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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국사람이 아니지만 내 학생이든 동료든 친구든 내 주변에 있는 한국사람보다 한국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정상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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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박근혜 정부에 반대한다. 그렇다고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의견의 갈등이 생길지라도 성숙한 어른답게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치는 재미없다'. '정치가들은 다 똑같다'. '이야기 해도 달라질 거 없다'. '어차피 우리는 힘이 없다'. 내 주변사람들은 좋은 핑계를 대면서 정치 이야기를 피하더라고. 처음에는 싸울까봐 정치 이야기를 피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무관심한 거였다. 뉴스나 팟캐스트를 보면 분명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진 한국사람이 많은데 내 주변에는 안 보인다. 난 무관심의 바다 속에 발버둥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외롭다고 투정하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현상인 것이 확실하다. 난 외국인으로서 한국 정치에 대해서 아직도 무지하고 모르는 게 많지만 그나마 관심이라도 있으니까 나름대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관심은 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직선제로 국민들이 직접 투표해서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물론 3권 분립의 문제와 국정원의 남용도 여전하다. 언론의 자유도 통제돼 있고 여론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행정부를 보면 민주주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군사통치 때와 달리 현재 여권은 유권자들이 수여한 정당성을 입고 월권을 하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맞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는 마법처럼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4.19혁명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독재에 대항해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면서 싸우던 젊은 운동가들의 성과였다. 모든 국민들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민간 사찰, 탄압, 체포, 고문,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던 젊은 친구들에 대한 신세를 갚는 방법은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 제공하는 새로운 자유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면서.



‘또 그 이야기야? 관심은 무슨? 정치는 재미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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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안다. 그런데 정치는 모든 국민들한테 엄청난 영향을 준다. 우리가 뽑았던 정치가들이 정당성이라는 이름 하에 민생을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재미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관심을 갖고 나서야 된다. 하루 아침에 정치의 전쟁터로 뛰어들어 열정적인 투사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의식하면서 신중하게 투표하라고.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류층은 평범한 중산층보다 사회적 영향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상류층은 자신들의 재산과 지위를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권력을 휘두를 확률이 분명히 높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도 없고 귀찮아서 의식하고 싶지도 않다면 힘을 가진 엘리트에 복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반 국민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수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하면서 투표만 한다면 영향력도 생기고 엘리트의 지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민생의 안위가 달려있는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화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이성적이고 현실성 있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의식하면서 투표한다면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투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현재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가, 현재까지의 성과를 보면서 현 정부를 지지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 가다. 이런 고민을 시작하면서 정치의식도 싹트게 된다.



'난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 일단 감정을 배제해야 된다. 흔히들 알고 있는 박근혜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들, 수식어들을 접어 놓자. 박근혜의 성향이나 정치 방향도 모른 채 무조건 박근혜를 싫다고 하는 것은 진보를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뿐,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 당신에게 왜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냐고 물어본다면 독재자의 딸이라서 그렇다고 했을 때 과연 설득력이 있을 것 같은가? 약하다. 반박이 쉽다. 그런 단순한 대답은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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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반대하고 정치 의식을 깨려면 이성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서 박근혜를 이성적으로 비판할 만한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던 국민들의 세 가지 요구만 언급해도 충분하겠다.


