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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 청년학생 통일대회 참관기 (1)

2002.10.25.금요일
딴지 통일부


[6.15공동선언 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남북해외 청년학생 통일대회]...


이름이 정말 길기도 하다. 나는 이 이름을 외우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그런데 막상 북에 가보니 대회 이름이 바뀌어 있는 것이다. [6.15공동선언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북남해외 청년학생 통일대회]로...


이 대회는 장장 3년을 준비한 대회이고 한총련, 한청협 참가불허로 계속 무산의 위기에 시달렸으며 애초 9월에 하기로 한 이 대회가 10월로 연기되면서 정말 무산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한총련과 한청협은 한총련의 이름으로 그리고 한청협의 이름으로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 대회 참가자들의 많은 수가 한총련, 한청협이었다. 다들 대불련, 가톨릭 학생회 연합(정확한 이름은 역시 기억못함...),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 울산청년회 등 다른 부문 계열(어려운 말이다..) 운동의 이름을 들고 왔을 뿐.


정부당국, 정신없는 것들..  돈가스를 .. 생선가스라고 부른다고 돈가스가 생선가스되냐...?


80년대 [자주 민주 통일]이 최고의 이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나는 이북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참가비 85만원을 자비로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지만(딱 내 한달 사례비) 그런 물질 환경보다는 욕구가 앞섰다. 이래서 사람은 사회정치적 존재라 하는 것인가.


난 기독청년단체의 추천을 받아 후원자 자격(그러나 후원한 거 없다)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난 38세의 종교인이다.
 


 준비과정


100만원 대출을 받았다. 마침 대회비도 85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랐다. 죽여라 죽여.


그런데 돈은 준비가 되었는데, 명색이 내가 참가하는 대회 이름이 [6.15공동선언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남북(북남)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인데, 6.15 공동선언이 뭔지 모르겠는 거다. 좋은 내용인 거 같은데, 기억나는 것은 오로지 이북 국방위원장이 남한을 빠른 시간내에 방문한다는 거 정도였다. 나는 검색엔진을 뒤져 6.15 공동선언 내용을 찾아 숙지했다. 이만하면 훌륭히 준비된 참가자 아닌가? (그러나 외지는 못했는데 놀랍게도 이북 친구들은 그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왼단다. 허걱~)


다섯 문장으로 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읽기 싫음 폴짝 건너 뛰시라.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근데 헤창씨가 2번 사항에 빽태클을 걸고 나섰다. 그들은 연방이란 말에 알러지가 있다. 그런데 FBI도 우리말로 하면 연방 수사국인디..?


이렇게 2년 전 남북이 합의하여 무산될 듯 말 듯 준비되어 온 이 대회는 성사되게 되었다.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남북이 함께 하는 많은 대회가 있지만 이렇게 남북 해외 청년학생의 이름을 걸고 하는 대회는 처음이라는 거다. 여기서 의의를 찾자. 남의 대표조직인 한총련, 한청협이 [이적단체]로 찍혀 공식 이름을 걸지는 못하고 또 몇 명이 방북 불허되었지만 어떠랴. 다른 이름으로 갈 사람은 많이 갔으니 여기서 위로를 찾자. 이렇게 대회 성사를 위해 이름을 걸고 참가한다는 자세를 양보한 두 단체는 상당히 탄력을 보여준 것이다. 세상 변했다. 옛날 같으면 무산인데.
 


 방문기 총평


대회 장소는 금강산이다. 금강산은 아무나 간다. 난 그 흔한 금강산을 관광 삼아 가 본적도 없지만, 기대는 되었다.


대회는, 기쁨과 감동의 하루하루였다. 이별할 때는 눈물도 흘렸고. 짧은 기간(나에게는 이동시간 포함 3박4일. 대회는 1박2일) 있었던 일을 글로 전달하려 하지만.... 그 감동은 다 전하지 못한다. 글은 그저 빈약할 뿐이다.


불립문자 교외별전 (不立文字 敎外別傳)...


선물을 사기 위해 200달러를 환전해 갔지만 이 돈의 2/3는 남았다. 오히려 한화가 10만원 있었는데, 매일 밤 열리는 뒷풀이 총화시간에 얼마나 돈을 썼는지 (갹출) 돌아올 때는 건대 앞에 내려서 택시비를 걱정해야할 정도였다.



배위에서 한 방!!


