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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수능 빵점 받기

2002.12.6.금요일
딴지 인재발굴단

 

           

 

 

수능.
지지리도 추웠던 그 날.

 

후배들의 으쌰으쌰가 기억이 남고, 1교시 쉬는 시간에 창밖을 보며 복도에서 피웠던 담배 한 대의 알싸함이 생각난다. 시험을 망쳤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숨죽여 울던 안경 낀 한 학생이 기억나고, 시험종료와 함께 외쳤던 가슴저린 외침-신병훈련 끝나고 울먹이며 외치던 그 함성과 비슷한-이 떠오른다. 하여간 수능 1세대로서 온갖 실험을 강요당한 모르모트였던 본 기자로서는 그리 반갑지 않은 단어임은 분명하다.

 

그 후로 벌써 8년.

 

매년 그 맘때가 되면, 씨바 올해는 좀 안 추워야 할텐데..정도 잠깐 생각해주고는, 그저 스쳐가는 게 전부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성적이 발표되었다.

 

몇 년전부터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 맘때의 언론 보도는 늘상 엇비슷하다. 만점자가 나왔네 안나왔네, 어느 대학 수석은 누구누구인데..류의 염장지르기 일색이다. 그 와중에 들려온 기묘한 소식이 하나 있었으니...




 
 


올 수능 만점자 없고, 0점은 17명

 

[사회] 2002년 12월 02일 (월) 18:18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만점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채점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와는 달리 모든 영역에 걸쳐 1명에서 3626명까지 만점자가 나왔으나 전체 영역의 만점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능이 쉽게 출제됐던 2001학년도 수능에서는 66명이 무더기로 만점을 받았다.

 

언어영역(120점 만점)에서 지난해에는 만점자가 한 명도 없었으나 올해는 인문계 여학생 1명이 만점을 받았다. 수리영역 만점자는 1704명으로 지난해보다 360명이 늘었다. 사회탐구는 인문계에서 만점자가 67명이 나와 지난해 128명의 절반 수준을 나타냈으며, 자연계도 지난해 450명에서 67명으로 크게 줄어 올 수능 성적의 하락을 주도한 사탐의 난이도가 높았음을 입증했다. 과학탐구는 인문계가 지난해 45명에서 1521명으로, 자연계는 75명에서 1962명으로 크게 늘었고 예체능계는 12명이 만점을 받았다. 매년 만점자가 많은 외국어(영어)는 모두 3626명이 만점을 받아 지난해보다 425명이 늘었다. 또 올해 제2외국어를 제외한 5개 영역 0점자는 17명.

 

14명은 모두 백지답안지를 제출했고 3명은 답안 표기를 했으나 신기하게 모두 오답을골라 0점을 받았다.  < 동아일보 >
 

 

였다.

 

뭐, 그냥 흔한 가십거리로 넘겨 버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본지, 늘 그랬듯이, 행간의 깊은 의미를 꿰뚫어 버렸으니...

 

그렇다.
우리는 진정한 빵점짜리, 그들 3명에 주목한다.

 

여기서 잠시, 수능 본 지 오래 된 독자넘들을 위해 잠깐 올해 수능의 형태를 알려준다.

 

올해의 수능시험은 기본적으로 총 220문항(총 배점은 400점)이다. 언어(60문항), 수리(30문항),사회탐구/과학탐구(80문항), 외국어(50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선택사항으로 희망자에 한해 제2외국어(30문항, 40점)를 볼 수도 있다(오늘 분석에서 필수사항이 아닌 제2외국어는 제외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17명의 0점자 중, 3명은 답안 표기를 했으나 신기하게 모두 오답을 골라 0점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위 기사에선 나름대로 친절하게 작은 따옴표까지 쳐주며 신기하게라고 언급했지만, 본 기자는 여기에 심각한 이의를 제기한다. 신기하게가 틀렸다기 보다는 그 강도에 있어서 매우 약하며, 또한 지나친 단순화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함 디벼보고자 하는 것이고...

 

 

 

 

먼저 수능에서 0점을 받을 수 있는 산술적 확률을 함 살펴보자.

 

시험문제라는 것이 사실 확률로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현실성과 엄밀성을 고려하면, 사실 각각 다른 기준의 변수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알기 쉽게 심정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확률적 고찰을 전제로 하겠다.)

