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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내 할머니

2001-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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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내 할머니

2001.5.21.월요일
딴지 생활부

나는 부산에 사는 대학생이다.

 

말이 대학생이지 하는 일 없이 그저 빈둥거리기만 하는 반백수다. 그 빈둥거림에 무슨 제약이 있으랴먀는 그래도 대학생 이름표를 달았다고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남들처럼 채팅도 하고 이런저런 게시판에 욕도 써보고 그러다 딴지 일보를 알게 되었고 우연히 기자 수첩이라는 걸 읽게 되었다.

 

할머니…

 

딴지의 어떤 기자처럼 나 역시, 길에서 보따리를 펼치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그 할머니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오는 그런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이야기를 하려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슬픈 기억에 또 가슴이 북받쳐 온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지라 다른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앞서고 어설픈 글 솜씨라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작한 글을 계속 이어보련다.

 
 

나는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외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게 이제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유년의 대부분을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머리가 조금 커졌다고 그랬는지 아니면 뭔가 다른 것 때문이었는지 나는 할머니와 매일같이 참 많이도 싸웠다. 말이 싸우는 거지 거의 내가 일방적으로 할머니를 몰아 붙이고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해버린 다음 집을 나가 버리는 것이 싸움의 전부였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언성을 높이다가 나중에는 결국 땅바닥에 엎드려서 대성 통곡을 했다.

 

   아이고, 엄마, 날 좀 데려가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더 몹쓸 놈으로 변해 갔다. 나쁜 녀석들과 어울려, 가서는 안될 곳도 가고 해서는 안될 짓도 하고 그리고 그런 쪽으로 놀다 보니 이성에는 또 빨리 눈을 떠서 그러다가 지금까지 사귀어 오고 있는 지금의 내 여자친구를 만났다.

 

나는 거리낄 게 뭐가 있냐면서 여자 친구를 자주 집에 데리고 왔다.
여자 친구가 처음 집을 다녀간 이후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던 즈음, 그 날도 여자 친구가 집에 온 날이었다. 내가 간식거리를 사러 잠시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데 여자 친구가 울면서 집을 뛰쳐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직감했다. 할머니가 여자친구를 불러 놓고 한마디 하신 것 같았다.

 

나중에 여자 친구에게 들은 것이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자애가 남자 집에 들락날락거리면 안되니 이제 오지도 말고 만나지 마라.

 

나는 뛰어가는 여자 친구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보다가 화가 잔뜩 나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할머니를 몰아 세우기 시작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할머니의 통곡 소리가 이어졌고 나는 그게 듣기 싫어서 집 밖으로 나갔다.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다.

 

그러다 겨울이 왔고 겨울방학 보충 수업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나는 보충 수업을 땡땡이 치고 여자친구와 놀러 가기로 약속을 했고 혹시나 학교에서 전화가 올 것을 대비해서 할머니께 아프다며 꾀병을 부렸다.

 

할머니는 밤새도록 내 꾀병을 간호해 주셨고 잠 한숨 자지 못했다. 그 날 밤 나는 할머니는 전에 없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의 가족들 이야기, 엄마의 어릴적 이야기, 나 이전에 엄마 뱃속에서 유산되었다는 형 이야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이 그 때가 처음이라 생각된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그때 할머니는 자신이 어떻게 되리라는 걸 알고 계신 듯 했다. 그래서 그동안 가슴 속에 품고 오셨던 이야기들을 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꾀병의 밤도 곧 지나고 새벽이 왔다. 나는 몸 좀 풀고 오겠다는 핑계로 목욕탕에 갔다. 목욕을 하고 깜빡 잠이 들어서 한 시간 쯤 자다가 집에 돌아왔다. 미명이 밝기도 전인데 할머니는 마당 장독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장을 퍼내고 계신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벌써 아침 준비를 하시나?

 

나는 할머니를 불렀다. 그런데…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할머니는 장독 사이에 얼굴을 묻으시고는 눈을 감고 계신 것이었다. 순간 눈 앞이 핑 돌았다. 나는 할머니를 끌어 앉고 계속 할머니를 외쳐 보았지만 그 추운 날씨에 할머니의 얼굴은 이미 얼어 있었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신음 소리에 섞인 짧은 한 마디를 내뱉으셨다.

 

   할매를… 용서해라.

 

나는 온동네가 떠나갈 듯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바로 119를 불렀다. 곧 도착한 구급대원은 아무런 말없이 할머니의 몸 위로 하얀 천을 덮었다.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음날 내가 눈을 떴을 때 할머니는 이미 관 속에 있으셨고 많은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그날처럼 서럽게 울어 본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났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루고 한 달쯤 뒤에 육교 위에서 우리 할머니를 꼭 닮으신 할머니를 보았다. 미나리를 팔고 계셨는데.....나는 그 할머니를 붙들고 울어 버렸다.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주저 앉아서 울어 버렸다.

 

그 후로 나는 아이들이나 아저씨들이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팔러 오면 그냥 무시를 하고 지나쳤지만  할머니께서 뭘 도와달라고 오시면 차비만 빼고 거의 다 털어 주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지은 죄의 만분의 일도 갚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은 날이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가, 내가 마음 편하기 위해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내가 할머니를 죽인 거라고......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죄책감을 떨쳐버리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런 것들을 다 떨쳐 버릴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떨쳐버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한다.

 

지난 주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진주에 있는 할머니 산소에 갔다. 비가 안 와서 묘 위에 풀이 잔뜩 말라있었다. 참으려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무슨 쓸데없는 주책인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지만 눈물이 그 주책스런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할매, 엄마 걱정하지 마라. 할매가 죽어 저 세상 가도 엄마한테 잘하는지 지켜 볼 거라는 말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앞으로 엄마한테 더 효도하고 엄마 잘 모실께.

 

할매. 그 때 진짜로 내가 잘못했다."

 

 

딴지 독자
(strttrz@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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