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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의 유럽이야기] - 외전 - 유럽과 한국 (1)

2002.12.30.월요일

딴지 유럽총국장 파토








런던 빅벤 근처에 있는 이집트 오벨리스크. 알렉산드리아에 수천년간 서 있던 것을 영국인들이 배로 런던까지 옮겨 와서 2백년째 템즈강 변에 서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탄생한 프리메이슨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계 백인 귀족들의 고대 이집트에 대한 애정과 집착은 각별했다. 프리메이슨 이야기는 담에 한번 다뤄주마...




글타. 결국은 다른 이야기로 빠지고 말았다.



국장이 런던에서 기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은 아는 분은 다 알테고, 실은 지난주에 첫 학기의 시험이 끝났다. 그 당장에는 그렇게까지 어렵게 느끼진 않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시험이 끝난지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국장은 그 긴장의 데미지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기타 학교의 시험이라는 것은 교실에 조용히 앉아서 글로 쓰고 점수도 나만 알고 넘어가는 대학 시험 같은 것과는 다르다. 남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 하는 일이 많고, 따라서 본 실력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특히 연습할때보다 시험에서 훨씬 연주를 못한 경우에는, 아무리 초연해질려고 한다 한들 내심 자괴감을 비롯한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국장이 맨 마지막으로 시험이란걸 쳐본게 근 십년에 가깝다 보니, 아무리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거라고 한들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의 애들 과 이런 시험을 같이 치루는 것은 예사일은 아니다. 게다가 그들의 대부분이 아직 제대로 된 무대 한번 밟아보지 못한 초짜들임에 반해 국장은 최소한 그들에 비해서는 화려하다고도 할 오랜 경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자존심 문제도 알게 모르게 연관이 되는 것 같고...

음, 암튼간에 지금 국장의 상태로는 도저히 유럽과 기독교 같은 묵직한 이야기를 쓸 여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어설프게 하느니 차라리 늘 하던 수법대로 외전 으로 빠지는게 독자 열분들에게도 유익할 거라는 판단을 내렸으니, 그렇게들 아시기 바란다.



이변이 없는 한(...) 유럽과 기독교 2편은 다음 시간에 열분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마 앞으로도 가다가 힘에 부치면 자주 이렇게 외전으로 빠질 생각이니 참고들 하시기 바란다. 물론 수틀리면 이런 이야기만으로 몇회 더 나갈지도 모른다.


언제나처럼, 니들이 참는 수 밖에 더 있겠냐...


 

 


- 외전 - 유럽과 한국 (1)

 

부제: 거꾸로 된 세상도 잘만 돌아간다

 

런던의 날씨는 여전히 우중충하다. 요즘 이곳은 불경기라 최고 명절인 크리스마스 시즌임에도 다른때 보다 훨씬 수수하게들 보낸다고 한다.



술먹고 즐기는 분위기인 울나라의 성탄절과는 달리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철저한 가족 명절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울나라의 설날이나 추석에 가깝다고 보면 되는데, 놀라운 사실은 크리스마스 당일날에는 지하철과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이 몽땅 운행을 중단한다는 점이다. 하긴 평소에도 일요일이면 일부 지하철역이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일요일이랍시고 성수역이나 신길역이 문닫는다고 생각해 보시라) 런던이고 보면 크리스마스의 이런 모습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보면, 버스와 지하철이 운행을 중단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차가 없는 사람은 밖을 나다니는게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물론 택시가 있지만 런던의 정규 택시 - 흔히 블랙캡 이라고 부르는 - 는 엄청나게 비싸고, 일종의 양성화된 자가용 영업인 미니캡 은 좀 싸지만 이것도 이런 날에는 시내 중심가에서 약간 외곽으로 나오는데 - 명동에서 신촌 정도 나오는 거리 - 최하 4~5만원은 줘야 되니 사용하기에 부담이 크다.

둘째, 차 없는 서민들이 나다닐 수 없다는 것은 크기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손님이 오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점원들이 가게로 출퇴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런던에도 넘쳐나는 스타벅스의 경우 일반 점원의 경우 시간당 대략 5파운드(9000원)정도를 받는데, 8시간 일해서 7만2천원에 불과한 돈을 벌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택시비를 내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사람없이 썰렁한 런던의 성탄절 밤 거리. 나무에 설치한 파란 불빛이 인상적이었다.


세째,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면, 당근 일반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나다녀봤자 밥 먹을 곳도 마땅찮고 놀 곳도 없다. 그러니 모두들 가족들과 함께 있거나 동네 친구들과 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거다.



