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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엽기 테크니션 김기떡 감독!!

2001.5.21.월요일

딴지 영진공 엽기인력 개발팀




명랑사회 건설이라는 장중한 이데아를 위해 엽기인프라 구축 및 엽기인력 개발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해 온 본 공사는 드뎌 그 가시적인 성과를 보게되었으니, 그것은 오로지 엽기의 한 길에 이 한 몸 바치겠다는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본 공사의 수준높은 지도편달과 카리스마 넘치는 영도를 몸소 받아들인 엽기계의 테크니션 김기떡 감독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빵구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신엽기인의 탄생이야말로 명랑사회 건설을 위한 빵구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여, 오늘은 대국민 엽기력 증강을 위해 일년에 한 편씩 꾸준히 엽기 리싸이틀을 공연해 온 김기떡 감독을 돌아보며 진정한 엽기에 대해 고민을 때리는 시간을 조금 갖도록 하겠다.
 



진정한 엽기의 길은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 별 노력 없이도 한 방에 터져나오는 설사똥처럼 하루 아침에 얻을 수는 없는 것. 바른 배변 자세 후 들숨과 날숨이 싱크로나이즈드하는 정성어린 복식 호흡을 통해 배꼽에다가는 0.13 마력의 힘을 가하고 19번 척추에 0.07 마력의 압박을 가하는 고도의 정신집중과 수련이 있어야만이 가능한 일.


국내에서 가장 화려한 엽기 테크닉을 지녔다고 일컬어지는 김기떡의 엽기갑자 역시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님이다.


그는 그가 엽기를 위해 타고난 천재적 재원임을 그의 데뷔작인 <악어>에서부터 알리고 있었다. 그때가 바야흐로 1996년. 엽기에 대한 바른 인식공유도 채 되어있지 않던 불모의 시대 아니던가! 하지만 그는 그 때부터 엽기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선천적인 엽기감성으로 선구적인 엽기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임이다.


당시 그가 사용했던 엽기술은 다름아닌 오이로 똥꼬 굴착하는 비술. 동성애자와 함께 호텔에 들어간 쥔공 악어는 호텔 냉장고를 열어본다. 아, 씨바 깜짝이야, 호텔 냉장고에 오이가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는 그 오이로 동성애자의 똥꼬를 굴착해 버리는 것이다. 턱관절 딱 벌어짐이도다.









화살표는 똥꼬로 향하는 분노의 오이되겠다.


이 탁월한 선구적 엽기를 당시 접한 몇몇 변비환자들은 변비 치료에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에 이 똥꼬 굴착술을 따라하다 직장에 붙어있던 숙변들이 대장까지 밀려들어가는 참사를 겪었다고도 하는데... 그 사람들 병원에 가서 배갈라 똥 꺼냈다는 쇼킹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해지기도 했음이다.


아무튼 그는 이 엽기를 통해 엽기 테크니션으로써 가능성을 타진함과 동시에 한국 엽기사에 이정표를 찍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차기 리싸이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도 한 차례 화려한 엽기스킬을 선보이는데 이름하야 냉동 고등어로 사람 배따지 담그기.




그간 사람 배따지를 찌르는 데에는 모니모니해도 사시미가 으뜸이라는 조폭종사자들의 타성에 일대 지각변동을 초래했던 이 엽기는 그로 인해 조폭업계에서 사시미를 몰아냄으로써 냉동 고등어 역시 불법무기에 속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기까지 달건스들의 필수품이었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달건스들의 한판 맞짱이 있을 경우에는 달건이들이 발목에서 사시미를 꺼내드는 게 아니라 냉동 고등어를 꺼내들고 싸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종종 벌어졌었다고들 한다. 우쨌든...


그의 이런 엽기그라피는 <파란대문>에 와서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파란대문>에 엽기가 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물리적, 직접적이었던 그전 엽기들보다 오히려 한 단계 더 승화된 엽기가 당 작품에서 펼쳐졌으니 그건 바로 금붕어 바다에다 방생하기.


