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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군대내 성폭력을 말한다

2001 2. 26.월요일

한국성폭력상담소 김영정
 




 
 

이중위 사건으로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폭력이 행해진 곳이 군대이니까 군대를 타겟으로 하여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이란 범죄가 군대에서조차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짚어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이중위 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 성폭력 방지에 대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한국 성폭력 상담소>에 근무하는 김영정씨의 기고글을 싣기로 하였다.      -편집자 주

 

 

 

  사단장의 여군성추행 사건과 편지 한 통

 

 

 

 

 

지난 1월 8일 육군은 현직 사단장이 부하 여군장교를 성추행한 혐의로 보직해임되었다고 발표했고, 17일 문제의 김모 소장은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여기까지가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까지 사람들은 군대 내에서 일어난 하나의 성추행 사건이 신속한 징계처리로 일단락되었다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전후에 있었던 일들이 상세하게 알려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그 심각성에 대해 많은 우려를 자아내게 되었다.

 

 

피해자인 이중위의 어머니가 발표한 장문의 편지에는 이중위가 어떻게 김소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으며, 사건이 군내에 알려진 뒤에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99년 가을부터 이중위에 대한 김소장의 성추행이 시작되었다. 회식자리에서 술잔을 따르게 하면서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지고 공관으로 불러들여 입맞춤을 하는 등의 성추행이 수차례 이어졌다. 심리적 고통을 당하던 이중위는 군단 검찰부에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밤늦게 테니스장에서 김소장과 대질하는 등 상식적으로 성폭력 사건 해결의 과정이라고 볼 수 없는 태도에 위협을 느껴 결국 고소를 취하했다.

 

 

그 후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나기까지 김소장은 이중위와 부모님을 회유하기 위한 제스츄어를 취했다. 결국 징계위원회로부터는 정직3개월이라는 징계가 결정되었다. 파렴치한 죄에 비해 예상보다 가벼운 징계를 받은 것에 놀란 이중위와 가족에게 더욱 더 고통을 주었던 것은, 오히려 피해자인 이중위를 모함하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건을 겪으면서 이중위가 겪은 고통을 보여주는 글이 어머니의 편지 속에 담겨 있었다.

 

 

 

 

 

 

"하루 하루 밥먹고 자는 것도 버거워 하고 사람들, 남군은 물론 여군조차도 만나기를 두려워 합니다. 제 딸은 지금도 사단장의 복수가 두렵고 사람들의 냉대와 침묵을 무서워하며 자신을 몹쓸 여자로 몰아가는 사단장과 군이 싫어 몸서리를 칩니다. 무덤이라도 있으면 하고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또다른 이중위는 없었는가?

 

 

 

직장내 성희롱을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이 마련되면서 직장내에 만연하던 성폭력문제에 대한 경각심도 생기고 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들도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군대내의 성폭력에 대해서는 그동안 사회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군대내에 혹 또다른 이중위와 김소장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성폭력문제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홈페이지에 "군대내 성폭력을 말한다" 라는 게시판을 마련하였다. 지금까지 약 1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이 게시판에는 현역, 예비역 여군들의 성토가 나왔고 이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주장과 격려가 이어졌다.

 

 

 

 

 

 

그런데 곧이어 처장이 두 팔을 벌려 아주 자연스럽게 저와 제 옆에 앉아있던 가족의 어깨로 올리더라구요. 순간 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버렸죠. 식당 현관문을 나설때까지. 식당 출입문을 나오면서 뒤를 돌아봤더니 처장은 제옆에 앉아있던 과장 부인을 붙들고 부르스를 추고 있더라구요. (글쓴이:현역대위)

 

그러나 그 분은 그 자리에 참석한 저와 저의 선배에게 애정어린 술잔을 주시며 격려해주신 것 까지는 좋은데 차 한잔을 마시는 자리에서 저와 선배를 양 팔에 안고 볼을 부비며 제 티셔츠 사이에 10만원짜리 수표를 넣어 주시더군요... (글쓴이:현역1)

 

