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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 청년학생 통일대회 참관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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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 [축하공연] - [청년연단]으로 이어진 순서는 때로는 약간 지루하기도 했지만, 남한에서 (개그 프로그램에서) 놀림감이 되기도 하는 소년단의(조수미 저리가라의 소프라노톤, 알지?) 환영사는 소름끼치는 쾌감(?)을 선사했다. 특히 언니 오빠를 환영한다는 그네들의 환영사 대목에서는 야릇한 감동까지 느껴졌으며 우습게 들리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대사를 하지 않는 동안에도 만면에 잘 훈련된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마치 미스코리아의 미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 후 이어진 체육대회는 북측의 준비가 세심했고 정성이 느껴졌으며 재미있었다. 체육대회는 우리의 이인삼각 비슷한 경기(비슷하나 다르다)를 비롯해, 게임 수준은 TV게임 같았다. 그리 유치하지도 그리 잘 준비된 것도 아닌... 하지만 할만 했다.  














[6.15공동선언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환영연회]가 금강산 여관에서 열렸다. 여관은 웅장했으며 온갖 산해진미가 나왔다. 독한 술(이북 사람들은 맥주를 술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냥 맥주라 부르고 그들이 주로 마시는 40도 이상의 독한 술을 그냥 술이라 부른다)을 즐기며 계속 첨잔을 하는 습관을 가진 이북사람들에 의해 한 이남 젊은이는 취하여 비틀거리기도 했다. 같은 남측 대표로 좀 미안하다. 세상에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자기 주량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김일성 대학] 경영학과 3학년 새침때기 여학생 조선범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조총련] 친구 박재균과 호형호재하는 사이가 되었다. 재균이는 내가 [전대협] 1기(나의 유일한 명함)라는 것을 알고는 깍뜻한 존경을 표했으며 영광이라고 했다. 이북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조총련에게 전대협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에피소드 6


만찬장에서 지정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는 이북 친구 3, 이남친구(나 포함) 4, 재일동포(조총련) 1, 이렇게 8명이었다. 내 옆에 흰 저고리에 깜장치마의 여학생이 앉았다. 이쁘장한 새침때기 인상. 내가 물었다.


나 : 어느 학교 다니세요?


우리는 연세대를 연대, 고려대를 고대, 동국대를 동대, 이렇게 부르지 않나? 그러면 김일성대는 무어라 부를까? 김대라고 부를까? 땡~


여학생 : 종합대학 다닙네다.


종합대학? 그러면 이 여학생이 김일성대학 학생? 오호라, 이북은 김일성 종합대학교를 줄여 종합대학이라 부르는군. 그렇다면 다른 학교는 모두 단과대(콜리지)이군. 하긴 내가 들어본 학교 이름도, 평양 외국어 대학, 김책 공업대학, 장철구(항일 빨치산 이름) 상업대학, 평양 외국어대학, 김형직(국방위원장 조부) 사범대학, 뭐 이렇지? 이것은 진보된 교육체계로 보인다. 종합화와 입학정원 늘리기에 바쁜 우리 대학에 비교하면 학문이 고루 발전하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 무슨 과세요?


여학생 : 경제학과입네다.


나 : 아 그래요. 왜 경제학과를 선택하셨어요?


여학생 :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잠시 망설이는 듯. 한숨도 살짝 포옥 내쉬었나는 나의 착각일까?) 사실 우리 조국 경제가 좀 어렵지 않습네까? 그래서 조국경제를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에 경제학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하다니. 이야기하고 나서 아가씨는 잠시 후회하는 듯 했다. 이 자존심 강한 나라 학생이.


나는 소재를 돌렸다.


나 : 경제학과에서 뭐 배워요?


학생 : (신난다는 듯이) 경제와 컴퓨터를 배웁니다.


나 : (경제는 내가 모르니 넘어가고) 아예, 컴퓨터로는 뭘 하세요?


학생 : 인터넷을 합니다.


나 : 인테넷이요?(난 이북은 공식적으로 인터넷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국가도메인도 kp이나 아무도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놀라서) 인터넷으로 뭘 하세요?


학생 : 과제도 쓰고 도서도 찾고 그럽니다.


