬다. 있을 수 엄는 일이었다. 죄없는 근로자들이 한 순간에 영문도 모른 채, 보고잡은 가족들 품이 아닌, 영하 40도 구름의 품속으로 안겨버린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본 독자, 자라면서 하지 말란 일들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명랑 개김 정신으로 무장하길 어언 스무 하고도 몇 년 남짓, 이제 나는 운전할 때 굳이 경제속도를 지키진 않는다. 싸가지 없게도 100km/h 넘는 일을 밥 먹듯이 하게 되었으니... 눈치깨나 있는 독자 여러분도 악셀 좀 밟아 보시라.


먼가 이상한 게 느껴지지 않으시는가. 60km/h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뭔가 있지 않은가. 이제 그 뭔가가 뭣인지를 본 요원 씨부렁거리려 하니, 친애하는 독자 열분께서는 똥꼬에 힘 주고 주의 깊게 봐 주시기 바란다.  


 


 김현희는 너무 쉽게 잡혔다







김현희의 진술에 따르면,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그녀는 어릴적부터 철저하게 세뇌된 인간병기이다. 한 명을 키워내는 데에만 천문학적 액수의 비용이 투입된 살아있는 무기라는 얘기 되게따. 그런 여자를 소모품으로 쓸 만큼 북한이 대가리가 비었으리라 생각하시는가. 더군다나 우리가 알다시피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못 산다. 게다가 당시 상황은 미친 냉전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한 사람이라도 아껴쓰고 다시써야 잘 살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김현희는 너무나 쉽게 잡혔다. 마치 나 잡아가라는 듯이...


원래 김승일과 김현희는 뱅기에 폭탄을 장치하고 아부다비에 내려 암만-로마행 뱅기를 잡아 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련한 베테랑김승일은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간파하여, 고육지책 바레인행 뱅기를 타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로마로 간다 였음은 분명하다. 절대 우리는 바레인에 좃되러 간다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걔네들이 아부다비 공항에 내린 건 11월 29일 새벽 3시경. 바레인 행 뱅기를 타고 아부다비를 떠난 것은 그날 오전 9시경. 여기까진 잽싸게 행동했던 거 같다. 불과 6시간만에 행적 감추기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레인 도착하고선 어찌된 일인지 갑자기 개기기 시작한다. as soon as possible 하게 로마로 토껴도 모자랄 판에, 이틀이나 호텔잡고 죽치고 있었던 거시었다. 로마행 뱅기가 없었냐구? 천만에, 당시 바레인에서 로마로 떠나는 뱅기는 하루에만 4편이 있었다고 한다. 시골 완행버스보다 두 배나 많은 횟수로 뻔질나게 뜨고 있었다는 말쌈 되게따. 그러니 뱅기 못 탄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안 탄 거시 되게따...








 


바로 이 호텔...


뭐시기 어드레? 이거뜰이 공작원 씩이나 됨시롱 소풍나온 줄 알았나? 그런데 했던 꼬라지 보면 딱 소풍 온 필이다. 뭔가 중요한 접선자를 기다린 것도 아니고(예정에 없던 곳이었대두), 다음 임무가 있던 것도 아니고, 지난 임무는 확인할 필요도 없는 성질의 것임에도 갸들은 걍 거기 있었다. 쇼핑하고 사진찍고 소지품 남기면서 개기고 있었다는 말이다. 김현희의 진술에 따르면, 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부녀 관광객으로 보이기 위해 쇼핑하며 활보했다고 한다만, 애석하게도 당시 그 동네엔 동양인이 별로 없었단다.


즉, 방구석에서 시체놀이하며 가만히 찌그러져 있는 것이 오히려 주의를 덜 끌었으리란 얘기 되게따. 게다가 김승일은 당시 극악의 건강 상태로 인해 밤에는 쳐 자느라 정신이 없던 인간이어따.








 


  이 말라깽이 아저씨가
      김승일...


나중에 그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를 안기부에서 발표했는데, 키 171cm에 몸무게 45.95kg에 육박하는 해골이었다 한다. 위는 수술로 거의 다 잘려나간 상태였고, 몸 전체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항시 약을 달고 살았던 그가 어떻게, 무슨 힘이 있어서 낮에 한가하게 쇼핑이나 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겠는가. 쇼핑할 힘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튀었어야 베테랑 공작원다운 일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줄기차게 잠이나 자든지...


