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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진주만을 까발긴다 (1)

2001.6.25.월요일
딴지 지정 군사전문가 펜더



본 위원, 먹고살기 힘들다란 말을 하면서도 뜻한바 있어 두문불출 대전을 떠나지 않으며, 곤이 대붕이 되어 청룡을 지렁이 잡아먹듯 뜻을 세워 모니터를 바라보는 면컴참선을 하고 있는 찰나....아뿔사 또다시 딴지에서 한통의 연락이 왔으니...어이할꼬...편집장이 아니던가...


- 쐣덩어리 진주만이 아니라 진짜 진주만의 진실을 한번 까발겨 보거라....


진주희도 아니고, 진주만을 다시 까발기라니...같은 일본놈이 나오는 것이고, 같이 2대 1의 묘한 삼각관계 이건만, 본 위원이 보기엔  6천원 내고 보는 진주만 보다는 6백원 짜리 CD에 담겨 있는 진주희가 훨씬 감동적이었건만....차라리 진주희를 까발겨 달라 할 것이지...


머 그래두 편집장이 까라면 까야지... 본 위원 족보를 따져보면 영진공 소속도 아니고, 따져보자면, 관광청 소속에서 편집장 소속으로 이관된 불쌍한 파견 요원 아니던가? 딴지는 펜더의 소속을 확실히 해달라!!


일단 진주만을 보지 못한 독자제위들 텔레비젼을 요란뻑적지근하게 폭격하는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를 보면서 "야 저거 함 볼만한 영화겠구나" 하는 생각 가지신다면, 본 위원의 마눌님 되시는 분의 고견을 한마디 들려드리겠다.


- 후반 40분 때려부시는 거 볼려고, 2시간 10분을 기둘리는 영화야.


글타, 울 마눌님의 그 총명하고 명석한 머리로 한마디 하셨다. 이거이 진실 되겠다. 그래도 영화판에 굴러다니는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시지만, 남편보다 영화 분석하는 거이 명석하시드라... 그럼 울 마눌님이 아니라 본 위원과 비슷하게 뱅기나 탱크 군함보면 휘꺼덕 뒤집어 지는 속칭 <매니아> 넘들의 발언을 몇자 적어 보겠다.


 - BF-109, 스핏 파이어, 제로센의 청죽색, 하인켈 111의 모습이나 Val의 고증 같은거 보면, 돈 때려 부은 티가 난다. 히스파노 기관포가 불을 뿜는 모습같은건... 충분히 볼만한 값어치가 있다... DVD 나오면 한 장 살거야.


- 가끔 보이는 현용 항공모함의 갑판이나 이지스 함으로 보이는 배들의 마스트 보면 눈에 거슬리는데 그런거 빼면은... 거의 수작이지? P-40이 제로기를 격추한다는 개같은 설정이 보이는데, 그건 미국 영화니까 어쩔수 없는것이고, 두리툴 폭격대 에피소드도 나름대로 쓴 거 같은데.... 뭐 그럭저럭 볼만해.


이거이 본 위원과 비슷한 취미 가진 이들이 이 진주만을 본 후의 발언들이다. 그럼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본위원은 이 영화 보면서 상당히 실망하였다....디즈니가 만든 영화가 어디 가겠냐만, 어찌된 것이 30년 전에 만든 20세기 여우 애들의 "도라도라도라"라고 똑같이 진주만을 소재로 한 영화보다 이리도 퀄리티가 떨어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비디오 대여점이나 옥션 같은데 가보면 심심찮게 이 "도라도라도라"란 비디오가 나와 있다. 본 위원이 보기에는 비행기 고증이나 그런거 몇 개 빼고 보면, 이 20세기 여우사가 1970년에 만들어 낸 이 "도라도라도라"가 훨씬 더 진주만이란 영화를 잘 표현해 낸 작품이다. 독자제위들 차라리 이 비디오를 하나 소장하시기를... 영화 감독이나 기타 제작비화에 관한 것은 딴지영진공의 등급 선정 위원회의 권한이므로 일단 피해가겠다. 그럼 본론으로 들가겠다.


