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영화 우원회] 무협영화가 보고잡다. 2001.9.24.화요일
바야흐로 드디어 울 나라에도 <무협영화>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뭐 이렇게 비장하게 나갈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 해와 올해에 걸쳐 <비싼무>나 <단지비연수>, 그리고 <무우사>꺼정 끊이지 않고 바톤터치하는 모양새를 보니 현재 활활 불타는 한국영화판에 무협영화라는 게 당당히 한자리 비집고 들어 온 게 분명하다. <비싼무>나 <단지비연수>의 수지타산이 <무우사>의 기획적인 측면에 영향을 준 점이 있는데, 무협장르가 상당히 만만치 않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확인이 되겠다. 뭐 그렇다고 무협영화팬들만 타켓으로 보고 이 영화들을 만들었단 이야긴 물론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놀라운 건... 놀라지 마라. <단지비연수>나 <무사>는.... 무협영화가 아니다. 무어라? 알고들 있었다고? 그렇다면 뭐 쩝 어쩔 수 없지만서도... 아무튼 그리하야 본 우원 그저 이 두 영화에다 쌈마이 시대극 정도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 지금 <무우사> 검열하는 건 아니다. 오해없길 바란다. 본 우원이 지금 하는 짓거리는 어린 시절 휴일이면 동네극장을 주름잡던 왕우, 강대위, 적룡, 이소룡, 류가휘, 정소추, 성룡아제와 소림사 18동인의 그 강렬한 포효와 후까에 흠뻑했던 그 짜릿하고 소중한 추억에 대한 소고다. 얼마나 가슴 설레고 신이 났던가. 이건 초딩 저학년때 <로버트 태권V>에서 또 한번 업그레이드된 세상읽기였다. 동네 친구놈들과의 극장 나들이가 끝나면 골목길은 피바람이 가득한 강호의 언덕, 바로 그 곳이 되지 않았던가. 아, 그 날의 절대 무공을 자랑하던 고수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밥이나 잘 챙겨먹고 살까?
일단 기본적으론 무협극은 무술자체가 살아 있어야 한다. 쉽게 좀 풀어 본다면 주인공이 어떤 무술을 구사하고 어떤 동작을 취한다면 거기에도 스토리가 있다는 거다. 그 내용을 영화 속에서 배우가 나와 입으로 주절주절 다 까발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런 게 바탕에 있어야 일관되고 정확한 동작을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입벌리고 황홀해지는 거다. 무협은 한자어다. 한자로 끄적여보면 武俠이 되겠다. 무武는 뭔가? 힘, 후까, 싸움박질, 몸부림 등등이 될 것이고 협俠은 의리, 정의, 강직, 용기 뭐 그런거 되겠지? 아무리 액션이 중요한 무협영화라두 그저 아무 생각없는 몸부리만 담는다면 이거 졸라 재미없는 빠굴무비와 다름아니다. 이거이 요즘 말들 하는 콘텐츠의 중요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무만 있고 협이 없다면 그건 공장에서 나사 조이는 장면만 2시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고 협만 있고 무가 없다면 술취한 친구놈 뺑뺑이 도는 이야기 듣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협 이야기 속에서 무와 협은 서로가 동전의 양면처럼 깊은 관계를 맺고 붙어다닌다. 무를 얻기 위해 협을 버리기도 하고 협을 지키다 무를 이루어낸다. 어~헝, 심오한 무협의 세계여.
<비싼무>의 비사실성에 강박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비록 <무우사>가 쌈마이에는 분명하더라도 사실적인 표현에는 상당히 고심한 것처럼 보인다. 그이들의 고민한 실감영상에는, 엽기만빵의 실감나는 신체절단뿐 아니라 1m 이상 점프하지 않는다 등의 교전수칙도 정해두고 쌈마이 장면을 연출한 것이 보인다. 그러나 그런 걸 가지고 본 우원 리얼리티 어쩌구하고 싶지 않다. 영화에서 사실성은 표현의 문제지 꼭 진짜를 또는 진짜처럼 찍어야 한다는 강박성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단칼에 목을 날리는 건 사실인가? 모르겠다. 실험해 본 적이 없어서. (다만 예전 어릴 때 본 우원이 다니던 우리동네 십팔기 도장 사범님에게 들은 이야기론 거의 불가능하단다.) 어쨌든 <무우사>의 격투장면들만이 리얼하다는 식의 평가라면 지금껏 제대로 된 무협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표현>의 진면목을 무시한 것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무우사>가 무협영화가 아닌 것이, 앞에서 말했듯이 무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그렇다고 협의 이야기도 훌륭하다고 말하기도 쑥스럽다. 무협의 스타일을 빌리긴 했는데 그 이야긴 전통적인 무협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시대상황에 기댄 쌈마이 이야기다.
