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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007 어나더데이>와 불매운동

2002.12.20.금요일
딴지 영진공 우원 나뭉이


지난 12월 16일 초대받지 않은 기자시사회에 불쑥 찾아갔다. 상영되는 영화는 <007 어나더데이>였다.


이미 당 영화에 대해서는 반미(反米)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철저히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과 감독이 남북한의 실상에 무지, 현실을 왜곡 묘사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불매 운동을 비롯한 이런저런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도 물론이고.


바로 이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사회를 찾았으며,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그래 니가 얼마나 한국을 우습게 보고 있는지 내 판단해 주리다"라는 맘을 먹고 관람에 임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다. 관람한 결과, 감독 리 타마호리는 당 영화를 통해 분명 우리나라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으며 몇몇 부분의 남북한 묘사 같은 경우는 정말 왜곡되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항간에 떠도는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느니 하는 성토들은 사실 이상으로 크게 부풀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례로 불당에서 빠굴을 벌이는 장면 같은 경우 많은 사람들은 울 나라를 우습게 봐서 그런 부도덕한 상황을 낑군 것이라고 분노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 배경이 되는 불당이, 푸른 초원이 깔린 해안절벽 위에 떵그러니 놓여있는 곳이다 보니 한국의 지형과 전혀 어울리지가 않아 감독의 무지로 일궈낸 허술한 묘사 덕에 개인적으로 그런 분노의 감정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또한 영화 시작과 동시에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 분)는 북청 해안선을 통해 북한에 잠입하는데 헤엄을 치거나 잠수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서핑으로 들어온다. 


내가 알기론 울 나라에는 서핑을 할 만한 높이의 파도가 일어나는 해안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이전부터 형성된 본드 캐릭터와 <007> 시리즈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현실 왜곡 일 것이다.


게다가 릭 윤이 맡은 자오는 극 초반 10분 동안은 북한군으로 나오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얼굴에 다이아몽드를 몇 십 개 쑤셔 박고 회칠 분장까정 함으로써 마치 <배트맨과 로빈>의 미스터 프리즈스러운 것이 현실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만들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007 어나더데이>의 자오            


<배트맨과 로빈>의 미스터 프리즈


그러다 보니 30여 년 간 한국에서 살았던 나에게 있어 <007 어나더데이>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문제 장면들은 왜곡되었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든건 아니지만)보단 비현실적이란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나는 <007 어나더데이>를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동안 그럭저럭 재미나게 볼 수 있었다.


이야기의 비약을 감수해가며 표현해 낸 웅장한 배경과 화려한 CG,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로 점철된 스펙타클한 화면은 그 자리에 모인 관객의 눈을 흡족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어허, 그렇다고 오해하거나 성내지는 마시라. 내가 <007 어나더데이>를 이렇게 봤다고 해서 당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가 잘못 되었다고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며 게다가 불매운동을 철회하라는 말을 하려는 의도는 더더군다나 아니니까.


지금 한국에서 미국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결코 <007 어나더데이>를 단순한 팝콘 무비로서 볼 수 있게 만드는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문제는 우리야 한국을 잘 알기 때문에 당 영화에 대한 잘못된 묘사는 가뱝게 무시할 수 있지만 한국을 잘 모르는 타국인들에게 당 영화 속의 한국은 왜곡 묘사된 한국이 아닌 불당에서 빠굴을 떠도 되는 그냥 한국으로 비추어 질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당 영화 속에 있는 한국의 모습은 헐리웃에 있어 자기들 입맛에 맞게 맘대로 써 버리고 폐기 처분하는 휴지 조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건 분명 한국에 대한 모독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욱 분노케 한 건 당 영화의 감독 리 타마호리가 <007 어나더데이>의 상영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내 분위기에 대해서 한 발언이었다.


"영화는 팝콘과 같은 것이다. 현실과 달라도 그건 단지 영화적인 장치일 뿐이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면서 한국인들에게 너무 민감해 하지말고 단순히 영화로써 관람해 달라고 그는 주장했다.


여기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한마디로


니뽕이다, 이 씨바호로색히야!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은 자살 테러라는 사상 초유의 공격을 받으며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두 동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무엇보다 수만의 자국민 희생자가 죄 없이 목숨을 잃어 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경악을 금치 못 한 미국은 실의에 빠졌다.




