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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남자들에게 말걸기

2002.11.30.토요일
딴지 민원접수처

일단 제목에서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밝히는데, 남자들한테 차 한잔 하실래요 하는 그런 말 말고, 내 의견을 밝히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물론 본인은 여자다).

 

사실은 도대체 기자의 <좃내논 행성..>기사와 관련하여 벌어진 일들을 보고 딴지측에 글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 도대체 기자의 그 기사를 놓고 벌어진 논쟁을 내 나름으로 몇가지만 추리면 이렇다.

 

첫째, 기사 속 문제의 좃내논 행성인이 지구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신원이 독자들에게 노출될락 말락하게 찍혀진 동영상과 사진이 공개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글 속에서 희화화된 것까지 포함해 그 행성인의 인권이 훼손되었다는 비판 한가지. 여기 대한 반론은 얼굴이 식별될 정도가 아니었을 뿐더러, 공공장소에서 존내논 행성스러운 행각을 하여 선량한 시민들과 그 행위에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한 여자들에게 고통을 준 그런 범죄행위에 대해서 기자가 나름의 수단으로 저항한 것이 왜 나쁘냐는 것이다.

 

더 나가면 도촬한 행위 자체도 범죄일 수 있다는 것, 아무리 행성인이 잘못했다지만 적법한 절차로 단죄해야지 개인적 수단(기자라는 것)을 사용해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하는 점이고 또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남성 위주의 이 사회는 그런 사람 경찰에 신고해봤자 훈방감도 아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기자가 그것을 기사화해 공론화 시키고 사회적으로 문제제기 하는 게 머 잘못이냐, 이며, 또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공론화나 문제제기 같은 의미부여를 해주기에는 글이 너무 우스갯거리고 진지하지 않았다, 또한 공론화 시킨다고 도촬이라는 수단이 정당해질 수 있는가 등등으로, 반론의 반론, 반론의 반론이 꼬리를 이었다.

 

일단은 논리를 떠나서 개인적인 느낌으로만 보자면... 기사를 읽다보면 그 두리번거리며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어쩐지 안돼 보인다는 점을 얘기해야겠다. 기자의 묘사가 너무 훌륭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꺼내서 우겔겔겔 웃으며 혼자인 여자에게 덤벼드는 악질들도 있는데 그놈들이었다면 결코 안된 마음은 없었으리라.....

 

또 혹시라도 진짜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일 가능성도 없진 않을 거라는 점도 약간 걸리긴 한다. 여기에 대한 반론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래서 많은 리플들 중 정말로 진지한 논점을 가지고 쓴 사람들의 글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해 쓴 르포라기에는 글 내용이나 논조가 너무나 희화화 되어 있으며 상대편 입장이 전혀 없이 일방적이고(보통 피디수첩 같은데서도 상대방이 말할 기회 같은 건 주니깐), 그렇다고 르포가 아니고 딴지식 유머기사로 보기에는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오는 등 완전히 르포스러워서 행성인의 인권이 문제시되니, 뭔가 이도 저도 아닌 글이라는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들까? 이건 도대체 기자의 논리가 잘못되어서라기보다는 그녀의 말한 방식의 문제인데, 왜 그녀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여자로서 이해가 간다는 거다. (여자로 살면서 성폭력적인 상황들 땜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니들이 아느냐, 그러니 어떻게 대항해도 내맘이다, 하는 그런 얘기는 아니니 좀만 더 들어봐라...)

 

솔직히 여태껏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난 정말 여자로서 남자들한테 무슨 말 하기가 겁난다. 성적인 문제 관련해서 무언가를 얘기한다고 치자. 르포처럼 진지함을 가지고 심각하게 말하거나 쓰면 바로 이거 이제 보니 페미년이다, 남자를 다 변태로 몬다, 죽일년 운운하고 특히, 졸라 못생긴 년일 거다 너같은 거 남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으니 남자한테 그렇게 울분이 쌓이더냐 이런 식의 말들이 날아온다.

 

그렇다고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어쩌고 하며 괴로운 마음을 그대로 토로하면, 내숭을 떤다느니 요즘 누가 그런거 보구 놀래냐느니 하며 비웃거나, 게다가 바로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낙인이 찍혀 여자들 스스로가 문제 해결할 생각은 없이 남자들한테 의존하는 그것부터가 보수성 아닌가요 같은 말이 날아오고 또한 같은 여자들로부터 기집애 유난 떤다, 그럼 가만 있는 나는 모냐 같은 말을 듣는다.

 

이러다 보면 점점 내 의견은 농담도 아닌 것이 비판도 아닌 것이 어정쩡한 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욕먹는게 꼭 겁나서라기보다, 결국 토론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오해없이 전달되나를 생각하다보면 자주,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 서버리게 된다. 나는 이 기사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기사가 이렇게 애매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걸 공격했던 방식들에는 더더 큰 문제가 있다....

 

달린 리플들을 보면, 남자들은 정말 누군가를 공격할 때는 일단 뭉치고 보는 거 같다. 보통 때는 각자 다 다르다. A는 찌개 좋아하고 B는 국이 있어야 되고, C는 찬밥 안 먹고, 그래서 A보구 B 닮았다고 하면 저런 새끼랑 내가 닮긴 뭘 닮았냐고 기분 나빠한다. 근데 어딘가에서 군대라든가 여자 하는 말이 나오면 A,B,C가 갑자기 다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한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못생긴 년이라느니 하며 폭언을 일삼고..

 

특히 리플들 중에서 남자가 기분 좀 냈기로서니라던가 그거 찍고 있는 니년은 변태 아냐? 하는 식은 너무 한 것 아닌가. 이상하게 뭐든 문제를 꼭 남녀대결로 몰고가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남자들하고 대화를 하고 싶다!!! 남녀대결 그거 너무 싫다.