결국 대중교통이 안움직이니 가게들이 다 닫고, 가게들이 다 닫으니 사람들이 돌아다닐 이유가 없고, 사람들이 안돌아다니니 굳이 대중교통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참으로 교묘한 순환논리 되겠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그전날 미리 모이기로 한 친척집에 못간 사람도 있고, 도저히 택시탈 형편이 안되는 사람 등등도 꽤 있을건데, 이런 넘들은 어떡하란 말이냐. 아무리 명절이래지만 대중교통은 시민의 발 인데,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는건가. 최소한 일부라도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그 자리를 지켜줘야 하는거 아니냐...?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영국 같은 서구 사회에 처음 나오는 한국 사람들은 여러가지 의미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중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것은 서비스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거다.

이런게 특히 두드러지는 건 은행과 애프터 서비스, 그리고 온라인 물건 구입등의 경우다. 울나라에서는 은행가서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으면 사람이 열라 많지 않은 경우에는 불과 몇 분내에 차례가 돌아온다.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경우에도 돈 만원하고 신분증, 도장만 있으면 5분이면 모든 일이 완료되고, 직불카드까지 받아 나온다. 현금 지급기에는 계좌 이체 버튼이 있어서 전국 어느 은행 계좌로나 몇초내에 많은 금액을 송금할 수 있다. 지급기에서 하루에 찾을 수 있는 금액도 수백만원에 달한다. 이게 울나라에서는 당연하다.



울나라가 이러니 선진국이라는 캐나다나 영국은 얼마나 대단하겠나... 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장이 살던 캐나다 밴쿠버에는 한국 외환은행의 지점이 있었다. 메트로타운이라는 거대한 몰 주변에 위치한 이곳은 대부분의 경우 한국의 은행들보다는 훨씬 한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가서 뭔가를 하려면 번호표를 뽑고 몇십분 앉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손님이 열명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일하는 행원도 손님도, 서두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일 다 보고 나가면 한시간 이상이 지나 있다. 울나라처럼 각 은행 지점들이 온동네 골목마다 있는 것도 아니니, 왔다 갔다 하는 시간까지 치면 족히 몇시간이 걸리는거다.



게다가 이 은행에서 하루에 찾을 수 있는 돈은 통장에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다 한들 캐나다 달러 2천불에 불과하다. 울나라 돈으로는 160만원 정도다. 이 이상의 돈을 창구에서 한번에 찾을려면 전날에 미리 준비해서 예약 을 해야 된다. 게다가, 현금카드로 찾을 수 있는 돈은 하루에 500불(40만원)에 불과하다. 카드로 다른 은행으로 이체를 하기는 커녕 같은 은행으로도 안된다. 상상이 되시는가...?

런던은 하루에 찾을 수 있는 돈의 액수는 밴쿠버보다 높지만, 서비스의 속도는 더 심각하다. 일단, 돈과 신분증을 갖고 간다고 해서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수 있는게 아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발부한 추천장이 있어야 된다. 그 추천장을 가지고 간다고 해서 바로 통장을 받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신청하고 2~3 주(...)가 지나면 계좌가 오픈되었다는 편지가 집으로 날라오고, 그 담부터 매달 한번씩 계좌명세서가 무슨 고지서처럼 날라오는데, 이 서비스를 받을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돈을 내야 한다. 통장은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야 선진국은 커녕 후진국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은행 이자율도 1프로가 넘으면 다행이다. 울나라 현행 이자율이 5프로 전후라고 생각해 본다면, IMF 전에는 물경 10프로가 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이건 다시 말해, 은행에 상당한 돈을 비축해 놓는다 한들 이자 수입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런던에서 계좌 만들기는 거짓말 좀 보태서 울나라에서 운전면허 따는 것만큼이나 번거롭다. 사진은 영국의 대표적 은행중 하나인 NatWest



애프터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울나라에서는 물건을 사면 1년이던 2년이던 애프터 서비스가 자동으로 붙는다. 하지만 이 나라들에서는 애프터 서비스를 따로 사야하는 경우가 많다. 즉, 100만원짜리 물건에 2년 애프터 서비스를 받을려면 3만원을 더 낸다던가... 머 이런 식이다. 그리고 물건이 고장났거나 케이블 티비가 잘 안나오거나 해서 사람을 한번 부르게 되면, 울나라에서는 내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에 방문드리겠다 고 하지만 여기서는 내일 오전 8시에서 오후 5시 사이에 가겠다 라고 하는게 다반사다. 결국 누군가가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더우기 이렇게 누가 한번 오면 기본적으로 4~5만원의 비용이 지출된다. 울나라에서는 아침에 자동차 밧데리가 방전되서 카센타에 전화하면 대게 5천원에서 만원이면 10분내로 와서 충전 다 해준다. 여기서는 그런 일로 사람 부르면
최소한 몇만원이 든다. 타이어를 갈아 끼울때도 울나라에서는 거의 타이어 값만 받는다. 여기서는 타이어 값에다가 그 작업을 수행한 시간을 계산해서 노임도 같이 청구한다. 이러다 보니 상황에 따라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다.



