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자존심이 존재 이유라니... 2002.10.27.일요일
몇해전 어느 한겨울, 설악산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겨울은 해가 빨리 진다. 특히 산에서는 더더욱. 그때도 햇살이 스러지며 어둑어둑해지던 늦은 오후였다. 설악산 공룡능선에는 여느 겨울처럼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그는 공룡능선에서 혼자 걷고 있었다. 희운각 못미쳐 신선대 오르막길 정도였다. 먼저 간 친구를 따라잡기 위해 혼자 걸음을 재촉하던 그는 어느 순간 눈을 의심했다. 저녁이 오는 어둑어둑한 눈덮인 산 속, 한 30미터 앞쪽에 사람 비슷한 뭔가가 보였던 것이다. 사람이라기엔 형상이 희끄무레한, 웬 허연 소복 비슷한 것을 입은 여자가 옆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형상이었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처녀귀신...? 그는 잠깐 오싹했으나 이내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바위나 나무에 눈이 덮여서 잠시 착시현상이 일어난 거라고. 사실 사람이 아닌데 사람처럼 보이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는 다시 땅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십미터 정도를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눈을 들었다. 그런데... 아까와 똑같이 30미터 저쪽에 여전히 그녀는 앉아있었다. 에이 설마, 하며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 다시 발밑을 바라보며 걸었다. 열몇걸음을 걷고 다시 확인해보기 위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여전히 맨 처음에 보았던 거리만큼 저쪽에 여자가 앉아있는 것이었다. 옆쪽을 바라본 채 앉아있는 듯한 형상으로.... 그 순간 "귀신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그는 공수부대 출신이다. 특히 산에서는 더더욱 무서울 것이 없는 인간이었다. 평소에 귀신이라는 거 한번쯤 만나보고 싶기도 했더란다. 그런데 막상 그런 경우를 당하자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옆에 아무도 없고 혼자인 상황, 뭔가 해야만 했다. 저것이 귀신이 아니라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겠고, 귀신이라면 뭔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한참 후에 떨리는 목소리로 입에서 나온 말은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같은 말이었다. "저... 귀신...이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저만치 앉아있는 그녀(?)에게 모기소리만한 그 중얼거림이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싸악 돌리며... 몸은 여전히 옆을 향한 채 얼굴만 돌려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하얀, 아주 하얀 눈 두 개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만이 보였다. 그는 순간, 가슴이 쑥 내려앉으며,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꼼짝할 수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부탁이 있으면 들어주겠다, 뭐 그런 말들이 맴도는데 몸은 마비상태였다. 그렇게 그는 그 자리에 못박힌 듯이 서 있었다. 1분이 지났는지 1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시간은 정지된 것 같았고, 오로지 그 눈 두개만이 자기 가슴이 와서 박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역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얀 눈 두 개의 각도가 변해갔다. 정면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두 눈이 천천히 옆으로 돌려지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처럼 옆을 바라보게 된 순간, 순식간에 그녀의 형상은 사라졌다. 그리고 맥이 풀린 그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버렸다. "난 그 흰 눈을 내 눈으로 본 게 아니야. 그냥 느꼈어. 그냥 와서 느껴지더라구..." 그때 일을 다시 기억하기도 싫다는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있었다. 휭휭 찬바람 부는 늦가을 밤, 대관령 휴게소 부근 돌계단에 걸터 앉아 들었던 이야기다. 내가 작년에 들었던 것 중 가장 무서운 이야기였다. 으스스 으스스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숲 속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오싹함이란... 이상 기사 내용과는 전혀 관련없는 이야기 되겠다. 흐흐흐... 저 얘기를 한 것은, 올해 들었던 가장 무서운 말이 생각나서였다. 이것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등줄기로 한줄기 싸늘한 냉기가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몇 달전 서해교전 때문에 시끄럽던 와중에 신문에서 본 글 하나였다. .... 그래서 우리가 분통 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북한이기보다 우리 쪽과 이 정권에 대해서다. 한 나라의 기본적 존재이유는 자존심이다. 영토도, 안보도, 겨레도 결국 공동체의 자존심을 지키자고 하는 일이다. 자존심을 잃은 나라는 이미 나라도 국가도 아니다. 그런데 걸핏하면 상대방을 건드릴까봐 우리가 먼저 숨죽이고 눈치보고 비위 맞추며 그것을 무슨 대단한 ‘화해의 제스처’인양 내세우는 우리나라 지도층과 일부 지식층의 ‘왼쪽 뺨 내밀기’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역겹기조차 하다. (02.7.27. 