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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 18금 판정, 어떻게 봐야 하나?

2002.11.1.금요일
딴지 게임부 CZ75


딴지 독자들이여, 오랜만이다. 기억하실 지 몰겠다만, 본인은 딴지 영진공에 토토로에 대한 감상문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cz75다. 그동안 본 우원, <리니지>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게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데 아주 그만이더라는 거 아니냐. 글타. 본 우원 사람심리 연구하는 먹물이다.


하나의 리니지 게임 세계에는 보통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몬스터도 사냥하고, 전투도 하고, 아이템 장사도 하고, 지들끼리 수다떨며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며 노는 게 바로 리니지다. 이런 세계가 울 나라에만 38개가 있다. 여기 들어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인간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실험실에서 수십번 실험을 해본 것 보다 인간에 대해 더 많은 지식과 이야기 꺼리를 가져다 주더라.



그런데 최근 이 <리니지>가 18세 이하의 인간들이 들어가서 놀기에는 부적합한 공간이라는 판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뭐 나야 30이 넘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이 판정의 근거는 인간 연구자의 눈으로 보기엔 솔직히 골 때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함 따져보려 이 글을 쓴다.
 


 인터넷과 범죄, 과연 관계가 있긴 하나?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그 주인공이 자살한 다리에서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부각되었을 때부터, 어떤 소설이나 음악이나 영화나 게임을 보면 그로 인해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바뀔 거라는 믿음은 계속 되어왔다. 하지만 미디어와 청소년(혹은 아동)의 행동간의 인과관계를 검증하려던 수많은 연구들의 결론은 둘간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은 우리나라 대검찰청에서 만든, 89년부터 2000년까지의 청소년범죄율 통계다. 보면 알겠지만, 폭력/강간 등의 강력범죄는 94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했으며 현재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97년 이후에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계속 더 비폭력적이고 덜 위험해지고 있다. 외환위기로 기존의 사회체계가 흔들리던 시기에는 모든 범죄가 다 늘어났지만, 최근 들어 다시 낮아지는 추세다.



출처: 대검찰청 <범죄분석>, 전체 범죄자중
12세 이상 20세 미만 소년(군인 제외) 범죄자 비율


만약 PK가 폭력을 조장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리니지뿐 아니라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에는 모두 PK가 있지만, 일단 리니지만 놓고 보자. 리니지에서는 아마도 매일 최소한 수천 건의 PK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한 달이면 수만 건이고 일년이면 최소 수십 만 건이다. 전체 리니지 사용자중 절반에 가까운 120-130만 청소년이 그 PK에 노출된 지가 벌써 2년이 넘어간다. 정말로 PK가 폭력을 조장한다면, 청소년 범죄율이 계속 떨어지는 작금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혹시 일본의 만화나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가? 일본에서는 중학생용으로 나온 만화도 울나라에 오면 19세 이하 금지가 되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한때 울나라에서 일진회라는 학교폭력조직을 파생시킨 원흉으로 지목된 만화도 원래 일본의 중고등생 대상 만화였다.


자, 이렇게 음란하고 폭력적인 만화에 파묻혀 사는 일본의 청소년들은 최소한 울나라 청소년들보다 더 폭력적이고 위험해야 하겠지? 그런데 사실은 정 반대란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울나라 청소년들이 일본 청소년보다 3배나 많은 강도나 강간 범죄를 저지르고 있단다. 이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일본만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서구 선진국들을 둘러 바라. 청소년에 대한 규제는 나라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매체물에 대한 규제가 우리나라보다 널럴한 그들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청소년 범죄율이 높은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말하면 이성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심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분명히 최근 들어 게임 관련된 청소년 범죄 뉴스가 많아졌는데, 그건 다 뭐란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현실공간에서 범죄를 저지를 놈들이 사이버공간으로 자리를 옮겨간 것이다. 덧붙여, 현실공간에서는 범죄자들이 지역적으로 자기와 가까운 주변사람들에게만 해를 끼치지만, 시공간의 제약이 적은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서 훨씬 빨리, 많은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사건으로 보도되고 주목을 받을 수는 있다. 그리고 같은 범죄라도 단순히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더 많은 뉴스가치를 지니고, 그래서 더 많이 보도된다는 점도 계산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리니지 때문에, 혹은 온라인게임 때문에 청소년들이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광주민중항쟁의 배후에는 빨갱이가 있었다"는 어떤 또라이의 신문광고와 마찬가지로 지 꼴리는 대로의 감에 근거한, 비논리적인 주장일 뿐이다.