출발 안내문에 "가급적 청바지는 입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나는 청바지를 좋아하고 또 입고 싶어 청바지를 입고 갔다. 대표단 250명 중 청바지 입은 것은 내가 보기론 나밖에 없었다. 한국 젊은이들 말도 잘 듣지(그러나 막상 단체로 움직일때는 엉망이었다. 특히 이북에 비해. 역시 우리나라는 자유민주국가인가보다)...


그러나 30대 후반 이 삐딱이는 어찌할꼬. 배낭에도 선명한 태극기가 찍혀있었는데, 이북을 자극할까 조금 우려되었지만, 그냥 들고 갔다. 왜냐하면 난 그 배낭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첫째날 12일 토요일


새벽 6시 30분 서울 종묘공원에서 약 250명의 대표단이 집합하여 서울을 출발, 속초에 오후 1시 도착했다.


대표단 중 함께 가는 유명 인사로는 임종석, 권해효 등이 있었다. 권해효씨는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대회에 임했다. 임종석씨는 국회의원에 대한 예우인지 집행부도 주석단도 아니지만 검색대를 따로 통과했다.



권해효 씨와 한 방 


그보다 좀 덜 유명한 인사로는 우상호씨, 한상열 목사님 등이 있었다.


도착하여 무슨 일인지 배가 꼬물거리다가 오후 4시나 되어야 출발했다. 기다리던 청년학생들은 지루한지 배위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북으로 향했다. 재일동포 친구들도 재미있는지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함께 따라하고 그랬다. 나 같은 노털들만 멀뚱히 구경.


오후 5시 50분 북방한계선을 돌파하고 갑판 위에서 처음으로 인민군 함선을 발견했다. 생경하다. 어둠 속에서 북한 배를 보려고 다들 갑판으로 몰려나왔다.


"어머 어머! 북한 사람이야!"


저녁 7시경 이북 장전항에 도착했다.


검역을 마치고 온정각이라는 곳을 갔다. 당황한 것은 여기는 위치만 이북이지 실상은 이남땅(정확히는 현대 땅)과 마찬가지이다. 카드도 되고 원화 달러 다 받고, 직원도 이북사람 같지만 사실은 조선족 여인과 총각들이다. 이곳 물건값도 비싸다.






에피소드 1


역시 가장 놀라운 일은 이북사람들이 가진 정주영, 정몽준에 대한 호의적 평가이다. 난 문익환 선생을 제외하고 선생 호칭을 붙이는 사람은 단지 정씨 부자에게만 들어보았을 뿐이다 (후에 얘기하겠지만 여기서는 문익환 목사님을 문익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방북교육 받을 때 국정원 직원은 올해 대선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랬는데, 사실 그만한 관심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북 친구들은 이남의 대선에 관해 무척이나 관심이 있었는데, 여기서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민화협 일꾼 : (조심스럽게)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습네까?


나 : (결국 물어보는군. 국장원 직원이 이런 거 이야기 하지 말랬는데. 상식 수준에서 대답하지 뭐) 지금 지지율은 이회창 1위, 노무현 2위, 정문준 3위, 권영길씨가 4위쯤 될겁니다(맞나?)


민화협 일꾼: (약간 놀라며) 아 그렇습네까? 정몽준 선생(이 호칭을 듣고 나는 놀랐다)이 3위입네까?


나 : (당연한 듯이) 네.


민화협 일꾼 : (뭔가 정주영, 정몽준씨에 관해 호의적인 발언을 함)


나 : (듣고 나서) 그러나 이남의 진보세력(내가 이렇게 진보세력을 팔아도 되나?)은 노무현 아니면 권영길을 지지하지 정몽준을 지지하지는 안습니다.


민화협 일꾼 : (정말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아, 왜 그렇습니까?


나 : 정주영씨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어떻게 살았던 말년에는 통일에 기여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는 여전히 거대 자본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단 말이지요.


민화협 일꾼 : (다시 의외라는 듯이)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온정각](이북의 남측 지역이라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다들 온천에 목욕하러 갔는데 나를 비롯한 몇 명만 파라솔 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내 옆에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대회 참가자가 아니라 일반 관광객이었다. 나는 100만원이나 주고 온지라 한 번 물어보았다.


나 : 얼마나 주고 관광 오셨어요?


중년남 : 요즈음 누가 돈내고 금강산 오나요?


