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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두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되던 날


2001.06.14.목요일

딴지 특별취재반


 출발


6월의 햇살이 진하게 나부끼던 날이었다. 오전의 국도는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약간의 시원함을 전해주던 시간이었다. 원래는 6월 12일 오후에 만나서 작업실과 주변환경들을 둘러보고 싶었다. 작가는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 주위환경과 인물들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물론, 형성되어진 다음에 변질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11일. 내일의 약속을 확인하려 전화를 했을 때에 다급한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금 상황이 바뀌었어요. 내일 아침 11시까지 홍성지원으로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영장이 다시 청구됐다네요. 혹시 내일 구속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김인규와 이야기 하려던 본지 특별기자단은 심히 당황했다. 내일 오후 6시에 만나서 작품세계를 이야기 하려 했는데... 11시에 법원에 가야 한단다. 구속될지도 모른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조때따. 특별취재반은 회의를 거쳐 아침 7시 쯤에 충남 홍성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면 법원 풍경이라도 지켜봐야겠다는 생각.


 


 법정 안 광경  









오전에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구속 수감자들이 각각 담당 형사와 나란히 앉아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머니 명의의 서류를 위조해 돈을 대출받았다가 사문서 위조혐의로 구속된 한 청년의 구속 적부심이 먼저 열렸다. 그 청년의 여동생인지 애인인지 가냘픈 몸매의 한 소녀가 그 광경을 지켜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삼키며....


많은 사람들이 모인 법정 안은 후덥지근했다. 이윽고 담당 판사가 입장하고 김인규 교사의 이름이 호명된다. 대기석에 앉아있던 이상희 변호사가 변호인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자리를 잡고 앉은 부인 이애숙씨 및 동료 교사들의 표정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피의자 자리에 선 그의 다리가 가늘게 떨리는 듯이 보였다. 긴장한 탓이었을까? 간단한 인적사항 확인 후 판사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


- 피의자는 처와 함께 전라로 서서 정면으로 성기를 노출하여 촬영한 사진인 우리부부를 홈페이지에 게시한 적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 2000년 1월 같은 홈페이지에서 여성이 다리를 벌려 노출된 성기를 정면으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인 그대 행복한가를 게시한 적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문제가 된 6가지 그림 및 사진에 대한 사실확인 질문들이 이어진다. 중략.)


- 왜 이런 짓을 했어요?


저는 인간의 몸이란 것이 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싶었고, 예술활동의 일환으로 그런 작품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짓을 했어요를 듣는 순간 기자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당연시하는 판사의 태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 당신이 회화 작가요 사진 작가요?


(잠시 생각) 저는 제가 회화작가다, 사진작가다,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회화나 사진이나 다 재료일 뿐이고 제가 추구하는 것은 오브제 미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남들이 볼 때 어떤 생각을 가지리라 생각 안 해 봤습니까?


저는 흔히들 사회에서 아름답다고 하는 기준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고,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신체도 그 자체로 존중할 만 하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남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 안해봤냐 말이야! 딴얘기 하지 말고.


(잠시 침묵) 저는 제 홈페이지에서 저의 일관된 생각을 밝혔기 때문에 저의 홈페이지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사람이 반대의견 생각 안해 봤어요?


물론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존의 가치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고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검사는 가만히 앉아있고 판사가 공격적인 질문을 계속 던져댔다. 검사와 판사가 뒤바뀐 듯. 판사에게 밀리지 않으려 답변하는 김인규 교사의 목소리는 긴장되어 있었다. 논리 공방이 계속되는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고, 오직 두 사람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어서 판사는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 선생이 그런 그림을 올리는 것이 문제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건 작가로서 제 양심에 비추어봤을 때 제가 음란하거나 변태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학생들이 볼 때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제가 알기로 학생들이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 학생들이 뭐라고 합니까?


아이들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수업은 교재를 가지고 진행되고, 저의 홈페이지는 교과 과정의 일부가 아닙니다.


- 아이들이 변태라고 안하던가요?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미술 수업을 할 때 다비드상이나 비너스상을 보면서도 눈을 가리거나 야유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인간의 신체는 음란한 것이 아니고 그 상황과 조건과 표현방식으로 이해를 할 때 의미가 있다고 얘기를 하고, 그러면 아이들은 이해를 합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그것을 음란하다고 여긴다면, 인간의 몸을 음란하다고 여기게끔 한 사회가, 이것이 음란한 그림이라고 자꾸 주입시키려 하는 사회가 문제라고 봅니다.


변태... 이 대목에서 그의 부인과 동료교사들, 그리고 당사자도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 (빈정거리는 투로) 말은 잘하는데 자꾸 다른 걸로 피해갈라 그러네. 다비드상은 사진이 아니잖아요?