 리니지는 PK가 많아서 비교육적이다?


리니지는 PK(게임안에서 상대방캐릭터를 죽이는 행위)를 허용해 무조건 다른 사람을 이겨야한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청소년에게 심어준다(전교조, 전국학부모회 등)며 리니지 18금 처분에 찬성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무조건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가치관, 리니지 못하게 하면 이거 사라질까? 아니, 리니지 이전에는 이런 생각이 없었단 말이냐? 만약 이게 문제라면 내신등급을 중시하는 현행 입시제도야 말로 진짜 18금 꺼리 아닌가? 그뿐이랴, 신념이고 정책이고 상관없이 대빵 될 것 같은 놈한테 붙어먹는 김민석이도 사실은 <리니지>를 많이 해서 그렇게 되었단 말이냐?


무조건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은 리니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이고 우리 학교다. 왜 그걸 리니지 탓으로 돌리나?


오히려 리니지에서는 무조건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가치관이 존재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아무도 무조건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리니지에서 절대강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PK를 한번도 안 당하고, 남을 PK만 하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사무실 차려놓고 전문적으로 PK를 하는 프로들은 예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간들은 전체 리니지 사용자를 놓고 보자면 극히 일부일 뿐이다. 


물론 리니지에서는 누구나 강해지려고 한다. 강자가 되기, 그것이 아마도 리니지를 하는 모든 게이머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남을 PK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내 통제력을 조금 더 가져보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리니지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강자가 된다는 것은 무술인들의 공통된 가치이다. 우리 같은 학자들 역시 결국 자기의 학문이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힘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하려고 공부를 한다. 강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란 말이다. 


진짜 비교육적인 건 사회의 문제에 대해 리니지 같은 희생양을 찾으려는 태도다. 이것은 자기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태도이고, 자신을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수동적인 존재로 비하시키는 비굴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수업시간에 졸다가 자기를 깨우는 선생을 뚜드려 패고서는 리니지 게임 속 몬스터로 착각해서 그랬다는 또라이가 하나 나타났단다. 근데 이게 리니지 때문일까, 아니면 리니지 탓으로 돌리는 어른들의 태도 때문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놈은 지가 잘못해 놓고서 남 탓을 하는 걸 어디선가 배운 것이다. 이런 놈은 지가 잘못되면 나중엔 부모 탓을 하고, 나라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할 놈이다. 어떻게 평소에는 청소년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도 않던 인간들이 이따위 변명은 곧이곧대로 믿어주는지 난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리니지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재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리니지는 그 중독성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규제를 할 수밖에 없다고. 이 논리대로라면 결국 리니지의 문제는 리니지의 인기 그 자체에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거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거 알고들 있나? 사용자수 최대 300만, 동시접속자수 20만이라는 수치는 이 나라의 인구규모를 생각했을 때 영화 <친구>가 8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리니지 같은 게임은 절대 나올 수 없다는 말도 그래서 일리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는 영등위가 리니지를 18세 이용 불가로 정했다는 사실은 개발사 엔씨 소프트로서는 영광스런 사건일 수도 있다. 국가에서 손을 써야겠다고 나설 정도로 인기가 있을 게임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함 생각해 보자. 이 작은 나라에서 아마도 약 250만 명이 거의 매일 몇 시간씩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넓은 규모로 깊숙이 확산된 것치고는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오히려 미미한 거 아닌가? 


이용자가 250만 명이면 이미 별의별 인간이 다 들어와 있는 셈이다. 실제로 조폭도 있고 사기꾼도 있고, 본 우원 같은 먹물도 어정거리는 게 이 동네다. 리니지는 게임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작동하는 진정한 가상사회이다. 그 속에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셈이다. 즉, 리니지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고 당연하며, 그것은 게임의 탓이 아니라 그 속에서 활동하는 인간들의 탓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아무리 리니지가 게이머가 만들어낸 가상사회라 할지라도, 작금의 사태가 게이머의 탓이거나 사회의 반영 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 하나만 디벼보자.
 