그리고 11월 30일 밤, 바레인주재 한국대사관의 김정기 서기관이 갸들 묵던 인터꽁띠넹딸 호텔로 찾아와서 니들 탔던 뱅기 추락해서 다 죽어따. 니들 참 운이 조타~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난 바로 그 때에도 김승일은 천하태평으로 낼 튀면 못 잡을껴라며 드르렁 잠만 잤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까지 줄기차게... 이상한 낌새를 포착했음에도 그 베테랑 공작원 김승일은 잤다.


이거 꾀병 아닌가. 내가 많이 해 봐서 안다. 일할 때는 아프다가, 노래방만 가면 날아다니고, 오락실만 가면 미쳐 버린다. 그 베테랑 혹시 나같은 인간이었나? 그랬다면 북한은 정말 망한 나라다. 사람이 그렇게 엄냐?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렇게 천하태평 잠만 자던 김승일이 다음날인 12월 1일 아침 바레인 공항에서는 총알처럼 독약을 흡입하여 자살에 성공 했던 것이다. 젊은 김현희조차 미적거리다 실패한 일을 김승일은 단숨에 해치웠다. 이 부분의 상황 파악(잡히게 된다)과 행동(죽자!)에 있어서는 그는 확실한 베테랑 다웠고, 전날 밤에 쳐 자는 김승일을 원망했던 현명한 김현희는 여지없이 초짜티를 내고야 만다. 뭐시기? 워낙 급박했으니까 노인네라도 빠를 수 있는 거라고?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건 김현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김현희의 진술에 따라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그려 보기로 하자.


승일: (비장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일본에 보내지면 우리는 이래저래 고생 하다가 죽게 된다. 차라리 여기서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청산 앰플이 든 담배를 ... 자연스럽게 문다.)


현희: 그러면 신호해 주세요 (씨바 정말 죽나벼...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단다. - 김일성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혁명가로 값지게 죽는다고 생각하려 했으나 자꾸만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승일: (속삭이듯) 나는 살만큼 살았기 때문에 괜찮지만 젊은 마유미상한테는 정말 미안하다


현희:  .......


경찰관 핫산: 아줌씨 그 가방 주소..... 담배는 왜 빼는교? 담배갑도 주소. 아니 그 담배 한까치는 왜 빼고 그라요? 그거도 주소.


현희: (동반자살할 타이밍을 살피려 주저거리다가 쥐고 있던 담배를 빼앗기며) 어머나, 그거 돌려줘요.


<잠시 두 사람간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담배 한 개비를 두고 혈전을 벌인 끝에 그 담배는 부러지고 청산 엠플이 튀어나온다. 이 다음장면부터 죄다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


핫산: (눈이 휘둥그레해 지며) 즈기 즈기 머꼬?


<현희는 잽싸게 엠플을 짚어 그 끝을 깨문다. 현희의 시야가 갑자기 흐려진다. 눈앞이 온통 까맣게 변한다. 쿵~ 바닥이 일어나 무릎을 치는 것 같다. 그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그냥 끝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물론 김현희의 당시 상황에 관한 진술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미처 다 깨물기 전에 경찰관이 덮치는 바람에, 그녀는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베테랑 김승일, 그 소동을 틈타 엠플이 든 담배를 필터까지 와작와작 씹어서 삼켜 버린다. 얼마나 징하게 죽으려 했던지, 그는 현장에서 즉사하는 데 성공했고, 부검 결과 승일의 뇌척수에선 6.21ppm, 폐에선 5.0ppm의 청산염류가 검출되었다 한다(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 소견). 그러나 우리의 초짜 현희는 얼마나 둔했던지 선배가 와작와작씹어 삼키던 그 시간 동안, 채 깨물지도 못 해서 살았다는 얘기가 되겠다. 얼마나 살짝 깨물었는지 현희의 위세척을 담당했던 바레인 살마나야 병원의 야코비안 응급부장이 "배 속에 독이라고 생긴 건 전혀 없었당께로~" 라고 증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안기돌이들은 현희가 그 이후로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발표했다. 혹시 무릎 깨진 후유증이 청산염 중독의 후유증으로 나타난다면, 내가 지금 청산가리를 들이마시지 않아도 무릎만 까고 나면... 난 필시 음독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김현희는 입을 너무 쉽게 열었다