남여가 평등한 듯이 보이는 계급사회인 군에서도 언제나 보이지 않게 제가 여성이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성희롱에 가까운 말장난과 행동에 상처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씩씩하게 답변도 하고 항의도 하지만 동료들과 생기는 간극과 거리감은 언제나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제 정체성을 흔들어 댑니다. (글쓴이:현역중위)

 

무작정 지나가던 하사를 개인 사무실로 데리고가 문을 잠그고 불을 끄며 여군 하사를 껴안았던 주임원사, 회식시 술취함을 위장해 부하의 젖가슴을 어루만졌던 장군, 부르스를 추자며 엉덩이며 허리등을 마음껏 주무르던 장군, 이런 사람들이 내가 알고 접했던 나의 상관 및 인접동료들이였다. 하물며 돈까지 쥐어주며 당당하게 자행했던 파렴치한 지휘관 및 참모들, 들춰지지않은 많은 일련의 성희롱 사건들이 지금도 가까운 우리 군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말하지 못한채 고통속에서 비밀로만 간직된 수많은 사건들이 여군들의 가슴속에 묻혀있을 것이다. (글쓴이:예비역)

 

 

 

 

 

이런 사례들이 있었음에도 여군들이 쉽게 항의하거나 공론화시키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얘기하고 싶고 밝혀서 사실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가족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또는 스스로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사회생활과 군생활이 끝날것을 우려해 그냥 묻어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쓴이:예비역)

 

군이라는 조직이 특히 계급이 가지는 존엄성이 초임간부에게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다소 비 합리적인 명령이 있어도 얼마나 거부하기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글쓴이:어떤여군00)

 

이번 이중위 사건은 우리 군대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의사소통구조의 부재,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일천한 의식, 권위주의적 문화를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된다. (글쓴이:현역)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곳. 철저하게 노출된 상태에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누군가 감시하고 있는 듯한 착각...그럼 누군가는 또 그러겠지요. 왜 군계통을 통해 신고하지 않느냐고.. 한때 해본적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러나 가해자보다 피해자인 제가 더욱 많이 불려다니고, 전화를 받고, 심지어 제보자가 누구냐고까지 하더군요.(그때 사실 전 용기가 없어 신고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했지요) 그들에겐 제가 힘들어하고 아파한 사실보다는 제보자를 찾아내어 그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었나 봅니다. (글쓴이:바다)

 

 

 

 

 

군대내에서 일어난 일을 군대 안에서가 아니라 여성단체가 마련한 사이트에 몰래 접속해서 밝혀야 하는 여군들의 상황을 알려주는 이야기들이다. 문제가 외부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탓에 이들 여군들은 더욱 더 고립된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성폭력, 사회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문제.
        어디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문제

 

 

 

김소장 사건으로 인해 군대내 성폭력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이제 더 이상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미룰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형식적인 예방교육이나 처리기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효율성있는 제도 마련이다. 여군도 역시 인권을 존중받아야 하는 "여성"이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여성의 인권을 지키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당하게 신고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군대내에서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성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문화 자체를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성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차별과 폭력성이 낳은 결과가 어쩌면 이렇게 도처에서 수없이 나타나고 있는지 절망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사회 어느 곳에서나 성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과 동시에 어디서도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확신 역시 널리 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군대도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성폭력의 치외법권이 아니다!

 

 

 

 

 

 

"상하위계질서가 중시되고 명령복종관계가 명확한 군 조직내에서 비록 성희롱이 발생하더라도 피해자가 군인신분으로서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용감하게 이 사실을 드러내고 고소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이중위의 용기있는 행동은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인 이중위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됩니다. 성폭력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구조화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입니다. 따라서 성폭력은 특정 유형의 여성들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여성의 공동 문제이며 이의 해결도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묻혀있던 군내 여성들의 성희롱 문제를 드러내고 다른 피해자들의 사례를 모아 전체 여군들의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을 갖도록 해야합니다."   -<여군들의 입장> (군대 내 성폭력을 말한다 게시판에서)

 

 

 

 

 

 

 

 한국 성폭력 상담소
김영정(
feminfo@thru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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