 왜 엔씨는 사용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나? 


사실 본 우원 이번 사태 이후 리니지 사용자들은 어떤 반응을 하는지 보려고 리니지 플레이포럼 게시판과 리니지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며칠 간 죽치고 있었다. 근데 거기서 본 상황은 한마디로 놀라운 것이었다. 









엔씨 소프트의 대표이사 김택진
 


그들 대부분은 영등위의 판정에 찬성을 하거나, 영등위의 판정에 반대하더라도 엔씨소프트는 그런 꼴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영등위의 판정에 찬성하는 인간들 역시 대부분은 판정 자체가 옳다기 보다는, 엔씨소프트가 망하는 꼴을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사용자가 많고, 열심인 사용자가 많은 게임이 리니지이다. 그런데 그들은 게임은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그 게임을 만들어낸 게임회사에는 엄청난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이대로 18금 조치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현재 리니지 사용자의 한 절반은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온라인게임은 많은 사람이 할수록 더 재미있어지고, 사람이 적으면 그만큼 심심해 진다. 사실 요즘 새로운 3D게임들이 계속 등장함에도 여전히 리니지가 인기 있는 이유의 절반 이상은 이 게임의 사용자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지금까지 열라 고생해서 얻은 아이템들의 가치 역시 사용자의 숫자와 함께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영등위의 결정은 리니지 세계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사건이다. 상황이 이런데, 그 게임 속에서 살고 있는 게이머들이 리니지 편을 들기는커녕, 게임사에 "샘통이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기들 세계가 파괴되더라도 엔씨가 엿먹는 꼴은 꼭 봐야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엔씨의 이용약관을 보면 그 이유를 쪼금은 이해할 수 있다. 이 길지도 않은 약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 게임의 캐릭터와 아이템은 모두 게임사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으며, 사용자의 부주의로 인한 아이템 손실이나 사기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리니지 세계 사람들이 엔씨에 갖는 원한의 대부분은 바로 이 조항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리니지에서 열라 몬스터를 잡고 있는데,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아이템을 좀 빌려달라고 한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당연히 아이템을 빌려줬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넘은 친구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친구 아이디가 "0순이" 라면, 그 넘은 "O순이"라는 아이디를 쓴 거다. 결국 당신은 몇 개월을 걸려 만든 귀한 아이템을 사기 당하고 말았다. 자, 이렇게 되었을 때, 당신이 법적으로 혹은 게임회사로부터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이 뭘까? 


답은 없다이다. 


왜냐하면 일단 사기 당했다는 증거가 남아있질 않고, 더구나 상대의 아이디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이머의 과실에서 기인한 일이며, 이런 일에는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약관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전적으로 게임사의 입장만 고려한, 모순적 조항이다.


게임사는 게이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와 게이머들이 게임활동을 통해 얻은 모든 아이템의 소유권과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 속에서 일어난 아이템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하지만 지금 게임사는 소유권만 갖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거다. 


그 결과 상대 넘을 찾아서 뚜드려 패거나, 엔씨 고객상담실에 찾아가서 집기를 때려부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지고, 그로 인한 처벌을 고스란히 당한 게이머들에겐 사기친 놈에 대한 원한이 아니라 게임사에 대한 원한만 깊어지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서명운동까지 했을까?
 


 정의는 불의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정의는 악행이 벌어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살인이나 욕설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세계가 있다고 치자. 이 세계는 정의로운 세계일까? 아니다. 여기서는 정의로움 자체가 없다. 정의를 실현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도 불의한 사회와 마찬가지로 악행은 일어난다.


