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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딴지기자가 본 작가 김인규의 작품세계

2001.06.14.목요일
딴지 일보 예술 평론협회

그의 작업은 개념미술이다. 따라서 100명의 관객 모두가 각기 다른 의미를 느낄 수도 있다 하겠다. 그렇지만, 단순히 매스컴에서 다뤄지는 음란한 외설이라는 얄팍한 단어만으로 치부되기에 그의 작품세계는 너무나 아깝다. 흑 아니면 백의 논리가 다분히 드러나는 그런 현실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본 기자 그의 작품세계를 파헤쳐 보았다.


 작가로써의 성장과정과 작품세계









걸인(1985년작)


80년대 초중반 작가 김인규의 그림을 보면, 거친 터치와 단순화시킨 근육의 표현들을 이용해서 강렬한 이미지를 주고자 한다. 작품을 보면서 이건 어떨까... 하는 관객의 생각보다 작가의 생각을 관객이 보는 그 즉시 느끼게끔 의도하고 있다. 관객들이 추론하지 못하게 작가가 이미 결론을 내려버리는 듯 하다고나 할까.


80년대 중반, 전교조 사건으로 해직당하고 옥살이를 한 이후 그는 6년간 붓을 잡지 않았다 한다. 90년대 초반 다시 붓을 잡은 그는 한층 더 부드러워진 터치와 표현법으로 관객을 배려하고 있다. 90년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그는 작품속에 사진을 넣어보고 있다. 재래적인 표현방법의 틀에서 탈피한 순간, 그는 스스로 본격적인 미술을 하게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한때 사진의 죽은 생명력을 피토하듯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진은 단순한 이미테이션일 뿐, 감정을 담을 수 없는 물질의 표상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이 단지 그 시대를 풍미했던 몇몇 예술가들의 거만스러움으로 알려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그 누구도 사진으로는 메시지를 줄 수 없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그림은 소용없다(1996년작)


9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그는 개념미술에 조금더 눈뜨고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지를 발산하기 위한 방법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해 버리기 보다는 관객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인가 보다. 이 시기에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라. 더 이상 허세 부리며 말하지 마라 라고 외치고 있다.


97년 그의 셋째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에 그는 비로소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요즘 문제가 되었던 누드사진은 이 즈음에 촬영된 작품이다. 이때에 그는 작품세계에서, 일상에서, 또 관념상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계가 구축된 이후 그는 이제 예술은 내 삶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98년으로 넘어오면서 그의 작업은 더더욱 간결한 표현매개체만을 제공하게 된다. 또한 작업의 주재료로 물감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상에서 얻어지는 재료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관객이 익숙한 물건들로부터 메시지를 스스로 가져갈 수 있게끔 배려하고 있다.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이든 또는 의도하지 않았던 메시지이든 간에. 개념미술을 추구하는 그의 작업으로써 그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무제 (1996년작)


남자라면 (1996년 작)


 


 고민 이후에 그가 찾은 도전적 작업 프로젝트


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밀레니엄 시대.









똥칠된 그림 (셋째아들의 똥으로 채색)


그는 무엇이 예술적 메시지의 표현매개체인가? 라는 부분으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아직까지 회화작가로써의 틀에 속해 있었던 그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었던 물감과 붓과 캔버스의 틀을 깨고자 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이후 본격적으로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에 전념하게 된다. 실생활에서 쓰여졌던 소재를 이용함으로써 기존의 틀에서만 해결책을 찾아보려던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이 즈음부터 그는 더 이상 그가 말하는 뺑끼질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인규는 이때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한 작업에 열중한다. 그 첫 프로젝트로 길가에 방치된 동물들의 시체 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의 한 공간을 할애하여 그는 이 동물 시체의 많은 형태를 보여준다.


기자는 이 사진들만을 다운받아서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우엑. 밥먹기 전에 머야. 씨브랄넘아.


이 새끼.. 이거 머야. 어디서 이런 사진을. 아 씨바.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작가의 카피와 함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쩝, 세상 다 그런 거 아니겠어?


후우... 그냥 슬프네. 동물들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고...


 









문명의 폭력도 하나의 엽기다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어떻게 이런 반응을 보일 수가 있었을까? 작가 김인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은 짐승들의 시체를 보고 엮겨워해라가 아닌 듯 하다. 그는 달리는 차에 치어 길가에서 죽은 짐승들의 시체를 통해 무의식중에 찾아오는 문명의 폭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문명의 폭력은 단지 동물들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하겠다. 우리들에게도 알 게 모르게 가해지는 폭력. 그래서 그의 카피와 함께 보는 사진은 슬프기 짝이 없다.


이러한 다분히 감각적인 첫 번째 도전적 프로젝트는 이제 막을 내렸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무자비하게 깨뜨려 버리는 문명의 폭력은 그를 통해 이렇게 항변되고 있다.


정말 자연스러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인가? 아니면 추한 것인가?


그래 어떠한 것이 더 아름다운 것인가? 모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일까. 추하고 음란하다고 강요받은 몇몇 부분을 애써 감추고난 이후에 남은 인공적인 자연일까.














남근주의 (1997년작)


흑백논리로 규정지어서 강요하지 마라


얼마 전 공판에서 검사가 말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흰 바둑돌 중의 하나의 검은 바둑돌을 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색은 흰색과 검은 색 두 가지 뿐일까? 그리고 검고 희다는 것은 누가 정의해 주는 것인가? 예술? 외설? 관객이 작가의 예술세계를 찬찬히 뜯어보고 난 후에 스스로 결론 내려야 할 관점이 아닌가.


작가 김인규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저 나름대로의 싸움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제가 표현하려는 것과 작품세계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게시판에 욕으로 된 글들을 올려 제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이해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을 테니깐요. 그러나 저를 욕하기 이전에 20여년 이어온 제 작품세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분노하지는 않을텐데요...


딴지 지조때로 평론협회 협회장
백작가(
baggy@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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