이 말을 듣고 난 대충 짐작했다. 워드작성을 하며 옛날 국내 하이텔 피시서브 차원의 국내 통신망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밤에 숙소로 돌아와서 어제에 이은 하루 총화, 뒷풀이가 이어졌다. 여기에는 음주가무가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전날처럼 다시 갹출을 해야 했다. 정말 돈 많이 깨지는 [청학대회]였다.


총화시간은 모두가 감동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둘째 날도 노래 소리,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 구호소리로 깊어만 갔다.



 


 셋째날 14일 월요일


아침 식사 후 [축하공연 및 통일노래 무대]가 시작되었다. 동행했던 권해효씨가 사회를 보았다. 권해효씨는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는 적당히 농을 쳐 가며, 또 적당한 순간에는 진지하게 사회를 보았다.






에피소드 7


남측 주최 만찬 온정각에서 내 옆에 이번에는 처음으로 남학생이 앉았다. 그는 좋은 몸을 가진 평양외대 5학년(이북은 대학이 5학년까지 있다. 대신 대학을 18세 때 간다) 학생이었다.


나 : 전공이 뭐니?


그학생 : 영어(영문과는 아니다. 그들이 영문학을 뭐하러 배우겠는가?)괍니다.


나 : (어라?) 나도 영문과 나왔는데 (이거 말이 통할지도 모르겠는걸?) 그러면 니네는 교양으로 뭘 배우냐? (나는 철학개론, 대학영어, 자연과학개론, 문학개론 이렇게 내 대학시절을 상상했다)


그학생 : [혁명력사]와 [주체철학], [당 창건사]를 교양으로 배웁니다.


나 : (띠용~ 그렇지 여기는 이북이지. 니네들한테 교양은 이런 거구나) 흠흠.. 그리고 또 있자나 영어랑 관계된 거.


그학생 : 속해(速解 라고 한 것 같은데 정확히 모르겠다. 워낙 생경한 말이라)를 하지요.


나 : 속해가 뭐냐?


(그러자 그 학생 대단히 유창한 발음으로)


그학생 : 뤼딩


(아하 reading을 말하는구나, 그런데 이 자식 발음 좋네..)


나 : 그리고 또?


그학생 : (이때부터 다시 영어가 튀어나왔다) Listening comprehension...


나 : (그거는 그냥 교양영어 수준이잖아) 그래 그런 거 말구 또 다른 거는?


그학생 : 경제학 서적을 영어로 공부합니다.


나 : 그럼 영어과에서 경제를 공부한단 말이야?


그학생 : 네.


(다시 느꼈다. 이 사람들 경제 무지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군...)


그학생 :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남조선의 여중생 미군 탱크 사망사고 있잖습니까?


(드디어 정치이야기 나오는구나)


나 : 응..


그학생 : 남조선에 미군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나 : (무척 망설이며, 짜식 별걸 다 묻네... 조심스럽게) 응.. (뭐 많다고 해야하나? 많다는게 뭐야? 암튼)


그학생 : 그런데 왜 미군을 몰아내지 못하는 겁니까?


나 : (요쉐이 봐라? 어린 것이..? - -;) 그거야 임마 미군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 그렇겠지.


그학생 : 그러면 미군을 반대하는 사람을 늘리면 될 것 아닙니까?


나 : (환장하겄네, 얌마) 그게 그냥 되냐? 쉽게?


그학생 : 한사람 한사람 의식화 조직화 시켜 미군 반대 투쟁에 일떠세우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나 : (미치겄네. 자슥아 나는 네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졸라 데모했어. 그 덕에 깜빵가지 갔다구!) 아니 열심히 했지.. 근데 그게 말이야 말처럼 쉽게...


그학생 : 제발 이남에 내려 가셔서 이남 민중들이 미군 반대 투쟁에 일떠서도록 군중을 의식화 조직화 시켜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이게 누구 간첩 만들려구 그러나... 야, 너 지금 지령 내리냐?)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걔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왜 아직 미군이 이남에 있는지. 미군이 백주에 아이 둘을 깔아 죽이는 사건이 났는데도 왜 군중들이 분노하여 미군 나가라고 거족적 항쟁을 벌이지 않는지, 참말로 답답할 것이다.


