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해설] 우리는 왜 조갑제에게 열받나

2002.12.15.일요일
딴지 사회부

원래 대형 스타들은 중요할 때 나타나는 법.


가장 필요할 때 나타나 한 방식 터뜨려주는 그 쾌감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시카고 불스의 전성시절, 마지막 몇초를 남겨놓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마이클 조던이 공을 잡았다. 마지막 작전타임이면 나한테 공을 달라고 거침없이 주문하는 조던의 모습을 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버저비터는 항상 그의 것이었다. 상대팀은 알면서도 속수무책이었고, 팬들은 그의 카리스마에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무력감... 대형 스타, 흔히들 해결사라고 불리우는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강팀과 약팀이 갈라진다.


2002년의 대선. 도저히 안 되겠다 나에게 공을 달라며 해결사를 자처하는 분이 나타나셨다. 역시 한국우익팀의 간판선수 조갑제 아저씨... 포인트 가드로 그가 투입되자 경기 양상이 달라지는 걸 보면 역시 조갑제 선수, 대형 선수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가 이회창 선수 스텝이 꼬여서 스틸 당할 가능성이 높다. 드리블 중심을 낮춰라라고 코치하자 이회창 선수는 그 말대로 촛불시위 참가를 포기했다. 행정수도 존 디펜스는 안보불안-서울공동화 더블 포스트로 공략하라고 야전에서 지휘하자 선수들도 일사분란하게 그 말을 따랐다.


그러나 세상에 약점이 없는 선수는 없는 법... 아니 조갑제 아저씨는 매우 심각한 약점을 가지고 계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오른손 드리블링 실력이 있는 반면 왼손은 전혀 쓰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오른쪽만 잘 막으면 조갑제선수로부터 이어지는 볼배급을 차단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불세출의 포인트가드 조갑제 선수를 해부하도록 한다.


 


    행복한 사람 조갑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대통령? 물론 아니다. 전두환도 김영삼도 꼭 대통령 되고 나면 창가에 서서 고뇌에 찬 표정으로 사진 한 방씩 찍지 않는가? 박정희가 그랬다지 아마.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자리라고, 자기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군인이라고... 나는 그 말이 뺑끼가 아님을 믿는다.


돈 많은 재벌? 그것도 아닐걸? 재벌이야말로 불만이 제일 많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는 과격한 노동자들이 골치 썩이지, 재산 상속 좀 하려면 조세 포탈이니 뭐니 인간들이 시끄럽게 짖어대지, 총액출자제한이니 뭐니 돈 마음대로 벌기는 점점 어려워지지...


나는 세계관이 단순한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이 나쁜 놈과 좋은 놈으로 이분법적으로 갈라지고,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이 뚜렷한 사람....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자명하고, 오직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만 신경쓰면 되는 사람 말이다.


가령 이런 사람이다. "김정일은 선인가 악인가?" 물어봐서 하는 대답에 따라 니편 내편 가를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조갑제이다. "독수리 오형제는 우리편인가 아닌가?" 혹은 "UFO 군단은 나쁜놈인가 좋은놈인가?" 이거랑 다를 바가 어디있으랴.


오에 겐자부로의 세븐틴이라는 소설에 보면 17살짜리 주인공이 어느날 우익 집회에 우연히 나갔다가 우익 청년으로 변신하게 된다. 세상이 너무나 단순명료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그 맛에 매료되고 만 것이다.


조갑제의 세계관도 단순하다. 반미 = 좌파 = 대한민국 부정세력 = 친김정일 = 친김대중 = 친노무현, 그에 반대되는 것으로 우파 = 건국세력 = 주류세력 = 반김정일 = 친이회창이다.


거기에 몇 가지 요소가 추가된다. 우선 우익답게 사회를 서열화된 눈으로 바라본다. 계란이나 던지는 좌파는 "버르장머리 없는" "철부지"이며 "그 본성이 증오이고 저질"이다. 곧 우파는 사리분별력 있고 고급이며 사회의 주류로써 이들을 리드하는 입장에 있다는 말이다.


또 조갑제는 독특한 세대론을 가지고 있다. 30대는 어차피 좌파라 포기해야 되지만 20대는 오히려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모 세대는 20대를 잘 꼬셔서 30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번 월드컵때 대한민국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무리를 보고 조갑제는 감격에 겨워 50대와 20대의 뜨거운 만남 운운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얼마전 조갑제의 글 <집토끼, 산토끼, 그리고 이회창 전략>에 다시 한번 반복된 그의 분류법이다. 그 근거는 "김정일이 선이냐 악이냐"에 대한 답이다. 물론 조갑제 자신은 맨 오른쪽 30%에 있으며, 그 왼쪽에 있는 중도우파 30%를 잘 가르쳐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록금을 끊는다고 협박해서라도...


거칠게 얘기하면 중도우파는 20대, 중도좌파는 30대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는 도대체 왜 이회창이 좌파 우파를 가르는 선거전을 치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분강개해서 하루에 서너편씩 글을 써제끼며 그가 하는 말은 간단하다. 이회창이 좌파 우파 경계선에 가서 딱 서 있으면 그 오른쪽에 60%는 무조건 먹을 수 있는데, 그래서 노무현이 단일후보가 됐을 때 "이것은 필승구도다"라고 환호했었는데, 도대체 왜 이회창이 안 그러는지 답답해 미치겠는 거다.


 


    2차원 세계의 1차원 동물


그런데 문제는 그의 저 도식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을 계속 주장한다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분석가가 아니라 이데올로그이다.


