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김병현]전부 우리 애들이쟎아, 씨바!

2001.11.12.월요일

딴지 스포추팀

 


 


2001년 10월 31일. 뉴욕 양키즈 스타디움.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는 이 날 여기서 벌어졌던 2001 월드시리즈 4차전을 야구 역사상 최고의 게임 30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7차전도 함께. 한 해 월드시리즈에서 두 게임을 선정한 건 처음이다.) 한 해 약 2천5백 게임 정도가 펼쳐지는, 100년이 넘는 미국 야구 역사에서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선정됐다는 것만으로도 그 게임이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홈런 후 Martinez


그 타석 직전까지 9타수 무안타였던 Tino Martinez가 9회말 투아웃에서 동점홈런을, 다시 10회말 15타수 1안타에 불과했던 Derek Jeter가 끝내기 홈런을 쳐내 우리 모두를 악! 소리 나게 했던 그 게임. Tino Martinez의 그 홈런이 역전홈런도 아니고 끝내기 홈런도 아니었음에도 양키즈의 Torre 감독이 그의 생애 최고의 홈런일 것이라 말할 만큼 드라마틱했던 그 게임.


그 게임을 날린 장본인이 우리의 김병현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우리의 김병현은 또 한 게임을 똑같은 방식으로 날려버린다. 또 다시 9회말 투아웃, 또 다시 홈런. 이번에는 악!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간뎅이는, 김병현과 함께 양키즈구장의 투수마운드에 주저 앉았더랬다.


아.. 이 날 한국의 팬들은, 우리 집 막내아들이 옆 동네 잔치에 흥을 돋구러 갔다가 오히려 잔치상을 엎어버린 것 같은 미안함과 허탈감으로 맥이 빠졌다. 김병현 한 선수만 제외하면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역만리 우리가 이 정도 쇼크였다면, 그 팀의 연고지인 아리조나의 팬들은 어떠했겠는가.


 






아리조나 州의 수도는 피닉스(Phoenix)다. 그리고, 피닉스는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 ML(야구), NBA(농구), NFL(미식축구), NHL(하키) 중 그 어떤 종목에서도 단 한 번도 우승을 한 전적이 없는 유일한 프로스포츠 연고 도시다. 아리조나주는 그 어떤 종목에서도 전국우승을 한 팀을 가지지 못한 유일한 주라는 말이다. 


농구에서는 "Phoenix Suns"가 두 번 NBA 결승에 올라간 전적이 있으나 두 번 다 패했다. 미식축구의 "Arizona Cardinals"는 딱 한 번 NFL 플레이오프에 나간 적 있으나 역시 졌다. "Phoenix Coyotes"는 NHL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한 적이 없다.


아리조나 주 역사상 그 어떤 종목에서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미국에서 프로스포츠 연고팀을 가진 주 중 그 어떤 종목에서도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주는 아리조나 주가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아리조나 팬들이 가졌을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한 염원과 열망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 


그 강도를 유추해볼 수 있는 이야기 하나. 우승 후 퍼레이드를 하는 날, 피닉스의 학교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결석을 했다고 한다. 이유는? once in a lifetime experience 이라고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그 퍼레이드에 데리고 가기 위해 일부러 결석을 시켜서. 삼성 우승한다고 대구 아빠들이 아들 결석 시키고 구경가겠는가. 


그 정도였다.  


결승타후 Gonzalez  


게다가, 당사자인 다이아몬드백스 팀 멤버들은 또 어떤가. 팀 내 월드시리즈 우승경험이 있는 유일한 선수가 Craig Counsell, 딱 한 명. 나머지 선수 중 우승을 경험한 선수는 한 명도 없을 뿐 아니라, 7차전 삐꾸 결승타를 쳐낸 Luis Gonzalez는 메이저리그 생활 16년 만에야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투수 Mike Morgan은 23년, Bobby Wit는 16년, Greg Swindell 16년, Reggie Sanders 11년,  Greg Colbrunn 10년... 리스트는 계속된다. 그들은 그들의 야구인생을 통털어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이다. 


이러니 당연히 주전급 거의 전부가 노땅 선수들이다. 가장 젊어 보이는 Craig Counsell이 우리 나이로 32. 결승타의 Luis Gonzalez가 35.  동점 2루타를 친 Tony Womack이 33. 역전 득점을 올린 Jay Bell이 37. 포수 Miller 33. 1루수 Mark Grace 38. 3루수 Matt Williams 36. 센터필드 Steve Finley 37. Curt Schilling이 35세에, Randy Johnson이 39세이며 투수 Mike Morgan은 42세... 역시 리스트는 계속된다. 참, 늙은 구단이다. 


이런 선수들의 열망은 또 어떠했겠는가.


