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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됴 검열위] 수면성 영화, 백배 즐기기!

2002.1.4.금요일
딴지 영진공 비됴 검열위


그간 잘들있었나? 독자제위들.


다들 몸 건사 잘하고 있었는지... 뭐 천한 목숨 모질다고 아무일 없을 꺼라 지좃뙈로 결정내리겠다.


아무튼, 본 우원이 독자제위에게 일케 출장맞짱 뜬 동기는 사실 화끈하고 쌔끈한 이벤트로 열분덜을 홍콩으로 가게끔 어떤 거시기를 소개할까 했었드랬다. 그치만 뭐 본 우원 삐끼도 아니고 해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주변에서 열라게 잼없다고 하는 것덜을 소개하기로 했다.


우짰든 이런 갈지자의 뻘생각을 거쳐 집에서 장판돌이(순이)로 분하여 방박닥 긁고 있는 방콕들께 소소하게나마, 몇 편의 소아병적인 쭉쭉빵빵 비됴대신 재기발기한 영양가 만빵인 비됴를 사정하고자 하니, 이미 본 잉간들은 어물쩡거리지말고 얼렁 알아서 살길 찾고, 아직까정 접하지 못한 제위들은 가지런히 두 손 하복부로 모으고 하나하나 잘 꼽씹어가며 필요할 때만 사뿐히 모니터키를 즈려밟기 바라마지 않는다.   


이 철 지난 필름의 리뷰를 일별하기 전에 본 우원의 졸문에 대한 최소한의 코딱지만한 미안함으로 인해, 아래의 숙지사항을 걍 디미니 군소리말고 맘 속으로 삼창하길 바란다.


하나, 이 비됴들은 졸라 싸게 땡길 수 있다. 있다!! (한 편당 1000원 넘으면 본인에게 고발성 멜질하길 바란다. 아직 강구책은 없지만서리...)  


둘, 아무리 협소하고 후진 비됴가계라도 당근빠따 늙은창녀처럼 한 쪽 구탱이에서 니덜에게 아씰한 추파를 던질정도로 소장비율 만땅이다, 만땅이다.!!


셋, 고로 삼단논법에 의거하여 대여기일은 너거들 좃꼴리대로다, 대로다!!!


글고 마지막으로 아래의 배설물들은 볼록뽀스터의 감상필하고는, 마치 본지와 좃선를 읽고 난 뒤에 느끼는 지화자와 씨벌 정도의 극도의 차이가 있다고 사료되는 바, 이 점 특히 유념하고 나중에 감상포인트 삑싸리 났다고 뒷다마까지 말기 바란다. 한 마디로 나불거지자면 수면성 영화일 가능성 매우 농후한 비됴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리 이불 깔고 잠 잘 자세 취할 필요는 없다. 이런 비됴들도 빌려놓고 보다보면 나름대로 재밌는 구석도 있고, 꼴리는 부분도 있고 하니 본 우원은 그 점에 초점하여 썰을 풀도록 하겠돠.


자, 너무 쓰잘데기 없는 장광설을 풀어놓았는데 이제 똥코조이는 빤스끈 풀어놓으시고 함 즐감하며 훑어보시라. 노팬티면 더욱 좋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콩가루 집안의 어두운 초상 <아이스 스톰>










<아이스 스톰(ICE STORM)>. 이 스산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필름은 이미 <와호장룡>으로 동네방네 알 사람은 다 알만한 대만의 이안감독이 3-4년 전 쯤에 땡긴 영화다(물론 미국의 시스템 하에서 말이다. 배우도 그곳 애덜이고).


대강의 스토오리는 여차저차해서 아래와 같이 생략하기로 하고... 니덜도 아마 아네타 베닝 주연의 <아메리칸 부티>라는 작품이 수없이 입방아 찢어 왔기에 잘 알 거라 믿는다.


이 <아이스 스톰> 또한 그와 흡사해서 70년대 중반의 미국 중산층 집구석이 어떻게 서서히 처참하고 황폐하게 붕괴되어 아작나는지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는 쬐금 불편한 필름되겠다.


당 필름이 <아메리칸 부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작품은 뷰티와 달리 허벌나게 무미건조하고 담담하게 지덜의 거짓과 위선으로 빗나가는 일상을 절라리 똥코 미어터지도록 매몰차게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캐릭터들의 무표정한, 아니 그 보다 한 술 더 떠, 알 수 없는 얼굴 안면의 움직임은 보는 이를 심히 지자식 챙기듯 걱정시럽게 만듦으로써 이안이 의도하는 바에 충실한 시다바리성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고 때려 맞추어도 될 것이다.