한때 짱꽤영화라는 비아냥과 친숙함이 함께 내포된 표현으로도 불린 중국무협영화는 기실 1900년대 초 그들의 민속극인 경극을 필름에 담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역사적 격변과 함께 구시대의 퇴물로 취급받기 시작한 무술인과 경극인들은 새로이 영화라는 형식으로 그들의 재주를 담아 해안지역 큰 도시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초기의 작품들은 기억도 없고 자료도 미비하다. 그저 전설처럼 전해온다. (자료들이 생생하게 보관되지 못한 점 우리영화가 더 한데 이것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모두 문화와 예술을 천박히 여기는, 특히 자신의 것을 더더욱 천박히 여기던 진짜 천박한 것들의 비뚤어진 관념 때문 아니겠나) 그리고 그 중에는 김염이라는 한국계 매력 덩어리님이 <풍류검객> 같은 영화로 한 끝발 날리며 중국 꾸낭들의 가슴팍을 애리게도 했다는 이야기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전해져 온다. 물론 본 우원도 그 분의 영화 속 풍모를 보진 못했다. 그저 사진으로만 당시로는 졸라 잘생긴 얼굴을 대했을 뿐이다.
시대는 또 흘러 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무술인, 경극인들에게 천대와 박해의 강도는 좀 더 세어졌다고 한다. 그걸 피해 정처 없던 발길이 머문 곳이 홍콩이다. 이런 정치적인 광풍을 넘기고 나서 요즘 재조명이니 머니하며 뜨고 있는 호금전 선생의 <협녀>나 <용문객잔> 등의 무협영화들이 나왔다. 이어 왕우의 <외팔이 검객> 시리즈나 유가휘의 <소림사> 시리즈가 역시 무협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동방의 별 이소룡의 전세계적인 무술영화 붐은 아직도 그 반향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근래에 성룡을 비롯한 홍금보, 원표, 허관걸, 이연걸까지 면면이 이어지는 그들 무협극의 최근 추세를 봐서는 앞으로도 쉽사리 꺽일 것 같지는 않다. 머 좀 부럽다. 무협영화란 장르는 아주 오래도록 깊게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였던 범동양인에겐 묘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뿐이랴. 양넘들에게야 졸라 신기한 몸동작에 지나지 않겠지만 우리들에겐(적어도 우리조상들에겐) 인생철학이었고 생존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버린 한민족 고유의 무예들은 이 작은 나라를 지키는 국방지책이었고 가난한 백성들의 호신지책이었다. (이소룡의 쌍절봉은 고대 일본에서 한 봉건영주에 맞서는 농민들이 고안해 낸 무기였다) 또한 약과 의사가 귀한 시절 무예는 백성들의 심신을 단련하고 몸의 구조를 익혀 질병과 사고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중요한 도구였다. 이렇게 그 찐한 의미가 우리에겐 있었던 것이다. 무협극 속의 무술들은 소림, 태극, 당랑, 영춘, 매화 등등을 비롯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진한데 통칭 <우슈>라 하고 <쿵푸>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본토의 <소림사>란 영화로 데뷔했던 이연걸이나 <칼>의 조문탁 등은 무술대회에서 이름을 날리고 픽업된 경우라 하겠다. <철마류>의 견자단같은 이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본토까지 가서 무술수련을 했다고 하는데 상당히 호쾌하고 시원한 동작을 보여주어 본 우원도 매우 좋아했었다. 요즘은 유럽에서 활동한데나 머래나...
그런데 현재 본토의 수많은 도장들과 무술학교들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현재의 무협영화의 자원이면 그 이전에는 경극출신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었다. 성룡이나 홍금보, 원표 등도 그런 이들인데 비록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어려운 시절 아이들을 거의 버리다시피 경극단에 맡겼던 경우가 많았다 한다. 그들이 경극단이나 경극학교에서 받는 교육 또한 엄하고 힘들다고 하는데, 연극과 쿵푸를 함께 배워 무협영화의 기본을 갖춘다. <철마류>의 또 하나의 히어로 우영광은 <무우사>에서 람불화역으로 나와 주목을 끌었는데 졸라 반갑더라. 그 역시 경극단에서 무술을 배웠고 무술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영화에 진출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무협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조연과 엑스트라들 모두 알고 보면 한가닥씩 하는 고수들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주목할 만한 점은 그들 각자 개개인의 기술이 중국영화 역사 속 자산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영화무술인 각자의 노하우가 계속 잘 전수되고 있다는 것. 이 점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풍부한 인적자원과 함께 영화판에서 활약하는 무술인들이 자신의 기술을 풀어놓는데 인색하지 않은 대범함이다. 원화평, 정소동, 우마, 임정영(이분이 얼마전에 돌아가신 강시선생이시다)등의 무술감독들의 노고 속에서 체계화된 효율적인 매뉴얼은 중국무협영화의 부러운 부분이다. 70년대 낙후된 영화기술과 자본으로 우리나라까지 와서 밥벌이를 하던 그들이 이젠 명실상부 세계 속의 무협영화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원화평같은 이는 이제 고령에 들어선 나이인데도 계속 세계적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취권>을 만든 그의 곡예쿵후가 이젠 무술영화계의 가장 뚜렷한 전형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예전엔 자신이 무술감독한 영화에 조연으로도 자주 눈에 들어왔던 그는 화면 속에선 누가 보아도 무술대가로 믿어지지 않는 평범한 풍모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있다.
