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우리는 광화문에서 아테네를 보았지 2002.12.02.월요일
서기 2002년 11월 30일 밤, 우리는 아테네를 보았다.
>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는 2500년 만에 아크로폴리스가 아닌 대한민국 서울시 종로구 서린동 광화문에서 다시 부활하였다. 이날 광화문에서는 주연도 없었고 조연도 없었다. 특별한 기획자도 없었고 운영자도 없었다. 선동도 없었고 계획된 결론도 없었다. 발언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제공되었으며, 의사결정은 아테네에서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다수결에 의해 이루어졌다. 무려 1만명이 집결한, "시위 집회"라고 불리우는 광화문에서 아테네는 이렇게 화려하게 부활했다. 발단은 한 네티즌이 우연히 올린 게시판 글에서 출발하였다. 촛불 하나 들고 광화문에 모여서 죽은 여중생을 추모하자는 글이 이 짧은 글의 전부였다. 글 쓴 당사자조차도 자신의 글에 얼마의 사람이 모여들지, 또는 모여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모니터에는 막연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인터랙티브한 디지털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이 글은 봉화의 불로 당겨졌다. 연말을 앞둔 토요일 저녁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매서운 겨울 바람에 사과처럼 발갛게 상기된 소년 소녀, 학교에서 바로 온 듯한 교복입은 중고생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이들은 즉석에서 앰프를 빌렸고 그 자리에서 사회자를 뽑았다. 프로그램이 없었기에 모든 것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가진 것은 촛불 한 개씩과 공동의 마이크 한 개 뿐이었지만 광화문 아테네 시민들에게는 "非상식"을 거부하는 열정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이 거대한 재산은 세 시간 동안 마이크 하나로도 성대한 공연을 연출하는 힘이었다. 말 하고자 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자기의 의견을 발표했다. 쌓였던 울분을 가슴으로 토로했고 함께 할 무언가를 호소했고, 향후 집회 일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미선이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남자도 있었고, 부시에게 직접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여자도 있었다. 듣는 사람은 뜨겁게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집회 분위기는 월드컵 거리응원의 풍경을 많이 닮았다. 전경만 없었다면, 때때로 미선이와 효순이를 위한 묵념에 흐느끼는 울음이 없었다면, 붉은 머리띠와 확성기와 그 흔한 운동가요조차 없는 이 현장을 아무도 무거운 집회 현장이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축제였다. 고인을 애도하면서도 제 2의 사고를 없애야 한다고 외치는 뜨거운 열기는 추/모/의 축제였다. 다수를 차지한 20대들의 패션은 세련됐으며, 30대들의 발걸음은 경쾌했고, 드물게 보이는 중장년의 표정도 어둡지 않았다. 여느 집회장에서 보여지는 칙칙함과 어두움이 있었다면 그건 오직 전경들의 군복과 방패의 블랙톤 뿐이었다. > 나는 묻고 싶다. 누가 감히 이들에게 이성적이지 않다고 했는가? 평화적인 촛불 시위 현장에서는 비폭력의 구호가 늘 함께 했다. 그 시위를 오히려 자극하는 경찰의 과잉진압에 몇몇의 시민들이 전경 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렸을 때 이들은 "아저씨 그러지 말아요!!" 라고 울부짖었다. 우리 경찰이 우리를 막고 있는 현실은 슬프지만 전경들 역시 우리편이라는 측은지심이 집회 내내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누가 감히 이들에게 불온한 반미주의라고 경계하는가? 반미는 광화문 이쪽 저쪽에 우뚝 선 타락한 신문사 사설 속에만 존재하는 어려운 용어였다. 광화문 현장에서, 즉흥적인 토론회에서도 이 어려운 용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백주대낮에 사람을 치어죽이고도 무죄판결을 받는 이 어처구니 짓거리에 이들은 분노했고 그 판결을 가능케 한 불평등 조약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 이들이 외친 서툰 구호의 전부였다. 이것도 굳이 반미라고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반미라고 하자. 하지만 광화문 반미에는, 반공과 반미를 부각시켜 친공과 친미와의 또 다른 사회 분열을 야기시키려하는 좃선일보식 빌어먹을 반미와는 그 차원이 다름을 확실히 하자.