1. '노동개악 철폐'. 올해 9월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법 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이다. 비정규직의 확대, 더 쉬워진 정리해고, 55세 이상 노동자 대상 임금피크제 시행, 더 많은 노동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근로기준법의 개정, 파업과 노조를 막을 수 있는 파견근로의 확장 등등 노동개악이라고 불릴 법한 개혁이다. 이 개혁의 법안은 재벌들이 원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유지하는 것이며 이미 힘들게 살고 있는 노동자들한테 경제 활성화의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2.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는 학생들의 목소리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도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할 이유를 파악하기 힘든 모양이다. 일본식민지나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미화시키는 뉴라이트식 교과서가 나올 확률도 높고 역사를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다양성은 분명히 사라질 것이다. 예를 들면 박정희는 급속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대통령으로 보일 수도 있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잔혹한 독재자로 보일 수도 있다. 역사라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관에 따라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3. 경찰들이 대동한 살수차의 물대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백남기씨를 포함한 농민 2만 여명 또한 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의 이유는 단순하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가 쌀 80kg의 값을 17만원에서 21만원으로 올릴 거라고 공약했지만 3년 안에 상승은커녕 오히려 15만원으로 떨어졌다. 정부의 무분별한 무역개방 때문에 국산 쌀이 미국이나 중국에서 싼 값으로 수입된 쌀과 경쟁하게 된 것이 쌀값하락의 가장 큰 이유다. 쌀값의 하락이 소비자한테는 좋은 소식일지 몰라도 정부의 지원 없이 서서히 파산하고 있는 농민들한테는 비극이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법 개혁에 반대하는가, 찬성하는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이대로 괜찮은가? 무역개방은 이렇게 무분별하게 하는 것이 맞는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여기저기 뉴스자료를 참고하다 보면 관심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 정부에 대한 의견이 없다면, 혹시 난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인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난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인가?'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다. 12월 중순 리얼미터 통계에 의하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40 %를 넘기며 야당들을 제압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44 %나 된다.


한마디로 한국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여당을 지지하는 것이며 박 대통령이 나름 국정수행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럴까? 사람들은 왜 박근혜를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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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차려 입고 해외순방을 자주 나가서 그런가?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불쌍한 효녀라서 그런가? 아니면 박정희가 그리워서? 혹은 같은 지역 출신이라?


앞서 독재자의 딸이라 박근혜를 싫어한다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쌍해서 좋아한다면 이성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연민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단순히 연민 때문에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그럼 이제 감정을 버리고 이성적으로 박근혜를 지지할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공약들은 2012년 대선 때 중도에 있는 우유부단한 유권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감언이설이었을 뿐이다.


내가 볼 때 이성적으로 박근혜를 지지할 수 있는 이유는 '줄푸세'라는 약자에 있다. 세금을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기강을 '세'우자는 뜻으로 10년 전에 박근혜가 내세운 공약이자 대통령이 되고 꼼꼼히 실행하고 있는 정견(政見)이다.


'줄'. 2012년 대선 때 박근혜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공약을 주장했는데 3년이 지나서 보니 복지 없는 부자감세가 돼버렸다. 재벌과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면 그만큼 투자를 못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침체될 거라고 믿는 사람들한테는 박근혜 정부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푸'. 박근혜한테 규제라는 것은 꼭 처리해야 할 '암 덩어리'와 같은 존재다. 환경규제, 안전규제, 재벌규제, 금융규제, 노동규제 등등 모든 규제는 완화를 시켜야 할 대상이 돼버렸다. 따라서 과도한 규제 때문에 제대로 개발 되지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박근혜가 모범 대통령이겠다.


'세'. 박근혜는 기강을 세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내란선동 혐의로 국회의원을 체포한 데 이어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고, 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언론의 자유를 억누르고, 파업을 하려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벌금까지 물리고, 우리 자식들의 혼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게 되었다. 결국 시위로 불만을 표출하는 시민들을 테러리스트로 여겨 물대포를 쏜다. 요컨대 표현의 자유나 의사의 다양성을 위험한 반항으로 여기는 사람들한테는 박근혜가 최고의 대통령이겠다.


감정과 연민을 떠나서 당신이 박근혜를 이성적으로 지지한다고 해도 좋다. 다만 자신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갖추고 있는지 받아들여야 한다. '난 복지도 필요 없고 상류층이 잘 살아야 사회도 잘 돌아갈 거라고 믿는 엘리트주의자다. 환경 파괴나 안전시설 부실, 노동 착취와 같은 문제들은 규제 없이도 자발적으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시장만능주의자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체제는 충분히 공평하고 정부에 반항할 필요 없이 질서유지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다'.


엘리트주의자, 시장만능주의자, 보수주의자. 당신이 이런 정치적 성향이 있다면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런 성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지지한다면 일관성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니면 정치 무관심의 부작용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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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S (교정 : KIMA)


편집 :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