것두 베트남전이네 워러게이트네 하는 졸라리 끗발나는 사건들이 있었던 긴장된 시기인 만큼,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의 개연성을 무뇌아적으로 걍 스크린 마빡에 후려치는 것이 아니라, 시퍼렇게 멍든자국을 안 남기면서 결코 무관하지도 않다는 점을 은근슬쩍 반다리 걸치며 적당히 구석구석 화면에 발르고 있다는 점이, 당 영화의 갑빠중에 왕갑빠라고 구라 아닌 구라를 풀고 싶다.


아마도 이와같이 세계사적인 사건이나 열라게 심오한 지식인 이빨성의 문제들을 오강에다 똥싸질러 놓듯이, 작은 틀에서 친근감있게 보여줄 수 있는 힘. 이게 바로 대만의 이안 감독이 전지구적으로 먹힐 수 있는 이유이며 규화보전에서나 볼 수 있는 내공술이 아닌가 싶다.


당 영화에는 시고니 위버가 평소 마초적 전사의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출연하여 놀고 있고(즉, 안 나와도 그만이었을껄?), 비됴로는 "스와핑"이라는 쪼가 곰팡내 나는 떡치기성 조어만 주리줄창으로 껍데기에 도배질돼 있다. 당빠 스와핑 나온다. 그러나 절대 꼴림성의 그런 화면빨 별로 없다고 강변하고 싶다. 물론 자동민감성 좃을 가진 넘들이야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A형 이상의 천막을 칠 수 있다고는 상상들 마시라.


우쨌거나 갠적인 생각으로는 <아메리칸 부티>보다 섬뜩하며 가슴 및 괄약근까정 연동하여 서서히 조아리는 영화라고 생각되는 바이다. 글고 마지막 앤딩 컷은 설명은 안하겠다만 정말 나까정도 화들짝 울컥했다. (그 컷에서 불현듯 넥스트의 <아버지와 나>라는  서사시의 노랫말이 기억난 본 우원, 좃나게 감성어리지 않냐? 그치!)


그나저나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만약에 말이다. 서양넘의 연출자나 아님 근처 아시아에 서식하는 감독이 울나라를 이와 같이 묘사해서 영화를 찍어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꺼 같냐?
 


 <무릎과 무릎 사이로> 이후의 최대의 사이로 필름 <올리브 나무 사이로>










비유가 너무 허접했다고? 가당치 않는 말이라고 본인 퍽큐하는 바이다. 이장호 명인의 <무릎과 무릎사이>를 본 지 이미 십수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극도의 흥분상태는 나의 몸속에서 허거덕허거덕 거리고 있다.


일단 개떡같은 소리는 훌러덩 까버리고, 이 필름은 사실 뭐 썰 풀 필요도 없는 이란의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3부작 중 마지막에 해당되는 90년도 중반의 것이라 봐야겠다.


어케보면 이 알 수 없는 저력의 노땅 손을 거친 작품들이 매양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거 본인도 대가리 끄떡끄떡하는 바이다. 허나 약간의 인내심만 발휘한다면(인내심이 없다고? 헌데 니덜 연예인 동영상 다운받을 때는 몇십분이고 마냥 환호작약하며, 가가호호 전화로 자랑하며 기다리잖어!! 결국 인내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귀찮고 싫은 것이다) 알 수 없는 보살님필의 환한미소와 함께 진한 감동를 느낄 것이다.


이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길이라는 아주/매우/조또 아닌 것을 통해 다분히 침착하고 착하게, 세계와 내가 이어 질 수 있는 가능성의 여정으로 울덜을 데리고 간다. 또한 영화 속의 삶과 현실 삶의 의지있는 조우라는 무척이나 달짝지근하고 흐뭇한 내용을 담고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독자 니덜도 알다시피 가끔 뇬넘들이 아무 개념없이 무시로 까대는 "저, 영화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라는 니뽕같은 멘트들과는 빠굴할 수 없는, 끝없는 여관방을 달림과 동시에 단 번에 개박살낼 수 있는 착한 칼을 이 필름은 지니고 있다.


기계라는 장치들을 이용해서 미끈하게 출발하기 시작한 영화라는 과학이, 과연 인간의 삶에 진정한 사유의 힘이 될 수 있는 인문학적인 역할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얄딱꾸리함은 이미 한 세기동안 수없이 던져진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살포시 제낄 수 있는 영화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올리브 나무 사이>를 포함한 키아로스타미의 쓰리고 연작 시리즈라고 보아도 별 무리 없을 것이다.