게다가, 유럽은 좀 낫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면 배달되는데 기본적으로 2주일이 소요되는게 예사다. 심지어는 6주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땅떵어리가 크다지만 좀 지나치다 싶다. 물론 무료 배달은 아주 드물고 대부분 배달료를 따로 내야된다. 반면에 울나라는 배달에 3일 이상이 소요되면 물건이 좋고 가격이 싸도 장사가 안된다고 한다.

글타. 내가 기껏 사서 쓰기로 맘먹은 물건이 배달되는데 2주, 심하게는 한달이 넘게 소요된다면 미쳤다고 온라인 주문을 한단 말인가. 좀 귀찮더라도 전철타고 차몰고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갔다오는게 백배 낫지 않은가...?



흠.

 







이런 등등의 상황을 보면, 울나라에서 살던 보통 사람이 미주나 유럽 나라에 와서는 도무지 울화통이 터져서 살수가 없다고 불평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통장 만드는데 2주나 걸리고, 물건 배달 받는데 4주, 애프터 서비스 하루 종일 기다리고, 은행 한번 가면 반나절, 출장 수리 대금은 부품비 빼고 5만원, 오일 갈고 플러그 가는 자동차 점검에 10만원, 돈 이백만원 찾을려고 은행에 미리 예약하고, 크리스마스날에는 전철도 못타는 세상. 국장의 경우 기타 줄높이 맞추고 넥 바로 잡는데 1주일 소요...(장비만 있으면 집에서 30분짜리 일거리) 모든 서비스가 이렇게 더디고 비싸서야, 이게 먼 선진국이냐? 이렇게 모든게 느리고 불편해서야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사나?

이런 감정이 영국 등의 유럽 국가에 와서 울나라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정서다. 맞다. 모든게 신속 명료 정확하던 한국의 서비스에 비해 이 나라들은 너무 굼뜨고 비싸고 엉성해 보인다. 이렇게 게을러가지고도 그 많은 부를 축척한 걸 보면 운이 좋아도 억세게 좋은 것 같다. 글타. 선진국 운운하는 건 모두 환상이었다. 사정상 잠시 미국에 살고 있는 국장의 혈육 말마따나, 울나라가 더 선진국 일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이야기한 예들의 대부분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곱씹어 보자. 그러다 보면 이 나라들에 와서 느끼는 이런 불편함들의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일관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과연 뭘까.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태도를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리 라고 이야기할때는 거의 대부분 버스나 전철의 손님, 은행의 손님, 애프터 서비스를 받는, 물건을 배달 받는, 자동차 점검을 받는 처지에 있는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곤 한다. 즉, 우리와 소비자 를 동일시 하는 거다.

물론 이건 결코 틀린 건 아니다. 우리가 각종 서비스의 소비자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진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소비자라는 말은 사실 상당히 유동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닐까.

분명 소비자의 실체는 존재한다. 그러나 소비자는 백인 이나 대한민국 국민 같은 일종의 고정된 존재는 아니다. 즉 백인이면서 동시에 흑인일 수는 없고,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동시에 미국 국민일 수 없는 것 - 현행법상 - 과는 달리, 소비자는 사실상 그들 대부분이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즉 자동차 수리 서비스의 소비자가 한편으로는 은행 서비스의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며, 실제로 대부분의 우리들이 어떤 형태로든 이런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이제 소비자의 입장을 잠시 접어두고 생산자로서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내가 자동차 수리 기술자라고 가정하자. 울나라에서는 일을 열라 빨리 처리해줘야 하고 - 큰 고장 아니면 대부분 당일 내지는 그 자리에서 -  부품비 외에 공임은 거의 못받는다. 그러나 이런 나라에 와서는 일 처리도 조금은 느리게 해도 되고, 일한 시간 만큼의 수고비도 정해진 액수대로 받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시건 걸리고 돈 더 드니 화딱지 나는 일이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만큼 돈과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된다. 돈과 시간의 여유란 결국 정신적, 육체적인 여유를 이야기한다. 한시간 일찍 퇴근해도 되고 가족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주말에는 가게 문을 닫고 쉴 수도 있는 그런 여유다.