 


 진주만은 기름 때문에 박살난 곳이던가?


일단 들가기 전에 본 위원이 까발기는 내용에서 여자 한명 두고 부랄친구 두명이 구멍동서되는 그 설정은 아마도 마이클 베이가 진주희를 오마쥬 했다는 본 위원의 날카로운 추리력 하나로 넘어가겠다. 고로 이 빠굴이나 빠굴 전단계의 2시간 10분 분량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겠단 것이다. 이 점 이해들 하시라. 알긋제? 제목부터 한끝발 차이니까, 이 부분은 주변에 널려 있는 진주희 CD를 보시고 다들 상상하시라...









기름이노 존나리 필요하다 데쓰!


이 영화 보면, 일본은 미국 애들이 기름 안 줘서 거기에 열 받아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다. 실상 이 장면은 미국 애들이 상당히 일본에 대해 신경을 써 준 부분이라는 것이 정론이다. 미국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의 관객 중 일본 애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20%나 된다는 점 때문에 이거 찍을 때 일본애들 신경을 쫌 썼던 거이다. 문제는 이거이 인디펜던스데이처럼 미국애들의 멜랑꼴리 한 애국심을 살살 긁어주기 위한 영화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신경과 미국의 애국심에 대한 교묘한 줄타기가 이뤄진 것이고, 영화 전반에 때때로 나오는 기름 야그와 아 168 수평폭격기에서 열씌미 야구하는 애들한테 피하라고 손 흔드는 기총사수는 그런 의미라 보면 된다.


근데 영화에서처럼 미국은 기름 때문에 한방 먹은 거인가?


정답은 아니다 였다. 이미 진주만의 비극을 부른 것은 미국이 자초한 일이란 것이 본 위원의 생각이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1937년부터였다. 진주만으로부터 4년이나 전의 이야기였다. 이때 뭔 일이 있었을까? 1937년 7월 7일날 일본은 멀쩡히 있는 중국애들한테 시비를 걸어 노구교사건이란 걸 일으킨다. 이거이 빌미로 일본애들 중국 침략을 본격화했고, 미국애들 38년에 항공자재의 대일본 수출금지 조치를 내리고, 39년 되자 미일 무역협정이란 걸 파기했다....이때 이미 미국이랑 일본이랑 틀어졌다.


문제는 심각해 졌다. 1940년 9월에 역사적인 독이일 삼국동맹이란거에 일본애들 가입했다. 이거이 미국애들 졸라 열받게 만든 사건 되겠다. 이때부터 미국애들은 경제적인 제재의 수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1940년 이후 일본에 대한 경제 제재


 1940년 7월 5일  각종 전략물자 및 전쟁물자에 대한 대일본수출 금지 조치 발령.


 1940년 7월 26일 항공기 연료 및, 각종 항공엔진 부품에 대한 대일본 금수 조치 및, 특정 종류의 스크랩에 대한 대일본 금수 조치(스크랩은 고철이다.)


 1940년 8월 3일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미국에 대해서 반응을 보였다...미국 그러지 마라고...


 1940년 9월 26일  미국 정부 전면적인 철강, 스크랩 금수 조치 단행...이거이 장난 아니었다. 일본애들 식겁했다.


 1940년 10월 4일 일본의 고노에 수상이 한마디 찍했다...고철 수입 안되니까 열받은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 미국이랑 전쟁도 불사하겠다."


 1940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미국넘들은 지금까지 빠져있던 모든 정제품과 광석을 전부 금수품목에 올렸다. 고노에가 한말에 열받은 것이었다.


이때부터 일본애들이 평화적 방법을 트려고 했다...당시 일본수상이었던 고노에란 녀석이 있는데, 당시 그 살얼음 같은 일본 정치판에서 25년간 그 이름을 남겼던 이 고노에 수상은 아마도 일본애들의 희망이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 발맞춰 대미 외교의 첨단에 섰던 노무라 대사와 그의 파트너이자, 같은 대미 협상팀에 있었던 구르스 사부로 같은 경우에는 노무라 대사가 활동하기 편하도록 일부러 미국 여성과 결혼할 정도로 어쨌든 전쟁은 피해 볼려고 안간힘을 썼던 인물들이며, 상당히 서구화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었다.


