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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민족일보를 알려주마

2001.2.26.월요일
딴지 수뇌부

  이야기
 

 

언론 얘기를 좀 해 보자.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시라. 아직 기억에 생생한 90년대를 지나, 격동의 80년대를 지나, 암울한 70년대를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 보시라. 4.19 혁명과 5.16 쿠데타의 시기까지.

 

기억이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지 않는다고? 그땐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흐흐, 그럼 다행이고. 암튼 걍 한번 조용히 들어보기 바란다.






 
 

 

소장님.. 몇명이게요?

 

5.16 쿠데타, 일부 군인들이 대한민국을 통째로 먹은 사건이다. 대개 이런 일이 있으면 혼란의 와중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속출하는 법. 총칼로 한 나라를 통째로 접수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희생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럼 문제. 5.16 쿠데타로 죽은 사람은 모두 몇 명이게?

 

정답은… 억울해서 자살하거나 홧병으로 죽은 사람 빼고, 나중에 유신독재 때 죽거나 의문사 당하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사람들 빼고, 공식적으로 혁명정부에 의해서 죽은 사람은 5명이다(생각보다 적다). 쿠데타 과정에서의 사망자는 없었고, 이 5명 모두 혁명재판소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고 61년 12월 21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최인규, 곽영주, 임화수, 최백근 그리고 조용수였다.

 

최인규는 자유당 말기 내무장관으로 부정선거와 김주열 등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총지휘자였다. 3.15 부정선거는 얼마나 무지막지했는지 이기붕의 지지표가 전체 유권자 수를 넘는 바람에 부랴부랴 득표수를 하향조정할 정도였다. 이에 대한 항의로 데모가 일어나자 칼빈과  M1은 물론이고 기관단총까지 갈겨서 시민을 죽여버린 것이다.

 

곽영주는 이승만의 경호실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4.19 혁명 당시 발포책임자로 규명되어 사형당하였다. 임화수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정재와 쌍벽을 이룬 정치깡패. 이 세 사람은 당시 혁명재판소가 국민의 신임을 얻기 위해 사형을 집행한 경우였다. 존두환의 삼청교육대 하고 비슷한 경우라 하겠다.

 

나머지 두 사람, 최백근조용수사상범이었다. 최백근은 장면정부 시절 합법 정당이었던 사회당 당수로 활동했던 정당인이고, 조용수는 민족일보 발행인, 그러니까 언론인이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일파는 미국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공산주의를 혐오한다는 증거로써 사상범 두 명을 사형시킨 것이었다.

 

그럼 또 문제. 대한민국 50여년 역사에서 용공언론이라고 사형당한 사람은 모두 몇 명이게?

 

정답. 딱 한 명이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수많은 필화사건과 언론탄압이 있었지만 사형당한 언론 발행인은 그가 유일했다. 존두환이 언론사 통폐합이니 해직이니 검열이니 갖은 쥐랄을 하고 벼라별 탄압을 다 했지만 그것 때문에 적어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었다. 도대체 조용수는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32살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빼앗겨야만 했을까? 민족일보 라는 신문이 북괴의 선전지로 사회전복이라도 기도했었나?

 

 

 

 민족일보
 

 

최근에 다시 민족일보 문제로 정치계가 잠시 시끌시끌했다. 그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르르 망각의 저편으로 잊혀져가고 있다. 늘 그렇듯이....

 

먹고 사느라 도대체 신문 방송을 볼 시간이 없는 행복한 인생이 혹, 본 기사를 보고 있다면 잠시 그 행복을 접으시라. 본 우원이 암울한 대한민국 정치계의 구렁텅이로 그대를 잠깐만 끌고 들어가도록 하겠다. 최근 논란의 핵심은 이런 거다.

 

얼마 전 이헤창 총재가 국회 연설에서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현 정권의 좃중동 등 언론사 세무사찰이라는 유례없는 언론탄압에 맞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현정권 아래서 극에 달하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다, 압박받는 언론이 있다면 항상 싸울 것이다, 라며 졸라 멋있는 말씀을 비장하게 천명하셨다.

 

 

너거덜언 내가 지킨다

 

그런데 문제는 61년 당시 조용수를 사형시킨 그 재판에 이헤창이 판사로 끼어 있었다는 거다(이 문제는 97년 대선에서 제기되었으나 쟁점화되진 않았다). 그니까 조용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부에 새끼 판사로 이헤창이 있었다는 거다. 아무리 그때가 군사 쿠데타 직후의 특별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이헤창이 그때의 자기 과오를 뉘우친 적도 없는데, 언론 자유 수호 운운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민족일보와 조용수 사형을 거론하며 이헤창을 씹은 의원이 자민련 의원이라는 거다. 씨바 지금 장난치나?  조용수를 누가 죽였는데, 5.16 본당 자민련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런데 그거 말고 또 문제가 있다. 그 발언을 한 송석찬 의원은 얼마전 의원 꿔주기로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한 케이스라는 거다. 평소 송석찬은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인데 하필 자민련에 입당하고는, 민족일보를 거론하면서 이헤창 물러나라고 목청을 높인 것이다. 자기가 꿔 준 의원 신세라는 걸 잠시 잊었나? 아니면 혹시 내부 교란 목적으로 김데중이 보낸 첩자였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민족일보는 장면정부의 반통일정책, 반공특별법 등에 대해 가장 선봉에 서서 비판한 신문이었다. 그에 맞서 정부를 앞장서서 변호하던 집권당 대변인이 바로 김데중이었다. 그런데 반공특별법을 옹호하던 김데중은 이후 정반대로 남북교류 평화통일론을 지론으로 삼게 된다.

 

안심하지 마시라. 또 있다. 장면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당시 신민당의 떠오르는 별 기명삼이 있었다. 신민당 보수파의 선봉이던 기명삼은 대통령 취임 직후 느닷없이 더도 없는 민족주의자로 변하더니, 다시 180도 바뀌어 흡수통일론자가 되어 버렸다.

 

씨바 이거 넘 복잡하지 않은가? 대체 왔다갔다 하는 인간들이 왜 이리 많은 건데?

 

그럼 민족일보가 뭔 신문이기에 4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논란거리가 되는지, 아니 대체 뭘 그리 심각한 반국가행위를 했길래 사장이 사형까지 당해야 했는지 함 보도록 하겠다. 어려운 얘기 없으니 쫄지 말고 다음 페이지로 따라 오시라.

 

 담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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