나 : 네?


중년남 : 학생들 인솔하고 왔는데, 거의 공짜예요. 정부에서 돈 대주잖아요. 이게 1인당 50만원이라 그래도 하루에 얼마인거야? (그러면서 그는 혼잣말로 말했다) 이게 대북 퍼주기지 뭐야...


그렇다. "대북퍼주기". 우리가 언론에 그렇게 많이 보던 말. 그 중년 남자는 자기가 그 특혜를 보면서도, 수십만원을 들여야 하는 금강산을 공짜로 유람하면서도 자기에게 돈을 대준 정부를  씹어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뭐 주고 뺨맞는다더니.


그런 김대중 정부와 현대가 이북으로 보아서는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벌기 어렵다는 달러를 현대와 정부는 그냥 주고 있는 것 아닌가? 고정적으로, 많은 액수를.  


밤에 배에 들어와 총화 시간이 되니 다들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아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이북은 정몽준을 지지한다."(노무현도 권영길도 아닌)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결론은, 이북은 우리와 눈이 다르다는 것으로 났다. 그들은 계급문제가 해결된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관심이 민족과 통일이다. 그러므로 이남의 진보주의자들이 권영길 혹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과 이북에서 정몽준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 차이는 차이이다. 엄청난...


그리구 나서야 91년 김주석이 문선명씨를 만난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 관점에서...


에피소드 2


민화협 일꾼과 대화 도중


민화협일꾼 :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아시안 게임 하지요?


나 : 네(그때 이북 응원단이 한참 언론에 오르내릴 때)


민화협일꾼 : 그런데 말입니다, 공화국이 몇등입니까?


(야! 얘들 경기 결과를 모르는구나! 그러나 나도 이북 경기등수를 몰랐다. 단지 기억에 그날로부터 며칠전 TV에서 6등인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 : 제 기억에 따르면 6등정도 하는 것 같은데요?


민화협 일꾼 : 그러면 1등은 누굽니까?


(나는 의아했다. 37세 민화협 일꾼이 이토록 정보를 모른다면 다른 이들은 어쩌겠는가?)


나 : 중국이죠.


민화협일군 :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며) 중국놈의 쉐이들...


왜 이러지? 중국은 사회주의 형제국 아닌가? 그런데 왜 이리 미워하지? 그런데 그가 스스로 설명했다.


중국놈(그는 꼭 놈이라 했다)들은 이랬다 저랬다 한다. 그리고 돈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좇아가는 아주 간사한 놈들이다. 그놈들은 배신자와 다름없다... 등등의 내용이었다.


내가 맞장구치며 지난 월드컵 기간 중 중국넘들이 이탈리아 편을 들며 한국인들을 괴롭힌 이야기를 하자


"그 썅노무 쉐이들~" 하면서 더욱 흥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남북 단일팀을 만들어 중국을 꺽자고 결의(?) 했다. 결의 하고 보니 우리는 너무나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 단일팀에 대한 어떤 결정권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결의가 우스워 돌아서 나는 웃었다. 단일팀을 만들면 중국놈들을 꺾을 수 있을까?


밤 11시 배로 귀환했다. 우리 배 이름은 [춘향호]. 이곳은 대회 기간 내 우리 숙소이며, 배 안은 이남땅, 배를 내려 세관을 통과하면 현대땅, 현대땅의 경계를 넘어 철책을 건너야 비로소 진정한 이북땅이 되었다. [춘향호]는 현대의 금강산 유람선인 [설봉호]에는 못 미친다지만 설봉호를 타 보지 못한 나로서는 만족 만족 대만족이었다.


배로 귀환하여 청년학생들은 밤늦게까지 노래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 이렇게 첫날밤은 좁지만 안락한 침대에서 눕자마자 그 피곤함에 잠이 들었다.
 


 둘째날 13일 일요일


어제밤 약간 무리 때문인지 해서 늦잠을 잤다. 알람을 했는데도 못 일어났다.


이날부터는 세관 통과시 검역대통과를 면제해 주는 이례적인 특혜가 베풀어졌다. 검역대, 그거 지날 때 기분 별루 좋지 않다. 인민군의 날카로운  눈길을 맞으며 지나야 하는 금속 탐지기.... 그런데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란다. 북측이 [6.15공동선언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를 얼마나 중요한 대회로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는 조치였다. 이남에서는 보도조차 안 되었겠지만...



