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성교육 이대로 좋은가 2001.10.14.월요일 안녕하십니까, 딴지일보의 기자님. 저는 평소부터 딴지일보에 글을 쓰셨던 기자님들의 글을 읽고 많은 공감을 하고, 존경하고 있던 한 독자입니다. 날마님께서 쓰신 사후 피임약을 허용하라!! 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얼마 뒤, 저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교육 강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저희 학교는 여학생 임신과 출산, 낙태 사건이 유난히 많은 학교입니다. 예술고등학교에, 연극영화과가 있다는 특성상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많은 탓일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성교육의 내용은, 욕구불만의 남학생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사고와 남자와 여자의 생리적인 차이점, 그리고 임신과 낙태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서 약간 부끄러운 감이 없다고 생각치는 않지만, 저는 어렸을 적부터 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또 그 호기심이 성적 충동만이 아닌 피임, 성에 관련된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던 지라 이번의 성교육 정도는 필요 없었을 정도의 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탓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번 성교육에 대해서 단순히 배우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수용하기 보다는 보다 세심하게 그분의 강의 내용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일단 남학생들에게 여학생들의 성에 대한 태도를 이해시켜, 간혹 남자들의 터무니없는 착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성폭행 등을 방지하기 위한 강의를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임신과 낙태에 관한 강의였는데, 이것은 여학생을 위주로 강의를 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성경험을 가지게 되어 아직은 연약한 자궁 경부에 손상을 입으면, 자궁암이나 불임등이 되기 쉽다는 것, 낙태를 하다 잘못되면 불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고 상기시켜야 할 내용들입니다. 그 선생님은 그 외에도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가 겁을 먹고 아이를 비닐봉지에 싸 5층에 떨어뜨려 죽여버린 여학생의 이야기, 5개월째에 낙태를 했다가 아이가 죽지 않아 주사약으로 죽여 구속된 의사의 이야기, 임신을 했다가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외면당한 여학생의 이야기 등등......임신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무서운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강의의 주된 내용은 피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섹스를 해서는 안된다라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피임방법에 대해 설명하신 것을 간략히 추려놓자면, 이렇습니다. 배란기 체크 : 생리 주기가 불규칙적인 어린 여학생들에게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 콘돔 : 95%정도의 성공률을 가졌지만, 공기가 들어가면 터지기 쉬운 것. 피임약 : 하루라도 빼 먹으면 실패할 수도 있고,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 사후 피임약 : 자궁에 착상되지 못하게 수정란을 흘려버리는 낙태약. 두통, 어지럼증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고 후일 불임이 될 수도 있는 것. 넣는 피임약 : 역시 불임이 될 수도 있는 것. 피임약의 부작용, 효과 등에 대해 정확히 알려준 것은 옳은 일이지만, 저렇게 모든 피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과장되고, 위협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사후 피임약에 대해서는 먹기만 하면 부작용이 오고 불임이 되는, 독약 이라도 되는 식의 어투를 사용하셨습니다. 콘돔 사용법까지 부정적으로 가르친 이 성교육의 주장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 섹스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애를 가지고 출산하고 낙태하고 불임된다. 이러한 오로지 위협식 성교육이 과연 미성년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옳은 방법인 것일까요. 담배에 대해 아무리 무섭다고 말하고, 병든 폐의 사진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결국 담배를 피고싶은 아이들은 신경쓰지 않고 담배를 핍니다. 전 그 강의를 한 선생님께 이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한 임신 여학생들이, 과연 올바른 배란기 체크를 알았고, 정자의 체내 생존일을 알았고, 올바른 콘돔 사용법을 알았고, 피임약이나 사후 피임약을 올바르게 사용했습니까?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의 「지」자도 없이, 7개월 때까지 자신의 임신 사실도 몰랐던 그 여학생들이요. 전 이런식의 성교육은 배탈 난다고 아이스크림 먹지 말라는 식의 말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탈이 나지 않도록 적당히 아이스크림을 절제하여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알려주지 않고요. 물론 가장 확실한 피임방법은 섹스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성년자의 임신과 낙태는 성인 미혼 여성의 임신과 낙태와는 차원이 틀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협식의 성교육이 학생들의 욕구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을 뿐더러, 이미 성관계를 갖기 이전의 학생들에게만 어느정도 통용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애인과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학생들은 그 후의 애인과 쉽게 성관계를 가집니다. 성에 대한 공포도 혐오도 호기심도 저 멀리 날려버린 이런 학생들에게, 과연 저런 위협적 성교육이 씨나 먹혀들어갈까요. 말기 폐암환자의 사진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담배 피는 학생들은 담배를 쉽게 끊지 못합니다. 그리고, 임신과 낙태 사건은 대부분 이런 학생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미성년자 성관계.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보다 안전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미성년자들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까지 성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미성년자 임신, 낙태, 출산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평생 가슴에 남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르는 여학생, 임신 말기 여자친구랑 인연 끊어놓고 마음 속에 찜찜함 안고 살아가야 하는 남학생 같은 것은 결코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미성년자의 성관계를 되도록이면 막으려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또 다른 방편으로 피임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만약의 사태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 여학생들에게만 임신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성교육이 아니라 남학생들에게도 자신이 탄생시킨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여학생 못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 자신이 그러한 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안되면 제 동생들이라도...) 제가 멋대로 보낸 이 메일을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이런 메일을 보낸 이유는, 언제 한번 딴지일보에서도 대한민국의 청소년 성교육에 대한 기사를 올려주시고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시면 좋겠다라는 청을 감히 드리려고 였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멋진 기사를 기다리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콘돔 사용법 정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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