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의사파업의 여진,
그리고 아포리아...혹은 희망

2001.3.21.수요일

딴지의학부 대표기자
GLOMerulus on SuperBoard

졸라.

대 딴지 독자 여러분, 안녕들 하신가? 오랜만이라는 둥,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간 기사를 썼네 못썼네 하는 시답잖은 야그는 우리 생략하기로 하자.

시류의 유행을 따라 노자 행님 이야기로 함 시작해보자. 도덕경 제7장에 우아고매하고 거룩하신 말씀 한 귀절이 있다.

外其身而身存(외기신이신존): 세상밖에 자신을 둠으로써 자신을 보존한다.

머 맛이 약간 간 어떤 넘은 이게 무슨 도 닦는 비결이나 되는 줄 알고 지랄 옆차기를 하드라만은 이거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니다. 노자 행님 말씀은 ‘쥐뿔도 모르면서 세상일에 왈가왈부 하는 것은 니 명을 단축할 뿐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또 세상에 대놓고 하고자픈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조용히 찌그러져서 니 몸 보존이나 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참으로 훌륭한 말씀에 다름 아니다. 아니라고? 아님 말고.

솔찌기 작년 의사의 난 이후 본 기자는 더 이상 한국의 보건의료니 뭐니 하는 것들에 희망을 접었다. 더는 머라 왈가왈부 하기가 당최 귀찬드란 말이쥐. 생업이나 욜씨미 하고 이 기회에 떼돈이나 벌어볼까 했드랬다.

허나, 요사이 한국 보건의료의 돌아가는 모냥을 볼라치면 정말이지 무심코 코를 후비다가도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며 아무나 붙잡고 같이 더불어 지랄염병을 하고픈 심정이다.

의료제도의 기본골격인 의료보험은 재정 파탄에 직면하여 그 뿌리부터 흔들거리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테레비에서는 연일 보험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다 들어먹었다드라, 망했다네, 망했다네.’

더구나 이러한 재정파탄과 연관되어 그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의약분업은 도대체 왜 그 쌩지랄을 하면서까지 시행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의사, 약사, 제약업자의 담합으로 븅신가튼 제도가 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 느그들이 ‘이런 씰데 없는 의약분업, 당장 때려치우자’고 하는 거또 무리는 아니지 싶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아무리 노자 행님이 ‘니 몸보신이나 잘하고 복잡한 문제에는 끼지 말어라’라고 권고하셨다지만 본지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할 수는 엄따. 더구나 보험 재정 파탄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늘상 그렇다시피 전혀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각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건강보험의 참을 수 없는 거덜남   

세상 참 희한하다.

은행이 망하더니 공기업이 부도나고 급기야는 그 철옹성같던 건강보험공단이 망하게 생겼단다. 올해 예상적자가 3조 5천억에서 4조 정도로 추산되고 있대나 어쩐대나. 이거이 도대체 먼 말이냐믄 말이쥐.

우리가 병의원가서 진료를 받게 되면 당근 일정한 비용을 내야 된다. 근데 우리는 이중 일부분만을 직접 병의원에 낸다(본인부담금). 그리고 병의원은 그 나머지 비용

A = 총 비용 - 본인부담금을 보험공단에서 받는데 그 돈은
B = 우리가 낸 보험료 + 국고보조금 + 회사부담액에서 충당한다.

그런데 올 한해 이 A와 B의 차가 4조원이나 날걸로 예상되서 도저히 이대로는 건강보험 공단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생겼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이하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언론이 떠드는 것들을 종합해보면 이게 주범이 의약분업이다. 의약분업 하느라고 진찰료, 처방료 디립다 올리고 약국 조제료 올라가고, 고가약 쓰고 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설명들이다. 만약 이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의약분업 안하고 옛날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러고 우리 그냥 그렇게 후지게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냉정히 분석해보면 그게 꼭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건강보험이 거덜난 이유로는 몇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적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일단 가장 먼저 생각되어야 할 점은 의보재정 적자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 수 년 전부터 이대로 가다가는 보험재정이 파산나리라는 예상은 여러 자료를 통해 제시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보험시행이후 국민의 의료이용은 급격히 증가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그간  보험공단이 급여로 지출해온 액수는 그 증가가 가히 기하급수적이었다. 지역의료보험의 경우만 하더라도 1989년 약 4300억이던 급여가 딱 10년만에 열 배가 증가한 4조 3000억이 되었다.