일단 41년 2월이 되자 고노에 수상은 노무라를 미국에 파견했다. 어쨌든 평화적인 해결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때 미국측이 요구한 두가지 조건이 일본과는 타협의 게재가 없었던 것이란 점이었다... 당시 미국측의 요구조건은 1. 삼국동맹에서의 탈퇴, 2. 중국에서의 전면 철수... 이 두가지 였다.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일본애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해 대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일본의 경우 석유의 9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즉, 미국이 기름 안주면 끝장이다. 당시 1941년 8월 1일 기준으로 일본애들의 비축류는 자그마치 950만 킬로리터였다....일본애들은 당시 미국에 대한 상당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서 석유비축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당시 일본애들의 매월 석유 소비량은 45만에서 46만 킬로리터 였다....미국이 석유를 끊으면, 짧게 18개월 길게 잡아도 2년 안에 일본은 전투기 한 대 띄울 기름도 없어지는 것이었다.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바로 여기에 기초한 것이 일본군이 주창한 "대동아 공영권"의 시발이 되는 "남방작전"이었다.









기름을 못 가구오면 조뙌단 말이다.


당시 일본은 미국이 경제봉쇄와 ABCD 봉쇄망에 넘어가 그냥 전쟁을 포기하고 조용히 살든가, 아니면 전쟁을 일으켜 남방 자원지대를 확보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었다. 여기서 남방작전이란, 자바, 수마트라, 말레이시아 등지의 동남아지역을 병합해서 일본의 자원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당시 일본 대본영의 작전계획이란 것이,








일본의 남방 작전 계획


 1단계 미 태평양 함대의 무력화를 통해 남방 작전시 배후에 대한 위협 제거


 2단계 남방 자원지대 확보.


 3단계 극동에서의 연합군 격파.


 4단계 남방 자원지대 방어에 필요한 외곽 방어선 점령.


상당히 포괄적이고, 허구성이 짙은 작전계획이었다. 1단계에서 이미 진주만의 타격이 예상이 된다. 2단계는 자바 수마트라,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자원지대 확보...이때까지는 시나리오처럼 되었다. 3단계 연합군 격파도 어느정도 성과를 거뒀다. 필리핀에서의 미군도 때려 부시고, 영국군도 어느정도 때렸으니까...일본은 진주만을 때려 뽀사고 나선 남방자원 지대를 확보 한 후에 <주변방어선>이란걸 형성해 연합군의 반격을 물리치고 나선 협상으로 해서 대동아 공영권을 미국과 서구 열강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한 것이었다. 즉, 일본애들은 미국에게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애들의 구역을 인정받기 위한 협상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첫 단계가 진주만이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일본 애들이 마지막 그 순간까지 평화적인 협상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군부조차도 전쟁 준비를 하면서도 평화 협상의 여지를 남기려 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7월 2일에 터졌다.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이 터져 버렸다. 소련이랑 독일이랑 한판 붙은 것이었다. 이미 일본은 소련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본이 소련을 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맥 놓고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당시 일본은 독일이 그렇게 쉽게 소련을 먹을 순 없을 거라는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아울러, 다민족 국가인 소련이 전쟁에 의해 내부 붕괴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졸라 똘똘한 새끼들...이때 일본애들이 한 일이 바로 전설의 그 "관동군"...울 박통께서 복무하셨던 그 관동군을 16개 사단으로 증강하고 그해 7월 하순부터 9월까지 가열차게 훈련과 경계를 하였던 것이다. 소련을 비롯하여 미국애들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오해의 시작이었다.


오해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같은 달 7월 28일날 일본은 남방작전을 펼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이 남방 작전의 교두보가 되는 인도차이나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소전이 개전되었고, 미국이 이에 개입하려 한다는 판단이 섰던 일본이었지만, 그래도 미일간의 외교관계가 더 이상 틀어져선 안된다는 판단에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당국에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인도차이나 당국에서 무슨 힘이 있을까? 그래도 양해를 구했다...모양세는 갖춘 것이다. 문제는 일본애들이 미국애들 눈치 보면서 한 일이 오히려 미국애들을 빡 돌게 만들었던 것이다. 7월 26일 극단적인 경제제재가 이루어졌다. 미국내 일본인들의 해외자산을 동결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 덩달아 영국이랑 네덜란드도 같은 조치를 내렸다. 거기다가 결정타를 먹인 것이 석유, 철강의 수출을 정면 중단 시켰고, 일본의 수입품의 반입도 금지 시켰다.