우리는 사상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아님을 잘 안다. 사상을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40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기도 한 사람들을 보면 자명해지는 사실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상이란 것은 한 개인에게는 자신의 존재가치, 즉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상이니 이념이니 종교니 하는 것들은 바뀌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제껏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죄다 거짓이라는 게 아무리 명확해 보여도 말이다.








 


   이런 자세로 앉아
   있을테니...


메카시즘적인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를 보자. 분명 지금의 우리는 북한을 좋게 보지 않는다. 설령 그네들이 우리보다 나은 구석이 있음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할 뿐, 본질적으로 북한을 꼴통국가로 보는 시각 자체가 변하진 않는다. 아무리 몇 일 동안 북한의 좋은 점만 듣고 본다고 해도 말이다. 왜 그럴까... 우리에겐 이미 그정도의 해킹으론 뚫을 수 없는 튼튼한 방화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점 조차도 예외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심지어는 나쁜 것을 가리는 하나의 눈속임으로 보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것을 부정하진 못한다. 그런다고 내가 공작원인가? 천만에... 난 조또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되더란 얘기다.


그러나 우리의 현희 누야께서는 그 모든 가치체계를 단 8일만에 부정해 버리고 말았던 거시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속아 왔다는 것을 그 짧은 시간동안 깨달았다는 식의 얘기가 전부였을 뿐이다. 김현희의 말이다.


(죄 없는 근로자들이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 저도 죽을 각오가 돼 있었는데...


자기도 죽을 각오를 하고, 남을 죽이는 일도 그렇게 넘어갔던 그 철저한 빨갱이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변한단 말인가. 정말 북한의 특수 공작원이 그 정도라면, 우리 국민들은 이제껏 속고 살았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저런 것들이 뭐가 무섭다고 그 지랄들이였다는 말인가. 며칠만 가르치면 다 불고 싸그리 바뀌는 저런 사람이 특수 공작원씩이나 되는 나란데 말이다. 우리 평화통일 멀지 않았다 씨바.


물론 이상은 일반적인 경우의 가정일 뿐이고, 우리네 안기돌이들이 썼던 방법은 독특했을 지 모른다. 뭔가 쌈박하고 색다른 방식을 사용했다면, 빨갱이가 단 8일만에 파랭이로 바뀌는 생물학적 변괴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기 현희누야가 감동했다는 그 안기돌이들의 쌈박하고 색다른 방식이 있으니 그건.........


그건 다름 아닌......... 인간적인 대우 였단다.


쿠쿵~~ 인간적이라....... 굽쇼??? 겨우 그걸로 끝이라는......... 말쑤미심미끄아???


수지김 사건이 단적으로 말해 주듯, 그리고 당시에 무고하게 끌려가 실종되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증명하듯, 당시 안기부는 인간적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설령 피조사인이 100여명을 죽인 공작원이 아닌, 그저 평범하게 민주를 외치는 일반 시민일 경우라도, 그 조사 과정은 절대 인간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믿지 못할 인간적 심문(?)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북괴의 특수 공작원 김현희는 불과 몇 일 만에 "언니, 미안해요" 라며 한국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당시의 보도 내용을 회상해 보시길).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애국자 게임에 등장한 박홍 서강대 전 총장이 "나를 죽이러 왔던 북한 간첩을 내가 설득했어" 라고 한 말, 여기서 그거 믿는 사람 손 들어 보라. 없지? 그래, 그게 현실이다. 또한 상식이구 말이다. 그런데도 당시 김현희의 조사를 담당했던 어느 안기돌이는 이렇게 말한다.