아...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리조나주가 탄생한 이래 최초의, 피닉스시가 개발된 이래 최초의, 평균 30이 넘은 대다수의 노땅선수들이 야구를 시작한 이래  최초의, 우승 후 자식들을 결석시켜 퍼레이드에 참석 시킬 만큼의 열정을 가진 팬들이 최초로.. 최초로 맞이한 우승기회를 우리의 호푸, 김병현이 날릴 뻔한 것이었다. 


세상에나...


 

1994년 6월 23일. 보스턴 폭스보로 스타디움. 한국 대 볼리비아. 94 미국 월드컵 두 번째 게임. 한국은 이 경기를 꼭 잡아야 했다. 

누구나 일방적인 열세를 점쳤던 강적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2:0으로 뒤지다 후반 40분과 44분 기적 같은 동점을 만들어 2대2로 비기는 일대 파란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한국팬들은 흥분했다.

이제, 두 번째 게임인 이 날의 볼리비아전만 잡으면, 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처녀출전하여 헝가리와의 첫 게임에서 월드컵 본선 역사상 최대 골차인 0:9, 두 번째 터기와 게임에서 0:7로 패배한 이래, 한국 축구팬들의 절대 염원이 된 월드컵 16강 진출이 사상 최초로 사정권 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더구나, 볼리비아는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 런던의 도박사들은 한국과 볼리비아의 경기에서 한국을 우세한 팀으로 지목했다. 월드컵 역사상, 런던의 도박사들에 의해 아시아 대표가 남미 대표를 상대로 우세한 팀으로 지목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더욱이 마지막 게임 상대가 바로 전 대회의 우승국인 독일. 볼리비아전에서 결판을 내야만 했다.

관중 수용능력 52,000명에 54,456명이 초만원을 이룬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눈부신 플레이를 했다. 예선에서 브라질을 2:0으로 꺾었던 - 1934년부터 1990년까지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 브라질을 꺾은 것은 볼리비아가 유일했다 - 볼리비아를 상대로 한국은, 도박사들 예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결정적인 슛 두 세 번이, 골문 바로 근처에서 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골대 너머 허공을 갈랐다. 월드컵 최초의 16강도 그렇게 날아갔고. 그 결정적인 찬스 두 세 번을 허공에 똥볼로 날린 스트라이커, 그가 황선홍이다.

 

황선홍. 그는 그날 이후 한국 축구의 역적이 된다. 사상 최초의 월드컵 16강 기회를 똥볼로 날려버린 역적. 88년 아시안컵에서 일본을 상대로 1골 1어시스트를 하며 화려하게 국가대표로 데뷔한 이래, 생애 통산 89경기 출장 47골을 기록하여 A매치 사상 최다골 기록 보유자이고 일본 J리그에서도 외국인 최초의 득점왕을 차지한 탁월한 스트라이커이며 외국 전문가들에게 이란의 알리 다이에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의 골잡이로 평가 받는 그이지만, 그 한 게임으로 그는 끝없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에게 쏟아진 비난, 야유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던가, 아니 지속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아냥거렸던가. 똥볼은 곧 황선홍이었다. 누군가 시합 중 똥볼을 찰라치면 "니가 황선홍이냐"라는 관용어구가 뒤따라 붙었다. 황선홍이 혹여 시합 중 작은 실수라도 할라치면 " 역시 넌 안돼 " 라는 소릴 들어야 했고, 잘하면 잘하는 대로 국내용이라느니, 근성이 없다느니, 똥볼만 찬다느니.. 하는 근거 없는 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김병현이 그렇게 엄청난 게임을 그렇게 허무하게 연속 두 번 날리고 나서 한국의 팬들은 미국의 언론이, 아리조나의 팬들이, 그의 팀동료들이 그에게 어떤 소리를 할까 조마조마했었다. 시댁의 가보를 청소하다 깨버린 막내딸 지켜보는 친정엄마의 심정으로 그들의 코멘트를 기다렸다. 당시, 극적 상황을 미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 만약 누군가 그런(두 게임 연속으로 9회말 투아웃 이후에 홈런을 맞고 이기던 게임을 날려 버려라..하는)농담을 한다면, 그 악독함 때문에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무기징역이 구형해도 좋을 정도다.. " 라고.


그러나, 코멘트는 우리의 기대와 달랐다. 물론 패배에 대한 질타는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김병현에게 너무 오랜 이닝을 던지게 했다느니(김병현은 시즌 중 최다인 61구를 던졌다), 너무 빨리 쉴링을 내려오게 했다느니, 심리적 충격이 벗어나기 전에 너무 빨리 다시 기용했다느니 하는 게임의 운용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운용을 한 감독을 비판할 망정, 김병현을 비난하진 않았다. 오히려, 과연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나서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언론은 그랬다. 

팬들은?

