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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내현 추천0 비추천0




[이너뷰] 신해철을 만나다 -제 2편- (1)

2002.12.23.월요일

딴따라딴지
 






80말 90초에 롹씬을 풍미했던 미국의 헤비메탈 뺀드,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노래 중에 [Get in the ring]이라는 곡이 있다. 겟 인 더 링, 링으로 올라 와라!, 쉽게 말해서 한판 뜨자는 뜻의 타이틀인데,


저 곡의 가사를 썼던 뺀드의 리더 액슬 로즈(Axl Rose)가 시비를 걸었던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과 자신의 뺀드를 씹었던 언론매체들이었다. 그리고 노랫말을 보면 특정 언론 매체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기자/필자의 이름까지 쌍욕을 섞어가며 하나하나 호명하는 부분도 나온다.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의 이너뷰를 위해 섭외를 하고, 음악과 관련된 질문들을 준비하던 본 기자의 귓가에 맴돌았던 것은 바로 저 곡의 인트로를 장식하는 슬래쉬(Slash)의 블루지 삘 만땅 기타 프레이즈였다. 서로 일방적으로 씹고(본지의 지면을 통해), 받아친(신해철의 방송을 통해) 적은 있었지만 인터랙티브하게 주거니받거니하기 위해 마주 앉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 - 바야흐로 링에 오르는 것이다.


정치와 관련된 내용으로 진행되었던 지난 이너뷰와 달리 쌍방간의 이견이 존재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시작했던 음악 관련 이너뷰. 과연 피튀기는 싸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서로간 오해 해소의 한마당이 될 것인가?....


이번에도 길다. 숨 한번 고르고 따라 오시라들.
 






 



지난 정치편 이너뷰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음악편 이너뷰는, 최근 신해철의 활동 재개 움직임과 관련된 가벼운 질문들로 출발했다.
 


카 : 예전(90년대 중반)의 인터뷰를 보면 서태지와 자신을 비교해서 ‘서태지의 음악이 낙오자 정서를 담고 있다면 나는 비겁자 정서에 가깝다’라고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겁자 정서는 아까 밝히신 과거의 기억에서 근거한다고 볼 수 있을텐데, 그 극복의 계기가 된 이번 (노무현 후보 지지) 활동 후에, 음악적인 태도에 있어서도 다소 변화가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신 : 그렇진 않을 것 같애요(웃음). 글쎄요. 이번 경험이 자극이 되서 뭔가 좀 바뀔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다음 앨범에서는 대단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내용의 컨셉트 앨범을 만들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었어요.


카 : 넥스트로?
신 : 네. 그런데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기획을 바꿔버릴까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성질이 좀 못되서 "앗, 작년 겨울에 그런거 하더니 이제 정치적인 노래를 하는군..."하는 소리 나올까봐 짜증이 나서, 아예 완전히 비정치적인 메시지로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카 : 예전 넥스트 분위기의 컨셉트 앨범으로 간다면 정치적인 내용이 아니고 다소 환타지적인 내용도 가능할 것 같은데
신 : 환타지도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부분인데, 환타지는 현실에 대한 은유같은 거를 포함하고 있을 때 더 괜찮은 거 같거든요. 톨킨(<반지의 제왕>)의 환타지를 보면 그 사람이 세계대전에서 받은 영감 같은 것들이 많이 반영되잖아요. 그래서 현실의 은유를 가지고 있는 그런 환타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구요.


최근에는 젤라즈니(Roger J.Zelazny)를 읽으면서 뻑 가고 있는 중입니다.


카 : 비트겐슈타인때 했어야 할 질문인데, 넥스트 <라젠카> 앨범 발매 직후에 넥스트 해산을 선언하며 두번 다시 밴드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거든요.
신 : 그 당시 해산 공연을 보면 제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저는 분해서 울었거든요. 고작 여기서 이렇게 끝내자고 내가 팀을 했던가?


카 : 스스로에게 분해서?
신 : 네. 그리고 지나간 세월들이 다 분하더라구요. (이 대목에서는 괴로운듯 말을 잘 잇지 못함) 뭐, 길게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뺀드의 운용 면에서 동료들이 협조를 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제일 컸었어요.