그러나 자동차 기술자인 나만이 그런 혜택을 누리는 건 물론 아니다. 나도 역시 은행에도 가야하고 애프터 서비스도 받아야 된다. 그럴때 나는 내가 얻은 시간과 돈의 여유를 소비자의 입장에서 다른 생산자들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은행에 가서 한두 시간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고, 애프터 서비스가 온다면 종일 집에 있기도 함으로서 말이다. 어차피 은행가는 거나 애프터 서비스 받는 건 매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두달에 한번 있는 일이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매일 매순간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서두르고 닥달한다면 그 사람들은 삶 전체가 고달프고 바빠진다.



자동차를 고치러 내게 오는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가끔 한번 겪는 일일 뿐이지만 나는 매일 그 일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아마도 은행원이거나 흔히 오후 예닐곱시면 문을 닫는 작은 수퍼마켓 주인이거나 버스 운전사거나 애프터 서비스 요원 등등일 터이다.

그 사람들이 차 수리를 며칠씩 기다려주고 비싼 공임을 내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자신들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일을 할때도, 손님이 오면
오자마자 빠른 일처리에 너무 시달리지 않고, 일한 시간만큼 충분한 돈을 받음으로서 어느정도의 삶의 여유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이건 한 두사람의 의지만으로는 달성될 수가 없는 일이기에, 서로간에 기다려 주고 비싼 비용을 지불해 주는 것이다. 설사 그걸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글타. 삶의 전반에서 여유를 얻어낼 수 있다면 어쩌다 한번 은행이나 어딜 가서 한두시간 기다리는게 뭐가 그리 큰일일까.


 




이른바 선진국 의  조건은 상당히 많다. 정치의 민주화, 공직자 및 기업의 청렴도, 문화 및 교육 수준, 경제적 부와 안정 및 공정한 분배, 개방성과 보편성의 추구, 소수자의 권익 보장 등등...

그러나 총체적으로 우리가 결국 추구하려는 것은, 이런 것들이 뭉뚱그려져서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삶의 질 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최근 들어 울나라에서도 자주 이야기되는 주제가 바로 이넘이다.

하지만 과연 뭐가 삶의 질이냐 라고 이야기할때는 울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주춤한다. 왜냐면, 우린 여지껏 그런걸 별로 향유하고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7,80년대의 개발논리에 근거한 생각들을 한다. 더 넓은 집과 좋은 차, 사회나 직장에서의 높은 지위, 많은 돈,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온 자녀, 비싼 명품, 룸싸롱에서의 유희 등등... 물론 21세기에 들어선 작금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그런게 중요하지 않다고도 하지만 아직 여전히 그렇게 살고들 있고, 그래서 그런 것들 대신 우리가 추구해야 할게 뭐냐는 질문에는 말이 막혀 버린다.



물론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는 위와 같은 것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칸방에서 일곱 가족이 모여살고, 먹을 것이 항상 모자라고 자녀를 학교에도 보내기 어려운 상태에서라면, 친구와 술한잔 먹을 돈도 없는 입장이라면 성자가 아닌 한 행복을 추구하는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각종 정책이 존재하는 거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런 것들은 행복 추구의 전제이자 소유의 객관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이것의 달성이 인간으로서의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 모두가 떼부자가 되서 벤츠를 타고 다니고 6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루이 비똥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은 설사 그 자체가 행복을 준다 한들 실현 불가능하다.

그럼 뭐냐?



국장이 생각하기에는, 어느정도의 기본적인 물질 여건이 갖춰지고 난 담에는 행복 추구의 바탕은 다름아닌 여유다. 직장을 다니거나 다녀 본 사람들이라면 - 울나라에서는 고등학교도의 실정도 마찬가지 - 알겠지만 하루 한시간 일찍 집에 가는 것 같은 별것 아닌 작은 일들이 주는 삶의 여유는 상당히 크다. 토요일날 오전 네시간 근무를 위해 출퇴근 두세시간을 허비해가며 회사에서 잡답이나 하다 돌아가는 것과, 그 네시간을 빼먹더라도 일주일에 이틀을 집에서 쉬어주는 것은 삶의 정신적 여유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단지 하루를 더 논다는 측면이 아니라, - 역시 직장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 이틀을 연이어 쉬어야 최소한 그 중 하루는 업무의 긴장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진정한 휴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하루도 업무의 긴장을 풀수 없다면 그 인간은 삶을 사는게 아니라 일을 사는거다.

그러나 이런 삶의 여유는 단지 토요일에 노는 식의 기계적인 방법만으로는 달성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정책들은 사회 전체의 여유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키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 여유가 사회 전체에서 공유되는 거다. 무슨 이야기냐구? 내가 시간적, 금전적인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걸 허용해야 한다는 거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해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를 한 템포 늦춰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늦춰진 템포를 일이 돌아가는 속도의 기준으로 삼고 거기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 줘야 한다는거다.

