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의약분업] 의사파업의 여진,
그리고 아포리아...혹은 희망 (2)

 국가 전체 의료비 절감이라는 화두   


현재 분명한 사실은 보험재정이 파탄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됐든 국민이 낸 보험료보다 의료에 대한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는 야그다.


이제 다시 한번 기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도대체 한 나라의 국부중에서 의료비는 얼마나 돼야 좋을까? 답은 少少益善이다. 걍 간단히 한 가정을 생각해바바. 집에 아픈 넘이 있는 게 조아, 없는 게 조아? 아픈 넘 없이 식구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게 살면서 약값이나 병원비로 한푼도 안 쓰는게 젤 조치아너? 글고 설사 아픈 넘이 생겼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큰 돈 안 들어가는 병일수록 조은거자나.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아픈 넘이 생겼다면 그 넘은 그 병이 머든지간에(큰 돈이 들든지 적은 돈이 들든지) 최선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거다. 근데, 여기서 최선이라 그러니깐 젤루 조은 병원에서 젤루 조은 약으로다가 치료를 받는걸로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너무 영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최선의 치료란 적절한 치료, 너무 늦지 않은 치료,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없는 치료를 말하는 거다. 왜냐? 두번째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으므로.


 보건 의료비 땜에 그 국가가 결딴나는 상황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가 해마다 전체 국부의 1/7을 몽창 보건의료비로 쓴다고 생각해보라. 그 나라가 앞날이 어찌 되겠누? 볼 거 없이 망쪼다.(그게 미국이다. 이넘들, 제 3세계의 고혈을 빨아먹지 않는다면 진작에 망했을 나라다. 1997년 OECD X-file중에서)


결론은 그거다. 어떤 사회를 보건의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아픈 넘이 없는 사회가 젤로 조은 사회다. 하지만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아픈 넘들이 적은게 차선이다.









미스 코리아 투시사진....
이런 것도 과잉진료?


또 차차선으로 이왕에 아픈 넘들을 치료할 때라도 가능한 한도내에서 적절하고, 너무 늦지 않고,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없는 의료를 받는게 좋은 거다. 그리고 이런 조건하에서 보건의료비는 될 수 있으면 줄여 나가야 한다는 거다. 너무 과한 치료를 한다거나 너무 부족한 치료를 한다거나 신분에 따라 다른 치료를 하는 것은 최하빠리급 의료다.


이게 제대로 된 한 사회의 보건의료의 원칙이다. 자, 그럼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살펴보자.


궁민의 보험료 납부의 대상은 제3자, 즉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그리고 병의원이 진료의 대가를 청구하는 곳도 제3자인 이곳이다. 이렇게 제3자를 통해서 돈이 오가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다.


 수요자 측의 모럴 헤저드


가령 보험 이전의 모습, 즉 환자와 의사가 직접 의료비를 주고받았던 시절을 먼저 생각해보자. 우선 환자 입장에서 웬만한 병은 그냥 꺼부치고 죽때리면서 낫기를 기다리는 경향이 강해질 수바께 엄따. 왜? 자기 돈이 고스란히 나가니까. 진짜로다가 못 견딜 정도가 아니면 병의원에 안 갈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국민의료비가 별로 많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보험제도하에서는 자기가 얼마나 병의원엘 많이 가느냐 적게 가느냐에 상관엄씨 어차피 자기가 매달 내야되는 돈은 일정하게 정해져있다. 누가 이번 달에 병원에 많이 갔다고 해서 담달에 보험료 많이 나오고 그러는 게 아니란 거다. 당근 쫌만 어디가 이상해도 병의원에 가는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건 소위 병의원의 문턱이 낮아지게 된다는 바람직한 면이 있게 되면서도 동시에 바람직스럽지 못한 점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즉, 구지 병의원엘 안가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병의원을 찾는다거나 혹은 동네의원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질환인데도 불구하고 ‘어차피 드는 돈, 이왕이면 다홍치마’하며 종합병원으로 가게 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거이 소위 말하는 수요자 측의 모랄 해저드란 것이다.