그리고 그때쯤 되서의 넥스트는 국내에서 다져진 기반이나, 부나 명성 같은 것들을 포기하고 - 뭐 포이즌(Poison) 같은 경우에는 첨에 동부에 있다가 LA로 가서 같은 방에서 다 웅크려 자면서 화장실이 없어서 커피 포트에다가 똥싸고 오줌싸고 그랬대요 - 고생하더라도 완전 무명으로 돌아서서 외국으로 나가서 거기서 배우고 더 공부를 해야지 국내에 남아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침묵) 그 생각에 대해서 멤버들이 동의를 해 주지 않았고...(꽤 오랜 침묵)









넥스트


저의 말은 항상 이중적인 해석을 불러 일으켜요.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고 욕도 많이 먹는데, 성질이 더러워서 거기에 대해서 또 왈가왈부 변명을 하지 않거든요. 넥스트 해산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올라갈 산이 없다고 얘기한 것에 대해서는 기자들이 앞줄의 여러 문장을 빼먹고 딱 그 문장만 카피로 갖다 쓰더군요.


그건 정상에 올라섰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올라갈 부분은 니미 씨발 눈앞이 까마득하도록 남아 있는데(웃음), 지금의 시스템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의미였거든요. 그렇다고 당시의 넥스트가 대중적인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무슨 티브이 프로그램 여러 개를 더 나가서 댄스하는 팀들 사이에 섞여서 립싱크하고 있어야 되겠느냐? 아니면 우리나라에 뺀드 필드가 형성되어 있어서 다른 뺀드들과 같이 싸울수가 있느냐? 도대체 여기서 날더러 뭘 하라는 얘기냐? 그냥 앉아서 수비하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런 시절이었죠.


근데 결국 이제 넥스트를 다시 만드는 것은 넥스트의 임무가, 해야 될 일들이 다시 한번 돌아오고 있는게 있다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구요. 또 하나는, 제 개인적인 욕망에 대해서 이제 항복을 해서이기도 해요. 뺀드 이외의 음악 폼으로는 도저히 행복할 수가 없다는 거죠.


만일 고등학교때 꾸었던 꿈이 권투선수가 되는 거라면 자기가 세계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고 벨트를 허리에 차고 손을 번쩍 드는 순간 꿈이 달성되는 거예요. 근데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자기가 싸이영 상을 타는 투수가 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시리즈를 동료들과 함께 우승하고 우승반지를 끼는 거에 대한 꿈이 있어요. 집단 스포츠란 말이죠.


제가 중고등학교때 꾸었던 음악에 대한 꿈이라는 것이, 나 자신이 어떤 스타나 연예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위대한 밴드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꿈도 보컬리스트가 아니고 기타리스트였고, 리치 블랙모어나 지미 페이지처럼 되고 싶었어요. 앞에 리드보컬이 있고 나는 옆에서 곡 만들고, 우리 밴드의 이름을 추앙하는 팬들을 가지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이 꿈이었는데....솔로로 나가서 아무리 1등 트로피를 타 봐야 저는 사실 되게 우스운 거예요.


카 : 만족이 안 된다?...
신 : 만족도 안되고 그 풍토도 되게 짜증나요. 지금까지 상을 딱 한번 받아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선배 하나가 그러더라구요. "야, 트로피 받으면 울어라. 울어야 다음 기회에 또 준다..."


일동 : 으허허


신 : (웃음) 그 바닥에서 나보고 뭘 만족하라구요.


카 : 외국에 나가서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하더라도, 뺀드로서보다는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보지 않으십니까?


신 : 확실히 외국에 나가서 성공하고자 할때는 혼자인 편이 유리할 수도 있겠죠. 또 외국사람들을 동료로 활용하면서 제가 한국인이라는 페널티를 줄이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죠.


사실 런던에 있을때는 좋은 기회가 참 많이 왔었어요. 그리구 소속사라든가 마케팅 팀이라든가 상당히 강력한 팀도 짜여졌었고요. 근데 거기서 든 생각은 뭐였냐면, 예전에 제가 음악적으로 역량도 안되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일찍 데뷔를 해서 고생을 했던 상황, 그러면서 당장 하나 배우고 하나 당장 써먹으면서 음악을 해야되는 그런 기억들이었단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활동을 하고 싶지가 않았고 또 외국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제 수명이 있는 한 무제한의 기회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처럼 20대때 데뷔를 해야, 아니면 젊었을 때 빨리 떠야된다는 그런게 아니란 말이에요. 제가 세계시장에서 저의 음악을 할 수 있을만한 능력 혹은 기회가 된다면 그건 제가 70살이 될 때까지도 유효해요.


