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울나라 교육의 미신들 2002.10.25.금요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 문제, 지난 번에 이어 오늘도 한번 떠들어 보겠다. 이번에는 좀 더 논쟁적으로 교육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사실 관계를 먼저 정리한다. 가치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 판단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잘못된 사실 판단을 근거로 가치를 판단한다. 교육 문제,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교육과 관련된 잘못된 사실 판단, 이것을 정리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사실 판단이라 해도 주관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실 인식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은 사실 판단에 대한 평가지만,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육 전반의 문제로 나가기 전에 당장 눈앞에 다가 온 대학 입시 문제부터 하나씩 짚어 본다. 그렇게 하다보면 본격적으로 교육 정책 같은 거창한 주제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굳이 못나간다 해도 할 수 없다. 이 바닥이 다 그러니까.
작년 수학능력시험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학원과 학군이 좋은 강남지역으로 이사수요가 늘어서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강남 지역에서 떠돌아다니는 수능 땅값이라는 분석이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셈이었다. 당국의 발표대로라면 이 시대, 이 땅에 사는 부모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가르침을 따라 오늘도 강남으로, 강남으로, 이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그렇지만 2천4백여 년 전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라는 위대한 인물을 키웠으나, 이 시대의 부모는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켰을 뿐이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렇게 수능 땅값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바로 그 순간, 어느 대학에서는 현대 문화의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신비주의의 유행 원인과 과학과의 상관관계를 묻는 논술 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신비주의란 복권을 구입하거나 UFO를 신봉하는 일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첨단 과학 사회에 살면서 좋은 강의를 받기 위해 특정 지역에 사람이 몰리고 집 값이 폭등하는 현실, 그것이 사실을 반영하는 정확한 현상이든 아니든 그러한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고 또 그 믿음이 타당성을 갖는 우리 현실, 이런 현실이 바로 신비주의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왜 그러냐고? 수능시험이 어려워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켰다는 것은 강남의 공기는 아이들을 대학에 보낸다는 미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수능 땅값이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 강남구, 서초구 지역 수험생들은 2002학년도 대학입시에서도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합격률을 기록했다. 이 지역 수험생은 지난해 전체 수험생의 약 3%에 지나지 않았지만 서울에 있는 주요 사립대 합격자중 6~12%를 차지했다. 다른 지역보다 약 두 세 배의 대학 합격률을 보인 셈이다. (미신 1과 관련해서 다음 연합뉴스 1월 25일자 기사를 봐라.) 연세대는 2002학년도 서울캠퍼스 합격자 중 강남구와 서초구 소재 고등학교 출신 수험생은 각각 211명과 136명으로 정시 합격자 3천45명 중 각각 6.93%과 4.47%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참고로 지난해 수능에 응시한 전국 고3 학생 54만1천 여명 중 강남구와 서초구 지역의 고3 학생 수는 각각 1만1천151명(2.06%), 6천371명(1.18%)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성동구 출신 수험생은 2명이 합격했고 금천구와 중랑구 출신 수험생들도 각각 5명과 7명이 합격하는데 그쳤다. 고려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려대학 서울캠퍼스 합격자 3천970명중 강남구 출신 합격생은 181명(이 대학 전체 합격자의 4.53%), 서초구 출신 합격생은 88명(2.22%)이었다. 한양대 역시 정시합격자중 강남구 출신은 220명으로 6.0%를 차지했고 서초구 출신은 89명으로 2.43%였으며, 성균관대는 올해 정시에서 3천558명의 합격자중 256명(7.2%)이 강남과 서초 지역 수험생이었고 경희대도 정시모집 가군에서 2천65명의 합격자중 167명(8.08%)이 이 지역 출신이었다. 그러나 강남/서초 지역 학생들이 타지역 학생보다 많은 수가 합격하고 있지만 전체 합격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예년에 비해 점차 줄고 있는 추세란다. 올해 연대 대입전형 결과, 수시 모집과 정시모집을 합쳐 강남구는 모두 291명의 합격자를 배출했고 서초구는 176명의 합격자를 냈지만 이는 최근 3년 간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연대는 2001년 대입에서 강남구 서추구 각각 324명과 194명이 합격했다. 이는 곧 타 지역의 약진을 의미한다. 강서구는 연세대 정시에 154명이 합격, 강남구에 이어 구별 합격자수에서 2위를 차지했고 강북지역인 광진구에서도 129명이 합격해 서초구에 근접했다. 성균관대 입시에서도 연대와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올해 정시 성대 합격자중 강남/서초 지역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7.20%로 지난해 이 지역학생들의 11.92%에 비해 크게 줄었다.