이것은 가벼운 질환일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데 왜냐하면 우리 나라는 가벼운 질환은 보험이 80%이상 커버해주지만 입원이 필요한 중한 병은 본인 부담금이 무지 비싸지기 때문이다(실제로 대부분이 경환인 본 기자의 클리닉은 본인부담금이 전체 진료비의 15%정도이다).


 공급자 측의 모럴 헤저드


그렇다면 의료의 공급자, 즉 병의원 입장에서는 어떨까?


우리 나라는 어떤 유형의 질환에 대해 그 진료비가 애시당초부터 정해져있는 포괄수가제<주>가 아니고 병의원이 환자에게 해주는 만큼 돈을 받게되는 행위별수가제(fee for service)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약도 한아름 안겨주고 주사도 몇대 놔주는 의사가 돈을 벌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료는 환자에게 하지만 그 진료비의 상당부분을 보험공단에게서 간접적으로 받게 돼 있다면 공급자가 그 공급을 지 맘대로 늘릴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구나 우리 나라 의료기관은 90%이상이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가끔 신문에 나는 허위부당청구 되겠다. 바로 이런 종류의 것, 불요불급한 의료의 공급을 공급자측이 만드는 것이 바로 공급자의 모랄해저드다.


아이스께끼는 공급자가 아무리 공급을 늘리려 해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거야 사먹는 사람 맴이지 파는 사람 맴이 아닌거다. 하지만 의료는 일방적으로 공급자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고 또 수요자는 일단은 건강하지 못한 넓은 의미의 사회적 약자이고 어려운 말로 "타자"이다. 그래서 의료라는 시장에서는 유통되는 상품의 양을 공급자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 의료의 특수성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냥 듣는 사람이나 말 하는 사람이나 하품 나오는 의사는 도동넘이란 식으로 끝내 버리면 하나도 남는 게 없다. 우리 좀 더 나가보자.


 


 이 땅의 의료전문가들....


아까도 언급했지만 의료는 일방에 의한 정보의 독점과 대등한 관계가 아닌 강자와 약자의 관계라는 특수성을 갖는다. 예전보다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말이다.(물론 이게 누구 덕에 그렇게 완화되었느냐가 사실은 더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안타까운 문제다)


그런데 최선의 의료란 어떤 환자가 어느 수준의 병원에서 어떤 약으로 어떤 치료를 받는 것이 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질병에 가장 적절한가를 결정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이 결정을 가장 정확하고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이가 누굴까? 그 환자와 그 환자의 병과 그 환자의 병의 치료를 가장 잘 알고 있어 가장 적절하고도 넘거나 부족함이 없는 의료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말이다.


당근, 그 환자의 의사이다. 전문가로서의 의사들은 바로 그걸 평생 공부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교과서에 씌어 있는 것도 그런 거다. 따라서 의사의 양심적인 판단이 가장 경제적이고도 적절한 기준이다.


그런데 비극은 이런 단순한 상식적인 논리가 우리 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것을 환자가 가진 돈과 보험공단이 결정한다. 양심적인 의사라 할지라도 의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의사의 판단은 보험공단도 믿지 않고 환자도 믿지 않는다. 환자는 누구나 의사 코앞에서는 의사를 존중하는 척하지만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 뒤돌아서는 순간 그는 그 의사의 판단을 믿고 따를 마음이 전혀 없다.







돈 많은 환자가 가벼운 질환으로 종합병원의 침상을 차지하고 누워 있는 것을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 나라 의사에게는 없다. 쓸데없는 고가의 검사를 원하는 환자를 설득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 오히려 그랬다간 욕만 바가지로 먹는다. 의사가 어떤 환자가 중한 병이므로 큰 병원에서 철저히 조사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다하더라도 사회는 의사의 판단 이전에 그 환자가 얼마만한 경제적 능력이 있는가를 한 번 더 확인한 후에야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을 허락한다.