뭔가를 들려줄 수 있으면 되는 건데, 한편으로 드는 의아심은 박찬호가 메이저리거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몇 개를 땄다고 해서 우리나라 국민체육이 좋아지고 국민들이 건강해 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양놈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걔네들이 어 쫌 하는데라는 소리를 해 봐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삶에서 음악하고 가까워 지고 (음악계가) 살아나고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또, 대한민국 대중음악계가 해외시장에 내보낼 아티스트를 갖게 되었다고 할 때, 하나의 특정한 예외에 해당하는 아티스트가 빌보드 차트 넘버 원을 했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일본노래 [스키야키]가 빌보드 차트 넘버 원을 한 건 벌써 몇십년 전이에요. 그렇지만 일본 대중음악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왔어요.


호주 시장이 세계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가진다는 것은 한 아티스트가 차트를 점령했다는 것이 아니라 올리비아 뉴튼 존, 다음에는 리틀 리버 밴드, 그 다음에는 에어 서플라이, 그 다음에는 INXS라는 식으로 그 시장이 쭈욱 세계시장에 대해서 자국의 아티스트들을 공급할 만한 구조와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이 우리 나라 쫌 안대라는 그 심정으로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외국에 나가줘서 우쭐할 기회를 바라거든요.


근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릴때부터 성장하면서 음악하고 얼마나 친밀하게 살면서 우리 삶에서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인가라는 부분,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시장이 세계 시장의 변방이 아니라 그들의 일부로서 계속해서 꾸준히 아티스트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럼 지금 내 나이에 내가 해야 될 일은 - 현장에서 봐야만 공부가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공부는 하되 - 내가 내 나라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욕할 자격이 아직 없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뭐 한게 있어야 욕을 하는데, 진짜 싫은 이 대한민국을 욕할 수 있으려면 뭔가 좀 한 일이 있어야겠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 음악시장이 이모양 이꼴인 이유는 제가 볼때 시스템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말고는 설명이 안되요. 모든 시스템이 뒤틀려 있고 모든 인프라가 되어 있지 않더라. 그럼 처음서부터 하나하나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거에 대한 공부를 나가서, 또 있으면서 하기 시작했구요. 그러니까, 짜증은 나죠. 그런데 후진국에서 태어난 뮤지션이라면 그 책임을 방기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해요. 선진국에서 태어난 애들은 편안하게 음악해도 돼요. 꼴리는 대로 걔네들 말하고 싶은거 다 하고 다녀도 되는데 후진국에서 태어났으면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다들 협조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죠.


카 : 뺀드 음악이라는 거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이상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멤버가 다 같이 의견을 내고 그것들을 모아서 음악의 완성체를 만들어내는 것일텐데, 넥스트의 예전 음악을 생각해 보면 음악 디렉터로서의 신해철이 있고 거기에 나머지 멤버들이 서포팅을 해 준다라는 인상을 굉장히 강하게 받거든요.


신 : 그거는요. 외부인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에요, 저의 주장으로는.


그리고 뺀드의 형태는 한 사람의 리더가 강력하게 통제를 해서 음악이 나오는 스타일의 뺀드가 있고, 또 민주적인 형태라는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중구난방하는 뺀드도 있어요. 그리고 잘 발란스가 되어 있는 뺀드들은 당연히 또 그 진가를 발휘해요.


근데 저의 스타일은 독재를 하거나 다른 멤버들한테 일방적으로 악보를 나눠주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럴것이라고 봐요. 그리고 뺀드의 운용면에서 멤버들이 잘 협조를 하지 않았다라고 말한게 바로 그 부분이에요.


카 : 숙제를 안 해왔다?
신 : 숙제라는 건 제가 일방적으로 이걸 해라라는 게 숙제겠구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내라라는 부분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미진했던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아마 제 탓도 일부는 있었을거 같지만 저로서는 수긍이 안 가는 모습들이 참 많았어요.


지금의 뉴 넥스트 라인업에서는 곡을 만드는 작업에 있어서 맨 먼저 아이디어를 내는게 기타를 치는 Devin이에요. 저는 롹뺀드 형태에 있어서는 그게 정공법의 지극히 옳은 형태라고 보거든요.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제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거나 스케치 전체를 던져주거나 하는 곡들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기타리스트의 발제에 의해서 다음 사람들이 따라 한단 말이에요. 그 형태가 넥스트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전적으로 제 책임만은 아닌 것 같아요.