 


물론 당 영화에서는 금붕어를 바다에다 방생하는 장면만 보여주고 그 후의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더욱 고차원적인 엽기를 가능케 했으니관객들이 그 장면 이후에 펼쳐질 금붕어들의 어생(魚生)을 생각할 때 엄습해오는 엽기의 카타르시스는 가히 비주얼로만 일관하던 당시 엽기계에 또다른 충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엄따.


또한 그 금붕어들은 자동으로 자반 금붕어가 되어 대국민 식생활 개선에 지대한 공로를 하였다는 후문도 전해지고 있음이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엽기계에 이름을 날린 리싸이틀 작품은 엽기라는 단어를 마빡 마케팅으로 들고나온 <섬>. 이 작품은 각종 세계 엽기 페스티발에 초청되는 성과를 올림으로써 국내 엽기인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드높이는 결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그가 사용했던 테크닉의 화려함과 차력에 가까운 스킬의 현란함을 기억덜 하시는가! 낚시바늘 삼키기, 삼킨 넘 줄잡아 낚기, 잉어 회떠서 방생하기, 개구리 포뜨기, 낚시바늘로 자궁 후비기 등등등...








 


<섬>이 보여준 화려한 엽기 테크닉


그로써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엽기에 대한 이해도의 심오함, 엽기철학의 깊이, 그리고 그 형식의 버라이어티함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우리덜은 그를 통해 국내 엽기계의 새 희망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 과연 명랑사회는 도래할 것인가!!
 



그러나 그의 엽기는 이와 같은 몬도가네성 비주얼 엽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의 엽기가 탁월한 진짜 이유는 영화 속 여성묘사에서 그 궁극이 드러난다. 조금만 각을 잡아보자.


<악어>에서 여쥔공은 쥔공 악어가 조꼴릴 때마다 수시로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는 못 견뎌 튄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다. 왜? 씨바, 잘 모르겠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강간을 하건 두드려 패건 간에 여자는 남자에게 돌아온다. 이 어찌 아니 엽기일 수 있으랴!!


그뿐인가. 쥔공 악어는 어디에선가 존나 맞고 들어온다. 맨날 악어한테 쥐터지고 가랭이 벌려주던 이 여자는 뽀사시한 손수건을 꺼내 정성스레 악어의 상처를 딱아준다. 그렇게 때리고 패대기치는 남자를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챙겨주는 거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쥔공 악어는 그뇨의 그런 마음 씀 한 번에 악랄한 넘에서 착한 넘으로 변신까지 해버리는 거다. 이 어찌 아니 엽기일 수 있으랴!!


아마 개화기 신여성도 이러지는 않았을 꺼다. 대체 이런 이조시대에서 타임머신 얻어타고 온 듯한 여자는 뭐며, 또 그렇다고 한 번에 변해버리는 남자는 뭔가? 여자의 심리가 변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영화 속에서 묘사라도 해준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하지만 당 영화 <악어>는 마치 여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여자의 내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낫띵이다.


영화 속에서 자신이 묘사하는 대상에 대한 이와 같은 촌스럽고 곰팡내 풀풀 나고 치기어린 인식. 이거... 진정한 엽기 아니냐?


<파란대문>에서는 잘 주는 여자와 절대 안 주는 여자가 나온다. 안 주는 여자는 절대 안 주지만 잘 주는 여자는 암 소리없이 잘 준다. 안 주는 여자는 잘 주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엄따.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안 주는 여자는 잘 주는 여자를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VS 


<파란대문>의 잘 주는 뇬과 안 주는 뇬


그래서 그렇게 자기 애인이 달라고 해도 안 주다가 이제는 준다. 그러자 이 애인은 또 안 먹는다. 급기야 잘 주는 여자를 대신해서도 준다. 이때 하늘에선 때아닌 눈마저 내려준다.