드디어 [6.15공동선언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가 [김정숙(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 49년 사망, 이북에서는 미인의 전형으로 꼽힌다) 휴양소]에서 열렸다.


남북 대표들이 짝을 이루어 자리에 앉았는데, 나는 [장철구 상업대학(평양소재)] 3학년 김진희 양(21세)과 앉게 되었다. 그녀는 [평양관광대학] 3학년 여학생 김순영(그는 한국을 방문한 소년 공연단 중 천재 드럼 소년 김룡.. 이름 맞나?.. 의 누나이기도 하다)과 함께 이틀 내내 나와 이야기를 나눈 학생이다. 모두들 입고 온 저고리 검정치마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 사진에서만 보던 그 흰 저고리 검정치마 여인과 이야기하게 되다니. 이미 여러 사람이 대북접촉을 통해 이북사람과 나에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난 처음... 그렇다. 난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내가 처음이란다. 하하~  






에피소드 3


이북 가면서 이북에서 만나는 사람들 기념품을 주려고 2000원짜리 포장된 볼펜 8개, 디스 8갑을 준비했다. 그러나..


난 볼펜 1개 그리고 디스 두갑을 소비했을 뿐이다. 볼펜은 순영동무에게,


나 : (자존심 상할까봐 대단히 조심스럽게) 이게 이남 볼펜인데 한 자루 쓰세요. 기분 나쁘게 생각 마시고, 제 성의거든요?


순영동무 : 일 없습네다.(아시는가? 이 말이 이남의 "괜찮아요"라는 말이라는 것을. 이북사람도 "괞찬아요"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일 없습니다"가 훠~얼씬 대중적이다)


나 : (다시 조심스럽게) 그냥 기념품으루다...


순영동무 : 공화국에도 볼펜은 많습네다.


나 : (허걱~ 별루 할 말 없음. 누가 지네나라 볼펜 없덴나.. 기념이래두.)


이리하여 결국 실패했다.


재미있는 것은 나보다 한살 적은 북측 민화협 간부는 받았다는 것이다.


나 : 이거 기념인데 담배 한갑과 볼펜 한자루.. 주절주절... (조심 스럽게)


민화협간부 :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공화국에도 담배와 볼펜은 많이 있습니다만(이 말은 왜 이리 똑같은 문구일까?) 기념으로 주신다니 받갔습네다.


이북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이북 술은 포장도 엉성하다. 인터넷으로 파는 북한 술을 보라, 내가 그려도 그런 포장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술은 맛만 좋으면 될 것 아닌가?


 


에피소드 4


남측에서 나누어준 단일기를 나중에 (다시 남측으로) 반납하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몰래 그것을 가방에 살짝 넣었다. 이북 여학생 순영동무와 이야기했다.


나 : 단일기 수거한다고 해서 몰래 가져가려고 이렇게 가방 속에 꼬불쳐 놓았지요, 하하.


순영동무 : 그래요, 잘 가져가십시오. 그거 가져가다 들키면 감옥가지 않습네까? 이남에서 금지하는 물건 아닙네까?


나 : 우리 정부가 그 정돈 아닌데....


우리나라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에피소드 5


이북사람들이 좋게 평가하는 사람으로 문익환 목사님(그들은 문익환 선생이라 부른다. 대회 기간 내내 한상열 목사님을 한상열 선생으로 불렀다)이 있다.


민화협 일꾼이라는 이가 내게 해준 이야기이다.


문익환 선생님이 우리 공화국에 오래 머무르셨단 말입네다. 그런데 문선생님이 갑자기 산보를 가자 해서 보통강 강변을 갔드랍니다. 그런데 강가에 소풍 나온 우리 공화국 식구들이 있었는데 성큼 그쪽으로 가서 앉으셨드랬지요. 안내원들을 놀랐지요. 거기에 자리 잡고 턱 앉으셔서 가장의 이름을 불러 봅디다. 그런데 가장 이름이 문익훈(마지막자 정확치 않음)이었드랬습니다. 그러자 문선생님이 그이를 꽉 껴안으시며 자네 내 조카뻘일세 하면서 껄걸 웃으셨는데, 공민증을 보니 실재 이름이 그렇단 말이지요.


이러한 일화 등으로 문익환 선생은 그들에게 소탈한 성품을 지닌 통일 애국지사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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