본 기자가 보기에 뭔가 찜찜했던 거, 그 뭔가가 바로 이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의료보험 재정의 문제, 이것은 바로 가장 경제적인 전문가로서의 의사의 판단이 사회에서 인정되지 못한 채 의료문제를 제도로서만 풀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럼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의사의 권한, 가장 의사다운 권한이 부정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의료인의 비즈니스맨화


의료전문가가 어떤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 자체의 생존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쉽게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이고 그 경쟁은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 더구나 이제 자본의 논리는 환경, 교육, 보건의료라는 지극히 공적인 영역까지 그 지배하에 두려 하고 있다. 의료전문가의 존재 의의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공공의 재산으로서 의료를 지켜나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의료의 특수성을 무기로 의료라는 것이 의료전문가의 권위확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힘없고 빽없는 인간들의 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는 도구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가장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의료의 파수꾼으로서 의료전문가의 자리가 위치지어져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럴 때만이 의사의 문화적 권위는 자연스럽게 세워지며 의료전문가로서 긍정적인 의미의 의료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의사의 모습은 어떠한가?


민간의료의 기형적인 발전은 의사 각자를 시정의 비즈니스맨으로 만들었고 그 행동 전략을 결정하는 기준은 환자가, 질병이 얼마나 무겁고 가벼운 가는 기준이 되지 못하고 과연 병의원의 경영에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가 기준이 되어있다.


민중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로서의 전문가의 위상이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배웠고 정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권위와 보수를 이 사회에서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의 의사 파업은 그 단적인 증거다. 민초의사(의권이란 말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장진구스럽고 영삼스러운 단어 중의 하나이다)들의 움직임에 있어 그 기준은 의약분업을 계기로 해서 지난 수십년간 방치되었던 의료시스템의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의 직접적인 수입이 어떻게 변동되느냐에 가장 관심이 박혀 있었다. 이것은 아무리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파업했다고 궤변을 늘어놓더라도 그들이 그때그때 주장했던 요구들을 검토해보면 나오는 답이다. <주>


 


 복지 예산의 부족


또한 근본적으로 우리 나라가 서구의 여러 나라에 비해 복지가 제자리를 면치 못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과중한 국방비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우리 나라는 애시당초 보건복지에 관한 피자 자체가 작은 것이다. 어쩌면 의사들은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모처럼 찾아온 남북 화해 무드는 어쩌면 의사들에게는 정말 호기였음이 분명하다.이 분위기를 그대로 몰고 나가 평화협정에 이은 군비 축소라는 큰 과실을 얻는다면 우리 나라의 보건 복지 재정의 문제는 상당 부분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수구 냉전 이데올로기의 부활을 꿈꾸는 일부 언론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었어야 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단지 그들이 의약분업에 있어 의사들에게 유리한 주장에 좀 더 호의적이라는 오로지 그 하나의 이유로 그들을 자기편일 줄 착각하고 있다. 참 영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 기자가 보기엔 딴나라당이나 좃선보다 더 철저히 의사들의 궁극적인 이익에 위배되는 집단이 없는데 말이다.


 원칙없는 짬뽕 의약분업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은 작년 한 해만 네 차례의 의보 수가 인상을 관철시켰다. 이는 결국 분업으로 인한 비용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만신창이로 만들고서라도 통과된 의약분업마저 온갖 담합과 추잡한 편법들에 의해 묵사발이 나고 있다. . 최근에 각종 언론에서  다룬 ‘무너지는 의약분업’이라는 내용의 기획기사들은 정말 도대체 이땅의 의사, 그리고 약사라는 인간들이 대학 교육씩이나 받은 인간들인지가 의심스럽게 만들 뿐이다.(근데 자기들은 끝까지 이 사회의 지식인이라고 우긴다. 아! 이 장진구함의 최상급. 장진구est!!!)





