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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좃선일보를 줍다

2002.12.23.월요일
딴지 정치부

선거폭풍도 걷히고 이제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코딱지를 후비며 노무현 후보 다큐멘타리를 보고 있자니, 내 인생 네 번째 주권행사였던 지난 19일 대선 새벽의 기억이 또다시 슬그머니 떠오른다.


아아, 누가 선거를 흥겨운 축제라 노래했더뇨?


나의 선거는 춥고, 짜증나고, 잔인하고, 개발에 땀나듯 뛰어다니는 것으로 시작했나니, 이제 시간도 어느 정도 흘렀고 하니 이제 담담한 심정으로 그날의 기억을 회고하려 한다.


그러니까 선거 전날밤, 나는 홍대앞 딴지빠에서 술을 마셨다.


본기자가 당수로 있는 <결혼혐오당>의 2차 전당대회였는데, 모임의 성격자체가 마약이 아니면 술을 달라고 부르짖는 사회안적응자들의 규합이다보니, 당근 30분 마다 전사자가 생길 정도로 분위기는 대단히 쥐랄 스러웠다.


포탄의 한가운데서도, 내일의 신성한 주권행사를 위해, 의관을 정제하고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조기 도바리를 꿈꾸며 나 대신 남 술먹이기의 비술을 펼치기 어언 두시간 경과, 10시 30분 무렵 대회에 참가한 딴지 시사만화가 <The show>군으로부터 듣지 말아야 할 뉘우스를 고만 듣게 된다.


대선을 불과 두시간 앞두고 벌어진 정몽준의 어처구니 없는 파토소식.


순간 자유연애를 부르짖던 술판의 아젠다는 졸지에 정몽준 씹새로 돌아서 버리고, 그토록 오랜시간 술 앞에서 절제의 컨트롤을 보이던 본 기자도 헤까닥 이성을 잃어 버린다.


이부분에서, 나중에 뉘우스를 들어보니, 이땅의 열혈청년들이 그 소식을 듣고 이너넷에서 대선필승전략을 논의했다 하더라만, 본 기자 그러지 못하고 우리끼리 씨바 거렸던 점에 대해서 살짝 미안해질려 구런다.


암튼..


다섯시 반까지 술을 퍼마시고, 스물 몇 명의 일행들은 곧바로 자기네 집 근처의 투표소로 빠이빠이 했으며, 본 기자 역시 새롭게 정신을 수습하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집 아파트에 다달아, 몸은 억수로 피곤했지만, 새벽잠 없는 노인네들이 옹기종기 모여드는 새벽 여섯시반 투표소로 당당히 입장하니, 이는 네 번의 대선 투표중 기록에 남을 조조투표였으며, 혹시 술기운에 1번을 찍을까봐 투표천막안에서 무려 5분을 기합했다는 점으로, 역시 네 번의 대선투표중 가장 집중력 높은 투표행위였음에 틀림없겠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정몽준의 야바위 짓으로 불안한 마음이야 누를길 없었지만, 그래도 전날 야심한 밤에 일어난 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랴 스스로에게 위로를 보내며, 두다리 쭉 뻗고 잠자러 가기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그런데..


우리 동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터운 외투를 걸친 한 아주머니가 후다닥 엘리베에터 안에서 뛰어 내리는 순간, 나는 웬지 모를 스산함속에서 이후 펼쳐질내 불우한 팔자를 예감해야 했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보고야 만 것이다.


승강기 안쪽 입구 난간에 척하니 걸쳐져 있는 20여부의 신문. 그리고 신문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헤드카피가 눈에 확 들어오게끔 놓여진 신문의 위치와, 바로 그 헤드카피.


 


승강기 문이 닫히기도 전, 거의 10초만에 나는 허둥대던 아주머니와, 하필 투표일 당일날 새벽에 뭉탱이로 방치된 신문과 그리고 그것이 좃선일보였다는 것에 대하여 한 개의 단어를 떠올리고 말았다. 자쥐털..그러타. 음모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나는 신문 뭉텡이를 들고, 아주머니를 부르며 뒤따라갔지만 이미 님께서는 축지법을 쓰시는지 새벽 어둠속으로 사라쥔 뒤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옆동 엘리베이터로 가보니..역시나..우리 동과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포즈로, 신문 한 뭉텡이가 놓여져 있었다. 헤드카피를 찬란하게 발산하며..


나는 뛰었다. 산이 있어 거기 오르는 사람처럼 엘리베이터가 있어 나는 뛰었다.


한동에 10개의 엘리베이터, 20동까지 있으니까 200개의 엘리베이터, 200곱하기 20은 2000부... 신문줍기소년의 머리는 뛰면서도 빠르게 음직였다.


개발에 땀이 나도록, 이 신성한 새벽에 나는 미친넘 널뛰듯 뛰어다니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신문을 수거하고, 다시 옆동으로 뛰어가고, 다시 신문을 줏어오고, 술은 아직 깨지 않아 다리는 후달달 거렸고 그런 나를 보며 선거하러 가는노인들이 신기하게 쳐다 보듯 했지만 나는 뛰었다. 아베베처럼, 황영조처럼 그리고 봉달이처럼.


그러나 아직 절반도 수거하지 못한채 나는 백기를 들어야 했다.


왜? 하두 뛰었더니 오바이트가 나와서.


비틀거리며 투표장으로 뛰어가 양손에 들고 있던 좃선을 내동뎅이치니, 이 화풀이는 내 새벽잠을 방해한 좃선에 대한 분노요, 이제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확인에 대한 화남이요, 뭔가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오버질에의 실천이었다.


그리고 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말했다. 아주 비장하게..


"여기 쓰레기좀 치워주세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불법선거행위임이 분명한 쓰레기가 널려있음다. 찰칵"


집에 들어와 찬찬히 좃선을 읽어보니 사설은 더 가관이다. 국민들은 노후보가 곤란하다고 판단한 정몽준의 뜻을 슬기롭게 읽어내라고 근엄하게 마무리 하는 좃선의 사설. 기냥 이회창 찍어, 노무현 찍으면 바보야 라고 말하면 될 것을 애둘려 말하느라 고생한 폼이 역력하다.


씨바, 밤새 놀았으니 잠이라도 푹 자야 간장위장혈액순환과 고환수축에 지장이 없는 것이고, 나도 텔레비젼에서 말하듯 축제의 선거를 즐길 권한이 있는 유권자이거늘 왜 나는 선거날 새벽부터 그 쌩고생을 했더란 말이더냐.


결과적으론, 좃선의 눈물겨운 발악질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노후보 당선으로 끝이났지만, 무고한 한 시민이 겪은 육체적 후달림의 보상은 과연 누구에게 보상받는단 말이던고? 망해가는 좃선앞에서..졸라!!



딴지관광청장
뚜벅이(ddubuk@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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