보통 간첩은 신문을 시작한 지 3일만 지나면 모든 것을 술술 불게 됩니다. 고문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럴 필요가 있어야지요. 그들은 확신범입니다. 그런 확신을 어찌 고문으로 꺾을 수 있겠습니까. 일시적으로 그를 굴복시킨다 해도 순순히 자백을 하겠습니까. 간첩들을 돌려놓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국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면 2-3일이면 사랑이 증오로 바뀌듯 순식간에 돌아서서 북을 욕하기 시작하지요. 북의 선전에 속은 데 따른 배신감과 남쪽의 진상을 확인한 충격으로 단숨에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탈출합니다. 김현희(金賢姬)가 8일만에 자백한 것은 오래 걸린 겁니다. 여자이니까 그렇지요.(이하생략)







어이구, 인물 났다. 난 이제까지 똘이장군은 만화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그 확신범들의 사상을 일시적으로 굴복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2-3일만에 탈출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니, 거 참 대단하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도 별 거 아니다. 이렇게 똘이장군들이 많으니 우리나라는 정녕 은혜받은 땅인 거 가따. 씨바. 그럼 40년동안 감옥에 있었던 그 할배들은 남한의 좋은 얘기들을 하나도 듣지 못했던 불쌍한 사람들이란 말인가? 이봐, 안기돌이 너 너무했어. 여자한테만 신경쓰지 말고, 그 양반들한테도 좋은 가르침 좀 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20대 청년이 70대 노인이 돼서 나왔겠냐?


 


 김현희는 선별적인 기억력만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재주는 비상하여, 사상을 단 8일 만에 바꾸는 것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은 기억조차 못할 내용을 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해 내는 천재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라도 능히 기억할 수 있는 평이한 내용들 따위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대범함으로 세인들을 놀라게 했으니... 역쉬 특수 공작원 자질은 be made가 아니라 be born 인 듯 하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 따위는 기억조차 안 했다.
    (또는 못 했거나, 혹은 모르거나)



위 사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소녀를 잘 보시라. 바로 김현희가 "어머나, 이게 나에요. 내 어릴적 사진을 어떻게 구했어요?" 라고 앙증맞게 증언한(당시 서울신문 3월 6일자) 바로 그 문제의 사진 되겠다. 그러나, 한국 우익의 대표주자인 조선일보에서 친히 그거 김현희 아닌디...라고 부정해 버린 충격적인 사건이 이써따. 그 이후에 문제가 된 사진들이 몇 장 더 있고, 야가 김현희랑께~식의 주장이 오고 갔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특수 공작원 김현희는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아해가 자기인지 몰랐던 것 아니겠는가. 나같은 범인은 그런 거 틀리지 않는다. 가장 못 생긴 넘 찾으면 그게 나니까... ^^:


 그녀는 자신이 묵었던 방 호실도 기억하지 않았다.
    (혹은 못 했거나, 아님 모르거나)


김현희는 자신의 진술에서 오스트리아 빈의 암파크링 호텔 603호에 묵었다고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호텔엔 603호라는 방이 없단다.


  공작원은 직거래를 못 한다.


동대구역에서 만나기로 한 상대방을 대구역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평생 직거래라곤 못 한다.  그런 사람? 그냥 가게나 가서 물건 사 오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러나 김현희는 그랬다. 자신의 진술에서 그녀는 헝가리를 거쳐 빈으로 들갈 때, 빈의 남역에서 내렸다고 밝혔으나, 후에 자신의 입으로 서역에서 내렸다고 그 진술을 뒤집는다.


  자기 아버지의 직책도 기억 안 한다.
(또는 못 했거나, 아님 모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구라거나)


안기부에 따르면 김현희의 아버지는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 김원석이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발표는 다르다. 앙골라에는 북한 무역대표부가 없으며, 수산대표라는 직책은 더더욱 없단다. 자기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기억 안했다는 얘기가 아니라면, 북한이 구라친 것이 된다만... 판단은 각자 하시도록.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이런 부분은 약 80여곳에 이른다. 궁금하면 너거뜰 알아서 찾아라)


 상식을 뛰어넘는다


어디 그 뿐이랴. 안기부 진술에서도 김현희의 독특함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나같은 범인이라면 얼마든지 기억할 단순한 내용들을 아예 혹은 깡그리 모른다. 평양 외국어대를 다녔다는 그 재원이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 안기돌이가 "일본차 운전대는 어느 쪽에 있게?" 라고 물으니 우리의 현희누야 왈 "왼쪽이요!!! (left left yeah yeah)" - 우리의 안기부 직원께서는 역쉬 내 판단이 마자써 하고 있는데, 김현희는 또 이렇게 변명한다. "일본에서는 땅만 보고 걸어다녔어요."