아, 씨바.. 위기다.


일본은 그야말로 막판을 몰린 것이었다. 그로부터 2달 후인 9월 6일 도쿄에서 일본천황을 포함해서 일본의 정치, 경제, 군부의 각 수뇌들이 모여서 어전회의를 가졌다...이때의 일본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이 회의가 앞으로의 일본의 장래와 국가미래를 결정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넘들이 없었기에 말이다. 이때 결정된 것이 바로 <정세 추이에 따르는 제국 국책 요강>과 대미외교에 있어서의 <최소의 요구>에 대한 리스트 였다.








정세 추이에 따르는 제국 국책 요강


 1. 자존자위를 달성하기 위해 대미(네덜란드 영국 포함)전쟁을 불사할 결심아래, 10월 하순을 목표로 모든 전쟁 준비를 끝마친다.


 2. 제국은 이와 병행하여 미영에 대한 모든 외교 수단을 다하여 제국의 요구 관철에 노력한다.


 3. 전기 외교 교섭이 10월 상순까지 관철되지 아니할 경우, 즉시 대미 개전을 결의한다.


 








여기에 따른 외교적 <최소의 요구>


 1. 중국에 대한 분쟁 해결에 대해서 미국과 영국의 불개입


 2. 버마 루트의 폐쇄


 3. 장개석에 대한 원조 중지


 4. 일본의 원자재 획득의 자유.


공은 미국과 고노에 수상에게로 넘어왔다. 고노에 수상에게 한달이란 시간이 주어진 것이었다. 물론 41년 2월부터 끈덕지게 외교적 루트는 가동되었고, 협상은 계속되었으나, 미국은 이 협상에서 상당히 회의적으로 반응하였다...그러나 이 한달간의 시간동안 고노에는 이미 자신이 쓸 외교적 카드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41년 8월 7일 일본 제국을 전쟁의 화마에서 돌려세울 마지막 기회를 가지고 고노에는 루즈벨트와의 단독회담을 간곡하게 미국에 제의했다. 이 어전회의 이전에 고노에는 단독으로 미국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이 회담이 성사 되었다면, 아마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 것이었다. 당시 고노에는 단독으로 미국요구를 대폭적으로 수용한 카드를 쥐고 미국과의 외교적 협상을 타결하려 하였다... 문제는 미국애들이 아예 들어보려 하지도 않았단 점이었다. 결국 이 어전회의 이후에 고노에는 가만히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리다가 10월 6일 고노에 내각은 총사직을 하곤 물러났다. 평화 협상의 마지막 기회를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심심찮게 듣는 도조 히데키란 넘이 수상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군바리 수상이 말이다.


 


 그럼 진주만 기습은 언제 준비했나?


1941년 3월에 이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진주만 공격 계획의 최초 입안자는 제1항공함대 참모장인 겐다 미노루 소령이 제안한 <진주만 공격 계획>이었고, 제 11항공대 참모장인 오오니시 다카치로 소장에 의해 처음 발의 되었다. 그러나 이는 어차피 야마모토 이소로꾸 연합함대 사령관의 밀명에 의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럼 이 야마모토 이소로꾸는 누구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무인으로서 가져야 할 품성을 다가진 졸라 멋진 넘이었다.(본 위원 매국노 아이다...일본넘 중에서 쓰시마 해전에서 승전한 도고 사령관이란 넘도 울나라 이순신 장군 칭찬했다.)


이 야마모토란 넘은 나가오까의 무사집안에서 태어난 사무라이 피를 이어받은 넘이었다. 그의 이름인 이소로꾸(五十六)는 그의 아버지가 56살 때 두 번째 부인을 통해서 그를 낳아서 붙혀준 이름이었다... 졸라 얘네 아빠 힘 조았나 부다.