소위 강남 8학군 고교들은 10년 전, 그러니까 학력고사 시절에는 매년 100명 이상을 연/고대 합격시켰다. 그렇지만 요즘 강남의 어느 학교도 이런 성적을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작년에 수학능력 시험이 어렵게 나와서 강남 아파트 값이 올랐다는 말의 진실은 무엇인가? 정말 우리 학부모들이 대학진학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할 정도로 어리석은가? 혹시 아파트 수요 공급에 대한 예측 실패, IMF 관리체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해도 정권 교체 4년 동안 실패한 빈부 격차 축소와 증권 시장의 장기적 불황에 따른 투기 자본의 이동 때문에 일어난 강남 아파트 가격 폭등의 원인을 만만한 입시라는 놈한테 전가시키는 것은 아닌지... 입시는 여전한데 투기 억제 조치로 아파트 가격의 하락이 시작되었다는 보도는 입시가 무슨 죄인가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렇다면 왜 강남 지역 수험생이 주요 대학 합격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을까. 이 문제는 뒤에 이어지는 미신을 분석해야 답이 나온다.
작년에 수학능력 시험을 봤던 학생들을 지칭하는 말로 이해찬 1세대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해찬 1세대라는 말은 학력이 떨어지는 세대와 동의어로 많이 쓴다. 오죽하면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말이 나온 근거는 98년 현 정권이 들어선 뒤, 이해찬 장관이 DJ 정권 초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되어 공부 안 해도 대학 간다는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보충 수업과 자율 학습을 폐지해서 그 때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 명제는 과연 성립하는가. "지금 우리 학생은 조선시대 성균관 학생보다 학력이 떨어졌다." 이것은 극단적 예인가? 그럼 학력이란 어떤 것인지 알아 보자. 논리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학력 저하라는 말은 과거의 어떤 기준보다 낮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학력 저하라는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과거의 어떤 기준은 학력을 측정하기에 적당해야 하고, 둘째 과거의 그것이 지금의 그것보다 높아야 한다. 글쎄 과거 학력고사나 내가 봤던 예비고사 점수를 기준으로 학력이 높네 낮네 할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학력고사, 또는 수학능력 시험, 우리는 그것을 학력의 높고 낮음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합의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수능 시험이라해도 작년의 점수와 올해 점수를 비교해서 높다, 낮다 말해도 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아, 누구는 이렇게 주장할지 모르겠다. 올해 9월 3일 수학능력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모의고사에서 재수생이 재학생 보다 성적이 좋으니, 재수생이 재학생보다 학력이 높은 것이 아니냐고.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과거 학력고사 시절에는 암기력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암기력 싸움 그 자체였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일종의 대학 입학 자격고사인 학력고사를 보면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학원생도 학력고사를 보면 대학에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대학입학 자격고사인 학력고사였다. 지금은? 대학 졸업한 친구들이 다시 시험 보기에 만만한 게 수능시험이다. 그러다 보니 번듯한 대학을 나오고도 한의대나 의대 또는 법대를 다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대학을 졸업하거나 대학원에 다니다가 다시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낭비다. 그렇다고 대학 졸업하거나 대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고 3학년 수준을 따라갈 수 없는 대학입학 자격고사가 제대로 된 시험이라는 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시 대학을 지원하는 사회적 낭비가 나타나는 원인은 사회적 환경 문제지, 시험 그 자체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조건에서 보는 시험이라면 재수생은 재학생보다 성적(학력이 아니고)이 좋아야 한다. 재수생은 지난 1년을 공부하고 또 1년을 공부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 나라 대학 입시 상황에서 대학을 아예 못 갈 실력이라 재수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이미 우리 나라는 대학이 정원을 못 채워 학교 문을 닫아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즉, 더 좋은 대학에 가려고 재수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거기다 재수생은 매달 두어 번씩 모의고사를 보면서 안 그래도 재학생보다 익숙해진 시험 유형에 더 익숙해져 있는데 당연히 재수생이 재학생보다 성적이 좋을 수밖에. 작년보다 점수차가 더 커졌다는 것 역시 작년에 수능 시험이 어려웠던 이유를 새로운 문제 유형의 등장으로 본다면(수능 시험의 난이도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룬다. 기회가 되면...) 그 역시 이해가 간다. 새로운 문제 유형에 익숙한가 아닌가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학력의 기준이란 것이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기 전에 이해찬 1세대라는 한 학생의 주장을 들어 보자. 