쿠궁..... 상식을 넘어서는 인간이다.


이렇게 사소한부분들을 대담하게 잊어버리는 특수한 공작원김현희... 그러나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우리의 안기돌이들은 그녀의 진술, 그 자백을 전적으로 믿고야 만다. 인간을 믿는 사람들에겐 더 이상의 물증따위는 필요치 않았던 때문인 거시여따.


 


 울나라 정부는 더 이상의 물증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름이 블랙이라고  
까만색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뱅기가 떨어질 경우, 사람들은 그 사고의 기록을 담고 있는 블랙박스를 우선적으로 회수한다. 그리하여 그것에 기록된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여, 그것이 조종사의 실수였는지, 혹은 기체 결함에 의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제 3의 가능성에 의한 테러였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즉, 증인이 있을 수 없는 항공사고에서(살 자신 있는 사람?) 그 상자를 회수하는 일은 수사의 최우선,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확실한 물증을 얻는다면 북괴의 만행을 더더욱 확증해 보일 수도 있었다. 진상을 규명해서 나쁠 게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명분을 얻더라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바로 그 증거 중에 블랙박스가 기본이라는 말이다. 당시 상황을 기억해 보라. 어떻게 하든 북한에 대한 우리의 우월함을 국제사회에 알려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여기서 잠시, 혹시라도 바다에 떨어지면 못 찾자너?라고 물을 무식한 독자 열분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뱅기의 블랙박스라는 넘은 바닷속에서 1천도의 고온과 중력의 1백배에 이르는 고압에도 견디면서 약 30일 동안 반경 2해리에 신호를 보낸다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 수색작업을 단 열흘만에 끝내 버렸다.


그 좋은 증거를 포기해 버린 이유는, 특수한 공작원의 자백 하나로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그저 참고일 뿐인 그 자백 하나에 만족해서 더 확실한 증거를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의 사체나 비행기의 잔해 등에 대한 수색작업도 그걸로 끝이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그 자백이란 부분이다. 실제로 아무런 증거가 없는 자백은 어떠한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이건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상식이다.


의심나는 분들 지금 한 번 파출소 달려가서 자백해 보라. "내가 살인을 했쪄!!" 그러면 우리의 포돌 포순이 엉아와 누야들이 아주 잘 다독거려 집에 보낼 게다.









"아..씨.. 왜 안 믿는 거야.."


간첩 리철진 보셨는가? "내가 간첩이야" 그랬더니 우리의 포돌이 아저씨 왈. "그래 너 간첩, 난 김정일... 우리 철진이 이제 집에 가야지? 간첩인거 알았으니까 오늘 자고 가."


이게 상식적인 자백의 엄청난 효과이다. 무지막지한 측은지심을 유발시키는 데에는 딱이라는 말 되겠다. 혹시라도 타지 나가서 잠잘 곳이 없거들랑 써 먹으시라. 인근 파출소에서...


결국, 자백 자체의 신빙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고 다른 기타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특수한 공작원의 자백 만으로 사건의 수사를 일관했다는 얘기 되겠다. 아 참, 당시에 자백이 실제로 무서웠던 경우가 이써따. 바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서 말이다. 딱 사흘만 안 재워 보라. 다 불게 돼 이따.


"내가간첩이구내가빨갱이구씨바새끼들아잠자고시포"


물론 이랬다간 그 사람은 인생 종치는 거다.


아하, 생각해 보니 유일한 증거물이 하나 있다. 일본인 기자 하기와라 등이 내 놓은 북한 소녀들의 사진이 그것이다. 그래... 확실히 김현희와 비스무리하긴 하다. 물론 김현희 자신이 이게 나랑께라고 주장했던 위 사진의 소녀는 김현희와는 귀가 다르긴 하지만서두... (절대 안 바뀐다. 사람 귀는...)


 


 왜 하필 그 때?