둘의 차이를 가르는 것은 악행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리니지는 정의 보다는 불의의 편에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게임 속에서 옳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어느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제 3자로 존재하겠다는 태도 자체가 이미 불의의 편을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엔씨에서도 할 말은 있다. 우선, 리니지 속엔 나름대로의 규칙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PK를 한 캐릭터는 범죄자로 낙인찍히면서 게임속 경비병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PK를 해도 상관없는 대상이 된다. 이 범죄자 낙인을 지우려면 나쁜 성향의 몬스터들을 많이 사냥해야 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PK를 하는 넘들은 결국엔 지옥에 떨어져서 졸라 손해보며 고생하고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계적인 규칙들은 게임의 질서를 유지하기보다는 게이머에게 악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어, 일부러 약한 캐릭터를 만들어 상대에게 시비를 걸어 자기를 PK하도록 유도하는 (그래서 엿먹게 하는) 일명 제조기 같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시 말해서 위의 규칙은 게임자체의 룰일 뿐, 게임 속 가상 사회의 법은 아니란 것이다. 


둘째, 엔씨 운영자도 나름대로 게임세계를 정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문제는 그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앞서 사기범에 대해서는 엔씨 운영자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얘길 했다. 이런 경우 사기 당했다는 증거가 명확히 있다면, 구제를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당신이 게임 속에서 누군가를 욕했는데, 그 상대가 당신이 욕하는 장면을 스크린샷으로 찍어서 엔씨에 보내면, 당신의 캐릭터는 즉시 삭제될 수도 있다(여기서 삭제는 PK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죽음이다.) 왜냐하면 게임 내에서 욕설은 금지되어 있는데 욕했다는 증거가 있고, 약관에 의하면 이런 경우 생사여탈권은 게임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사기범은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짜증나서 욕을 좀 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열심히 키워온 캐릭터를 빼앗겨 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나? "여기는 욕을 하면 처벌을 받는 정의로운 사회구나. 참 좋다." 라고 할 인간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이래서 리니지가 현실세계랑 똑같이 썩었다거나, 현실세계보다도 더 썩었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게임 내에도 사법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게이머 사회의 룰을 만들어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 


첫째, 게임 운영자(GM)이 노가다를 뛰는 방법이 있다.


게이머들은 게임하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곧장 GM을 호출하고, GM은 호출에 응해서 반드시 그 문제를 모든 게이머가 만족하도록 해결하는 거다. 실제로 울티마 온라인 같은 외국 온라인게임에서는 이런 제도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건 말이 쉽지 실제로 울나라에서 작동되기 힘든 방법이다. 일단 GM이 충분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않은 어설픈 개입은 오히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게임 속에 아예 사법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게임 속에 경찰제도와 재판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찰의 임무는 분쟁의 당사자를 재판소까지 끌고 오고, 재판소의 결정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건 게임사에서 시스템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리고 재판관이나 변호인은 게이머나 GM이 할 수 있으며, 재판관의 판결을 돕기 위해 배심원 제도를 운영할 수도 있다. 


황당하다고?


나는 지금 리니지에서 불의가 판치는 세계를 경험하며 환멸만 배울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법을 만들고 지키는 자율성과 준법정신을 배울 것이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함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너거들 중에 실제로 재판소에서 재판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으며, 있더라도 떠올리기 싫은 경험이 대부분이리라.


근데 사실 법은 그래서는 안되거든. 법이란 사법시험에 통과한 인간만이 알고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싫고 겁나는 것도 아니거든. 우리 자신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법이어야 하거든. 


만약 게임 속에서 위와 같은 제도가 운영된다면, 게이머들은 실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변호사나 배심원 역할을 하면서 법률적 사고를 스스로 훈련하는 기회도 충분히 생길 것이다. 이게 바로 법의 산 교육 아닌가?
 


 온라인과 현실, 어느쪽이 더 위험할까? 


학부모단체나 전교조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중고등학생들한테 리니지 못하게 하면, 걔네들이 네~ 하고 그만둘 것 같나? 그리고는 공부 안 하던 애들이 학교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랑 말 않던 애들이 대화할 것 같나?" 


바보가 아니라면, 이에 대한 대답이 No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단 이 게임이 이제 시작인 게임이 아니라, 이미 3년 넘게 서비스되어 온 게임임을 기억해라. 당신이라면 그 동안 열심히 리니지에서 자기 캐릭터를 키워놨는데 정부에서 하지 말란다고 얌전히 그것을 포기할 것 같은가? 사실 이번 결정은 오히려 청소년 게이머들에게 주민등록번호 도용과 같은 더 심각한 범죄를 유발하는 조치가 될 수도 있다. 