<와호장룡>의 주윤발은 검객고수는 커녕 발차기조차 제대로 못하던 무치(武癡?)이고 양자경 또한 미스 말레이 출신의 간판으로 <예스 마담> 타이틀 롤을 따내면서 어릴 때 발레를 배운 게 도움이 됐어요라는 말로 관계자들을 당황케 할 만큼 문외한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로 볼 때 그런 어설픔이 보이던가. 전문가가 아니면 그런 짝퉁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 거, 그것이 중국무협의 가장 큰 기술력이다. 우리가 무협극이나 무술영화들을 싸구려 사기질로 매도하고 어느 잡지 하나 제대로 된 분석 하나 못 갖추었을 때 그들은 이제 허리우드까지 진출해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을 찍고, <쿵후사범>을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 무협영화는 뿌리도 없이 헛도는 아쉬움 그 자체다. 다 고매한 우리 영화인, 평론가들 덕분이다. 천박한 토양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잘 만들고 싶던 한국무술배우나 감독들에게 시비걸 순 없다. 그들 개개인의 무술역량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도리어 전혀 그런 쪽에 안목을 가지지 못한 영화인들 탓이라 하겠다. <무우사>를 비롯한 근간의 무협영화들의 작가들이 무예에 조예가 깊게 보이진 않는다. 과연 그들이 무술감독과 충분히 상의하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수백만명을 감동시킬 자격을 갖춘 깊이있는 동작연구를 했었는지 묻고 싶다. 아니라면 아예 완전히 무술감독에게 맡기고 감독은 간섭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홍콩 역시 성룡이나 홍금보처럼 무술지휘을 겸하는 경우가 아니면 감독은 무술감독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다. 예전 성룡의 <성가반>이니 홍금보의 <홍가반>이니 하며 조직된 한가닥들의 진지하고 꼼꼼한 고민이 우리에게 주었던 즐거움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한 대우도 필요하고 그만한 공로 인정도 우리 무술인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듯 싶다.
성룡은 가끔 공식적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불우청소년들에게 수천대의 자전거를 나누어주는 행사를 한다. 사실 이런 행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규모로 행해지는 성룡 자선행사의 일부이다. 또 유덕화는 여러나라에 걸쳐 고아 어린이들을 양자로 삼아 수백명의 아버지로 등록되어있고 바바리코트 주윤발도 도서관의 장서기증과 장학사업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단다. 그들이 많이 배우지 못해 유치한 영화나 찍는다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못배움과 고생을 잊지 않고 기꺼이 선행을 베푸는 데에는 본 우원도 감동을 아끼지 않는다. 허리우드 배우들 못지 않은 이런 조직적, 체계적인 자선활동은 연말에 지 기분따라 모금행사에 얼굴 내밀다 말다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의협객은 약자에 약하고 강자에 강하며, 불의를 지나치지 않고 가난한 자를 도우며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진실을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라져 간 강호의 무협인들을 그려내는 무협영화가 신나는 B급 오락영화로써도 그 생명력을 움켜쥐고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작과 더불어 고단한 백성들과 함께 숨쉬는 의협심과 정의심 때문일 것이다. 비록 현실에 중국의 영화인들이 암흑가와 연이 닿아 있거나 불미스런 사고를 내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왕우나 적룡은 암흑가의 상당한 지위로 알려져 있고 주윤발도 최근에 암흑가 두목과의 연류설로 곤혹스럽다. 주성치는 비슷한 이유로 캐나다 영주권 신청을 거절당했었다) 사람사는 곳이니 그럴 수 있다. 이런 점 감안해도 그들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은 지난 수천년 민초들이 사랑한 협객의 이야기임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무협영화를 꿈꾸는 현대의 우리 무협인들에게 한가지 부탁컨대, 무도 협도 소홀함이 없는 그런 무협영화를 생각해 주기 바란다. 무협영화 참 재미있는 장르이다. 그저 총으로 갈겨되는 미국넘들 액션보다 훨씬 인간적이지 않냐?
<무우사> 보다가 자꾸 딴 생각이 나서 한 판 땡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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