특히나 본인이 이 작품을 떡커니 맞짱 뛰고나서 진정으로 느꼈던 것은 길게 찍기(롱테이크)와 졸라 멀리서 찍기(익스트림 롱 샷)의 미학적인 힘이자 실용적인 힘이 무엇인지 절실히, 구구절절, 피똥 싸며, 무릎 꿇으며, 따거 외치며 감읍하여 받아들일 정도로 좃선이 조뙈따라는 것과 같은 큰 흥분을 느꼈었다는 것이다.


특히 당 영화에서의 반복되는 시퀸스와 엔딩부분을 유념하면서 보길 졸라 조르는 바이다.
 


 <서울 탱고>의 방실이랑 개연성 낫씽인 문제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혹 이 영화가, 뭐 쿠바의 살사에 이은 또 다른 복고풍의 딴스 영화가 아닌가 반문하는 덜 떨어진 잉간이 있을 지도 모르겠고, 80년대 후반의 울나라 3류영화계를 강타한 <서울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전통깊은 향수를 끄집어 내는 에로 키드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본인도 분명 뒷구녁 범주에 속하는 아쉐이었따. 그나저나 그 때의 쥔공 여배우 이름이 존나게 가물가물하다.(아는 넘 있으면 알려다오)


이 작품은 좌파이자 마르크즈주의자라고 이넘저넘 지까지 공인하는 이태리 출신의 베르나르도 베루톨로치 감독의 72년작이다. 그 당시 거시기 털이 보인다는 둥 지랄같은 제한적인 환경에 의해서 상영금지조처 당했던 문제작이고.....


이러한 호들갑스러움으로 한국이라는 성기혐오증 나라에서는 20년이 넘어서 그곳도 성기를 지좃뙈로 스프레이화하는 꼴통 편집법이 첨가되어 상영되었고, 당근 이 전위적인 편집법으로 인해 냉담한 반응을 수용자들로부터 한 몸에 받았던 절라리 똥코털 죄다 뽑힌 넘마냥 정말로 불쌍 가련탱이한 작품되겠다.


하여 법보다 가위질이 장땡이었던 이 지난한 시대의 문제작이 비됴 가게에 있을 것이고, 이것을 땡겨보고 싶은 잉간이라 함은, 험악한 요구런지는 몰겠지만 마르크스주의자를 니캉내캉하는 존재이던가 스프레이를 암 생각없이 하나의 애교나 예술로서 봐줄 수 있는 넉살좋은 수용자들 또는 빠굴영상의 진정한 장인들일 것이라고 사료된다.


글고 뱀다리 같은 갠적인 야그이지만,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사운드트랙 때문이었다. 본우원이 중고딩때 이 문제작의 음악은 골수 콜렉터들에게 집중표적이 되는 희귀 엘피이었다. 아마 음악을 담당한 뮤지션이 흑인 섹쑤폰 연주자였는데 가브리에 바바리 뭐시기로 기억나는데...... 아이 씨바! 인자 내도 머리 굳어 버린 모양이다.


우짰든 본 우원은 음악땜시 이 영화를 삽입하게 되었고(한 번 들어봐! 쥑인다.) 거기다 뭐 음모가 보인다는 둥 여러 꼴림성 인센티브가 있었기에 별 생각없이 걍 사파리한다는 기분으로 구경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뭐 이 작품은 헐리우드에서 공수해온 말론부랑도가 동물적인 떡치기 씬을 잘 소화했고, 그 이면에는 68혁명에 패배한 동시대인들의 절망어린 허무만땅의 분위기도 농후하게 깔려있다. 뭐 깔려죽을 정도는 아니니 걱정덜 꽉꽉 붙어들 매시길 바란다.


이러한 동기로 인하여 성과 정치라는 오다가다 이슈화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드뎌 영화계의 한 자리에 똬아리를 트는데 당 영화가 많은 긍정삽질적 공헌을 했다.


모든 것을 다 차치하고 갑빠 절라 없는 본 우원, 딱 몇 줄로써 이 지난한 시대의 역작을 버무려볼까한다. 웃지덜 마시고 다만 비웃기를.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보다 덜 슬프고 장선우의 <거짓말>보다 덜 웃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어때? 괜찮았어?
 


 대가리 쥐나는 그로테스크함의 무한정 질주 <로스트 하이웨이>










솔직히 꼭! 반드시! 잊지않고 봐야돼! 라고, 니덜 옷자락 붙자고 앵겨붙을 정도로 적극적 추천은 쪼까 그렇고, 영진공식으로 썰 풀자면 덩가등급정도 되지 않을까 사료되는 작품 되겠다.  


