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이제는 반전(反戰)이다 2002.12.23.월요일
이장면은 항상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 시책에 따라 세워진 이순신 동상이 저 높은 곳에서 칼을 차고 굽어보는 아래에 수많은 촛불들이 모여있다. 이순신과 촛불, 두 개는 뜻밖에 잘 어울리기도, 전혀 어울리지 않기도 하다.
오늘도 촛불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이 추운 겨울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로 들떠야 할 이 시점에, 매일밤 모여드는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매주 토요일 수천명의 시위가 벌어지고, 올 12월 31일 밤은 또다시 십만명 이상이 모여드는 큰 집회가 예고되고 있다. 비록 추모행사이긴 하나 그 촛불시위는 어둡고 슬픈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부모, 초등학생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격렬한 반미 투쟁의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곳곳에 보이는 수많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 시위를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었다. 촛불을 들고 나란히 선 연인들은 따뜻한 이벤트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동안 반미는 과격하고 위험하고 불안한 것이라고 색칠하기에 바빴던 주류 언론들은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를 애써 외면하다가, 이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다. 기껏해야 젊은 층의 반미 정서라고 평가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미만은 아니고 정서인 것만은 더더욱 아니다.
촛불시위는 여러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폄하하는 사람들이 말하듯 단순히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폭발의 측면도 없지 않다. 하필이면 죽은 학생들이 여학생들이라 "오빠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일종의 보수적, 가부장적 보호주의 감성을 자극한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지금까지 미군철수를 외치며 투쟁해 온 운동세력과 미군철수에 강력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 사이의 균열도 있고, 깃발 내려 논쟁에서 보듯이 일종의 정치적 해석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국가적 행사 때문에 증폭된 측면도 분명히 있고,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민주노동당이건 혹은 기타 정파건 간에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다. 그런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우발적이고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시의 사과나 소파 개정 요구는 단순히 법조항 몇개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법정에서 심판해서 잡아 쳐넣자는 화풀이가 아니라, 그 바탕엔 평등한 세계 질서를 꿈꾸는 목소리가 깔려 있다. 그것은 참아야 하고 자제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꿈이며 이상이다.
그런데... 큰 문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국제 언론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CNN이나 AP 기사, 혹은 다른 언론보도를 보면 이 사건의 전후맥락은 생략한 채 단순히 차에 치어 죽은 사고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 과격 반미 시위대가 모인 듯이 쓰거나, 기껏해야 월드컵 성공을 통해 얻은 국가적 자신감의 발로인 것으로만 쓰기도 한다. 심지어는 날씨가 더 추워지면 이 시위는 사그라질 거라고 비아냥대는 기사가 눈에 띄기도 한다. 이런 기사들을 보는 미국인들은 아랍에서만 난리인줄 알았더니 한국애들도 지랄이네 하고 생각할 것이고, 이 시위 참가자들을 새끼 빈라덴 정도로 여길 것이다. 똑같은 반미라도 비행기 꼬나박는 반미와 우리의 촛불시위에서 보이는 평화적 흐름의 반미와는 천양지차가 있는데 말이다. 그거야 미국 언론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의 소위 진보적 언론이라는 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좌파 진보주의의 성격이 강한 영국 <가디언>지의 지난 12월 16일 기사를 보자.
기사는 이 시위가 평화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라 단언한다. 행간에서 묻어나오는 것은, 이번 시위가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자존심 싸움, 쉽게 말해 갑빠 세우기이라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나찌 시대를 경험한 유럽에서 민족주의라 하면 진보가 아니라 오히려 퇴행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해석하기 따라서는 한국의 촛불시위는 진보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보수반동적 움직임으로 평가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 교과서에서 극우의 부활을 우려하듯이 그런 똑같은 시선으로 말이다. 지난 50년동안 잘못되었던 것을 고치자는 평등주의적 몸부림이 그렇게 취급되어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미국 언론에서 개중 비교적 합리적인 축에 드는 뉴욕타임즈도 비슷한 분위기의 기사를 싣고 있다. (기사보기) 물론 시위에 참가하는 일차적이고 표면적인 이유는 구겨진 한국의 자존심 때문이다. 우리가 새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당당해졌다는 것도 맞다. 그러나 그렇게만 성격규정을 했을 때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사실 자체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단순히 한국의 갑빠를 세우기 위함이었다면, 단순히 양코쟁이에 짓밟힌 위대한 한국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함이라면, 한국과 직접 상관도 없는 부시의 대 아프간 전쟁, 대 이라크 전쟁에 우리가 왜 반대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군 장갑차 사건을 규탄할 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요구하고, 나아가서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나 힘의 외교를 반대한다. 