난 1983년에 태어나 2002학년도 수능을 본 이른바 이해찬 1세대다. 합법적인 보충수업도 받지 않았고 야간타율학습도 하지 않았다. 선배들보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진 셈이다. 덕분에 난 중학교 때부터 해 오던 웹진 만드는 일도 계속 할 수 있었고, 하자센터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었으며, 홈페이지도 마음껏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난 흔히들 말하는 단군 이래 최저 학력 집단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들이 만들어낸 학력이라는 기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은 그 기준에 의해 판단했을 때만 우리가 가장 못났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지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기준,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죽은 지식이 아니라 직접 체득한 산지식이 얼마나 되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를 비롯한 이해찬 1세대들은 단군 이래 가장 잘난 이들이라고 판명될 것이다. 산지식. 그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앞에서 쓴 내가 운 좋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모두 산지식으로 축적된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보충수업을 하고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했으면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말도 듣지 않았을 테고 갑자기 어려워진 이번 수능에서 당황하지도 않아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대신 산지식을 얻었다. 아깝게 버릴 뻔했던 3년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됐다. 난 더 큰 것을 얻었기 때문에 학교 공부를 덜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올해에 대학에 못가면 재수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산지식은 언제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고마워한다. 내가 이해찬 1세대라는 것을 말이다. 조성도(필명 펭도. 서울 동성고 3)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혹시 고등학교 때 자율 학습 한 사람 손들어 봐라. 그렇다면 너는 자율적인 사람인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80년대 절규는 아직도 유효하다. 학력은 성적순이 아니다. 21세기 정보 사회 학력은 창의성과 자율성을 근거로 성립한다. 따라서 학력 저하, 이 말은 사회에서 필요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측정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며, 그 기준이 작년 또는 재작년에 비해 지금 학생이 낮다는 객관적 평가가 나와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점수밖에는...
다음은 교과서 내용이다. 반역인가, 혁명인가? 바스티유 감옥은 중세 이래 프랑스 국왕들이 정치범을 가두던 곳이었다. 그 감옥의 대포는 파리시를 겨누고 있었다. 파리 시민들은 국왕의 명령만 떨어지면 대포를 쏠 준비를 갖추고 있는 바스티유 감옥을 증오하고 있었다. 7월 13일 밤, 파리 시민들은 언제 있을지 모를 근위병과 스위스와 독일 용병의 공격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해가 떠오르자, 모든 시민들은 주저하지 않고 함께 외쳤다. "가자! 바스티유를 공격하자!" 군중은 성내로 진입하였다. 바스티유 수비대가 서둘러 다리를 올렸지만, 비 오듯 하는 총탄 속에서 군인 출신의 한 목수가 태연히, 다릴 매단 사슬을 도끼로 찍어 내렸다. 군중은 그 다리를 건너 진격해 들어갔다. 다급해진 궁정 신하는 자고 있는 국왕을 깨워, 군중들이 바스티유를 습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왕 루이 16세는 깜짝 놀라 물었다. "반역인가?" ⑴ 시민들의 바스티유 감옥 공격은 정당하였는가? 그리고 여러분이 그 당시의 시민이었다면, 어떻게 하였겠는가? ⑵ 어느 병사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시민을 사살하였다면, 그 행위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만일, 병사가 무죄라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⑶ 이 사건은 반역인가, 혁명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⑷ 프랑스 대혁명이 추구한 이념은 무엇인가? (『공통사회』, 교육인적자원부, 7~8쪽) 자, 97년부터 고등학생은 이런 학습 과제를 통해 서양 시민 사회의 형성을 배웠다. 이런 내용을 배운 학생에게, 다음 중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아닌 것은?과 같은 문제를 통한 학력 측정은 절대적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결국 평가 기준과 평가 방법이다.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다만 여기서는 현재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고 있는 교과서와 그 평가 기준 및 방법을 전제하지 않고 시험 점수에만 근거하여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만 지적하고자 한다. 학력 저하, 그 주장이 갖는 의미는 엉뚱하게 드러난다. 이번에는 그것을 따져 보자. 다음 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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