지척인 예를 들어 좀 "깬다" (엽기 노우. 컬트 예스)싶은 것을 좋아하거나, 작가와 대구리 싸움을 하는 것을 즐기는 지력발랄한 똘똘한 넘덜이라면 한 번 맞닥뜨리길 권한다.


머리에 김 날 정도로 야리꾸리한 이 영상을 만든 씨네아스트는 <트윈픽쑤>(티브시리즈)와 <블루 벨벳>, <광란의 사랑>을 빚어냈던 데이빗 린치 감독이다.글고 요즘에는 <멀홀라드 드라이브>, <스트레이트 스토오리>라는 쌍피를 들고 울나라에 다시 얼굴 디민 감독이다. 허나 다덜 알다시피 비록 쌍피가지고 시작했다만 언제나 그러했듯이 걍 나가리되고 말아부렀다.


작품덜을 보니 똥꼬에서 뭔가 움찔함을 느끼시는가?? 허나 오바하지 마라! 그러다 걍 싸버리는 수가 있다.


위의 전작들을 97년에 생산된 당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에 비하다면 <박하사탕>과 <박하사랑>의 교집합을 찾는 것만큼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다.


플릇의 개구락지 폴짝뛰듯한 점핑, 기기묘묘한 이미지의 변태적인 버무림, 지꼬라지 지도 모르는 사건들, 인더스트리얼, 데쓰메탈 계열의 극단적 음악차용 등 어케보면 영화덩어리 자체가 하나의 속임수나 구라 장치 같기도 하고... 우쨌든 재래식적인 이빨까댐으로는 심히 부족함을 느끼는 꽈배기적인 영화이다.


하여 당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돼지본드 한통에 버금가는 혼란을 야기시키는 환각제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절대 박카쑤류의 강장제 아니다.


그래서 내용이 뭐냐고??


위에 썰 풀어놓은 것 보면 모르냐? 그게 다 뭔소린지 모르니까 그냥 까댄소리지. 그나마 오링 안되고 개평으로 얻어먹은 것이 있다면, 뭐 된장인지 똥인지 지좃인지 남좃인지 아무 것두 모르는 얼빵한 자아의 정체성을 찾는 뛰댕김을, 비논리적인 착종변주로 엎치락뒤치락 지랄 옆차기함으로써, 울덜에게 숨바꼭질과 치고빠지기의 효시인 다방구라는 추억의 놀이로 이끈다는 점인가?


글타. 바로 이것이다. <로스트 하이웨이>를 디비고 나면 보는 넘들 인성에 따라 요리저리 잡생각을 끊임없이 껄떡거리게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찝쩍거려 자꾸 생각을 만들게끔 한다는 것, 이거나름대로 울덜의 사고방식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어찌됐든 당 영화를 한 번 보고 약간의 껄덕거림도 없이 한방에 이해된 뇬넘있으면 연락 때리길 바란다.  
 





참으로 욕봤다. 본 우원의 허벌, 허벌난 글을 쌍코피터지며 나름대로 씩씩거리며 좇아온 점. 이제 남은 임무는 오로지 짤탱이 없이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전썰했듯이 시간적,경제적,기회비용적인 측면에서 접근용이하지 않더냐???


일언하자면 이거 완존히 현장에서 부담엄꼬 빠꾸엄꼬, 겐세이 없이 킹카, 퀸카들과 부킹 100%의 얄짤엄는 "저비용 고효율"의 효과라고 목소리높여 짖어대는 바이돠.


무엇보다도 당 영화 접촉 후 이 필름들이 싸질러 놓은 배설물들이 너거들의 육감중 몆 군데서 쉬이 잊혀지지 않고 짱박혀 있어 꼽씹어 볼 수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 열분들 마빡에 본 우원이 예고없이 드리밀친 결정적 동기다.


하니 후다닥 발딱 기립해 빤스 끈 질끈 동여매고 딸딸이 신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비됴숍으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바람처럼 휘리릭 댕겨오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접기전에 아마도 당 필름을 맞닥뜨리고 "뭐야 이게!" 하실 독자도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짬뽕에도 삼선/해물짬뽕이 있고, 짜장에도 쟁반/간짜장이 있듯 "뭐야 이게!"중에도 "뭐다"가 있다. "뭐다"는 울덜의 느낌이자 썰이다. 이 씨부림에는 옳고 틀린 것이 존재하지 않음이다. 다만 다름과 같음이 있을 뿐이지.  알것냐!




비됴 검열위 우원장



반골
(bangoal@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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