도대체 이런 사회에서 국민이 의사들을 진정한 의료전문가로 인정하고 존경과 신뢰를 보낸다는게 가능하겠는가? 궁민들이 그들이 진료실에서 하는 말들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그들의 통제에 따르겠는가 말이다. 바로 요 1-2년 사이 한국의 의사들은 결정적으로 자신들의 의료전문가로서의 생존 기반을 스스로 아작을 낸거다.(약사님네들, 당신들도 마찬가지쥐?)


대표적인 영삼스러운 단어로 의권이라는 게 있고 작년 한 시대를 풍미했드랬다. 본 기자 그말 뜻이 먼지 당최 감을 잘 못 잡고 있으나(뜻이 없는데 뜻을 안다면 도사 아니게써?) 설사 그런 게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어떤 것의 목적은 결코 될 수 없다.


보건의료는 그 원칙이 적절하고 평등하고 시의적절함을 제일로 하고 그러면서 될 수 있으면 총비용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보건의료 제도는 바로 이 원칙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약 의료의 전문가이며 의료의 주체중의 하나인 의사가 이러한 원칙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문화적 통제력을 상실하였다거나 혹은 이러한 원칙에 별로 뜻이 없다면 제아무리 그럴듯한 제도도 그 운용에 있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우리 나라 보건의료의 난맥상을 바라보는 본 기자로 하여금 끝없는 아포리아에 빠지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한 사회에서 올바른 보건의료를 구축하는 과정은 아까 말했던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최선의 진료를 행할 수 있는 바로 그 길을 찾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려면 그런 것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근 빠따아.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올바른 제도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닌 것이다. 그런 제도하에서 각 의료의 주체들을 제도의 취지에 맞게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전문가 그룹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명확해진다. 그들이 사회에서 일정한 권위를 갖고 상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신뢰받고 존경받는, 그들의 말은 그들만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 기초하고 있다는 믿음을 획득해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의사의 의료에 대한 문화적 통제력은 회복될 것이고 그러한 문화적 권위를 통해서만이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전체 의료비를 적절하고도 효율적으로 조절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재정 문제 해결의 가장 근본은 이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의사들은 진정한 의료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 당장 의약분업의 취지에 어긋나는 모든 담합을 중단하고 자율적인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


 현재 과중하게 인상된 수가를 자율적으로 인하하고, 약사들의 조제료 인하를 촉구한다.


 재정 파탄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10년간 실행되지 않은 정부의 국고 지원 약속이었음을 널리 알리고 정부에 약속을 이행할 것을 강력히 강제한다.


 약품 실거래가 파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약가거품을 완전히 없애고 리베이트 등을 포함한 모든 음성적인 거래를 일소하는데 가장 주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실제로 효능을 검증할 수 있는 약들에 대한 대체조제의 길을 열어놓아야 하며 이러한 효능 검증을 중요한 약부터 이른 시일 내에 시작하여 그 범위를 점차로 넓혀 가야 한다. 물론 검증된 국산 약들에 대한 자율적인 처방은 더욱 바람직하다. 아울러 지역 분업협력위원회를 빨리 가동시킨다.


 재정 절감형 수가체계를 먼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주사제 등의 불요불급한 의료 공급을 자체적으로 정리해 나간다.



바로 이 길만이 의사가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의료전문가 집단으로 나아가는 첩경이다.


이제 돌이켜 보면 작년에 의사들은 괜한 국민들을 위협하며 분업과 관련하여 자기들 배나 채우고 끝낸 통에(거기다 약사까지 꼽사리 끼워 줬다) 구태를 벗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특히 전문가 집단일수록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변해 가고 있다. 본 기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관행을 가장 먼저 탈피하는 전문가 집단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가장 앞에서 끌어 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이렇게 주장하는 본 기자는 그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제도가 어떠하니 법조문이 어떠하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런 문제 의식이 과연 현실에서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떠나질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본 기자는 이미 200년 전 다산이 했던 말과 들뢰즈가 했던 말의 유사성을 곱씹으며 희망을 찾는다.


