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추리소설] 어느 초등학교에서 생긴 일 2002.10.25.금요일
난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냅다 뛰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달리기라면 자신있는 나였지만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사, 살려주세요. 돈은 다 드리겠습니다" "돈이라뇨? 무슨 말씀을... 전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러 온 겁니다. 전 이동호라고 합니다만..." 이동호의 말은 이랬다. 자신은 XX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데, 한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 검사를 해보니 회충에 걸렸다는 것. "아니 회충이 아직 멸종 안했나?" 선생님은 혹시나 싶어 자기반 학생들에게 대변검사를 해봤는데, 놀랍게도 40%가 넘는 아이들이 회충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자기반 얘들 말고도 회충에 걸린 학생들이 많아, 정원 540명 중 1/3이 넘는 숫자가 양성으로 나왔다는 거다. "흠... 놀라운 일이군요. 회충은 전염성이 그리 뛰어나지 않는데요. 한두명이라면 모를까 도심의 아이들이 집단으로 회충에 걸렸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군요. 제가 아는 회충박사를 소개해 드리지요. 심정석이라고..." 이동호가 손을 저었다. "그건 안됩니다! 그럴 거면 제가 마태우스님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사내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초등학교는 명문 중의 명문입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게 되지요. 특히나 부모들이 펄펄 뛸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34%가 나온 대변검사 결과도 공표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학생들의 건강이 중요하지, 학교의 위신이 뭐가 중요한가요?" 이동호는 내 팔을 붙잡았다. "선생님, 한번만 봐주십시오. 이거...." 이동호는 뭔가를 내 주머니에 넣었다. "선생님!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절 이까짓 돈 몇푼에 좌우될 사람으로 보셨습니까?" "아, 그게 아닙니다. 꺼내서 보세요" 봉투 안에 든 건 놀랍게도 여자, 그것도 엄청난 미녀의 사진이었다. "누, 누굽니까?" "하하, 제 여동생입니다. 요즘 애인이 없다고 외로워하고 있지요. 하하하" 남매지간에 이렇게 안닮을 수가? 그녀의 사진을 보고 거절을 한다는 건, 정상적인 남자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선생님 여동생 때문이 아니라 학생들 건강을 생각해서 수락하는 겁니다" 우리는 굳게 악수를 했다. "그런데 무스탕은 웬 겁니까?" "아, 이거요? 얼마전에 큰맘먹고 샀습니다.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워하는지,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날, 난 나의 아토스 승용차를 몰고 XX초등학교로 갔다. 이동호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우선 교장실로...." 교장실로 가는 도중 바닥에 뭔가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유부초밥 껍질의 조각인 것 같았다. 동호는 황급히 그걸 줏어들었다. "부끄럽습니다. 요즘 학교가 어수선하다보니 청소가 엉망이라..." 교장은 내게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했다. 잘 부탁한다며 내손을 움켜쥐는 교장 선생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번 일이 알려지면 내 정치적 생명은 끝장이오. 부탁하오" 아까도 말했지만 회충은 전염병이 아니다. 한 학생이 걸린다고 해서 다른 학생이 걸리진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회충은 회충알을 먹어야만 감염된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학생들에게 회충알을 왕창 먹이지 않는 한, 회충에 걸릴 일은 없는 셈이다. 학생들이 단체로 회충에 감염되었다면 그 루트는 아마도 급식일 거였다. 그래서 난 XX초등학교에 급식을 공급하는 회사-이름이 급식왕이었다-를 조사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들여다 봤지만 이렇다할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급식은 굉장히 위생적으로 공급되고 있었고, 거기에 회충알이 뿌려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수사는 미궁에 빠졌고, 난 선생의 여동생 사진만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이게 그 학생에게서 나온 회충입니다" 길이 30센티 정도, 동양인의 피부색을 가진 그 벌레를 보는 순간 왈칵 구역질이 났다.
"그런데 얘한테 나온 것 치고는 길이가 기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기생충은 숙주를 반영합니다. 어른의 회충은 길이가 길고, 얘들한테서 나온 건 대개 20센티 미만입니다. 그 학생의 키가 아주 큰가요?" "아니요. 보통 애들과 비슷한걸요" 뭔가 이상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걸 단서라고 한다면, 단서가 하나 발견된 것이라고 난 스스로를 위안했다.
