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 서포터스로 남아달라! 2002.11.10 일요일
축구장의 애물단지이자 골칫거리인 훌리건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초. 그때 영국은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사회복지는 축소되고, 빈부격차는 심화되면서 실업자와 빈민층이 먹고살기 죽도록 힘들었다. 비참한 삶에 대한 분노는 경기장 난동으로 표현됐고, 그 울분을 토해낸 곳이 다름 아닌 축구장이었던 것이다. 1963년 리버풀의 더 콥(The Kop)을 시발점으로 조직화된 서포터들이 속속 생기면서 축구장에서의 폭력은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극우성향을 지닌 청소년들인 Skinheads가 축구장에서 각종 폭력을 일삼으면서 오늘날의 훌리건이라는 개념이 완전 확립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훌리건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실 어원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첫째, 1898년 런던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켜 체포된 젊은이들을 가리켜 영국 신문들이 처음 사용했다는 설. 둘째, 19세기말 런던의 악명 높았던 아일랜드 출신의 부랑아 패트릭 훌리한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설. 셋째, 갱단의 이름인 훌리 갱(Hooleys gang)이 와전됐다는 설. 넷째, 비슷한 시기에 슬라브어와 러시아어에서 같은 단어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훌리건이라는 단어가 동유럽에서 영국으로 흘러들어 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가장 그럴싸하다고 생각되는 설 하나만 콕 찍어라.
요란뻑적한 축제 한마당이 일순 생지옥으로 변해버린 헤이젤 참사를 기억하는가. 그럼 영국 훌리건들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첫 손 꼽히는 헤이젤 참사 현장으로 안내하겠다. 1985년 5월 29일 영국의 리버풀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는 유럽 챔피언을 가리는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맞닥뜨렸다. 중립국 원칙에 의해 경기가 열린 곳은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Heysel) 스타디움. 최정예 훌리건들이 포진한 양국 응원단은 경기 전날부터 각목과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는 등 시내 곳곳에서 충돌했다. 그리고 다음날 축구장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문제의 발단은... 벨기에 축구팬들에게 배정되어 있던 관중석 중앙 중립지역을 암표상들로부터 표를 구입한 유벤투스 팬들이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한쪽 골대 뒤에 앉은 리버풀 팬들 바로 옆에 유벤투스 팬들이 앉는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됐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1년 전 사건이란... 84년 로마에서 열린 유러피언컵 결승전을 말한다. 이 경기에서 리버풀이 예상을 뒤엎고 AS로마를 꺾고 우승하자 이탈리아 팬들은 원정응원간 영국 팬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다. 이 와중에 13살짜리 영국 소년은 얼굴 부위에만 200바늘을 꿰매는 등 갈가리 찢기는 참사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투석전은 전면전으로 비화됐고, 리버풀 팬들은 바로 옆에 앉은 유벤투스 팬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서로 도망치기 위해 통로 쪽으로 몰리는 과정에서 7m짜리 콘크리트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이 사고로 39명의 유벤투스 팬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45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참극은 TV를 통해 생중계 됐다. 결국 이 비극으로 주동자인 훌리건 26명이 철창 신세를 지게 됐고, 유럽축구협회(UEFA)가 향후 5년 간 모든 영국클럽들의 유럽에서 치러지는 공식경기 참가를 금지시킴에 따라 영국의 축구 수준은 급전직하했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리버풀은 경기 전 유럽축구연맹에 경기장 변경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건설된 지 60년이 넘어 낙후된 헤이젤스타디움은 훌리건들의 폭동이 예상되는 대규모 국제경기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오랜만에 옳은 소리 한 번 한 것이다. 근데 유럽축구연맹은 이를 간단히 묵살해 버렸다. 쯧쯧,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훌리건들의 악명을 널리 떨친 주옥(?)같은 사건·사고들을 쭈욱 나열해 보겠다.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시라.
근데 요즘 불거진 몇몇 사건들을 들춰보면 자신있게 No라고 말하기는 곤란한 거 같다. 몇 가지만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얼마전 야구장 관중석이 활활 불타오른 사건을 기억하는가. 지난 1일 LG와 기아의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최종전이 열린 광주구장은 홈팬들의 불놀이로 순식간에 화재현장으로 변해 버렸다. 쌀쌀한 날씨에 꽁꽁 언 몸을 녹이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난로불을 땠을 뿐이라고 아무리 변명을 늘어 놓아도 소용없다. 하마터면 인명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으니까. 극렬 훌리건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들에 비하면, 불타는 야구장에 비하면 울 나라 프로축구 서포터스가 일으킨 사고들은 그냥 앙증맞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냐구?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거 모르나? 잠시 훈풍이 거쳐갔다 다시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는 프로축구 경기장을 장마가 오나 태풍이 부나 굳건히 사수하고 있는 서포터스들의 노고 모르는 바 아니다. 근데 아직 축구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작금 상황에서 서포터스가 훌리건화 되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점이라 하겠다. 서포터스여! 영원한 서포터스로 남아달라. 딴지 스포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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