비(非) 아랍권 국가들 중에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곳은 전세계에 오직 한국과 아르헨티나 두 곳 뿐이라는 외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질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북한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말이다. 둘째, 이것은 전략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가령 미국 내에서 최근에 뜨는 <Not In Our Name> 약칭 NION 이라는 단체가 있다(웹사이트). 911 테러 이후 빈 라덴을 응징한다며 아프간을 침공한 부시의 정당성 없는 전쟁에 항의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우리는 이들과 거의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지만, 반미가 전면에 내세워질 경우 미국 내의 이런 양심적인 세력과 연대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똑같이 부시의 정당성 없는 전쟁을 규탄하면서도 같은 편이 되지 못한다면 애석한 일 아니겠는가. 특히 미국 언론들의 교묘한 기사로 그럴 위험성은 더 높다. 실제로 한인 교포 유학생들이 촛불시위를 계획했던 LA의 경우, 장소를 빌려주기로 했던 로욜라 법대에서 반미시위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장소 대여를 취소해 버리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세계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다면 소파의 불평등함이나 미국의 강압적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 힘이 그만큼 우리에게 강해지지만, 현재는 이런 통로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시위가 즉흥적이며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이라는 냄새를 탈취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따라서 본지는 이 시위를 주도하는 범대위 및 네테즌 제위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투쟁을 주도해 온 범대위의 노력에 아낌없는 경의를 표하며, 그러나 마침내 이처럼 큰 흐름으로 떠오른 이 시위의 패러다임을 발전적으로 재고해 보자는 것이다. 소파개정 및 미국의 사과를 주장하는 그 바탕에는 "반미"가 아닌 "반전"이 깔려 있어야 한다. 이것은 미군 철수에 동의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이슈이며, 우리가 국제 무대에 주도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이슈이기도 하다. 어린 여학생들이 탱크에 깔려죽었다는 이 사건은 대단한 상징성을 가질 수도 있다. 우리가 세계의 시민세력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전쟁반대"라는 보편적인 정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반미와 반전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Yankee Go Home"이라는 문구와 "Stop the War"라는 문구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찾아오자는 촛불시위의 취지로 볼 때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천지차이이다. "No More Mi-sun, Hyo-soon in Iraq" 이미 보도가 되었지만 런던이나 파리 같은 도시에도 수만명, 수십만명이 미국의 전쟁 추구를 규탄하며 모여든다. 우리는 그들을 이용해야 하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주류 기득권은 미국의 떡고물을 받아먹으며 안방에서 목에 힘주는 존재들이었다. 외국 자본으로 발전한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언론, 심지어 학계까지도 미국이 설정한 패러다임과 아젠다에 줄줄 끌려갔다. 우리는 국제무대에 주도적으로 등장한 적이 거의 없었다. 김대중 집권 이후 약간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주류가 바뀌고 있다면 이 새로운 세대에게 첫번째 주어진 임무는 과거의 주류들이 못한 국제 진출을 해 내는 것이다.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보편적 세계 정서에 호응해야 하며, 발언의 범위도 꾸준히 넓혀야 한다. 가령 예를 들어, 이번 미군의 무죄판결은 크게 보면 국제형사재판소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미국은 새로이 창립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미군은 다른 나라 재판을 받지 않겠다"고 버팅겨서 세계적인 비난의 화살이 된 바 있다(관련 지난 딴지 기사). 소파 개정같은 우리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국제적인 이슈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 해외에 있는 한인 단체들, 각 사이트 및 대학, 특히나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중요하다. 미국의 딱가리가 되기 위해 영어 배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 장기적으로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 독자 여러분들도 느끼듯이 지금 이런 이야기들은 매우 추상적이다. 사실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오랜 반미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반전 운동은 거의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월드컵 때 스페인전 심판 판정 논란에 대해 영어로 번역한 기사를 뿌렸듯이, 본지가 잘 할 수 있고 가능한 한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니 각 정파와 사회세력들도, 네티즌 여러분들도, 한번쯤 같이 생각해 달라는 요청을 이 지면을 통해 드리는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당시 스페인 넘들과 세계 각지에서 본지 데스크로 이멜이 쇄도했다. 물론 대부분 당신들 주장이 틀렸소 하는 내용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은 신선했다)
아무쪼록 이번주 토요일의 촛불집회에서는, 12월 31일의 대규모 집회에서는, Anti-US 못지 않게 Anti-War 피켓을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성조기를 찢는 것 못지 않게, 이라크 문제에 대한 발언도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발언권이라는 것은 참여할 때만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힘없고 소외된 저항 그룹이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한국의 새로운 주류는 반미라는 수세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서 이제 "반전"을 생각해 볼 때다. 전세계를 촛불로 뒤덮는 꿈을 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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