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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아침에 걸려온 괴전화

2001.10.31.수요일
장씨문중의 자랑 난다

 
 



알랄랄라~ 알랄랄라~!!


아침, 9시... 늦잠을 자고 있는 본 기자를 힐책하듯 전화벨이 울렸다. 그 순간, 단꿈에 젖어있던 본 기자의 꿈 속에도 뜸금없이 소방차가 등장하고야 만다.


위요~ 위요~ 위요~!


이제, 꿈은 어느덧 데프콘 1의 전시상황으로 돌변해있다. 비몽사몽,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본 기자는 비로소 그것이 전화벨 소리임을 간신히 인지한다.


드뎌, 본 기자, 잠이 덜 깬 채 어렵게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음냐~!! 누구~세여?


장XX씨 댁임까?


보통 이 시간대에는 지방에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나 어느 설문조사기관 조사원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대부분이었거늘, 오늘은 왠일인지 수화기 너머로 왠 4~50대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순간, 본 기자는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가다듬었다.


예. 그런데여?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장씨 종친회임돠. 장XX씨 좀 바꿔주시죠?


헉.. 왠 종친회?


예. 제가 장XX 인데여...근데 무슨 일이십니까?


이 떄부터 그쪽은 반말모드로 전환한다.


어~ 그래? 그럼, 아버지나 오빠 좀 바꿔라~!!


네? 아니 왜 그러시져? 무슨 일이십니까?


종친회라고 얘기했잖아? 장씨 남자들이랑 얘기를 해야하니까 빨랑 바꿔!!


참고로, 본 기자는 서울에서 혼자 자취한지 어언 8년차로 접어들고 있으며, 가족들은 모두 지방에 있다.


다~ 지방에 계시는데여?


지방 어디야? 친정이 지방 어디냐고?


헉... 친정이라니... 아직 엄연히 독야청청하고 있는 미혼여성한테 덥썩 친정이라니...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순간,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본 기자, 그 쪽의 반말 모드와 친정 운운에 감정 상함과 동시에 여자는 필요없으니 남자와 통화하겠다는 여성에 대한 개무시, 그리고 다짜고짜 남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뻔뻔함에 열이 받고 만다.


나~참. 아니 장씨 종친회라면서 그런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전화를 하십니까?


그때부터 본 기자, 이 4~50대 중년남성이 과연 종친회 소속의 남자일까 의심하기 시작했더랬다.


종친회라고 했잖아? 그 많은 종친회 사람들을 어케 아나? 그리고, 이 여자 우끼는 여자네? 뭔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하나? 그게 종친회 어른한테 할 말이야?


이때, 본 기자, 종친회 사람이 아닐꺼라는 확신과 함께 제대로 뚜껑이 열리고야 만다.


이봐여? 첨부터 예의없이 나온 건 그쪽이잖아여? 당신이 절 언제 봤다고 반말부터 하는 겁니까? 그리고, 장씨가 얼마나 많은데, 다짜고짜 장씨 종친회라고 얘기하면 제가 무조건 제 가족관계를 나불거려야 합니까?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중년 남성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언성을 퍼붓기 시작했고, 본 기자, 아침부터 똥 밟았다는 생각으로 수화기를 가차없이 끊어 버렸다.


사실, 본 기자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다. 전화번호부에도 나와 있을 터이고, 내 앞으로는 오는 전화요금 통지서만 적당히 훔쳐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본 기자가 간간히 시켜먹는 중국집 주인조차도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본인이 가입한 사이트는 얼마나 많은가. 그 곳의 개인정보만 해킹해보아도 그냥 나올 수 있는 정말 손쉬운 정보들인 것이다.


그러니, 다짜고짜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만으로 종친회를 사칭하고 사기치기는 무지하게 쉬운 일인게다. 더욱이 그 남자는 무수히 많은 장씨 중 내가 어디 장씨이며 어느 파 인지조차도 확인하지 않았지 않는가.


그 순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예의가 아닌 걸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의 본 기자, 한국통신에 전화를 걸어 우리 집으로 걸려온 그 남자의 전화번호를 조회해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문득, 머리 속을 스쳐가는 일말의 의구심....


앗. 진정 종친회에서 걸려온 전화였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의구심이 들자, 냉정하게 그가 했던 말과 태도를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가 종친회 사람일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 사람이 본 기자에게 사기를 치려 했다면 본인임을 밝힌 본 기자에게 썰을 풀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없을지도 모르는 다른 이를 요구했다.


둘째, 그는 남성을 요구했다. 또한 친정 남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종친회의 특성상, 여자는 안중에 없는 게 일반적이다. 여자는 출가외인, 즉 종친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게 그들 대다수의 생각일 터이니 말이다.


셋째, 그는 줄곧 반말을 사용하였다. 이는 처음 논거와 마찬가지로 본 기자에게처음부터 다짜고짜 반말을 함으로써 반감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본 기자나 본 기자의 가족을 등쳐먹을 작정이라면, 본 기자에게 우호적이어야 했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당황스러울 정도의 당당함과 뻔뻔스러움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상식적으로 볼 때, 분명 믿는 구석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러모로 짱구를 굴려보았을 때, 그가 정말 종친회의 사람일 가능성이 커져가자, 갑자기, 본 기자 몹시 우울해지기 시작했더랬다.


단지 종친회라는 이유만으로 처음 전화하는 성인여성에게 반말을 지껄여도 된다는 그 이유없는 자신감도 그러커니와, 여성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 남성을 바꾸라는 그 어처구니 없는 태도도 본 기자를 우울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더욱이, 개인의 사적 정보에 대한 존중도 없이, 아니 최소한의 정당한 절차를 밟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개인정보를 내어놓으라는 안하무인격의 태도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듯 하여 더욱 우울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 다른 이유로 본 기자는 진정 우울해지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장씨 집안 이름의 땅이나 선산이 팔려서 그것을 종친회에서 분배하겠다는 전화였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본 기자는 우짜자고 그리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단 말인가... 굴러온 복을 제 발로 차 버려도 유분수지....


 


 아~~!! 빌어먹을 나의 대쪽 같음이여~!!  



 

강직성품 육성우원회 고문


난다 (festival@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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