이런 비스무리한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일차적으로 불똥이 튀었던 헐리웃이 이번에도 언급 안될 리 만무한 법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헐리웃은 미국의 아픔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배경으로 삼았거나 자국이 테러로 공격 당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들의 개봉을 금지 또는 무기한 연기하였고, 그런 이야기에 대한 프로젝트 역시 자연스럽게 폐기하였다.


그래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던 맨>은 수억 달러를 들여 공들였던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보이는 몇 장면을 눈물을 머금고 싹둑 도려냈고,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한 <콜래트럴 데미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뉴욕의 갱들> 등은 테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이유로, 폭력의 수위가 높다는 이유로 개봉을 연기해야만 했다.


자살테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테러를 비롯한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아무리 영화라는 판타지를 위해 현실을 왜곡, 과장함으로써 영화적 장치로 복무하더라도 그 뼈대는 현실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니, 자칫 당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거나 자국민들로 하여금 악감정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영화뿐인가, 미국의 일부 상영관들은 조의를 표한다며 극장 운영을 잠시간 중단했고 그 기간 중 열리던 토론토 국제 영화제는 테러 당일 상영을 모두 취소했으며 TV역시 테러와 관련된 영화는 한동안 방영하지 않았다.


그런 기억들이 잊혀지지 않은 채 1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무법자적 지위를 철저히 이용 자신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우리에게는 되려 영화는 현실이 아니니 상관하지 말고 보라며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현재 건국사상 최고로 고조된 반미(反米)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연초에 발생한 오노의 김동성 금메달 강탈에서부터 북한에 대한 부시의 악의 축 발언, 미군 장갑차의 효순?미선 살해, 그리고 그 살해범들의 무죄판결로 이어진 일련의 제왕적 독불장군 식 사건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분노와 적의의 감정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북한을 세계를 위협하는 적으로 삼아 본드가 속한 강대국들이 지덜 주도로 한반도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설정과 적절치 못한 한반도의 현실 묘사는 아무리 오락영화라지만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9.11테러 때 노골적으로 영화에 대한 자숙을 요구하며 자제를 촉구했던 미국이 이제는 자기들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단순오락영화라는 미명으로 <007 어나더데이>에 대한 한국민들의 반응에 대해 민감해 하지말고 영화를 영화로서 봐달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래서 리 타마호리 감독의 발언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며 닭발 먹고 오리발내미는 수준과 다를 바가 엄따.









꼴통 짓거리에 여념이 없는 리 타마호리 감독


물론 호주에서 태어나 미국의 주류 무대에서 활동하는 리 타마호리가 우리 내 실정을 백퍼센트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007 어나더데이>를 통해 드러낸 무식처럼 지금의 상황을 알고 있기나 한지 의아스럽고.


그러나 일단 그가 자신의 영화를 우리에게 옹호하기로 했다면 한국 내에서 <007 어나더데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 그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 먼저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왜냐?


그가 <007 어나더데이>를 옹호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해를 구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가? 그는 영화는 단순히 영화다라는 원론적인 말만을 앞세운 채 한국인의 행동에 짜증난다는 투다. 미국(헐리웃) 제일주의라는 발톱을 치켜세운 전형적인 경우다.


난 이렇게 한국을 우습게 아는 리 타마호리의 생각이, 당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분 나빴던 우리내 농촌에 스포츠카가 떨어져 박히는 그 장면이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본다.


좃선일보의 김명환 기자 같은 경우는 이 장면에서 한반도라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며 <007 어나더데이>를 옹호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개상 그곳은 분명 한반도이고, 농부들은 땅에 쳐 박힌 자동차를 보며 이게 웬 날벼락이야라는 식의 놀람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삐까뻔쩍한 스포츠 카와 낙후돼 보이는 우리의 농촌 풍경은 두 대상물간의 뚜렷한 대비로 인해 굉장히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이게 바로 영화를 빙자하며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인 것이다.







 
그래서 난, 영화를 본 사람이 자격이 있을까마는, 지금의 <007 어나더데이>에 대한 불매운동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007 어나더데이>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옹호하고 조장하는 영화라 볼 필요가 없다는 식의 찬성이 아니라 리 타마호리처럼 우리나라를 우습게 알고 꼴통 짓을 하니까 <007 어나더데이>라는 상품을 사 줄 수 없다는 의사표현으로서 불매운동에 찬성한다는 것이다.



 
딴지 영진공 검열우원
나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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