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직장생활 2년차의 <빅> 관람기 2002.11.10.일요일 직장생활 2년. 사람들은 이 시기를 직장인 사춘기라고 부른다.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 질풍 노도를 겪는다나... 내가 1년 차 때만 해도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할 때 우스개로 듣고 걍 웃어 넘겼다. 그런데 씨바, 2년 차가 되고 보니 정말 그런게 아닌가. 자아정체성 혼란, 질풍 노도, 세상에 대한(사실은 직장에 대한) 반항심 등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 정말 중고딩 시절 사춘기 증세와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머리가 굵었으니 어쩌랴, 중고딩 때야 뜬금없이 하늘 쳐다보며 울어도, 이유 없이 반항해도 성장기라 그러려니 이해 받았지만 이제는 얼굴한번 잘못 붉혀도 상사한테 눈치 팍팍 받고, 동기한테 오해받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을. 사춘기 직장인의 토요일 오후, 일요일 뒹굴 뒹굴 지내는 게 지상 최대의 낙이다.지지난 토요일인가, 집에서 방바닥을 마구 뒹굴면서 리모콘을 만지작 만지작 하다가 헙! TV에 휠~이 꽂혀 버렸다. 바로 나의 어린 시절을 장식했던 <Big>이 하는 게 아닌가...(우리집 케이블 티비 나온다.)
<Big>. 얼마나 가슴 설레는 영화였던가. 당시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각종 신기한 장난감들(완구점의 발로 밟는 피아노! 그거 생각 안 나는 넘 없지? 진짜 해보구 싶지 않았냐?)과 더불어 덤블링과 자판기, 핀볼 게임기가 집에 있는 죠쉬(쥔공 이름)의 아파트, 게다가 아이들에게는 금단의 유희인 파티와 이성교제에의 묘사! 이 모든 것들을 종합선물세트로 만들어 어린 시절 환타지를 마구마구 채워주던 그 영화 <Big>이 아니던가. 더더군다나 <Big>은 1988년 작! 내가 좋아하는 탐 행크스를 이보다 더 뽀샤시 할 수 없다 상태로 볼 수 있고, 13살 어린애가 따로 없을 만큼 너무 연기를 잘해 감동 먹었던 그 연기력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정말 정말 연기 잘한다. 나는 어린 시절의 그 향수 속으로 푸~욱 빠질 요량으로 편안한 자세로 TV 화면에 열중했다. 그런데 명작은 세월을 두고 새로운 교훈을 던져준다고 했던가? 13살 어린 죠쉬의 입장에서 보았던 <Big>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다시 봐도 재미있고 좋은 영화였으되 내가 본 것은 15년 전의 그 <Big>이 아니었다.(역시 명작이었던 것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케이블 티비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휠 꽂혀서 보기 시작 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영화를 보진 못했다. 그런 내게 그렇게 흡인력 있게 휠~을 팍! 꽂은 장면은 어른으로 변한 죠쉬가 집에 들어갔다가 엄마한테 쫒겨나고 여관방을 구해 들어간 첫날 밤, 밖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서럽게 엉엉 우는 장면이었다. 어찌나 내가 요새 느끼는 감정과 똑같은지...