다비드상이 사진은 아니지만 사진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아마 그 시절에 사진기가 있었다면 사진이 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 인터넷은 아무나 접속 가능한데 애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아이들은 인터넷상에서 이미 무수히 많은 음란물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고 아이들도 혼란스러워합니다. 몸에 대한 긍정적인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에게도 더 유익하다고 봅니다. 또 저는 그 사진을 무작정 보여준 것이 아니고 하나의 맥락 속에서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도전적으로) 당신 메시지가 반드시 발가벗고 나온 사진으로만 전달된다고 생각합니까?


제 사이트에 이미지가 250개가 있는데 그중 몇개만 떼어내서 음란하다 아니다 하는 것은 잘못된 문제제기라고 봅니다. 제 사이트에는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글도 있고 그림도 있습니다. 또 그것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중 하나만 거두절미하고 잘라서 음란하냐 아니냐 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어서 비인중학교 및 서천지역 학부모들의 연대서명한 것에 대한 의미, 비인중학교 홈페이지 관리 및 링크 문제를 가지고 검사와 김인규씨 사이에 심문과 답변이 길게 이어졌다. 심문이 일단락되자 다시 판사가 질문. 


- 티비 토론회에 나간 적 있죠?


예 있습니다.


(긴 침묵. 판사는 김인규 교사의 잘못했다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던 듯.)


- 수사중이고 영장 청구중읜 피의자가 왜 그런데 나가고 그럽니까?


그때는 이미 기각되어 영장청구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알고 있고... 


- (중간에 끼어들어 호통을 친다) 영장 조사 받은 적 있자나!


(그 역시 어조가 올라간다) 예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안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런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음란 교사로 매도당하는 상황에서 발언의 기회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올라감에 따라 그의 목소리도 격앙된 듯이 들렸다. 뒷모습으로 보는 그의 다리가 다시 가늘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분노 때문이었을까.


이어서 검찰에서의 진술 거부, 피의자 신문 조서 등에 대한 변호사와 검사의 공방이 길게 이어졌다.


검찰에서의 조사 당시 조서에는 안 들어가는 내용인데 사적인 얘기나 해보자면서 검사가 계속 꼬투리잡는 무의미한 질문들을 던져댔고(물론 검사에게는 무의미하지 않겠지만), 김인규씨는 나중에 빨리 조사하라며 답변을 거부한 바 있었다. 바로 이 대목이 영장 청구서에 진술 거부라고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사가 강압적 수사 분위기였다는 논리를 폈고, 김인규 교사를 가운데 두고 검사와 변호사 사이의 공방이 있었다.


마지막 판사의 질문.


- 애도 있어요?


셋 있습니다.


- 애들도 알겠네?


예. 알고 있습니다.


- 애들한테 예술작품이라고 그 사진을 보여줄 수 있나요?


예.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 뭐라고 하던가요?


의미를 설명하면서 설명해 주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걸로 보였습니다.


- (빈정거리는 투로) 상당히 수준높은 애들이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얘기 있으면 하세요.


이것으로 법정 안의 공방은 모두 끝이 나고, 김인규 교사와 부인, 동료교사들 및 기자는 법정을 빠져나왔다.









구인되어 들어가는 김인규 교사



 법정 밖 풍경


모두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격앙된 얼굴들....


"이거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되는 거야? 판사 저 개새끼를..."


다시 법정으로 뛰어들어가려는 동료교사를 다른 동료가 막아선다. 딱히 누구에게랄 것 없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재판장이 왜 저 따위로 말을 함부로 합니까"
"판사가 저렇게 반말 찍찍하고 위압적으로 대해도 되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는 거까진 그렇다 치자 이거야. 판사가 저렇게 인격모독을 하면 그건 어디가서 보상받나? 민사 소송이라도 할 수 있는 건가?"
"판사 저 자식 오늘 아침에 부부싸움이라도 하고 나온 모양이지..."









심각한 표정의 이상희 변호사


굳은 얼굴을 한 부인 이애숙씨.
"몇번 왔다갔다 했지만 저렇게 하는 건 처음 봤어요. 피의자를 인격적으로 모독하잖아요. 지난번 영장심사 때는 부드러운 분위기였는데..."


상기된 이상희 변호사.
"만약 일반 공판 과정이었으면 재판부 기피 신청까지도 할 수 있는 정도였어요. 판사가 예단을 가지고 심문하잖아요."


일행의 분위기는, 예상 밖으로 뻣뻣하고 고압적인 판사의 태도에 대한 분노, 그리고 침울 그것이었다. 너나 없이 판사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으리라. 그들이 욕하는 것은 그 판사 개인이 아니었음을.