빨강옷을 입었으니 빨갱이고 이런 글을 썼으니 반미인가? 누가 감히 이들에게 생각없는 철부지라고 떠들어대는가? 그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현실 속의 정치인을 거부했다. 이런 자발적인 모임이 대선을 앞둔 현실 정치인들의 수단으로 쓰여질 수있는 것을 경계했다. 그나마 이 현장에 나타난 진보적 정당의 대선 후보자에 대해서도 이들은 그다지 큰 환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제도권 언론을 비판했다. 카메라 기자와 취재기자들에게 앞으로 똑바로 하라고 질타를 가했다. 처음에는 다들 관심도 안 갖다가 지금에야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야유했다. 앞에 버티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말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며 치워달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우리의 외교력을 경멸했다. 어처구니 없는 무죄판결에 대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냐고 분개했다. 우리의 정부가 자주적인 정부인 것이 맞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은 스스로를 반성했다. 월드컵에 정신이 팔려 이런 자리를 이제서야 만들었다고 자책했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한 번 월드컵 때처럼 하나가 되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리고 누가 감히 이들이 미선이와 효순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하는가? 광화문에서 마이크를 잡고도 미선이와 효순이가 떠올라 그저 흐느끼기만 하는 여중생의 울음소리를 들어본다면, 그리고 울지마 울지마 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애끓는 위로를 들어본다면 그런 소리야 말로 고인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모독일 뿐이다. 또 누가 감히 이런들 뭐가 달라지냐고 새된 소리를 하고 있는가? 아아.. 이 어쩔 수 없는 세뇌된 패배주의자들이여. 거기서 단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채, 모니터 저쪽에서 몰래 키보드질만 하는 너희들이야 말로 입 꽉다문 조개의 운명을 맞이하리라. 입다문 조개가 석탄불 위에서 안주의 팔자로 구워지듯, 패배주의자의 결론은 남의 나라가 구워대는 불판에 조리되는 운명을 맞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누가 감히 이들에게 냄비라고 입을 놀리는가? 냄비는 무슨 일만 벌어지면 냄비 타령을 해대는 씹숑, 바로 네놈들이다. > 이날 광화문 아테네의 주역, 찬란한 네티즌들을 나는 <당당 제너레이션>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지난 6월 거리로 뛰어나와 국민을, 세계를 감동케 한 주인공들이 바로 이 당당세대들이다. 월드컵 거리 응원이라는 엄청난 공동의식을 치르면서 이들은 스스로 고무됐고, 가능성을 발견했고, 어두운 역사와 절연했고, 자기 세대에 대한 암묵적인 자부심을 소통했다. 이 힘이 오늘 이어져 광화문 아테네를 만들었다. 누가 말했던가. 월드컵 열기는 국가주의이고 집단의식이었을 뿐이라고. 월드컵의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아테네도 불가능했다. 그것은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이들을 칭송하고 또 칭송한다. 질곡과 우울의 역사에 조금도 감염되지 않은 저 깨끗한 영혼에 감사의 찬가를 바친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과 기성세대들은 이제 매주 토요일 벌어질 이 축제 같은 시위에 학습의 마음으로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독점했던 마이크가 저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한다. 현장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현장에서 지식과 경험을 새롭게 세례받아야 한다. 그 이후 저들의 자신감 위에 올바른 방향 설정의 기름을 부어줘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세대가 외면하지 않을 선배 세대의 역할이다. 그리고 나는 광화문 아테네 시민들에게 부탁한다. 당당 세대로서의 자신감은 그대로 가지되, 이 모든 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끌었던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형들 세대의 땀과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절대로 잊지 말았으면 한다. 과거의 해체는 모든 피해의식과 열패감의 해체이지 전면적인 역사의 부정은 아니다. 고대사를 부정했기에 근대사가 보잘 것 없었고, 근대사를 부정했기에 현대사 역시 내세울 것이 없었던 우리 역사 찬탈의 경험은 선배 세대들이 이미 지불한 값비싼 수업료이다. 그러나, 당당하고, 당당하고 또 당당하라. 상식 위에서 당당하고, 당당하고 또 당당하라. 미국, 통일, 타락한 정치와 지역감정 등의 유산은 상식을 기반으로 한 당당함에서 오르지 못할 산이 아니다. 그저 정상에서 한 바탕 신바람난 춤사위를 벌이기 위한 몇 개의 언덕일 뿐이다. 광화문 아테네를 밝힌 1만개의 촛불은 미국 문제를 넘어 미래를 밝힌다. 그래, 너희 진짜로 멋진 놈들이다!! 광화문 현장에서 뜨겁게 울어버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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