<진주만>에서
야마모토 이소로꾸


하여튼 이 야마모토란 넘은 1904년 해군병학교 제32기생으로 들가서 러일전쟁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그리고 나서 1919년에 미국 보스턴으로 넘어가서 하버드에서 석유와 영어를 배웠다. 글고는 1923년에는 해군 차관과 유럽과 미국의 선진해군을 보러 9개월간 여행 갔었다. 그리곤 1925년 12월부터 주미 해구무관으로 재직하였다. 이게 뭔 말일까? 한마디로 야마모토란 넘은 반자이 도꾸자께같이 만세돌격이나 가미가제 같은 거랑은 거리가 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전략전술에 눈뜬 인물이란 것이다. 당시 미해군 정보국에서 야마모토를 평가하기를 "졸라 대단한 능력을 가졌고, 비상한 추진력을 지닌 자다. 사물에 대한 사고와 판단이 빠른 자다"라고 평가 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여튼 이넘은 대단한 넘이었다. 이 넘은 당시에 끝까지 살아남은 거함거포주의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판단하고, 앞으로의 해전은 대포가 아니라 항공기에 의해서 승패가 좌우될 거라 예상한 졸라 똘똘한 넘이었다. 이넘은 그런 생각 아래서 일본 해군항공본부의 기술부장을 할 때부터 항공모함 탑재기 개발에 졸라 뛰어들었다... 이 녀석 아니었음 제로센이나 96식 항공이나 97식 항공 같은건 태어나지도 못했고, 진주만 공격 같은건 꿈에도 못 꿨을 것이다.....이 넘이 1935년에 해군 항공본부장에 해군차관을 겸직하면서 미친 듯이 한 것이 이 항공모함 탑재기를 개발한 짓이었다..... 무서븐 넘.


글타 문제는 이 녀석이 전쟁을 주장했냐 안 했냐가 문제다. 이 녀석이 진주만 계획을 입안하고, 이거 하자 하기 전의 분위기이다. 이 넘은 미국하고의 개전에 결사반대 했다. 이 넘이 1940년 9월 18일날  동경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한 발언을 보믄,


- 미국인의 강한 정신력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일본인은 따라잡을 수 없다. 일본은 미국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야마모토는 이때 완전 왕따 당했다. 그가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자 소장파 장교들은 개전을 저지하는 야마모토를 암살하려는 결의를 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야마모토는 끝까지 미국과의 개전을 반대했다. 그러나 나라에서 전쟁하겠다면 따라야지... 41년 초가 되자 야마모토는 흥분에 들떠서 무조건 전쟁부터 하자는 분위기에서 한 술 더 떠서 황당무계한 작전을 하나 들고 나타났다.


-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건 확신할 수 있다....다만 전쟁을 해야 한다면, 개전 초 확실히 진주만을 박살내야 한다. 그러면 가능성이 있다.


일본해군에서 야마모토를 미친 넘 취급 안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갑자기 진주만 이라니 말이다. 당시로선 아무도 동조를 안했고, 심지어 영화에서 진주만을 공격하던 공격부대의 사령관이던 나구모 장군(야마모토가 임명하고 졸라 아끼던 넘)까지 거부했었다.... 야마모토는 연합함대 사령관 직을 걸고 진주만 작전을 허락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었다. 결국 진주만 작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의 전력으로 미국과
전쟁을 치룰수 있었을까?


중일 전쟁 기간인 4년 6개월 동안 전쟁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일본군의 전력은 240만의 정규군과 300만의 예비군, 7,500대의 항공기와 230척의 주력 함선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미군의 경우 훈련미필자 100만명을 포함하여 150만의 병력과 항공기 1,157대 전투함 347척 수송선 총 1천만톤을 지니고 있었다. 딱 보면, 일본이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그 잠재력을 보자. 당시 일본의 전략적 기조는 너무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독일이 선전해 주어서 미국이 유럽 전선에 발목을 잡히길 바랬다. 즉, 일본은 독일이 유럽 전선에서 최소한 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주만>에서 루즈벨트.