교장의 호통에 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성질 같아선 견본으로 갖고 다니는 회충 샘플을 교장의 목에 걸어주고 싶었지만 말이다. 대신 난 그날 저녁 애꿏은 술만 들이켰다.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면서. 소주 한병을 마신 나는 집근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오뎅을 먹었다. 갑자기 오뎅이 회충 색깔과 비슷하게 느껴져 구역질이 났다. "에이, 이것도 직업병인가?" 난 먹던 오뎅을 바닥에 뱉어 버렸다. 그때 갑자기 학교 바닥에 있던 유부초밥 껍질이 생각났다. 유부초밥과 회충. 얘들로부터 나왔다기엔 지나치게 큰 회충. 난 근처 벽에다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수사의 실마리가 풀릴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요의, 이것도 직업병의 일종일까? 다음날 난 학교에 갔고, 다소 냉담한 시선으로 날 보는 이동호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급식으로 유부초밥을 먹은 적도 있나요?" "한달에 한번 정도는 유부초밥이 나오죠. 그건 왜 묻죠?" 대답을 뒤로한 채 난 급식왕으로 차를 몰았다. 두 번째 와서 그런지 회사의 담당자는 귀찮은 표정이 역력했다. "초등학교에 유부초밥을 공급한 적이 있지요?" "아, 유부초밥은 저희가 하청을 줍니다. 아주머니 두분이 하시는데, 주소가...." 경기도 화성군.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한때 회충이 크게 유행했던 곳으로 회충에 관한 세계적인 연구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제 뭔가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다. 난 이동호의 여동생 사진을 보면서 전의를 다졌다.
"해롭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방안을 좀 둘러보고 싶은데요"
"내일 급식이 있어서요" 김선자는 수줍게 웃었다. "잠은 어디서 주무시죠?" "잘데가 뭐 따로 있나요. 요 옆에서 그냥..." 난 이렇게 물었다. "평소 배가 좀 많이 아프지 않나요?" "오래 되었어요. 나이들면 한두군데 안아픈 곳이 있나요" "음... 그렇군요. 혹시 화장실이 어디 있죠?" 난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그곳을 나왔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동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마태우습니다. 혹시 말이죠, 선생님 여동생 오늘 좀 만나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이동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따, 성질도 급하네. 사건 해결만 해주면 어련히 만나게 해줄까. 그래, 실마리는 좀 잡았소?" "그럼요. 내일 학교에서 보기로 하죠"
"지금부터 보실 비디오 테이프에 모든 게 담겨있습니다" 불이 꺼지고 테이프가 돌아갔다. 방안이다. 방에는 막 싸놓은 유부초밥이 가득하다. 옆에는 웬 아주머니 한분이 자고 있다. 십분쯤 지나자 일행은 지루해졌다. "저게 이번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요?" 성질 급한 교감이 나서자 교장이 제지했다. "어허, 교감선생, 성질도 참.." 하지만 삼십분이 더 지나자 교장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바쁜 시간에 장난이나 치는 거요? 저 여자가 자는 것과 회충이 도대체 뭔 상관이 있단 말이오?" 순간 "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교감이 내는 소리였다. 일행은 모두 교감을 바라보았다. "저, 저기..." 교감은 TV의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으악!" "꽥!" 아주머니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회충 한 마리가 기어나왔다. 회충은 빠른 속도로 방안을 기어가더니, 유부초밥 안으로 들어갔다. 회충이 거기 웅크리고 앉자 밖에서 봐서는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잠시 후 또 한 마리가 나왔고, 역시 다른 유부초밥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저, 저게 도대체 뭐요?" 교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여자, 즉 김선자 씨는 아주 많은 회충에 걸려 있습니다. 그녀의 대변을 채취해 알아본 결과 약 500마리 이상이 들어 있습니다" 얼이 빠져 있는 교장을 보면서 마태우스는 말을 이었다. "너무 많은 회충이 존재함으로써 회충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더구나 김선자 씨의 영양섭취가 그리 좋지 않아 회충은 좀더 나은 숙주를 찾아 이동하게 되는 겁니다" 이동호가 질문을 했다. "원래 회충은 숙주이동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원래는 그렇죠. 제가 보기에 이 회충들은 아주 지능이 높게 진화된 놈들이 분명합니다. 유부초밥 안에 자신을 숨기는 걸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정도라면 돌고래의 IQ를 능가하지 않을까요" 교감이 물었다. "하지만 이빨로 유부초밥을 씹게 되면 죽지 않나요?" "이건 추측입니다만, 유부초밥이 학생들의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목 안으로 빠져나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유부초밥에 몸을 숨길 지능이면 그정도는 할 수 있겠지요" 모두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회충이 그 정도로 교활해졌다니, 이러다가 회충이 창궐하던 60년대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부초밥을 담당하는 김선자 씨는 당장 치료를 해줘야겠지요. 걸린 학생들도 회충약을 먹이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교감이 물었다. "이번 사건의 교훈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에...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생충을 멸종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너무 방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유명한 속담이 시사해주듯, 기생충에 대한 경계는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말이 끝나자 모두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박수는 한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아니?" 기다리는 여동생은 안오고 이선생만 나타난다. "여동생은 어쩌고 혼자 오십니까?" "이걸 어쩌죠? 여동생이 탐정은 싫다고 하네요. 궁상맞게 살기 싫다나요" "네?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그리고, 직업에 귀천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저야 그렇게 생각하지만, 낸들 어쩝니까? 평양감사도 자기 싫으면 할수 없는거지" "이사람이 정말!" 난 이동호의 멱살을 잡았다. "사람을 놀리는 거요? 엉?" "이, 이것좀 놓고 얘기합시다" 그때, 어디선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이동호는 일제히 그쪽을 바라봤다. "다, 당신은???" 사진에서만 보았던 이동호의 여동생이 늘씬한 몸매를 뽐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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