1987.12.18. 조선일보 7면


이 부분은 상당히 민감한 내용이 될 수도 있으므로, 심기가 불편할 것 같은 열분들은 과감히 건너 뛰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모든 범행은 그 시기를 계산하여 행해진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기에 함 간단히(내 목은 둘이 아니여) 짚어 보자.


당시 대선에서, 비록 후보 단일화는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상당히 짙게 점쳐지던 상황이었고, 대한항공기 실종은 바로 그 시기에 일어났다. 물론 당국에선 북한이 이 사건을 일으킨 동기가 단지 88올림픽의 저지에 있다고 말했으나... 그렇다고만 보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다소 있겠다. 김현희의 진술에 따르면, 이 뱅기의 폭파 목적은...


88년 1월17일까지 세계 각국이 서울 올림픽에 참여하는지 여부를 확답하게 돼 있는데. 그전에 비행기를 폭파해야 다른 나라에서는 올림픽 참가를 꺼리게 될 것이고. 남한 내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격화돼 올림픽을 치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때였는가? 1월 17일은 뱅기가 터지고 나서 자그마치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게 남은 시점이다. 영문도 모른 채 허둥대게 하고, 공포심을 극도로 자극하여 다른 나라들의 올림픽 참가 자체를 방해하려 했다면, 굳이 한 달 하고도 보름 전에 일을 터뜨릴 필요까지는 없다는 얘기다. 그 시점은 1월 17일 즈음, 최소한 1월 초는 되었어야 말이 된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 시간이면 사고 원인이 설령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웬만한 여타 여건들은 수습이 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북한이 우리의 민주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까지 갖고 있었다면, 그 사건을 터뜨릴 시점은 참으로 잘 맞춘 것이 되겠지만, 애석하게도 김현희는 전혀 그런 부분에 대한 진술을 하지 않았고, 남한의 수사기관 내에서도 그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뱅기가 떨어진 날은 우연히도 김대중의 여의도 유세 - 백만명이 모였다는 - 날이었다. 김대중 후보 측은 여의도 대규모 대중집회를 계기로 수도권 세몰이에 나서려고 했고 구름같은 청중에 고무되었으나.. 그 다음날 신문은 그만 뱅기 떨어진 얘기로 뒤덮였다.











   1987년11월30일자 동아일보(좌) 1면과  좃선일보(우) 1면.
  동아 1면엔 김대중 후보 여의도 유세가 작게 실려있지만
그나마 큰 제목은 김대중 이름이 아니라 김영삼 후보 사퇴 요구다.
  좃선 1면엔 관련 기사가...... 아예 없다.



우연일까? 우연일지 모른다. 그런데 김현희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다시금 우연히도 대선 하루 전날이었다. 선거당일 아침신문을 펼친 시민들은 <오늘 대선> 이라는 헤드라인과 나란히 북괴 테러범 기사를 보아야 했다. 신문을 보며 미소짓는 노태우의 얼굴이 보이는 듯 하지 않는가..... 아 씨바 우연에 우연이 계속 겹치는 삼류 드라마 같은 느낌... 조또...









1987.12.16. 좃선일보 1면


결과적으로 당시 집권당에게 선거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대세가 전개된 데에는 대한항공기 사건이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본다. 이는 조선일보 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의 피해자였던 김영삼 김대중 양 대통령마저 현재까지 대한항공기 실종의 진상은 커녕 언급조차 회피하여 왔다. 애써 유가족들의 요구를 못 들은 척 하는 입장만을 보였을 뿐이라는 얘기 되겠다. 왜 그랬을까.


사랑하는 가족을 졸지에 황천길로 보냈던 이들은 남들이 증거 없이 범인의 진술만을 믿건 말건, 직접적인 피해자이니 만큼 그 숱한 의혹들에 대한 진상 규명을 당연히 요구했다. 이건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상정의 문제일 뿐이다. 바뜨....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입 닥치고 조용히 사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여 라는 가증스런 협박이었다. 가족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어디선가 귀신같이 안기돌이들이 나타나 훼방과 협박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기사 참고하시라)


자신들이 벌인 일이 아니라면 더더욱 진상을 밝혀 국민들이 혹시라도 가질 지 모르는 의심을 풀어줘야 하고, 희생자들의 가족들에게는 국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 그거이 상식이다. 절대 입 닥쳐라는 협박은 있을 수 없다.