나도 이해가 안가기는 마찬가지. 그 애들은 항쟁의 시대, 투쟁의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 이북애들은 당의 은혜(수업료 무료, 교복지급 등)를 갚기 위해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한다. 대부분 장학생 깜이다. 그렇게 사회주의 조국 안에서 (막말로 하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나처럼 사람이 분신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화염병, 짱돌, 쇠파이프, 각목이 난무하던 곳에서 20대를 보낸 나의 청춘을 니네가 어찌 알까? (아쭈~)


그넘과의 대화는 내가 나누었던 대화 중 가장 갑갑한 대화였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 사랑하기로 했다.


[통일노래 무대]는 남/북/해외동포 측이 각각 맡은 시간을 공연했다. 남측은 빌빌했다. 그들은 남측의 각설이 타령 류의 노래에 별 감흥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이 정서의 차이란...) [우리나라]라는, [희망새]풍의 노래패가 안간힘을 썼으나 역량부족이었다. 대신 우리에게는 군무(群舞)가 있지 않은가! 노래에 맞추어 떼거리로 나와 왁자하게 추는 춤은 나는 신이 났으나 역시 이북 친구들에게는 큰 감흥은 없는 듯. 그러나 싫어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억압을 뚫고 싸우는 이남 청춘과 사회주의 조국 품 안에서 자란 그네들과 정서가 같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재일동포 여학생이 중심이 된 조총련 중창은 틀리기도 틀리고 가창력도 별 볼 일 없었지만 그네들의 깜찍한 옷차림, 색동저고리와 약간 짧은 한복치마, 특히나 바다를 건너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다. 사람들은 웃음으로 그네들을 격려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북의 노래팀은 역시 대단했다. [사로청] 소속의 이 공연단이 평양이 아닌 타지 무대에 서는 일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란다. 이 역시 [6.15공동선언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를 이북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보여주는 예이다.


이남에서도 특수한 부류의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동지애의 노래]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휘파람]을 라이브로 들었다.


폐막식, 환송오찬(남측이 준비한 이 환송오찬은 정말 개떡 같았다. 뷔페로 준비한 이 점심은 미쳐 식사를 끝내기도 전 일정에 밀려 허겁지겁 끝내는 결례를 범했다)에 이어 구룡폭포 공동등반이 있었다.






에피소드 8


구룡폭포를 오르며 김책공대 여학생이


학생 : 그런데 말입니다. 파이팅이 뭡니까? 축구(월드컵을 지칭)보니 파이팅이란 말이 자주 나옵네다.


나 : 파이팅이요.. 싸우자란 뜻입니다. 영어이지요.


학생 : 아, 영어입니까?


사실 영어는 아니다. 영어에서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 Fighting 이란 말을 안 쓴다. 이건 콩글리쉬다. 영어로는 차라리 Go Go! 나 Come on! 이라고 해야한다.


그렇다. 언어도 이리 갈리운다. 나는 이북학생들과 대화 내내, 심오한 대화로 들어가면 단어가 이해가 안가고 서로 막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대화에서 "그 사람(김대중대통령을 지칭) 영어도 많이 쓰고 해서 말을 7~80% 밖에 이해 못했다"고 하는 투덜대는 듯한 후일담을 읽은 적 있다. 그런데 그렇다. 짧은 가벼운 대화는 관계없을 듯 하나 이야기 깊게 들어가면 자꾸 물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역시 일정에 쫓긴 이 등반은 대단히 어설펐으나 산을 타면 탈수록 점차 자리와 질서가 잡혀 나가는 기이한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준비는 미흡했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었다. 용케도 사람들은 스스로 질서를 잡아나갔다.


금강산은... 정말..


천.하.절.경.


...이다. 말이 필요 없기에 ... 생략.


나는 금강산 냇물을 뜨고 돌멩이 두 개를 줍고 (선물을 사지 못했기에) 단풍잎을 주웠다. 금강산 단풍잎은 서울로 돌아와 코팅을 하여 벗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 선물용이다.