안 주는 여자가 잘 주는 여자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잘 줄 수밖에 없는 현실과 환경을 이해한다는 뜻이지 여자야, 잘 줘라라는 뜻은 아닐 게다. 감독이 고수하는 밑바닥 인생에 대한 끊임없는 애착은 좋다. 하지만 잘 줘서 밑바닥 인생이 아니라 밑바닥 인생이어서 잘 줄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데 워째 결론에서 밑바닥 인생은 빠지고 잘 줘라만 남는단 말이냐.


밑바닥 인생인 잘 주는 뇬의 삶을 이해한다면 덩달아 잘 줘야 되는 거냐. 이런 대상에 대한 인식능력 부족, 이거... 진정한 엽기 아니냐?


그의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는 문제들이 다 있다. 비열하거나 나약하고 잔인하거나 폭력적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는 그들이 다 밑바닥 인생이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여성 캐릭터는?


앞서 <악어>에서의 여쥔공도 그렇듯이 완벽하다. 여성에게가 아니라 남성에게 완벽한 여성이다. 잘 주지, 게다가 착하지, 고분고분하지... 이 얼마나 멋진 판타지인가? 이런 판타지의 극은 <섬>에서 나타난다.


<섬>의 여자 쥔공은 역시 창녀다. 그러니까 당연히 잘 준다. 얼마나 좋냐? 하지만 잘 주기만 하면 천박하다. 그래서 때로는 거부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섬>에서 여쥔공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혼자 깡소주를 마시다 남자 쥔공을 찾아간다.


비에 홀딱 젖은 채로 깡소주를 마시며 남자를 찾아온 잘 주는 여자. 남자는 당연히 주러 왔나보다 생각하고 덮친다. 그런데 왠 걸? 여자는 안 준다. 누가 봐도 주리라 생각되는 장면에서 안 준다. 주면 천박해지니깐...


그렇다고 안 주면 남자한테 매정한 여자 된다. 해결 방법은? 그렇다. 딴 창녀를 직접 불러다 붙여주는 거다. 이 얼마나 마음 씀이 깊은가. 씨바, 잘 주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자상하기까지...








잘 주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사랑에 빠지면 한 남자만 사랑하면서,
자상하고 강하기까지한....


<섬>의 완벽한 그뇨...


게다가 이 여자 쥔공은 남자의 부랄을 딸 정도로 터푸하고 생활력 있고 자립적이다.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기대는 것을 맘껏 받아줄 만큼 강한 여자인 거다. 삶에 꿋꿋했던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강한 거다. 그래서 영화는 마지막에 자궁 회귀 모티브를 살리면서 여자 쥔공의 모성을 강조한다. 잘 주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자상하면서 어머니처럼 강하기까지... 이 어찌 완벽한 여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자는 나약하고 비열해도 되더라도 여자는 완벽해야 한다는 이 촌시런 인식. 이거... 진정한 엽기 아니겠냐?
 



그러나 그의 엽기가 이걸로 밑천이 드러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이야기를 정교하게 짜거나 영화를 정성스레 만드는 감독은 아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인과관계는 존나 자주 무시되고 그 빈틈을 이미지와 상징이 자리하게 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개연성과 인과관계를 희생시키면서 낑궈진 그의 이미지와 상징이라는 것이 그것들을 희생시키고 담보해도 좋을만큼 훌륭하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점 역시 엽기 되겠다.


<악어>에서 보여준 물 속 장면, <파란대문>에서 보여준 금붕어 방생, <섬>에서 보여준 새장 속의 새, 사시미 뜬 잉어 방생, 그리고 마지막 자궁회귀 장면까지 너무 뻔하고 어설픈 상징과 이미지들의 퍼레이드는 별로 재미가 없음이다.


그리고 정성들여 만든 영화만큼 보기 좋은 영화가 없다는 점을 상기할 때 편집과 음악 등 이야기 외의 장치에 그가 보이는 무관심 역시 그의 영화를 재미가 없게 만드는 부분이겠다. 다작이 능사가 아니라, 한편을 만들더라도 좀 더 많은 정성을 쏟는 게 중요하다.