당시 일본의 판단은 미국이 유럽 전선에 발목을 잡힐꺼라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41년 2월 11일 루즈벨트가 "만약 미일간에 전쟁이 벌어져도 유럽에 대한 지원은 변함이 없을것"이라는 발언에 고무된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통계이지만, 당시 미국은 일본 인구의 2배이며, 국민소득은 17배 차이가 났다. 연간 철생산량은 5배의 격차를 보였으며, 석탄은 5배, 자동차는 8배를 차이를 보였다. 산업 잠재력은 1938년 기준으로 7배의 격차를 보였으며, 향후 수년내에 10배이상의 격차를 보일 것이란 통계가 있었다. 이런데도 일본은 미국, 영국, 네덜란드와 한판 붙어 보겠단 생각을 했었다.


당시 일본은 독일이 유럽전선에서 시간만 벌어주고, 그 동안 진주만을 박살내고, 다이렉트로 남방작전을 펼치면 네덜란드령에서 8백만톤, 미얀마령에서 2백만톤의 석유를 확보한다면, 한번 미국과 일전을 벌여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이 남방작전의 성과로 얻은 자원을 가지고 태평양을 요새화 하여 한판 붙어봐도 될 거점을 만들자는 작전까지 포함해서 였다. 당시 일본 대본영에선 전쟁이 일어났을시 미국이 태평양으로의 진격 병력은 미국 병력의 1/3 수준이라 예측하였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선 연간 3천만톤의 강철과 총톤수 4천만톤의 선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당시 일본의 공업 생산력이 문제인데 당시 일본의 강철 생산력은 연간 7백 60만톤...당시 보유 함선의 톤수는 66만톤에 불과 했다....상당한 갭이었다...이때 대본영이 제시한 방법은 <정신력으로의 극복>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41년 당시 세계 최대의 해군 세력을 가진 것은 누가 뭐래도 일본이었다. 세계최강의 기동함대를 가진 것이 어떤 나라라면 일본이라고 밖에 대답할 게 없었다.... 비록 다른 나라는 인정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1차대전이 끝나고 영국, 미국, 일본은 <워싱톤 조약>이란걸 체결한다. 이거이 뭐냐면, 군축 조약이다. 그 전에 있었던 1차대전의 해전을 보면, 커다란 군함에 커다란 대포 달고는 서로 마주보고 쏘다가 누가 먼저 쓰러지나를 경쟁하는 전투였다. 그러다 보니 서로 큰배 만들고, 서로 큰대포 달려고 난리를 쳤다. 문제는 이러다간 그 경쟁이 끝이 보이지 않을거 같아서 이 3나라가 모여서 협정을 체결한다. 이 3국의 협정이란 것이 총 톤수를 낮추고, 각국의 해군력 비율을 5:5:3으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나중에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꼽사리 껴서 각각 1.67의 비율을 얻어낸다.


문제는 이 워싱턴 조약 덕분에 항공모함 이란게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각국은 더 이상 거함거포가 아니라면, 차라리 항공모함을 만들자란 생각에 절반쯤 완성되고 있던 전함을 개조해서 항공모함으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총톤수 135,000톤까지 여러척의 항모를 만들 수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는 81,000톤까지만 제작이 가능했다. 이때 각국은 33,000톤급 항공모함 두척을 만들 수 있었다. 이때 진주만의 히어로인 일본의 아카키와 가가가 만들어진다. 이때 미국도 렉싱턴사라토가를 만들지만, 여기서 일본과 미국의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항공모함을 정찰기 모함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아직도 거함거포주의의 미련을 못 벗은 것이었다. 반면에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이 아카키와 가가를 가지고 중국의 향주를 폭격하며 톡톡히 재미를 봤던 것이다. 결국 1936년부터 일본은 이 워싱턴 조약을 개무시하더니 36년부터 41년까지 해군력을 2배이상 확충했다. 이때 일본은 항공모함 6척을 새로 만들어 냈다. 항모로 한번 싸워 보겠단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동양의 신비"라고 졸라 자랑하는 "0식 함상 전투기" 제로센이 태어났다....이거 하나만으로도 일본은 전쟁을 마음먹을 만 했을 것이다.