숨길 게 없는 사람은 협박도 안 한다. 구릴 게 없는 사람은 타인의 입을 막으려고도 안 한다. 이것이 만고불변의 이치다.


 


 살 수 바께 엄는 여자 김현희


당시 김현희의 전향 과정과 그 후의 모습은 정말 극적(가관?)이었다. 115명을 죽인 그 가공할 만행을 저지른 여자... 그러나 알고 봤더니 그녀는 벌레 한 마리 눌러 죽이지 못하는 청순한 아가씨였다. 자신이 행한 죄를 뒤늦게 진실의 힘으로 그녀가 깨닫는 순간 거짓의 바벨탑은 무너져 버리고, 그 자리엔 괴로워하는 한 가련한 영혼만이 남아 고통스러워 하고 이써따.









수지김   


아싸 누굴 홍어 좆으로 아나. 신파를 써라. 참 디럽게 공평하고 인간적이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현대사에서 가련한 영혼이 한둘인가. 그런데 그들에게 자유대한은 어떻게 했던가. 빛고을의 백성들이 115명을 죽인 진짜 빨갱이보다 더 빨갱이여서 그들에게 M-60 갈겼나. 수지김이 남편 잘못 만나 죽은 것이 뱅기 빠순거 보다도 더 큰 간첩질이란 말인가. 이거 먼가 가당치도 않은 거 가튼데, 독자 열분덜은 어떠신가.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할 때, 그녀가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는가. 당시 주변의 분위기를 상기해 보시라. 설령 내려와서 강아지 한 마리 죽이지 않은 공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죽이는 데에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치 않았다. 합의도 필요 없었다. 빨갱이에게 무슨 인권이 존재했단 말인가.


예상했던 바와 같이 재판부가 그녀에게 내린 선고는 사형이었다. 강요되어진 범죄행위라 볼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1990. 3. 27).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사실상 김현희가 김정일의 도구로써 이용되었다는 점이 참작된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1990. 4. 12) 사실상 부정된다. 결국 김현희는 석방되었다. 감형도 아니고 석방!


그리고 언론은 그 이전에 김현희의 사형 여부에 대해 논란씩이나 벌임으로써 사실상 그녀를 여론의 심판에서 석방시켰다. 그 언제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를 위한 논란이 벌어졌단 말인가.









    수기집도 내고...


본 기자 또한 김현희 누야가 산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늦게나마 축하하는 바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거슨, 그녀가 살 정도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참 많았다는 것이다. 관용이라곤 없던 세상에서, 그녀만이 살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할 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이용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그녀가 북한 사회와 남한 사회에 대해 비교하며 말했던 내용이다.



북조선 여자들은 여가생활을 할 수 없음은 물론 자신을 가꾸지 못해 겉늙어 보이는 데 이곳 여자들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깡깡거리는 것을 보니 남조선은 여성들의 천국같다.


여기 와서 보니 북쪽을 너무 모르더군요. 저는 북쪽의 진실을 알리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북쪽의 진실을 알아야 올바른 대책을 세울 것이고. 그래야 통일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망명자 주제에 전쟁을 막으러 왔다고 말한 황모씨와 비교해 보시라.)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고서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어가면서까지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안타깝다.


주부들의 생활환경과 학생들의 학습조건이 저렇게 좋은데 왜 부부싸움을 하고 데모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북쪽에 가면 하루도 못 살 것이다


여기는 뿌리가 튼튼한 나무이고, 북쪽은 이파리만 달린 연약한 나무 같습니다


(주사파 학생들이 북쪽에 가면 환영을 받을까? 라는 질문에) 실컷 선전에 이용한 뒤 버리겠지요


(백담사로 떠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TV로 보고) 인민들의 의사가 무섭고 발언권이 세다고 느꼈습니다. 사과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이 인민들의 힘 아니겠습니까. 여기 와서 보니까 全대통령은 성과도 있으시고 가정적으로는 비난받을 점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金日成이 같으면 그 정도의 가정적인 문제는 도대체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쪽 인민들은 金日成·金正日의 신상에 대해서 모릅니다. 金正日의 아내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신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경한 일로 되어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성과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잘은 모르지만 80년에 집권하고 나서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이렇게 발전시킨 것이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자 이제 감이 잡히시는가.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들 아닌가. 그렇다. 마치 앵무새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녀는... 살 수 밖에 없는 여자 였다. 115명이 아니라, 1150명을 죽였다 해도 살았을 것이다.