 

 

 

 

김병현을 응원하는 플랭카드들이다. 참.. 한국팬들로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큰 게임을 그것도 다 이긴 걸 두 게임이나 연속으로 날렸더니, 계속 널 사랑하겠다니.. 김병현을 몰아 부치지 않으니 좋긴 하다만,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리조나 팬들이 현장에서 보여준 반응은 또 어떠했는가. 아래 당시 운동장에서 직접 관람했던 한 아리조나팬이 TV로만 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현장 상황을 묘사한 게시물이다.  

 





Many of us would love to give Kim a hug... but will let his teammates "speak" for us.Actually, some small things that people only watching on TV cant pick up that shows how the fans feel about Kim: 

1. Just before the game they show the individual players on the Jumbo-tron as a psych up before the first pitch.. they do this one by one... and the starting pitcher always is last and gets the loudest cheer... BUT if you listen to how some players get louder cheers than others, there are four others who get significantly louder cheers: whichever ace isnt pitching, Gonzo, Counsell... and BK! 


2. Before the award ceremony.... the Jumbo tron showed Kim on the field.. and the whole section I was sitting in in the upper deck began chanting loudly: "Kim, Kim, Kim, Kim, Kim..." The World Series ended perfectly, and in effect took BK off the hook... Especially nice that the Dbacks showed Kim that the absolute best closer in baseball can also "blow" a save and is human.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를 포옹해주고 싶겠지만, 그의 동료들이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도록 하자구요. 사실, 팬들이 김병현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사건들이 있었던 걸, TV로만 본 사람들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1. 게임시작 직전, 첫 투구 전에 사람들의 흥을 돋구기 위해 점보트론에 태워 선수들을 선보입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하는데, 언제나 선발투수가 가장 나중에, 가장 큰 환호를 받으며 등장하죠. 그러나, 누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 큰 환호를 받는지 주의를 기울여 들어봤다면, 유독 4명의 선수가 유난히 커다란 환호를 받았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선발투수를 제외하고는 곤조(곤잘레스), 카운셀 그리고 바로 김병헌선수였죠 !


2. 시상식 전에, 점보트론이 김병헌 선수를 비췄는데, 그때 제가 앉아 있던 위쪽 칸 전체에서 연호가 시작됐죠. " 김! 김! 김! "이라고. 월드시리즈는 완벽하게 끝이 났고 그로 인해 김병헌은 곤경에서 벗어나게 됐는데, 최고의 마무리(뉴욕의 리베라)도 결국은 인간이며 세이브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걸 동료선수들이 김병헌에게 보여줬다는 점이 특히 좋았어요...


그랬단다...

그럼 감독과 동료들은? 

감독은 5차전이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김병현을 6, 7차전에서 기회가 오면 기용하겠냐는 질문에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 wouldnt hesitate to use Kim" 
(김병헌을 기용하는데 전혀 망설이지 않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마무리했다. 


"Hes our closer... Hell be our guy."
(그는 우리 마무리투수다.. 그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료들은? 

Luis Gonzalez는 4차전과 5차전을 패한 후 라는 타이틀로 그가 기고하고 있는 한 지역신문에 이런 기사를 썼다. 


" I felt for him as a teammate, especially seeing him on the airplane sitting by himself without any family. I went up and put my arm around him. I told him that we believe in him, that all of us have failed. "
( 난 팀동료로서 그가 측은했다, 특히 가족도 없이 혼자 비행기에 앉아 가는 걸 보고서는. 그에게 가서 어깨를 두르고는 난 여전히 그를 믿으며, (너 혼자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전체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


그리고는, 그 이후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7회나 8회에 점수를 더 내고 싶었다고.(그랬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야구란 게 3할이 되려면 10번에 7번을 실패해야 한다고.. 김병현을 탓하긴 커녕, 오히려 점수를 더 냈어야 하는 건데.. 라고 아쉬워하고, 우리 모두의 패배라고 말한다. 참네..

하나 더. 

Randy Johnson은 11월 5일 NBC의 간판 토크쇼인 Jay Reno의 Tonight Show에 출연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레노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감독이 김병현을 상황이 오면 (다시) 투입하려고 했냐고. (설마 그런 멍청이가 어디 있겠냐는 의미다. 여기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그게 (두 게임을 홈런 맞고 날린 것) 팀의 사기에 어떻게 영향을 줬냐고.

여기에 Randy Johnson은 실제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밖에서 보면 쉽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야구를 하다 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으며, 자신도 올 시즌 전까지는 포스트시즌 성적이 2승 7패 였으며 올해만 5승을 올려 7승 7패가 됐다고, 김병현이 22살 2년차에 불과하고 문화적 충격과 언어문제로 힘들었을 것이라며 김병현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이런 말을 한다. 