또한 그의 영화들을 통칭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인 저예산이라는 단어 역시 엽기가 될 충분한 요인이다. 저예산이라고 한다면 단지 적은 돈으로 만든 영화만을 뜻하지는 않을 거다. 또한 남들이 다루지 않는 소재를 다룬다는 뜻만이 아닐 거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의 스펙트럼이 있다.


저예산이 말하는 자유로움, 주류로부터, 관습으로부터, 자본으로부터,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 것이 그의 영화에는 없다. 그의 영화가 끊임없이 집착하는 주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그만큼 주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 나타나는 공격성과 폭력의 근원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주류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는 영화가 저예산이 말하는 자유로움을 가질 수가 없다. 그의 영화에 대한 모 평자의 말대로 고예산의 관습이 그대로 들어있는 저예산 영화라는 말은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님이다. 그러므로 적은 돈으로 만든 독특한 소재의 영화가 저예산이 아니라면 그의 영화 역시 저예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필요가 없는 영화이다.


이것은 그의 엽기가 아니라 그의 영화를 저예산 영화의 기수처럼 포장한 많은 영화 언론의 엽기이겠지만, 우쨌든....
 









그런 점에서 이번 그의 작품 <수취인 불명>은 그의 전 리싸이틀보다는 약간 멀리 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의 현란한 엽기 테크닉은 좀 더 일취월장 했다. 눈깔 찌르기, 젖통 사시미로 도려내기, 개줄에 목매달기, 철사뭉치 삼키기, 삼킨 철사 똥으로 싸서 꺼내기, 조세다 화살쏘기, 사람고기 씹어먹기 등 전작보다 훨씬 더 화려한 엽기 테크닉이 등장함이다.


또한 이런 엽기를 멀리서 보여주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상상하게만 만드는 스킬 역시 그가 전작들에서 보다 많이 앞서 나갔다는 증거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까지는 드라마에 공을 들이는 점 또한 그 증거가 된다.


그러나 여쥔공을 농락한 미군에게 쏜 화살이 하필 조세 명중한다거나, 자식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죽은 자식의 시체를 먹어 버린다는 은유나 미군과 울나라 여인의 빠굴을 상징하는 누렁개와 흰개의 흘레장면들은 역시나 식상할 정도로 별 재미없는 비유들이다.


또한 그의 여성인식 역시 여전히 엽기다. 당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몽땅 파멸하고 파괴된다. 그런데 여쥔공 은옥은 아니나 다를까 영화 속에서 윤간을 당하며 자기파괴를 겪는다. 근데 윤간을 당하건 강간을 당하건 그런 건 몽땅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치자. 그래서 그의 영화가 자꾸 보여주는 강간의 모티브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치자.


하지만 윤간을 당하는 여쥔공 은옥은 윤간을 당하기 전에 영화의 줄거리와는 별 쓸따리없이 강아지를 치마 속에 집어넣고 오나니를 한다. 국내 최초의 애니멀 빠굴이라는 의미는 있겠지만 이처럼 여자의 욕망을 자극적인 방법으로 드러내 놓게 하고는 윤간으로 단죄하는 건 여전히 엽기인 거다.


이건 마치 80년대 불륜을 소재로 한 빠굴무비에서 흔히 보아왔던, 불륜을 저지르는 여자를 단죄하는 스토리를 떠오르게 함이다. 그만큼 촌시럽다는 거다.


이 지점에서 <수취인 불명>과 관련하여, 미군 성폭행 문제에 대해 그가 한 말을 직접 들어보자.


....시나리오를 쓸 당시 나는 미군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헌팅을 하러 다니던 도중, 수많은 미군부대 주변의 남루하고 꾀죄죄한 클럽들을 보면서 어떤 비애감을 느꼈다. 몇 달러를 주고 필리핀이나 러시아 아가씨들을 옆에 앉혀 몇 마디 나누다가 미군기지로 돌아가는 병사들의 초라한 모습에서 고립감, 외로움, 쓸쓸함을 느꼈다.... (중략)...