나도 죠쉬처럼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아니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았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어린애인데 엄마, 아빠 그리고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나를 낮선 사람 취급하며 어른으로 자리잡고 어른의 역할을 하기를 강요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는 어린애의 상태로 뚜렷한 비전 없이 그리고 정신 없이 직장을 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취직한 직장에서 상사에게 영문도 모른 채 엄청나게 혼난 그 날. 그래 그 날 나는 죠쉬처럼 이불을 돌돌 두르고 방문을 꼭 닫은 채 엉엉 울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어른이 된 죠쉬가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갑자기 어른이 된 나보단 훨씬 상황이 나아 보인다. 죠쉬는 그 당시 미국이 정말 호황이었는지 갑자기 어른이 되어서 직장을 구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바로 직장을 구해 버리고 주변인들이 놀멘 놀멘하는 상황에서 그들보다 조금만 더 성실히 일을 하니 인정을 받아 버린다. 게다가 우연히 자신의 적성에 꼭 맞고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버려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까지 한다. 나는 불경기 중의 불경기인 2000년에 갑자기 어른이 되어서 길거리로 쫓겨났다. 졸업 전에 취직을 하고자 나의 의지나 흥미에 대한 아무 고려 없이 일단 취직만 하자는 일면으로 몇 십 군데에 원서를 넣었고 그 중 또 몇 십 군데에 서류부터 미역국을 먹으며 겨우 몇 군데 면접도 감지덕지한 심정으로 개겨 본 결과, 어떻게 취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그래도 나는 직장을 구했으니, 운이 좋은 Case에 속한다.) 사람들은 짤릴까봐 두려워서 다들 미친 듯이 일하고 나도 한 번 인정받아 보려고 열심히 일해 보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주기는커녕 잡초 밟듯 밟기만 한다.게다가 내 일을 좋아하기는 하는가? 나는 내 일이 뭔지도 모르고 취직했던 것이다. 죠쉬는 자신이 컴퓨터 게임과 덤블링, 장난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어른으로서의 죠쉬는 신제품 완구 개발이 좋아서 그것에 미친 듯이 매진하는 일을 사랑하는 직업인이 아니던가! 하릴없이 몸만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알지도 못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방금 태어난 아기들도 아는 것을 여태 모르고 목적의식 없이 방황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새로이 <Big>을 보면서 참 흥미로웠던 부분 중에 하나는 어른의 몸을 하고도 어린애의 행동양식을 버리지 않던 죠쉬가 갑자기 어른인척 하는 바로 그 시점이다. 죠쉬가 갑자기 비서에게 커피를 달라고 하고 방문 앞의 Do not Enter를 떼어버리며 어른 세계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그 시점은 바로 그녀와 xx(얼레리 꼴레리)한 다음 날이 아니던가!!! 참 웃긴 게, 이게 현실세계에서도 적용된다는 거다. 회사만 끝나면 미친 듯이 술 푸고 지들이 학생인양 놀아대던 총각 사원들, 장가가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거 어디 한두 번 목격하는 일인가. 얼운이 어른의 옛말이라 더니, 거참 옛날 사람들 똑똑했다. 아직 아이인데, 어린앤데, 어린애의 세계와 영원히 결별해야 하는 때가 바로 남친과 여친이 생겨 버릴 때, 가정이 생겨 버릴 때인데. 더 이상 어린애가 우기며 물러설 한치의 틈도 없이 벼랑 끝에 완전히 몰려 버리는 그 서글픈 시점. 자신이 어른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맹렬히 어린애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 등치만 커 버리고, 나이만 먹어 버리고, 정신연령은 지극히 낮은 나는 이러한 욕망을 직장생활 2년 동안 수도 없이 느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Big>은 바로 그런 점에서까지 나에게 교훈을 남기며 약해진 마음에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떨궈 내었다. 드됴 졸타 기계를 찾아 어린애로 돌아가겠다라는 소원을 빈 죠쉬에게 얼레리 꼴레리 그녀 수잔(엘리자베스 퍼킨스 분)이 찾아오고, 죠쉬는 "함께 갈래요"하며 졸타 카드를 보여준다. 그러자 가짜 어른 죠쉬가 아닌 진짜 어른 그녀가 하는 말. 이미 한 번 겪은 일을 다시 겪을 수는 없어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찌 그렇게 구구절절 옳은 말인지... 돌아가고 싶지만 이젠 몸도 마음도 벌써 다 어른이 되어 버려 이제 다시는 어린아이로 살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그녀가 조목 조목 예쁜 입을 벌려 이야기 해주는 데 어찌 감동하지 않을 소냐. 하지만 2002년 오늘의 나는 식사 매너 없는 우리회사 모모 팀 모모 대리가 생각나서 뒤통수를 한 번 때려주고 싶었으니, 그 순간에 나는 이미 내가 다시는 어린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만 했다. 그 존나게 슬픈 진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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