한 사람의 미술가를 재단하고 판정하려는 국가권력, 그 앞에 나선 한 개인의 무력감, 불순하다는 혐의만으로 성희롱적 인격모독적 언사가 당연시되는 구도, 그럼에도 끝까지 공손하게 머리속을 까뒤집어 보여 주어야 했던 모멸감, 그런 것들이 문제였음을......


 


 홍성 경찰서 면회실. 오후 1시 50분.


판사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김인규 교사는 홍성 경찰서 유치장으로 이감되었다. 철창과 유리를 사이에 두고 부부가 만났다. 두 사람 다 웃는 얼굴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유리 너머 그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사진제공 월간 <말>   


- 아까 검사하고 논쟁했던 사적 얘기란 게 무엇이었나요?


아 그건..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는데 "우리 사적인 얘기나 하자" 면서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계속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것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만 골라 던지면서.. 집에는 가야되겠고 조서는 쓰지도 않고 그래서 짜증이 나서 거기에 답변 못하겠다고 했더니 구속영장 청구사유에 "진술을 거부하는 등"이라고 했더라구요. 그 얘기입니다.


- 검찰 조사 과정의 분위기는?


검찰 쪽에서 하는 말은, 그게 솔직히 음란물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옷을 벗고 찍은 사진을 게재한 것을 넘어갈 수는 없다. 그걸 넘어가면 너도나도 빨가벗고 사진찍을 게 아니냐. 여기서 쐐기를 박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처벌해야만 하겠다, 라고 얘기하더라구요.


- 아까 재판에서 검사가 종전과는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미술활동이라면 교실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벗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인터넷에 올린 게 문제다" 라고. 그런데 그것은 학생들에게 불건전한 영향 운운하는 논리하고는 정반대였던 거 같습니다.


그 사람들도 아마 헛갈리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든 처벌해야겠다는 것만이 목표이다보니 말이 왔다갔다 하는 거 같아요.


- 전에 선생님과 비슷한 사례가 있었나요?


제가 알기로 처음입니다. 작가가 자기 몸을 공개해서 문제가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보기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는 거 같아요.


철창 인터뷰는 약 20분 정도 이어졌다. 짐짓 그런 척 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홍성 경찰서 주차장. 오후 5시 50분.  


하루종일 초조한 기다림이었다. 세시 정도면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더니, 네시 다섯시가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부인 이애숙씨는 해직 교사였다가 지금은 어린이방을 운영중이다.


"그전에 전교조 때문에 석달 들어가 있던 적도 있고, 구속 자체는 별로 무섭지 않아요. 다만 건강이 안 좋아서 혹시라도 구속되면 건강이 악화될까봐... 그게 가장 걱정이죠."


"건강이 어떻게 안 좋으시죠?"


"신장이 안 좋아요. 사구체 경화증이라고... 그래서 쉽게 피로를 느끼거든요. 지금은 병이 진행중은 아닌데, 건강 생각해서 술도 담배도 안 하거든요."


형사 한명이 나와서 살짝 귀뜸해 준다.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구속까지는 안 될 거 같다고. 그렇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


점점 해는 기울어가고, 공무원들 퇴근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구속이 되는건지 석방되는 건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경찰서 주차장 한 켠 컨테이너로 만든 휴게실에서 본지 기자들은 대기중이고, 그 바깥 의자에서 다들 무료한 시간을 죽이느라 여기저기 전화도 해 보고, 이런저런 얘기들도 나눠보고...


그때였다. 갑자기 와! 하는 외침이 들린 것이. 기자는 카메라를 챙겨들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저쪽 경찰서 건물 쪽에서 햇살을 등지고 휘적휘적 걸어나오는 회색 양복의 남자.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가는 자그마한 여자. 두 사람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아 이렇게 될 거 왜 귀찮게 오라가라 하구 그래?"
"내 이럴 줄 알았어. 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제서야 짐짓 허세와 여유들을 부려 본다. 그 순간만큼은 국가권력의 폭력보다 더 강하고 힘센 존재들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다시 출발


경찰서 대문을 나서는 길, 홀가분하고 기쁜 표정들과, 조금은 허탈한 발걸음이 교차한다. 환희와 안도감 속에서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속은 면했지만 중요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이제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된다는 것을....



유치장에서 보낸 하루, 그 하루만큼 밀린 업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작가 김인규이기도 하지만 교사 김인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의 어깨는 지쳐보였지만 머리속에는 당장 아이들 학기말 성적 낼 걱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눈부시게 맑고 파란 어느 초여름 하루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딴지 특별취재반 대빵 겸 운전기사
최내현(asever@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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