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우리 반미하자 2002.11.25.월요일 386세대인 본 기자에게 반미는 무거움이었다. 반미는 80년대 초반 미문화원을 점거한 선배들이 유리창에 붙인 <양키고우홈>이라는 붉은 글씨였고, 추운 중국집 골방에서 세미나 북으로 읽어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그 딱딱한 활자였다. 분단부터 시작하여 우리 현대사의 모든 비극은 근원에 있어 미국이 중심에 있다는 나의 미국관은 그러나 반미가 주는 무거움에 스스로 눌려 늘 나만의 반미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이런 움츠림은 일에서도 나타나, 미국 관련 기사는 다 써놓고도 개인 피씨에서 잠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미국 주둔 62년 동안의 10만 건이 넘는 주한미군범죄를 일일이 상기시켜주는 글은 너무 장황한 것이 아닌가 라는 자문을 던졌고, 소파(SOFA)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은 너무 딱딱하다고 스스로 평가를 내렸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이걸 누가 모를까.. 라는 회의를 가졌고, 또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이런 것에 누가 관심을 가져라고 물러섰다. 그런데 올해초 나는 우리 사회에서 무거운 반미가 가벼운 위치로 순식간에 변신하는 모습을 목도했다. 바로 오노에 의해 촉발된 젊은 층의 반미운동. 수십년동안 은밀하게 유통되어온 반미라는 구호를 저렇게 노골적으로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는가를 지켜보는 것은 분명 충격이상이었다. 그러나 애써 나는 저것은 반미가 아니라고 해석하려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반미는 저렇게 가벼워서는 안됐다. 그건 즉흥적인 값싼 민족주의였고, 깊이없는 유행이었다. 그러니까 반미는 금메달을 되돌려달라는 단순한 요구일 수는 없는 것이었으며, 반미는 축구선수의 골 세레머니로 상징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반미는 무겁고 심각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요즘 반미를 새로 배운다. 길거리 여기저기 난잡하게 붙은 <미군 개새끼들아,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에이포 용지를 통해서 나는 겁없는 반미를 읽는다. 메신저에 붙은 리본과 삼베를 보면서 나는 가까이 있는 반미를 느낀다. 미국상품불매운동을 하자고 하고, 007영화를 보지 말자고 외치는 네티즌을 통해서 나는 생활 속의 반미를 느낀다. 시위대 현장에서 내나라는 내가 지킨다고 외치는 고등학생을 보면서 나는 당돌한반미를 본다. 혹자는 이를 여전히 유치한 감정 표현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반미의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한다. 그 많은 미군 범죄에는 조용하다가 눈에 드러나는 사건에만 냄비처럼 끓는다고 한다. 외교부 고위 관리는 지금의 반미를 한줌의 소란이라고 외국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우리의 법무장관은 여중생 사망 사건의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언을 한다. 그리고 좃선일보는 국익을 위해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벌어지고 일련의 반미 행동을 통해 민족주의나 감상적인 반미보다는 또 다른 그 무엇을 본다. 그것은 내 후배들의 자신감이다. 비록 메신저에 삼베를 다는 친구들은 선배들보다 미국의 본질에 대한 학습을 덜 받았다해도, 분명히 선배보다 더 자신감에 차있다. 반미를 소주집 안주로 조근거리는 대신 소주집에 출입한 양키에게 퍽큐라고 말한다. 선배들이 학습을 통해 미국을 배우고, 거꾸로 그 거대한 실체를 알면서 패배주의를 느꼈다면 지금의 후배들은 단순하게 미국을 바라본다. "너희들도 이득이 되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거라면, 제대로 행동하라. 안그럴거면 가 버려라" "사람을 죽여놓고 가해자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 미군은 나쁜놈이다" 이런 단순한 논리의 근저에는 미국이라는 실체가 중심에 자리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상식이라는 사고가 중심에 위치한다. 미국이어서 미국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이지 않아서 미국을 싫어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미국에 대한 공포가 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짓을 한다면 미국 아니라 미국 할애비라도 그들은 당당하게 외칠 수있다. 한국이 하나의 국가 주체이듯이 미국도 똑같은 하나의 국가주체다. 그렇다면 둘의 거래는 공정해야 하고, 그렇치 못하면 반칙이다. 반칙을 한다면 니들은 우리나라에 있지 말아라... 상식을 기반으로 한 이들의 반미는 잘난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찰 만큼 경박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경쾌한 것이며, 두려움 없는 이들의 반미는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실천력이 있는 것이다. 유전된 피해의식이 없는 다윗들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시대가 변하고 풍속이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한다. 우리의 반미도 이제 골방 속에서 밖으로 나와 이데올로기의 틀을 벗어 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단순한 상식이 들어간다. 가벼운 반미가 어디있고, 무거운 반미가 어디있으랴. 지 실속 차리느라 남의 나라 알기를 엿으로 아는 넘들앞에서 자기 목소리 당당히 내는 것이 바로 반미지. 우리 팅팅할까 라고 말하는 씨에프 처럼, 우리 반미할까 라고 말하는 후배들이 나는 너무나 자랑스럽다. 부시의 허접한 사과를 립서비스로 볼 줄 아는 후배들의 식견이 경이스럽다. 그러므로 후배들아, 힘들내시라. 누가 뭐라해도 니덜이 잘 하는 거다. 탄력 붙을 때 화끈하게 달려 소파를 개정하든, 본국으로 달아난 두 마리 군 바리를 다시 법정에 세우든 하여간 뭐 하나는 건지자. 부시가 직접 나서 대한국민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주장은 또한 어떠랴? 세계를 놀라게 한 시청앞 붉은 악마가 자생적이었듯, 이 시대의 반미 역시 니덜은 니덜 방식대로 해야 옳다. 딴지386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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