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헤드윅>에 나타난 자본주의 2002.11.15.금요일
아들의 눈을 고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미국에 온 셀마. 그 이는 공산주의 사회인 고향이 살기에 더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 곳에선 고칠 수 없는 병이 자신과 아들에게 생겨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온 겁니다. 온갖 상품이 항상 넘쳐나는 자본주의 대장 나라 미국에 말입니다. 그 곳에선 병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나 문제는 돈이죠. 아들의 눈을 고칠 돈을 벌기 위해 셀마는 정말 힘들게 일하지만 결국 그 돈 때문에 그 이는 죽음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셀마가 자기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만들고 싶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름이 진(Gene)이었죠, 아마. 그런데 말입니다,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을 보면서 왜 이 영화가 바로 그 아이, 진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래서 그 얘기를 해 볼까 하는데 저를 따라와 보시렵니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바로 맞닿아있는 곳. 헤드윅(Hedwig, 이거 Wig Head 란 말이겠죠, 아마도)은 그 곳 동베를린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인민의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사회주의 동독에서 헤드윅은 결코 행복하다 할 수 없었죠. 어린 시절 GI에게 성폭력을 당하기까지 했었으니까요. 그런 그에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Rock 음악들을 통해 간간이 접할 수 있었던 자본주의, 특히 미국의 화려함은 참으로 큰 위안이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헤드윅은 마침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듭니다. 그 유혹이란 별 것도 아닌 바로 구미 베어(Gummy Bear: 곰 모양으로 만든 구미)와 캔디 바. 아시다시피 구미나 캔디는 신체 및 치아 건강에 하등 쓸모가 없지만, 아니 오히려 해롭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짝지근하고 쫀쫀한게 맛있잖아요. 마치 달콤하고 짜릿하지만 건전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자본주의와 그 상품들의 유혹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진은, 아니 헤드윅이죠. 어쨌든 그는 자본주의를 선택합니다. 바로 어릴 적 그를 성폭행 했던 부류의 사람과의 결혼을 통해 그 선택을 현실화시키게 되죠. 그러나 자본주의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헤드윅은 결혼을 약속한 흑인 상사의 권유에 따라, ...짜릅니다, 그걸. 6인치나 되는 커다란 물건을. 그런데 말입니다, 요사이 우리가 동구권의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일은 결국 실패한 실험이 되고 맙니다. 1인치가 남고 말죠. 그리고 그건 성난 1인치(The Angry Inch)가 되었답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기 위해, 고달픈 현실을 피하기 위해 할 수밖에 없었던 성전환. 그렇게 호된 대가를 치르고 선택하였건만, 자본주의에서 나고 자란 사내는 금새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그녀의 단물만 빨아먹고 배신을 때립니다. 그것도 웬 철부지 어린 녀석과 바람이 나서 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냉정한 현실에 홀로 남겨진 그녀, 이젠 돈을 벌어야 합니다. 닥치는 대로 잡일을 하며 간간이 고달픔도 달래고 용돈도 보탤 겸 노래를 부르죠. 처지가 별 다를 것 없는 또래의 언니들과 함께. 헌데 그 언니들은 다름 아닌 GI와 결혼 해 미국에 온 남한의 여인네들이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처음 만났던 자본주의 사회 하층민인 흑인 상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상층민을 만나게 됩니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언제나 넉넉히 살아가는 이들의 집에서 일하다가 권력자 집안의 아들이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노시스(Gnosis)와 마주치게 되죠. 어느 사회에나 있다는 하층민은 지배계급의 평가에 따르자면 워낙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이라 아무 죄책감 없이 그녀를 배신했겠지만 항상 여유롭게 살며 신을 섬기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윤리와 상식을 가지고 행동할 것 같았는데 웬걸, 그 녀석도 역시나 헤드윅을 배신하고 게다가 지배계급의 아들답게 그녀가 그 동안 피땀 흘려 이루어 놓은 성과물을 몽땅 가로챕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두 사내에게 몸과 마음 그리고 땀까지 몽땅 빨리고 만 그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죠. 몸도 팔았답니다. 그러면서 복수를 결심합니다. 노시스 녀석이 그녀의 노래를 제 것이라 우기며 큰 성공을 거두는 꼴만은 결코 두고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게 아니면 그녀는 너무 순진해 그때까지도 그를 못 잊었던 건지 모릅니다. 그래서 쫓아가죠. 자신을 집요하게 좇는 헤드윅의 자취가 코앞에까지 다가온 순간 불현듯 노시스 녀석이 그녀에게 찾아옵니다, 용서를 빌고 싶다며. 하지만 그것도 역시나 그녀를 안심시켜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하게 만들려는 교묘한 술책이었는데, 아주 우연히 그 의도는 실패하고 맙니다. 교통사고가 나죠. 그런데 그 일로 인해 헤드윅은 일약 뜨게 됩니다. 인기스타와 함께 있었던 성전환 여자라는 이유로. 가볍고 말초적인 문화의 대명사, 대장 자본주의 나라 미국의 뉴욕에서 스타가 된거죠. 하지만 그네들이 듣거나 보고 싶어한 건 그녀의 고뇌와 절규가 절대 아니죠. 그들이 요구한 건 그저 우스꽝스럽고 희한한 모습의 광대일 뿐이었습니다. 헤드윅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말 황당하게도 노시스 녀석이 다시 그녀에게 나타납니다. 왜? 그녀에게 다른 이들이 요구하는 그런 외피를 쓰고, 나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자 꼬시려고 나타난 거죠. 그녀의 대답은? 어느 날 밤 어두운 무대에 오른 그녀는 그간 자신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뒤집어 써왔던 탈들을 벗어 제낍니다. 볼록하게 솟은 가짜 가슴을 끄집어내어 버려버리고, 항상 소중히 머리에 쓰던 가발(Wig)은 훌렁 벗어 다른 이에게 줘 버리죠. 그렇게 그녀는, 아니 그는, 아니 성별이 문제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우뚝 서서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칩니다. 나 이제 돌아가리라고, 내겐 아직 성난 1인치가 남아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발가벗은 채 거리로 나갑니다. 그 거리는 아직도 어둡고 적막할 뿐이지만 그래도 꿋꿋이, 그 사람은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갑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진, 아니 헤드윅, 그도 아니면 나 자신일 수도 있는 그 이의 발걸음이 잘 갈 수 있을지, 어디로 갈지, 헤드윅이 어둠 속에서 부르던 다음 노래를 들으며 한번 생각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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