오... "동양의 신비" 제로센. 최초의 실전형 제로센인 A6M2.


당시 서구 열강에 비해서 전차, 총기, 화포 모든 면에서 한세대 이상 뒤떨어진 일본군에서 졸라 대단한게 두 개 있었는데, 그 하나가 이 제로센이었다. 항속거리가 7시간에 이르고, 그 선회비행의 유연함과 운동성은 미군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공포로서 회자되었다. 그리고 2차대전의 영웅 몽고메리도 칭찬한 일본의 산소어뢰....이 두가지는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 이 제로센에 대한 정보를 취합한 미해군 정보국이 상부에 보고했을 때 개뻥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이후에 미군들은 이 정보를 믿어야 했다. 당시 미군은 일본의 전투기 생산기술과 전투기 파일롯의 기량을 상당히 무시했었다.


당시 미군 파일럿들은 일본 파일럿이 키가 작고, 눈이 옆으로 째져서 공중전을 못한다는 별 희안한 논리로 일본 파일롯들을 무시했지만, 당시 세계 최고의 베테랑 파일롯들은 다 나구모 제독의 제1 기동함대에 몰려 있었다.


실제로 일본의 파일롯 수료 과정은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엄정하면 엄정하였지, 뒤떨어진 부분은 없었다. 당시 일본 해군 파일롯이 되기 위해선 26개월의 지상, 공중 훈련을 받은뒤에 다시 1년간의 지상기지 훈련... 여기에 다시 항공모함에 배치되어서 1년간의 항모훈련을 더 받아야 했다. 대단한 수준이었다... 여기에 이들 파일롯들은 이미 중국과의 전쟁을 통해서 실전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질적인 수준에서 이미 미군을 압도적으로 추월한 상태였던 것이다.


이들을 전부 몰아태운 아까기, 가가의 제1항공전대와 히류, 소류의 제2항공전대... 그리고 쫌 수준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대단한 쇼카쿠주이카쿠에 있는 제5항공전대와 함께 일본 최고의 파일롯들이었다. 이 6척에 실려 있던 3백51기의 함재기들과 파일롯들은 당시에 이미 미국에 대적할 상대가 없었던 이들이었다.


  


 일본은 왜 하필 진주만을 치려 했을까?  


당시 미국 국민들은 일본이 전쟁을 할 거란걸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디일까를 물으면, 대부분은 필리핀이라 생각했다. 쫌 머리 깬 사람들은 미드웨이일지도 모른다고 그랬다. 일단 일본서 진주만까지 그 거리가 3천해리가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걸리지 않고 진주만까지 간다는 것도 문제고, 그 진주만의 병력이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와이 주둔 지상군만 5만 9천이었고, 하와이에 배속된 전투함만 보더라도 전함 9척에,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18척, 구축함 54척에 잠수함도 22척이나 되었다. 여기에 유해군의 항공기 수만 450대가 넘어가는 곳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진주만을 칠까라는 생각을 가져볼만한 병력수이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치려 했다는 것이다. 일단 이 진주만이 미 태평양 함대의 기지이자 미국이 극동을 향해 즉각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가진 유일한 곳이었던 것이다. 즉, 여기만 박살내면, 일본은 배후를 안심하고 남방작전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야마모토는 이미 진주만을 치지 않으면, 일본은 승산이 없다는 판단하에 진주만 공격 준비를 착착 진행시켜 나갔다. 이미 야마모토는 1940년 11월에 있었던, 영국의 이탈리아 티란토항에 대한 공습에서 항공모함의 우수성과 공중공격이 전함을 깨뜨릴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때 덤으로 얻은 것이 바로 어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당시 티란토항은 수심이 얕어서 어뢰의 공중공격에는 부적합한걸로 알려졌으나 영국은 어뢰를 개량해서 이를 떨어뜨려서 전함을 깨부셨던 것이다. 야마모토는 한번 해보잔 결의로 불타올랐다.