좃선 김대중 칼럼 북한에 무슨 약점 있나? 중... 원문은 여기) 이 말이 뭐가 무섭냐고 하지 마시라. 이거 진짜로 무서운 말이다. 설악산 흰눈 여자귀신보다 백배는 무서운 말이다. 나는 정말로 오싹함을 느꼈다. 수백만명의 사람을 죽인 나찌독일의 파시즘도 그냥 듣기에는 별로 이상한 말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존재이유가 자존심이라니? 그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는 게 역겹기까지 하다니?? 한 나라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안위이다. 영토도, 안보도, 겨레도 결국은 사람이 잘 살자고 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 국가의 가장 큰 대전제이다. 좃선은 그동안 김정일을 무지하게 비난해왔다. 국민은 굶어죽어도 무기 개발한다고. 김정일은 반 인권 패륜아라고. 국민 굶어죽이는 북한은 국가로서의 기본 자격이 없다고. 그런데 그렇게 치면 인민이 굶어죽거나 말거나 무기 개발하는 게 미국에 맞서기 위해, 다시 말해 국가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건데, 좃선은 김정일하고 똑같은 주장을 하는 셈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자존심이라는, 이런 극단적인 형태의 국가주의를 발행부수 1위 신문의 발행인이 버젓이 써제껴도 별 문제도 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사상적 무감각성을 개탄한다.
94년 전쟁위기. 그때는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미국이 북폭 개시 명령만 내리면 한반도는 불바다가 될 뻔했다. 불바다라는 단어가 어쩐지 좀 낭만적이고 은유적이어서 느낌이 잘 오지 않을 뿐이지, 전쟁의 아수라장이 한반도에 벌어질 뻔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잘난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좃선은 계속해서 강경노선을 주장했다. 절대로 타협하면 안된다면서, 심지어 북폭이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썼었다... 남한이 전쟁하자고 발광하는데 미국이 주저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미국은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렇게 목소리 높인 대가는? 북한과 미국간에 타협이 이루어졌을 때 끽소리 못하고 구경꾼으로 전락한 것이었다. 당연하지. 전쟁하는 당사자는 남한과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이었거든. 그런데 북미간의 제네바 협정이 타결되자 이번에는 좃선은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되었다"고 핏대를 올렸다. 자기네가 그렇게 만든 한 요인이었음은 싹 말문을 닫고. 이래저래 꿩먹고 알먹고인 셈이다. 유화적으로 나가면 빨갱이라고 욕하고, 강경하게 나가면 주도권 빼앗겼다고 욕하고... 2002년.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10월 27일 오전(한국시각) 한,미,일 3국 정상의 회담이 있었다. 김대중, 고이즈미, 부시 이렇게 세명이 멕시코에서 만나서 북한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그 신문 보도를 보자.
이게 도대체 같은 회담 결과를 보도한 거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이 회담을 외신은 어떻게 보도했는지 보자.
그러니까 다른 신문들이 "부시의 강경노선에 한국과 일본이 태클을 걸었다"고 쓰는데 유독 좃선만은 "부시가 북한을 졸라 밀어붙이고 있다"고 쓴 것이다. 94년 핵위기때와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북한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 그 순간 기분은 좋을 지 몰라도 우리에겐 상황을 콘트롤할 수단이 점점 사라진다. 어떻게든 김대중을 부시의 힘없는 꼬붕으로 만들기만 하면 국익이고 국민의 안위고 상관없다는 말인가?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국가의 자존심이란 말인가? 어느 쪽이 더 우리나라의 자존심이 사는지 좃선은 판단 능력도 없단 말인가? 미국은 이라크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UN을 통해 미국의 독주에 계속 제동을 걸고 있다. 독자적 UN 결의안을 상정한다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부시는 자기들의 외교가 먹혀들지 않자 고민고민하고 있다. 그 페이스에 말린 부시는 하루가 다르게 말을 바꾸고 있다. "이라크의 체제 변화가 미국의 목표"라고 말하며 후세인 제거를 천명했다가도, 그 다음날 "이라크가 무기 사찰을 받아들이는 것이 체제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고 누그러뜨리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의 힘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분명히 그 틈새가 있다. 지금은 일부러라도 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일 때이다. 좃선은 정녕 한국을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자존심이고 국가의 존재 이유인가? 나는 내 소중한 목숨이 저런 개쉐이들의 말장난에 놀아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국가의 갑빠를 위해 내 목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행복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좃선의 공포물 시리즈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딴지 편집장 최내현(asever@ddanz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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