당연한 결과로 이미 지역의료보험의 당기 적자는 1996년부터 1400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누적적립금 역시 1999년부터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지난 기사(31호)에서 본 기자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너태우 정부때부터 국고 보조금 50%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드랬다. 간단히 말해 의료보험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정부의 무성의한 국고보조로 국민에게 보험료 부담을 전가하면서 근근이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것조차도 점점 힘에 부쳐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거는 보험재정이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져 그리 크지 않은 충격에도 언제든 뒤로 나자빠질  준비가 돼있었다는 말이다. 본 기자는 항상 의아한게 이미 3년 전부터 그토록 떠들어댈 때는 듣는 둥 마는 둥,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는 꼭 닥쳐서야 이 날린가 모르겠다는 거시다. 왜 우리 나라 언론이라는 거뜰, 정책 담당자들이라는 것들은 항상 이 모냥 이 꼴일까?

 의약분업 준비의 미비

이렇게 보험 재정 자체는 이미 수년 전부터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있었다. 이런 모래성 위에다 결정적인 어퍼컷을 먹인 게 바로 의약분업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의약분업 시행과정에 주변에서 일어났던 몇몇 일들이다. 사실 큰 줄거리로 보자면 의약분업은 전반적으로 의료의 합리적인 소비를 가져오는 게 정상이고 이는 국민의료비의 전반적인 감소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효과는 현찰이 아니고 어음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료 소비 문화나 관습이란게 이미 100년 이상 약 많이 쓰고 무조건 주사 두어대씩 맞는 걸로 길들여져 있는데 분업 시행한다고 당장 몇 개월 혹은 몇 년만에 그런 뿌리 깊은 문화관습이 바뀌리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런 긍정적 효과는 최소한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사항이다.

따라서 그 과도기에는 필연적으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분업 이전에는 약국에서 전문의약품이라도 지맘대로 구입할 수가 있었고 고혈압이건 당뇨건 의사의 판단 없이 알아서 약을 사먹는게 가능했다. 당근 그런 경우는 의료보험에 해당되지 않았고. 근데 이제는 이런 환자들이 반드시 병원을 거쳐야만 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 말은 보험체계 내로 상당수 환자들의 이동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말이다(외래 환자가 약 20% 정도 증가했다는 자료가 있다). 그리고 병의원의 진찰료와 약국의 조제료도 어느 정도의 인상은 불가피하다.

자 그런데 이거는 자세히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의약분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비용이다. 수십 년 후 전체적인 효과로 따져보면 분업의 긍정적인 효과에 의해서 결국은 상쇄될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일단 당장은 돈이 더 드는 건 분명한 사실인거다. 그리고 이거는 어디 하늘에다 날리는 비용이 아니고 우리가 감수해야 되는 비용이다. 따라서 정책의 내용이 정당하다면 당장에 그 비용이 좀 들더라도 솔직히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했어야 할 일이다.

정부의 실책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그게 의약분업 준비의 핵심 사항이었다. 따라서 이런 재원조달의 문제는 매우 다각도로 철저하게 연구되고 모색되어져야 했다. 예를 들어 약품 실거래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는 사실 약가의 거품을 없앤다는 의미로 의료비도 줄이고 국민의 부담도 줄이는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국민 대다수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당연히 이런 문제는 정말 철저하게 물고 늘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약가거품의 제거(99년 11월, 2001년 3월)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당한 양의 약가거품이 남아 있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아직도 보험약가의 50%이상이 약가거품인 약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거이 바로 여러 사람 열불나게 만들고 있는 제약회사와 의원, 약국간 담합의 재정적 원천이고 그나마의 분업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를 완전히 아작내고 있는 가장 큰 주범이다.

 보험수가의 과도한 인상

더욱 결정적인 것은 작년 의사파업을 거치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벌어진 네 차례에 걸친 보험수가 인상인데 이거는 보험재정에 깨끗한 피니쉬블로를 날렸다 (2000.4.1, 6.16, 9.1. 2001.1.1). 불과 반년 약간 넘는 사이에 의보 수가는 네트로 32%의 수직 상승을 한 것이다(이게 1999년 11월 인상분까지 계산하면 1년 사이에 44%가 오른 게 된다).