 

왜냐? 산술적으로 5지선다형에서 각 보기는 20%의 확률(5개 중 하나니까)을 갖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 문제의 정답을 아는 경우에는 20%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문제의 정답을 아는 경우에는 산술적 확률의 잣대는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0점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당연, 백지 답안의 경우는 무조건 0점이므로 오늘 분석에서 아예 제외한다). 정답을 아는 경우가 결과적으로 zero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답을 하나도 모른다고 전제하면(왜냐? 결과적으로 0점이었으니까), 각 문항에서 틀릴 확률은 당연 80%(0.8) 되겠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220문제를 모두 틀릴 확률은…?

 

그렇다.
0.8의 220제곱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0.8 x 0.8 x ........... x 0.8 (220번째) =
  0.000000000000000000004784065..... (소수점 뒤로 0이 21개)

 

되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냐?
산술적으로 보았을 때 100조를 훌쩍 넘어, 100경 명 중에 한 명 나오기도 훨씬 힘든 확률이라는 결론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3명은 무엇인가.... 그들은 인간의 경지를 뛰어 넘은 신의 양자쯤 된단 말인가.... (혹시 DJ의 양자였나?)

 

수능을 약 60만명이 보았다고 했을 때, 그들은 100조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편의상 6문항의 주관식도 객관식과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계산했다. 약간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이렇게 해도 대세엔 별 지장없는 점은 이해하시라...)

 

 

 

 

결국, 답을 전혀 몰라서 다 찍었는데 0점이 나올 경우는 산술적으로 거어어어어어의 불가능인 것이다. 즉, 우리가 암 생각없이 넘겨 짚은 식으로 만약 이것이 우연이라면, 단순히 신기하게 정도로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 믿기 힘들겠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그들은 답을 알면서 일부러 틀렸다

 

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일자무식이라 해도, 1번만 쭈욱 찍으면, 전체 문항의 최소 10%에서 25% 가까이 맞을 수 있다. 답 사이로 막가서 0점이 나올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결론은 앞서 디벼줬고.

 

못 믿겠다고?  

 

니가 직접 한 번 해봐라. 막 찍어서, 220개 문항을 0점 받는 건 졸라 어려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만약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아는 경우엔, 그 사람은 분명 0점도 받을 수 있다. 최대한 많은 정답을 알고 있을수록, 만약 의도한다면 0점을 맞을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친절하게 예를 들어주마.

 

A는 0점 맞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자.

 

 A가 220문제 정답을 다 안다. 당연 0점 맞을 수 있다. 0점 확률 100%

 

 A가 219문제 정답을 안다. 나머지 하나는 찍어야 한다. 정답을 모르는 한 문제를 찍었을 때, 산술적으로 틀릴 확률은 80%( 5개 중 4개니까). 즉 219문제는 답을 아니까 지가 틀리면 되고, 모르는 문제 하나는 찍는 상황. 따라서 0점 확률 80%.

 

 A가 218문제 정답을 안다. 위와 같은 식으로 0.8 * 0.8 = 0.64 즉, 64%

 

 A가 210문제 정답을 안다. 0.8의 10제곱 = 0.107 즉, 약 10%

 

 A가 200문제 정답을 안다. a 0.8의 20제곱 = 0.01152.... 즉, 약 1%

 

 

 

예를 들어 수능 210개 맞힐 정도의 수험생이 맘 먹고 0점에 도전한다면 그 성공확률은 약 10%정도다. 200개 정도라면, 그 확률은 1%까지 떨어진다.  

 

바꿔말하면, 수능 200개 맞힐 수준의 최상위권 학생 300명이 동시에, 씨바 난 이번에 0점 함 맞아볼래 맘 먹고, 적어도 자신이 아는 문제는 일부러 다 틀리고, 나머지는 찍은 경우에 산술적으로 그 중 3명 정도의 0점자가 나올 수 있다는 야그 되겠다.

 

 

 

 

그렇다. 우리는 무심코 만점자라 하면 감탄과 찬사를 보내고, 질시와 경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빵점짜리라 하면 암 생각 없이, 지지리도 못난 넘이라는 선입견을 갖는다.

 

허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첫째. 수능에서 빵점짜리가 되기란 하늘의 별을 따서 사단장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둘째. 그 어려운 빵점짜리가 되기 가장 쉬운 사람은 바로 만점자이다.

 

즉, 맘 한 번 바꿔먹으면, 고득점일수록 빵점짜리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인물인 것이다.

 

만점짜리 찾아서 이너뷰 올리려고 혈안인 언론들아. 이젠 좀 발상 전환해서리, 빵점짜리를 찾아 그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아마도 그 3명은,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싶은 그런 기인일지도 모른다. 아님 박제되어 버린 이 땅의 우등생들을 고고히 비웃고 있는 군계일학일 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상.

 

 

정말로 그들을 함 만나보고 싶은
딴지정치부 윤호(uknow@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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