 

군 가산점 문제 같은 거, 아무리 봐도 남녀대결 구도가 이해 안간다. 이대라고 머 다같은 이대인가. 이대 공주꽈들이 사회문제에 관심 갖는거 진짜 못봤다. 선 말고 미팅도 서울대 최상위 클래스 의사나 검사하고만 보고 더 윗급 공주들은 자기들같은 사업체나 명사들끼리만 만나는데 군가산점 따위에 미쳤다고 신경 쓰나. 결국엔 다들 결혼해서 강남에 옹기종기 모여살며 시아버지 선물사러 간다느니 하며 백화점 다니고, 시집 안간 애들은 진짜 전부다 싸그리 유학가구... 군가산점? 뭔지도 모른다.

 

정말 군가산점 가지고 싸우던 애들은, 아픈 부모 있는 애들, 지방에서 딸 공부 좀 잘한다는 그거 하나에 온가족 기대를 안고 정말 청운의 꿈을 안고 올라온 애들(지방애들은 일단 서울 오면 먼가 인생이 달라지는 줄 안다).. 근데 서울 와 보면 있는 것들은 다 유학이나 석사준비하고 있고, 하다못해 무슨 공모전 같은 거 하려고 해도 뽑힐 때까지 집에서 먹여살려줘야 하니 안되고, 그렇다고 직장 들어가게 영어공부 좀 해보려구 하면 학원비 열나 비싼데다 집안 좋은 뇬들은 전부다 중학교 때까지 미국 살았다느니 하면서 영어 도사에, 게다가 알고보니 고딩 마친 뒤 딱 성형까지 받고 들어온 거여서 미팅가서까지 눌리지.. 미치고 펄쩍 뛴다.(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난 지금도 그 가산점 말만 나오면 그거 가지고 싸우던 애들 중에 허구헌날 알바해서 동생 등록금까지 대고, 어느날 수해 땜에 지붕 내려앉았다고 교수한테 말 좀 전해달라 하고는 막 울면서 시골 가던 애가 생각난다. 걔는 홀아버지인데 허리가 아프셔서 일을 못했던가... 자기가 돈 벌어야되고, 집에서 일년도 못받쳐주니깐 공무원 시험같은 거 아니면 공부라곤 엄두도 못내고, 차라리 군대 갈 수 있으면 갔을 그애들이 생계 땜에 주장한 가산점이 그렇게 쳐죽일 일인지, OO를 찢어야 마땅한지 난 잘 모르겠다. 오빠사업 빚 치닥거리 하고 남동생 학비대고 아버지 병원비 대던 애들인데, 딴 것도 아니고 왜 남자들 하고 싸워야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렇다.. 남자도, 쌍년이 형제같은 신의 아들들은 군대도 안가고 그 시간에 쌈박하게 유학 갔다 오고 가산점 같은 거야 상관할래야 상관할 일이 없느니, 그분들은 우아하게 빠지시고 박터지게 모여서 싸우는 건 서민남자들이랑 서민여자들이다. 다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가장의 지독한 부담을 어깨에 지고 서로 마초니 페미년이니 하면서.. 사람 미치게 만드는 입시, 군대, 그래도 그건 몇 년이면 끝나지 평생 이어질 생계의 지옥을 지고 서로 뒈지게 싸우는 것이다. 서로 못생긴년 거지같은 놈 욕하면서, 가산점 따위는 관심 없는, 삼성카드 쓰시는 고소영 정우성 씨에프 같은 것 보면서는 여자가(남자가) 저쯤은 되야지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에게는 개무시 당하면서 쩝...

 

아무튼.. 끝까지 따져보면 다 다른 문제지, 남자랑 여자가 둘로 나눠져서 싸울 이유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애써 여자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거까지는 정말,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서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금은 이해해보려고 노력은 하면서 그냥 좀 좋게 얘기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였음 좋겠다.

 

결국은 서로 소통해서, 누가 내 맘을 알아주고 이해해주었던 게 기쁘고 행복했지, 모여서 쌍욕하고 막나가는 말 마구 하고 아 스트레스 해소 했다며 집에 돌아오는 그 길은, 딱 친구만 사라지고 나면 어찌 그리 암담하고 찝찝하고 허탈하고 서럽든지..

 

남로당에서 원나잇 했다는 말을 얼마전에 들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내 말을 잘 들어줘서..이다. 외모는 진짜 아닌데 채팅하면서 필 꽂혔다는 말도 나온다. 남로당에 말 잘들어주는 남자들이 많구나 싶어서 가끔 들어가서 기웃거려 본다. 정말 한번 하려구 억지로 얘기 들어준거라고 하더라도, 대화할 남자를 못 가진 한국여자들은 외롭다. 정말 외롭다..

 

조금 늦으면 고함부터 지르는, 도저히 내 맘은 이러저러하다 라는 대화 자체를 시도할 수조차 없었던, 윽박지르던 아버지와, 윽박지르던 오빠와, 윽박지르던 선생들 속에서 살아온 한국여자들은 정말 외롭고, 남자들이 무섭다. 익명이라는 게시판에서조차도 윽박지름을 당하니, 말꺼내는 자체가 무섭다. 그렇게 어려우니까 그냥 입을 닫고 이해받길 포기하며, 이해받지 못했으니 이해할 줄도 몰라서 그냥 이해하는 척 끄덕거린다. 그리고는 결혼하면 악귀처럼 된다. 이해하고 이해받는 건 소녀시절에 포기한지 오래니까.

 

내 생각에 동조해주지 않더라도.. 그냥 남자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싶다. 단지 그뿐이다. 싸워서 이기고 지는게 아니라..

 

 

기사평 게시판 보다가 질려버린
지나가던 여인네 (pinkfox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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