카 : 비트겐슈타인 이야기를 좀 해보죠. 그 뺀드의 음반이 <파트 1>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었단 말이에요. 이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멤버들이 새로운 넥스트로 흡수가 되었으니까 존재여부외에 음악적으로도 넥스트에 흡수통합되는 것인지?


신 : 넥스트는 제가 힘 줘서 만드는 음악이에요.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힘 빼고 만든 음악이에요. 근데 힘 빼고 만드는 음악이 하고 싶어지면 1년 뒤든 10년 뒤든 언제 또 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당시 비트겐슈타인의 목표는 되게 우스운 것들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기술면에서 볼 때 영화에서 실사와 그래픽이 거의 구별 안되는 그런 시대가 왔잖아요? 그래서 음악에 있어서의 실사와 프로그래밍의 접근이 어느정도 가능해졌는가를 실험하기 위해서 만든 음반이었기 때문에 그 음반이 사실 곡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 전체가 다 가짜였거든요.


드럼도 가짜. 기타도 전부 앰프 시뮬레이터를 통한 연주들. 그리고 피아노도 다 가짜. 스트링 오케스트라도 싸그리 다 가짜....머 이런 식이에요. 그리고 녹음은 매킨토시 컴퓨터 1대 사용해서 아웃보드에 어떤 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고, 그러니까 총 제작비가 300만원이에요, 그 앨범이.


<라젠카> 앨범 제작할 때는 돈 거의 3억 가까이 썼죠. 그때는 뭐를 공부하고 싶었냐면, 스펙타클한 작품을 음반계에서 제작한다고 할 때 어떤 형태로 어떻게 조직을 나누어야 하고 돈을 어떤 식으로 투입해야 하는가라는 공식을 만들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거든요. 또 외국기술을 어느 부분에 접목시키고 어디에서는 국내 시설을 사용한다는 등의 이런 선례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 선례가 없다라는 거는 우리 음악계의 치명적인 결함이거든요. 우린 말하자면 70년대 이후 선배들로부터 넘어온 유산이 없어요. 그걸 데이터화하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3억짜리 앨범.... <라젠카> by 넥스트


비트겐슈타인 앨범은 그러니까 <라젠카> 앨범의 완전히 거꾸로 된 그림자죠. 홈스튜디오 레코딩에 의해서 일반 아마추어 뮤지션이 사용하는 장비 - 보단 쬐끔 쎄죠, 매킨토시 컴퓨터면. 하지만 아마추어 중에서도 분명히 매킨토시 쓰는 사람들은 있거든요. 프로그램은 어차피 로직이니까 - 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어디까지 맥시멈으로 쳐 볼수 있는가? 최소 제작비로, 라는게 그 앨범이죠.


카 : 그러면 넥스트 신보는 언제쯤?..


신 : 내년 봄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글쎄요. 지금 멤버들이 빨리빨리 제 팀에 적응을 하고 있는 상태구요.


그리고 이 팀이 외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거나 상업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거나 하는 거에 대해서 사실 그다지 큰 목표를 안둬요. 멤버들이 즐거워서 합주실에 같이 들어갈 수 있고, 곡 만드는게 좋아서 막 토론하고 얼굴 맞대고, 안보면 보고싶어서 연주하는 시간 말고도 영화보러 갈 때 막 전화질하고.....제 개인적으로 뺀드라는 거는 항상 두번째 가정 구실밖에 할 수 없어요.


예전에 넥스트를 할 때 제 실수였다면 뺀드를 첫번째 가정으로 생각해 버렸다는 거. 그게 저의 유일한 패밀리였고 부모나 제 혈족들은 사실 제 두번째 패밀리로 생각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기대치를 다른 멤버들이 못 따라와 줬는지도 모르겠고, 지금은 오히려 내 마누라하고 내가 첫번째 가정이고 뺀드가 두번째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두번째 가정의 구실도 못 할 정도로 팀웍이 와해된다면 이제 팀을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애요. 그리고 이제는 제 개인적으로 행복하지 못한 팀을 성과나 어떤 음악적인 욕심 때문에 유지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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