" He`s gonna be a phenomenal closer and he already is. But he`s gonna be bigger and better. "
(그는 정말 경이적인 마무리투수가 되겠죠. 사실 이미 그렇기도 하구요. 하지만, 앞으로 그는 지금보다도 더 크고 더 뛰어난 선수가 될 겁니다.)


 

본기자,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원래부터 동료애가 많고 사려 깊은 인종이라느니.. 뭐 그런 생각 결코 하지 않는다. 혹자는 김병현이 나이가 어려서 그렇다고 한다. 물론 그런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이로 23세의 어린 선수가 측은해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선수 나이가 어리다고 특별히 더 관대했었나. 황선홍도 그때 어렸다. 아예 동갑을 비교해보자. 이동국 선수가 21살 시절, 중요 경기에서 제 역할을 못했을 때 누가 질타 이전에 김병현이 받은 것과 같은 격려와 위로, 응원을 먼저 보냈나. 황선홍이 똥볼을 날렸을 때 누가 나서서 황선홍 혼자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패배라고 했던가. 

뉴욕의 기자들이 김병현에게 잔인하게도 "go home kid!" 했으니, 아리조나팬들이 자기 편 선수를 감싸는 건 당연하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럼 황선홍은 볼리비아 사람이었나.. 김병현 선수가 날린 두 번의 경기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었기에 그랬다는 소리, 일리 있다. 하지만 그건 황선홍도 마찬가지였다. 혹은 황선홍은 스트라이크로서 이길 수 있었던 게임을 날린 책임을 져야한다? 김병현은 아닌가? 7차전을 이겼기에 그가 결국 모든 것을 용서 받았다고 한다. 맞는 소리다. 하지만 격려와 위로와 응원은 7차전 승부 이전에 이미 쏟아졌다.

그 외에도, 특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지 그들도 똑같다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다 일정 정도 맞는 소리다. 그러나, 우리 한 가지는 인정하자. 우리가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어도, 우리 스포츠 문화에, 그들에겐 있는 것 중 상대적으로 모자라는 것이 분명 있다. 

우린 세대를 초월해 가져본 천재와 영웅이 별로 없다. 이유는? 천재적, 영웅적 자질이 있는 사람이 워낙 없기 때문에? 우리가 배출한 유일한 세계적 인지도의 축구선수가 차범근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아시아출신 축구선수이기도 하다. 그런, 차범근을 세계에서 가장 미워하고 우습게 여기는 나라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나라가 아니고.

박세리가 2년 징크스로 오랜 기간 우승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받았던 비난은 기억들 하시는가. 겉멋이 들었다느니. 돈맛이 들었다느니. 건방져졌다느니... 혹은, 몇 년 전, 박찬호 중계료와 기타 광고비 등을 생각하면 외환 수지가 적자라느니 하면서 씹어대던 것 기억들 하시는가. 한 개인 선수가 벌어들이는 연봉과 우리가 그 경기를 보기 위해 지불하는 중계료를 계산해 국가차원의 외환수지를 따져내는 나라가 또 있을까. 아..씨바.. 아무리 우리나라지만 이런 대목에선 정말 정떨어진다. 

실수하고 실패할 때 우리가 오히려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보호해준 우리네 천재와 영웅들이 얼마나 있던가. 기억 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시라. 웬만한 실수나 의구심에는 꿈쩍도 않고 언제나 자기 편이 되어줄 것임을 알기에 저절로 안정감을 주고 더욱 분발하게 만드는 그런 애정, 그런 종류의 관심과 애정을 우리네 천재와 영웅들은 받아본 적이 없다. 반면, 우리가 배출한 천재와 영웅들을 실수하고, 실패했다고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박살내버린 경우, 그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네 운동 선수들이 너무도 오랜 세월 국가주의를 위한 선전물로만 이용되어 왔기에 그들을 인간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인간은 간데 없고 오로지 국위선양의 목적을 달성치 못한 선전도구에게 그 죄 값을 묻는 데만 익숙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해방 후 우리 사회가 지금껏 성장하면서 사회 전체가 강퍅하며 총체적인 집단애정결핍을 겪을 수밖에 없는 길을 달려와서 그런 걸까. 이렇게까지 범국민적으로 옹졸할 순 없다. 

이 범국민적 옹졸함, 이 집단적 애정결핍의 뿌리가 무엇이든 - 그 뿌리는 다음  번에 파헤쳐보기로 하고 - 이젠 제발 이런 조또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 고마들 하자. 무조건 비판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최소한 비판하는 만큼은 격려하고 응원해주고 도닥거리고 감싸주자. 우리가 그들을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하나. 걔네들 전부 우리 애들이쟎아, 씨바..

 

 

영웅도, 천재도,
가질 자격이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거다.
 
 
 




간만에 스포추기자, 딴지총수
(chongsu@ddanzi.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