좋다. 무슨 엄청난 실명제(그런게 있을 리도 없다만)를 도입해서 청소년들로부터 리니지를 완벽하게 차단했다고 치자, 그러면 문제 끝일까? 천만에, 애들은 리니지가 아닌 다른 게임을 할 것이고, 만약 게임을 다 못하게 막으면 현실에서 더 위험한 짓을 할 것이다.


사실 온라인 공간은 현실 공간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다.


아무리 게임 속에서 PK를 당해도 죽었다 살아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캐릭터이고, 게임 속에서 아무리 폭력을 당해도 현실의 나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는다. 현실로 연결시키지만 않는다면, 게임 속에서는 안전하게 여러 가지 탐색과 실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정 스트레스를 받거나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이런 공간이 현실에 있던가? 


한때 울나라 청소년들의 가장 심각한 비행은 바로 약물남용이었다. 본드나 가스, 술 말이다. 오죽했으면 부탄가스에 구토제를 넣었을까? 그런데 스타크래프트와 온라인 게임의 열풍이 몰아닥치면서 이런 비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무리 뭐라 해도 본드 보다는 게임이 낫지 않나? 본드나 가스를 하면 뇌가 녹지만 게임을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그렇지는 않으니까.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플레이포럼에 보면 가끔씩 부모가 자식과 리니지를 함께 하면서 대화가 트이고, 너무나 친한 사이가 되었다는 글들이 올라오곤 한다. 모두가 이렇게 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일단 자식이 즐기는 게임이 어떤 건지 정말 알아보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나? 


자녀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웬지 껄끄러운 세상에 애들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그 곳의 출입을 막는 게 과연 당신들 자녀를 보호하는 것일까?
 


 결국 언젠가는 인정하게 될 현금거래 


긴 글 읽느라 고생들 많다.


한가지만 더 얘기하자. 바로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 문제이다. 


사실 엔씨에서는 자기들의 약관이 게임 아이템이 현금 거래 등으로 악용되는 경우를 대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즉, 모든 아이템은 게임사의 소유이므로 그 아이템을 마치 자기 것 인양 현금으로 교환하는 행위는 게임사에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엔씨를 비롯한 온라인 게임사들은 아이템의 현금거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규정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근데 문제는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템 현금거래는 계속 되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일반화 될 것이란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재화의 값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 어떤 재화(그것이 게임 속에서만 유용한 가상의 물건이라 할지라도)에 대한 수요가 있고 제한된 공급이 있다면, 그 재화는 반드시 값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법이나 약관은 그 재화가 암거래 시장에서 유통되게 할 것이냐, 아니면 합법적 시장에서 유통될 것이냐를 정할 수 있을 뿐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게임 아이템이 현물가치를 인정받으면, 게임사가 마음놓고 게임을 운영하지 못할 거 아니냐고. 패치 하나 할 때도 게이머 눈치를 봐야 하고, 혹시라도 서버가 다운되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어쩌겠냐. 그게 당신들 숙명인 것을. 어차피 온라인 게임은 게이머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런 상황을 위해서 보험이란 좋은 제도도 있지 않나.


온라인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 가상사회이고 새로운 국가다.


온라인 게임사들 그러고 보면 할 일이 엄청 많다.


당신들 스스로 말하듯, 당신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게임제작이 아니라 가상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 프로그래밍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게임 속의 사회제도도 만들어야 하고, 당신들이 만든 세계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해서도 대응을 해야 한다. 


어떻게 보자면, 온라인 게임은 하나의 국가이다. 따라서 게임사에는 개발부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내무부, 사법부, 재경부, 외교부까지 있어야 하는 거다. 당신들 입으로 온라인 게임은 보통 게임과는 다르다고 하면서도, 당신들부터 보통게임과 똑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면, 게임이 뭔지도 모르는 무식한 인간들 탓을 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나? 


이번 리니지 18금 판정은 게임사가 게임 자체만 열심히 운영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로 생각해라. 그리고 기왕에 말 나온 김에 관련 문제들을 하나 하나 수면 위로 떠올려서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다. 


그렇게 한다면, 이번 사건은 온라인 게임업계의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숑 검열위에서 파견나온
CZ75 (jng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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