이것은 누가 보기에도 분업에 따른 손실 보전을 훨씬 오바한 것이다. 이는 자세한 자료가 나오고는 있지 않지만 과거 약국으로 가던 환자들의 병원유입에 의한 환자 수까지 고려한다면 개원의의 수입이 현저히 상승되었음을 의미하고 작년 후반기 급속히 개원가가 파업의 대열에서 이탈해 갔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급작스런 개원러시는 이러한 사태의 간접적인 반증이다.

 고가약 처방 문제

거기다가 애당초 지역의약분업 협력위원회라는 걸 만들어서 각 지역의 처방약 리스트를 정하고 꼭 오리지날 고가약이 아닌 카피약이라도 질 좋고 싼 약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 사용하기로 했드랬다. 근데 이것도 없어져 버렸다. 거기다 대체조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리지날 고가약 처방에 대한 제어장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 카피약품들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아예 포기하는 건 길이 아니다. 일단 가능한 약품부터 시작하고 약효 동등성 검사를 통해 그 범위를 점점 넓혀나가면 될 일이다.

이런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히고 설키어 현재 이런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거다. 그러나 정리하면 이미 보험재정은 사소한 충격에도 휘청거릴 만반의 준비를 수년 전부터 하고 있었고 여기에다가 분업을 실시하는 과정에 있어서 전혀 개혁적이지 못한 몇 가지 정책의 실패로 인해 그로기 상태에 몰린 것이다.

잘난 언론들은 이게 의약분업이라는 정책 자체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덮어씌우고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과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얘네들은 작년에는 정부더러  의사들의 요구사항을 될 수 있으면 많이 들어줘야 한다고 나발을 불어댔었다. 그러더니 이젠 뒷다마를 깐다. 참 개버릇 남 못 준다.

이렇게 분석을 해보면 현재 재정 위기의 해결책은 몇 가지로 정리되는 데 머 이걸 따로 정리할 필요는 없겠다. 이미 앞에 한 내용에 다 들어 있으므로. 국고보조 정상화, 철저한 실거래가 제도로 인한 약가거품 완전제거, 의보 수가 인하, 신중한 대체조제 허용과 지역분업 협력위를 통한 고가약 처방 억제 등의 정책이 지금 당장 실행돼야 한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아쉽게도 본 기자는 드럽게 찜찜하다. 밑 덜 닦은 기분이다. 이게 근본적인 뭔가가 더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그게 머냐고? 한숨 돌리고 기지개 함 켜고 다시 바바바. 곧 갈쳐 줄랑께..    

 다시 처음으로...    

본 기자는 독자들에게 의료라는 문제는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공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이지 개인의 능력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미 수 차례 강조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의료보험은 일반의 민간 영업보험과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며 보험의 원래 기능인 질병이나 사고에 대한 리스크의 분산이란 거 말고도 부의 재분배와 사회적 연대 의식의 강화라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 있다는 점도 이미 수 차례 언급했다.

보험료 걷을 때 아무래도 쪼매라도 더 있는 넘들한테 더 많이 걷고 없는 넘들은 아예 면제라도 해주고 나서 쓸 때는 비교적 공평하게 사용하자는 거이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질병이라는 놈을 이렇게 십시일반으로 서로 해결해가면 그 사회를 사는 넘들이 ‘그려, 우리는 역시 남이 아닌갑다!’라고 느낄 건 당연한 이치다.

이런 거를 좀 거창하게 말해보면 이렇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경쟁과 효율이 제일의 원리인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자본주의적 원칙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어떤 부분이 분명히 있는 거다. 특히 그것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거나 개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환경, 교육, 의료 등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의 개입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이다. 최소한 이런 부분에 있어서만은 자본의 논리가 억제되거나 조절되어야 한다는 말이다.(물론 이점에 딴지 거는 넘들 좀 있다는 거 안다. 하지만 본 기자 걱정 안 한다. 갸들이 자기 논리에 충실하다면 그들은 이미 교육이민을 떠났거나 준비중일 것이기 때문이다. 잘 가라. 가서 잘 먹고 잘 살길 바래. 근데, 다시는 오지 마, 잉.)

의료보험이 가지고 있는 맥락은 그런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 의료보험은 숱한 논란을 거치며 시간을 두고 다듬어지면서 만들어진 그런 제도는 못된다. 그러나 그렇다 하드라도 전세계적으로 일부 후진국(미국)을 빼면 국가가 관장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이란 게 그 나라의 보건의료의 기본틀이란 건 확실하다. 사생아라도 똑또칸 넘이면 잘 키워서 잘 써먹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잘키워서 잘 써먹는 과정이 녹록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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