 


 왜 테러를 했는가?


모든 테러는 그냥 일어나진 않는다. 반드시 정상적인 외교적 방법을 통해 달성하기 힘든 목적이 있을 경우, 그것을 대외적으로 표출하여 관철시키기 위한 극단적인 정치적 방법이 바로 테러라는 얘기 되겠다. 북한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선정한 테러 지원국(rogue state)이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당시의 사건을 북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테러라고만 단정짓기엔 의문스러운 점이 몇가지 있다.우선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은, 북한이 완전범죄를 노려 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들려 시도했다는 수사 발표이다. 테러는 굳이 완전범죄일 필요가 없다. 비행기가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면, 그것은 테러일 수도 있고, 기체 결함으로 인한 추락일 수도 있다(실제로 858기는 그 이전에 고장으로 동체 착륙 했던 적도 있다).









모두 이러진 않을 거란 말이시...


즉, 뱅기가 실종됐다고 사람들이 죄다 아 씨바, 올림픽 가다간 누가 뱅기 떨어뜨릴 지도 몰러~라고 단정짓진 않는단 말이다. 북한이 실질적인 위협을 주기 위해선 당연히 우리가 해따. 죽고 잡으면 서울행 뱅기 타 봐식으로 나와야 정상이란 얘기다.


그런데 북한은 그러지 않았다. 공작원들에게 유사시 자살을 지시했던 것이야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대외적으론 북한 스스로 완전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굳이 노동자들이 탄 뱅기를 그 타겟으로 삼기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내외적인 명분이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콩사탕이 시러여 하는 꼬마 녀석의 말을 잘못 듣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그 무식한 인민군 병사의 에피소드와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북한 국내적으로도 상당히 심한 비판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상대방의 노동자들을 국가적으로 죽이는 일이다. 남한 체제에서 착취의 대상이라 그들이 자국민에게 선전하는 바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며, 이는 얼마 안 되는 그들의 역사적 정통성(적어도 친일 정권은 아니라는) 마저도 잃을 수 있는 행위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내세우지도 못할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도 않을 사건을, 별로 급하지도 않은 시점에, 그렇게 특수한 공작원 까지 동원하여 저지를 이유가 무엇인가. 왜? 아.... 씨바 머리가 터져 버렸다. 골수를 주워 담는 중....


 


 맺 음


한마디로 이 미스테리어스한 대한항공 858기 실종사건을 요약하면, 담과 가튼 놀라운 결론이 나온다.


역사상 가장 예측불허의 명콤비 공작원들이 있었으니, 70살 먹어서도 임무중에 꾀병부리는 다 죽어가던 베테랑 공작원과(상습 약물 복용 의심자), 제 때에 독약도 못 삼키는 둔해 빠진 운동신경에 비상한 선별적 기억력까지 겸비한 초짜 여공작원 커플 되겠다(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의 심각한 인력난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만다).


뿐만 아니라, 증거 없는 자백 만으로 사건을 종결시킨 세계 사법계의 기념비적 성과를 거둔 울나라 정부의 불가사의한 능력과, 명분 하나 챙기지 못하고 졸지에 테러 지원국으로 전락한 북한의 어리벙함이 돋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빨갱이의 인권 조차도 너무나 관대하게 인정하여 다시금 역쉬 인권국가라는 세계의 찬사를 받을 만 하며, 반면에 한 줌 꺼리도 안되는 희생자 가족들의 말 많은 요구엔 과감하게 생까기로 대처하는 현명한 치세로 전 세계 정치학도들에게 귀감이 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끄트로 패가 안 맞아도 나가리 안 내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볼 수 있게따. 졸라~~~



한민족의 아들인 것이 자랑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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