결국 41년 5월 이 작전의 최초 입안자인 겐다 미노루가 주축으로 30명의 고급장교들을 모아서 특별연구단이 구성되어 진주만을 치기 위한 본격적인 기획이 들어갔다. 겐다가 맨 처음 한 일이 자신의 해군 동기이자 제3항공함대의 참모인 후치다를 데려와 아까끼의 비행대장으로 삼은 것이다...영화에서 진주만으로 뜬 360기의 함재기들을 지휘한 행동대장이 바로 이 넘이었다.


그리곤 계속 기획에 들어갔다. 이미 함재기의 파일롯들은 일본의 가고시마로 보냈다. 일본 지형중에서 하와이와 가장 지형이 비슷한 곳이 바로 가고시마 였던 것이다.


영화보믄, 일본애들이 이상한 욕조 들가서 열씌미 배 가지고 전쟁 준비하는 모습 보인다. 41년 9월 진주만을 칠려고 맘먹은 넘들이 일본 해군대학교 별실에서 도상훈련을 했었다.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나온 결론이란 것이 작전성공률 50%란 것이다. 그리고 작전을 성공해도 미해군의 전력중 2/3는 박살낼 수 있어도 일본도 항공모함 2척은 격침되고, 2척은 파손되며 127기의 항공기가 격추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갈수록 진주만을 치는데 문제가 많이 생겼다. 당장 걸리는 게 어뢰였다. 상공 100미터에서 떨어뜨린 어뢰는 수중 60미터까지 들어갔다 튀어나온다. 문제는 진주만의 수심이 12미터란 점이다. 결국 나무지느러미 같은걸 붙여가지고 이 어뢰문제를 해결한다고 영화엔 나왔지만, 나무지느러미는 아니었다. 11월 4일서부터 6일까지 실시한 최종기동연습에서도 이 어뢰문제는 해결이 안되었다. 명중률은 바닥을 기었다. 결국 난관에 그대로 봉착한 것이었다. 여기서 제시된 것이 요꼬스까에서 제작중인 신형어뢰를 들고와 쓰자는 의견과 차라리 초저공으로 날아가 한번 떨구자는 것이었다. 결국 후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고도 6미터에서 어뢰를 떨궜다....결과는 성공이었다.


결국 진주만을 치러가는 일은 착착 준비가 되어갔다. 이미 육군대장인 도조란 넘의 머리속에는 어케 함 전쟁 일으켜 볼까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고, 11월 5일에 이미 12월 1일까지 만족스런 외교적 결과가 없을 시에는 전쟁을 한번 일으키자는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11월 5일날 천황의 재가를 얻었다. 이에 앞서 야마모토는 이 진주만 작전에 의문을 품는 인사들을 찾아가 1:1로 설득하는 온건책과 함께, 그의 특기인 "이거 안하면 나 사령관직 때려칠거야!!"라는 강경책을 동시에 펴며 마침내 11월 3일 대본영의 재가를 얻어낸다.


그리고 11월 7일 야마모토는 작전명령을 내렸다. D-day는 12월 8일로 잡았다(하와이 시간 12월 7일). 이날이 바로 주말이란 점과 이 날을 놓치면 기상관계상 다시 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문제점 때문에 이날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면, 진주만에 있는 일본인 의사가 본토에서 연락을 받아서 정보를 말하는데, 당시 야마모토는 진주만에 스파이 하나를 집어넣고 있었다. 요시까와란 일본인 간첩은 모리 무라사마란 가명으로 파견되어서 진주만의 함선들의 출항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이때의 정보 전달 방식은 영화의 내용 그대로 였다. 낮에는 <스카이 기선회사>의 배 위에 표지물을 게양했고, 밤에는 호놀룰루 방송국에 가짜로 구인신청을 내서 이 방송을 직접 일본함대가 청취하게 하였다. 당시 이 방송광고에서 <중국 융단을 부탁한다>라고 하면, <미국 전함 부대 전부 출항의 의미 였다>


항공모함 아까끼, 가가, 히류, 소류, 쇼카쿠, 주이카쿠 6척이 주축이 된 33척의 제1기동함대는 그렇게 11월 22일 진주만을 치러 쿠릴열도를 떠났다.


다음 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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