일의 속도도 느려지고 돈도 더 내야 한다면 결국 손해 보는 것 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게 사회 전체에서 공유된다면 손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니들도 결국은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 씩 느리게 움직이면서 기다려주고,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 주는 사회에서는 만약 손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게 가능한 사람은 원래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일 테니 세상이 이렇게 변한다고 해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런 이들을 통해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게 된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의 답답함과 느림은 바로 이런데 대한 암묵적 합의의 결과인 것이다. 울나라 사람들은 평생 바쁘게 사는데 익숙하고 그걸 미덕으로까지 여기기 때문에, 외국에 이민을 와서도 그 느림을 참아내기가 어려운 거다. 그 느림이 결국 자기의 느림의 허용으로도 이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잘 운용하기만 하면 자신의 삶의 여유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까지 생각이 금방 미치지 못하는 거다.

이민자들이 겪는 진짜 컬쳐 쇼크는 길거리에서 남녀가 키스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이게  컬쳐 쇼크라는 사실 자체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나라들은 허울만 좋았지 실은 그저 게을러 터지고 느리고 비싸기만 한 곳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칫 문화와 사회 시스템의 차이가 아닌 그저 단점으로만 비치기 쉽다. 그리고는 선진국은 없다 는 말을 하기에 이르고 만다.

이해가 가시는가.

 










얼마전에도 출현한 바 있는 국장의 고양이 가지가지. 처음 줏어 왔을때 굶어 죽어가던 데 비해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지만 아직 기력이 좀 부족하고 이빨이 안좋은 상태다. 특정 기사와 관련없음.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국장이 울나라를 비하하고 이른바 선진국들을 칭송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오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은행 전산 시스템은 물론이고 지하철 등 공공 교통 시스템과 질서 의식 등 아주 많은 면에 걸쳐서 울나라에도 이른바 선진국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능가하는 면이 많다. 그 유명한 런던이나 뉴욕의 지하철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덜컹거리는지는 타본 사람은 다 안다. 런던 중심가의 교통 체증은 서울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다.

런던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무단횡단을 하고, 차 유리를 부수고 오디오를 뜯어가거나 심지어는 먹다 남은 햄버거 마저 훔쳐가는 좀도둑도 수두룩하다. 강력사건은 적은 편이지만, 국장이 다니는 기타 학교 클래스메이트 열명 중 최소한 세 명이 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아끼는 기타를 도둑맞은 상황을 보면 좀도둑들이 얼마나 성행하는지 알만하실 거다.



그밖에도, 이 지면에서 지금 일일히 열거하기는 힘들지만 이들 나라에는 우리가 밖에서는 캐치하기 힘든 많은 내부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을 우리가 우러러보고 따라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데 이유가 없는게 아니라는거다. 그리고 그중 몇몇 특징은, 과거와는 달리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룬 울나라에서도 이제는 고려할 시기가 되지 않았냐는 점이다.



열분들도 설날이나 각종 명절 때 한번쯤 저 운전사 아저씨는 가족도 없나...? 하는 생각을 해 봤을 거다. 우리는 모다 때때옷 입고 시골로 큰집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운전사나 기타 등등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종일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첨엔 납득이 안가면서도, 커가면서 먹고 살려면 그래야 되는거지 뭐 하고 넘어가고, 나중에는 그저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국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외국을 다니면서, 우리가 한국에서 보고 믿고 추구하던 모든 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명절때 고생고생해서 고속버스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를 보면서 그래도 사람들이 고향엘 가야 하니 저분들이라도 희생해가면서 일을 해줘야... 명절이라고 버스도 안다닐 수는 없잖아 라고 믿고 그걸 당연시하는 반면에, 세상 어딘가에는 그 발상이 뒤집혀 있는 곳도 있다는 거다.



모든 서비스는 빠르고 신속하고 싼 것만이 최선이다 라는, 너무도 옳게 보이는 우리 관점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도 있고, 그 결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시간과 부의 분배 - 결과적으로 삶의 질로 승화될 가능성이 높은 - 의 가능성이 생겨나는, 그리고 그걸 생활의 속도와 경쟁의 치열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곳도 있다는 거다.



울나라 바깥의 세상을 알고, 그들은 왜 그렇게 사는지, 그리고 우리가 거기서 얻을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 이런게 바로 진정한 세계화, 혹은 선진화일 것이다. 글고 본지의 유럽총국이 존재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잖냐?



그럼 담시간에 뵙자.



 


 
딴지 유럽총국장
파토(pato@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