그리고 성폭행 문제의 또 다른 이면을 보게 되었다. 미군기지 주변의 치외법권 지역에서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나. 그들은 이국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는 쓸쓸한 이들일 뿐이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그래서 <수취인 불명>이 미국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친미와 반미의 경계라고 말하겠다.


사실 친미와 반미의 원인은 주한미군의 범죄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미군 범죄는 범죄를 저지른 개체의 문제이지, 친미와 반미로 표현할 집단의 문제 역시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미군은 집단의 희생자일 수는 있지만 개체로써는 범죄자다. 그런데도 주저없이 이렇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말하는 그는 참으로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거 아시는가? 김기떡 자신 역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커다란 주류이자 기득권에 부지부식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의 분노와 공격의 근원에 있는 주류에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그 주류인 남성과 미국에 대해서만 유달리 이해심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때문에 그의 영화에서 줄곧 엽기로 표현되는 그의 분노와 공격성들은 방향감감도 없고, 대상도 없다. 그저 아, 씨바 열받아서 그 열받음을 풀기 위한 자해에 가깝다.


세상을 열받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좋다만, 그게 그저 치기어린 자해로만 끝나 버리니깐 재미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엽기내공은 당 영화에 와서도 그다지 커다란 변화를 보인다고는 할 수 없다. 앞서 썰푼 바대로 분명히 여러 부분에서 전작들과 차이점을 보이는 점도 있지만, 여전히 국내 최고의 엽기 테크니션으로 엽기찬란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 영화판에서 김기떡 감독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눈치다. 그전에도 작가로써의 명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거기다가 더해서 한 술을 더 뜰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독특함이나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엽기가 무시되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분명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 전에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어설픔, 부족해 보이는 영화를 만드는 정성, 세상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모자람 등은 그런 의미를 희석시킨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의 영화는 좋은 점도 있지만 어설픈 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영화들이 재평가받아야 하는 부분은 정확히 그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거다. 그 좋은 점이 평가절상되어 그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어설픔까지도 덮어 버린다면 그거야 말로 과대포장, 구라광고 아니겠냐!


하지만 그의 영화들에 대한 재평가가, 그의 영화가 각종 외국 영화제에서 초청되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과연 그런 재평가 작업이 얼마나 자유로울지 의문이다. 외국 영화제 출품작, 초청작, 수상작들은 영원히 우리에게 걸작이어야 하는 것일까?     
 





우쨌든 그리하야 본 공사는 21세기 국내 엽기계를 끌고 갈 최고의 재목으로 김기떡 감독을 선정함이다. 그러나 앞서 살핀 바대로 당 엽기인이 펼쳐보인 엽기는 아직까지는 사파엽기에 가까울 뿐, 본 공사가 추구하는 명랑엽기는 아니라는 것이 본 공사의 소견이다.


따라서 당 엽기인이 진정한 엽기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아직도 장도의 길을 걸어야 함이다. 몇몇 똥꼬 핥는 영화 언론이 있다 하여 마음을 놓아서는 절대 안됨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꾸준한 자기연마와 고행의 시간을 더불어 갖는다면 진정한 엽기인으로써 명랑사회 구축을 위한 발판 마련에 선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너무나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


아, 명랑사회는 진정 도래할 것인가!!



덧붙여서
그의 엽기에 대해서는 전에부터 꾸준히 열광과 냉소의 뚜렷한 명암이 갈렸던 바 본 공사가 되짚은 그의 엽기그라피에 대한 불만과 반항 세력은 일말의 주저없이 본 공사 부설
자유소견란에서 주디 나불거려주길 바란다.


명랑사회... 니덜의 주디에 달려있음이도다. 졸라~



 

딴지 영진공
엽기인력 개발팀장 철구
(chulgoo@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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