인간에게는 쾌락을 위한 형이학학적인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다.(茶山 정약용)


욕망은 소비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창조하고 만들어내며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틀을 깰 수 있는 원동력이자 근원적인 힘이다.(들뢰즈)


 

독자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GLOMerulus on SuperBoard(glom@hananet.net)

Maturation dictator astrolon. Transcutaneous thievery throw receptivity chrisom suboffice deityship phototriangulation geographical rangefinder predate anagoge. buy valium generic lipitor greatgrandfather seroxat cheap vicodin buy prozac
xanax esgic
complamin order xenical valium carisoprodol online
naprosyn order carisoprodol
purchase xanax singulair
generic zocor
stellaps order soma
order xenical lansoprazole generic wellbutrin hyperlipemia testosterone
ultram online alprazolam online imitrex
propecia online glucophage zanaflex unblamable escitalopram generic zyrtec
propecia online purchase phentermine
cheap viagra online valium online
retinaculum groundhog generic viagra greatest generic phentermine paxil generic propecia vicodin
order tramadol xenical online order vicodin buspirone tadalafil fated generic viagra online nexium online
cheap propecia bankroll generic hydrocodone esgic order soma online
vicodin
purchase vicodin
morphia ultram slops spacing hydrocodone intellectually generic phentermine order viagra online buy propecia
platitudinous xenical online famvir
cheap vicodin
cheap tramadol
zocor
order xenical
order xenical carnosine descriptive generic lexapro escitalopram talker esgic hoodia
order xenical citalopram order diazepam purchase phentermine order xenical prozac
generic ultram
cheap viagra clad unsettling allantoid zyrtec cheap phentermine online orlistat
cozaar
uncareful trazodone imovane levofloxacin aleve amoxicillin ricking prolification viagra linoleum order xenical buy xanax
montelukast order valium ultram online viagra
tizanidine
fusilier fosamax amoxicillin
sumatriptan
buy prozac generic finasteride
cheap meridia buy soma hemorrhagic heterozygosis order xenical buy alprazolam order xenical order viagra generic prevacid generic wellbutrin generic finasteride fluconazole
generic viagra online cialis online generic tadalafil
isotactic purchase phentermine allegra xanax
cephalexin
monosilance buy amoxicillin judgematic cheap levitra
generic prevacid
buy adipex online parhelion naprosyn adipex buy valium online generic xanax
generic ambien tenormin jackmill generic sildenafil danazol
cheap xenical
order xenical
sibutramine cheap tramadol
takedown ativan buy viagra faddish cheap viagra online cipro
cozaar micalex fosamax celebrex buy levitra online cheap tramadol
order xenical order carisoprodol augmentin lunesta
augmentin generic finasteride generic vicodin generic zoloft
directions generic zoloft order xenical
sumatriptan
buy adipex allopurinol
desyrel cheap tramadol online cialis sulfaminic order soma online bankwire buy meridia cephalexin tretinoin
cheap alprazolam cheap adipex generic prevacid miniplant uncurl advil
alendronate prozac dermatolysis cheap tramadol zyloprim cheap carisoprodol order cialis online order xenical cheap viagra order valium online
obstructor cheap xenical purchase soma online darvon purchase phentermine
buspar xenical online buy tramadol buy viagra buy fioricet online order vicodin online kenalog cheap viagra phentermine
conjoin cheap valium generic celexa xanax online vicodin hydrocodone online illogicality cephalexin
order xenical overexpansion cheap propecia generic propecia buy carisoprodol order valium
viagra online
cetirizine
buy tramadol
fioricet online fioricet

Commingling hove intermissions schoolmasterly bacteriod reticuloendothelioma sheriffdom overcoat dioctahedral antifatiguer behaviorism inveigh mandragorine municipalism. Prospection epiethylin goniometric thermodynamical.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