등반 후 그 자리에서 이별식이 벌어졌다. 특별한 형식 없이 진행된 이별식에서 사람들은 그냥 악수를 나누며 담담했으나 버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누군가부터 울기 시작했다. 주로 남측 여성들과 북측 여학생들이 많이 울었고 조총련계 친구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울었다. 북측 여학생들, 특히 조총련계 여학생들, 모 대학 02학번 후배의 우는 모습, 그리고 나와 친하게 지냈던 진희 순영동무가 얼굴이 빨개져서 슬프게 우는 장면을 보고 얼마나 슬프던지 나도 콧물을 킹킹거리며 울었다.



배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모두들 우울하여 아무 말도 않고 망연히 창 밖만 내다보았다. 단 이틀을 접했을 뿐인데... 이것은 혈육의 정인가, 아님 단순한 감정인가.






에피소드 9


과연 나는 이북에서 살라면 살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의문이 있었다. 나는 이북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인 사람이지만 그것은 그냥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재로 사는 문제와는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오토바이를 사랑하며, 청바지를 즐겨 입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장기수 중에 윤희보란 분이 있다. 나하고 잘 알고 지냈다. 이분은 이남에 처자가 있는 분이다. 그런데 이분이 지난번 장기수 북송 때 북으로 가신 63명의 명단 중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놀랐다. 이념은 혈육을 뛰어넘는 것인가! 아주 한참동안 나는 헷갈렸다.


이번에 돌아오는 배 안에서 나는 한 초로의 여인을 만났다. (편의상 어머니라 부르자)


그 여인이 이번 대회에 어찌하여 동행하게 되었는가를 물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장기수의 아내였다. 그것도 지난 번 북송한. 내가 윤희보 선생 이야기를 드렸더니..


어머니 : 피유~ 그분이야 이북에 처자가 있었지요(그제서야 나는 이해가 갔다. 그러면 그렇지, 이북에 가족이 계셨구만,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지. 이북의 가족이 그리울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남편은 제가 초혼이거든요.


나 : (놀라면서) 그러면 남편이 원망되지 않으세요?


어머니 : 원망은 안 해요. 가신다고 하길래 좀 놀라기는 했지만. 저도 25세 된 딸이 있거든요.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고.. 남편이 감옥에 있으면서 동료들과 그랬대요. 만일 우리가 만에 하나 살아서 이 감옥을 나간다면(당시는 전향공작이 심했고 실재로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이 고문 등에 의해 옥사하기도 했던 그런 살벌한 시절) 꼭 공화국에 가자고요. 그래서 이해해요(하지만 어머니의 표정과 분위기에 비치는 쓸쓸한 느낌은 숨길 수 없었다).


나 : 그래 이번에 어르신네는 만나보셨나요?


어머니 : 묘향산에 놀러 가셔서 연락이 되지 않아(그래 이 사회는 핸펀이 귀한 것 같더라) 옷만 전해드리고 왔어요. 여기(이북을 지칭) 보니.. 공기도 좋고.. 살만 한 곳 같아요. 이북에서도 잘 대접해 주는 것 같고...


그렇게 남편을 다시 북으로 보내고 남은 부인이 총 7분이란다. 그 남은 부인 중 어떤 분은 충격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시는 분도 있단다. 나는 여기서 전혀 새로운 이산의 아픔을 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배 안에서 아주 짧게 주마간산으로 이북을 바라보았지만, 드는 생각은 이북에서도 살라면 살 수 있겠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가 사람 살라고 되어있지 않겠는가?


황석영씨가 쓴 방북기 책 제목이 생각난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넷째날 15일 화요일


이렇게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행여 국정원 정보원이 우리 도착 예정지 종묘공원을 지키고 섰을까봐 택을 바꾸어 도착 예정지를 건대 앞으로 바꾸면서까지....


도착하니 새벽 2시경.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택시에 몸을 실으니 정말 많은 시간이 흐른 듯 하다.


대회 내내 가장 많이 외친 구호가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머리 속을 계속 떠다녔다.


"6.15 공동선언 이행하여 조국통일 앞당기자!!"
공.동.선.언. 이행!


덧붙여
지인이 구해 오라던 김주석 빼찌는 결국 못 구했다. ㅠㅠ.


훔쳐볼까 생각도 했고 기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무서웠다. 그것이 또 이북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물건이라는데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상심할 것인가. 잘했다. 도적질 안하기.



 
아직도 북한방문의 감동에 뿌듯한
폭주천사 (sixinone@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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