우선, 같은 좌파라고 다 친북으로 몰면 섭섭해 할 좌파들 엄청나게 많다. 우리나라의 골수 좌파들 가운데 김정일에 비판적인 세력이 많은데... 김정일 싫어하는 민노당원도 엄청나게 많고, 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촛불시위 참가자들도 수없이 많다. 그의 "친북 = 촛불시위 = 미군철수주장 = 좌익" 이 도식에서 그 어느 하나도 성립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재벌개혁은 좌파라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 총수의 전횡으로부터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자본주의 원리에 더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장한다. 그가 그렇게 옹호해 마지 않는 미국에서는 당연한 것들이다.


이런 예들은 너무나 많다. 가령 조갑제는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를 주장하는데, 자유민주주의의 선구자 프랑스 독일은 심심하면 좌파들이 집권한다. 그러니 우파가 집권해야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라는 것도 틀린다.


그의 도식이 왜 하나도 안 들어맞느냐,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나뉘어질 수 있으면 좋게?


조갑제 아저씨보다 약간만 정교하게 그림을 바꿔보자. 일차원이 아닌 이차원 그래프로 그리면 훨씬 지금 판세가 잘 보인다. 물론 이차원도 엄청나게 단순한 그림이고,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최소한 일차원 그래프보다는 낫다.




우리나라는 좌파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기 때문에 왼쪽이 짧고 오른쪽이 긴 위와 같은 그래프가 된다. 지역감정 조장해서 한나라당 지지를 호소하는 김광일 같은 사람보다는 노무현 지지하는 김원웅이 훨씬 오른쪽에 있다. (지역감정에 기대서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도 있으니 지역감정=한나라당으로 몰아붙인다고 하지 마시라.)


물론 여기에 지역이라는 변수가 들어가고, 정치인들은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것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이런 식의 그림은 항상 단순화를 범하게 되어 있으니, 나는 저기 안 들어맞는데?하고 반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분리된 특수상황이라 저런 이차원 평면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저 그림을 그린 이유가 있다. 바로 조갑제의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는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혹은 기존의 질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이용해먹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우익적 이상대로 사회를 개혁하기를 꿈꾸는 개혁적 극우이다.


자 이제 우리모두 잠시 조갑제가 되어 보자. 조갑제의 위치에 서서 한번 보자는 말이다. 그는 자신이 정통우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고의 좌익은 주사파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좌우측이 형성된다.



조갑제가 바라보는 일차원 세계


현재 선거의 대립축은 위 그림에서 A-B 축이다. 조갑제가 생각하는 구도와는 달라도 전혀 다르다. A 지역에는 반DJ와 경상도 대통령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동층이, B 지역에는 누가 더 개혁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부동층이 존재한다.


그림이 자꾸 나오니까 헷갈리지? 자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요상한 그림들을 그렸는지, 지금부터 썰을 풀도록 하겠다.


우리의 정치지형은 삼차원 사차원의 세계이다. 그런데 그것을 조갑제처럼 무리하게 한 축에 놓고 보면 잘 들어맞지도 않을 뿐더러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김정일 반대하는 좌파, 소파 개정 주장하는 우파는 조갑제의 일차원 등식에 안 들어맞는다.


가령 조갑제의 중도우파를 보자. 오른쪽이 선이고 왼쪽이 악이라는 조갑제의 눈에 이 사람들은 이념무장이 덜 된, 쉽게 말해 아직 뭘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조금만 강요하면 이들은 넘어올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등록금을 안 대 준다든지, 잘 타일러서 깨우쳐줄 수 있는...


그러나 이들은 조갑제의 말대로 이념무장이 덜 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념 무장을 한 사람들이다. 북한이 핵발전소 건설한다고 하니까 거꾸로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좌파라서가 아니다.


이회창의 인기가 없는 것은, 중도우파의 이념무장이 덜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파 자체의 이상에 배치되는 요소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지 않는 우파가 많은 것 뿐이다. 아들 둘을 군대에 안 보냈지, 아버지는 친일파라고 하지, 지역감정에 편승하는 것 같지...


진정으로 좌우구도를 원했다면 일찍 후보를 교체했어야 옳다. 그런 작전이라면 이회창은 최약체 후보일 수 밖에 없다.


 


      우매한 대중


간단한 이야기 하는데 너무 장황하게 와 버렸다. 단순명료한 것처럼 보이는 조갑제의 세계관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얘기하려다 보니까... 단순한 걸 주장하기는 쉬워도 복잡한 걸 말해주기는 어렵다.


조갑제식의 단순한 세계관은 남을 업신여긴다.


"나는 확실히 아는데 우매한 대중이 잘 몰라서.. 잘 가르쳐서 깨우쳐야 할텐데..."


전형적인 극우적 마인드이다. 극좌도 마찬가지이겠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지 미성숙된 혹은 틀린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프의 축이 두개 세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름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틀린 것을 바로잡아주는 것, 그 두 가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조갑제의 요즘 글들을 읽으며 마음이 불편한 정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등록금 대주지 말자는 글을 읽고 씨바스런 마음이 드는 것은 조갑제가 황금만능주의를 얘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태도가 행간에서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백분 토론에서 정혜신 박사가 한 말이 있다. 나의 상식과 다른 사람의 상식이 충돌할 때 내 상식이 맞는다고 박박 우기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상식적인 거라고... 그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딴지 편집장
최내현(asever@ddanzi.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