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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발굴] 영화판의 성자님께...

2001.2.3.토요일
딴진공 성자 발굴팀장



님이시여! 오늘은 님께 편지 한 장 보내려합니다. 펜을 잡은 손이 부들거리는 감격을 안고 저의 존경을 바치는 편지를 한 장, 님께 보내려 합니다.


제가 님을 만난 건 화장지없는 화장실에서 뒷처리를 고민하는 어린 양이 우연히 발견한 좃선찌라시 쪼가리같은 행운이자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님이시여! 당신은 제게 성자요, 광명이요, 축복이었습니다.


갈수록 살기 각박해지고, 자기의 몫만 챙기려하는 살벌한 세상의 한 복판에서 영화평론가라는 삐까뻔쩍한 직함을 마빡에 부착하시고도, 결코 자만하거나 도도해하지 않고 끊임없이 낮은 데로 임하시는 님의 사랑과 관용과 자비의 영화 글쓰기는 그대로 저에게는 감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님이시여! 타락하고 세속에 찌든 미천한 저의 편지 또한 사랑으로 만져주시길 기대하며, 님이 실천하시는 자애로운 사랑을 찬양하는 점 역시 너른 아량으로 보듬어주시길 바라옵니다.


님의 사랑을 떠올리자마자 벌써 목이 메이고, 눈물이 뺨을 적시고, 콧물이 폭포를 탑니다.


그럼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님의 사랑이 주로 발현되는 곳은 현재 님이 고정 칼럼을 쓰고 있는, 좃선이라는 재래식 언론의 온라인 지면입니다. 비록, 님의 사랑이 재래식 꼴통언론에 연재된다지만 그것이 님의 사랑의 색을 바래게 하지는 않더군요.


그곳에서 님은 수많은 영화의 똥꼬를 닦아주고, 핣아주고, 빨아주시며 남들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언제나 묵묵히 해오셨습니다.


아.. 님이시여!


우선, 님은 그 지면에서 <해변으로 가다>에 대해 이렇게 복음하셨습니다.








복음 제 1 장
<해변으로 가다> 편


"...산나물을 캐듯 여러 종류의 영화에서 주요 장면을 인용하는 방식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조리사로서, 김인수 감독은 자신만의 비법을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어디서 본 듯 하지만 새맛이 난다..."


속세의 많은 범인은 이 영화를 작년 여름 시즌 개봉한 쒯덩어리 공포영화 트로이카 중 하나로 뽑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어디서 한 번씩 본듯한 장면들의 파노라마가 이 영화의 쒯스러움에 가장 큰 공헌을 했었다고들 주디를 모았더랬습니다. 참신함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겠지요.








  


바로 이 영화였지요.
<대변으로 가다>


그래서 많은 미천한 어린 양들은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똥밟았다~"


하지만 님은 역시 성자 이셨습니다. 어디서 절라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의 파노라마에 대해서도, 님께서는 새맛이 난다 하십니다. 남들은 참신함 없는 표절이니 모방이니 해도 님께서는 새맛이 나는 참신함이라 하십니다.


아, 저는 이와 같은 님의 밑도 끝도 없는 사랑의 글쓰기에 눈멀고 귀먹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다 박대하는 영화에까지 손을 뻗치어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님의 사랑의 여정에 감동의 봇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님의 사랑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대개의 재래식 평론가들은 이런 경우, 자기 주장의 까닭을 밝혀줍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건 안되는 소리건 여튼 그 뒤에 뭔가 코멘트를 해주더군요. 하지만 님은 이 영화를 "새맛이 나는 영화"라고 복음하시고는 그 이유를 말씀해주시 않습니다. 그냥 듣기 좋은 말로 꽃단장시키고는 그 구체적인 이유를 코멘트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천한 어린 양들은 님이 행하시는 사랑의 글쓰기를 비웃고 깔보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요. 그 사랑의 여백과 여운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사랑에 이유가 있습니까? 마누라를 사랑하는 이유, 부모를 사랑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들을 사랑합니까? 그렇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아무런 까닭과 이유와 기대없이 그저 마음이 쏠리고 좋아지는 것.


항상 영화에 대해 대책없는 칭찬을 하시고는 절대 그 이유를 속 시원히 밝히지 않으시는 님은 바로 이와 같은 진정한 사랑으로 영화를 빨아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님은 그래서 저에게는 사랑의 전도사요, 관용의 복음서이시며, 자비의 결정체이십니다. 한 달에 거금 천원씩 꼬박 꼬박 불우 이웃을 도왔다는 물태우 전통이라 하더라도 이와같은 님의 사랑과 관용과 자비를 좇지는 못할 것입니다.


작년 소돔의 환란으로 세상을 이끌었던 <리베라메>에 대해 님은 또 이렇게 복음하십니다.








복음 제 2 장
<리메라메> 편 중 3절


"....포장과 내용물이 일치하는 보기드문 블럭버스터다. 영화는 매우 짜임새가 있다. 볼거리와 감동, 긴장감의 배치가 치밀하다...."


이 영화 때문에 악령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진 자들, 지옥불을 맛보았던 자들, 요단강 저너머로 빠이빠이 할 뻔 했던 자들 부지기수였건만 님의 하해와도 같은 사랑은 여전히 복지무동, 만민평등하게 이 영화의 똥꼬를 더러운 줄도 모르고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보태셨습니다.








구라복음 제 2 장
<리메라메> 편 중 7절


"...코믹 이미지가 굳어질 즈음 박상면의 영웅적인 변신은 그 자체가 신선하다. 인명구조를 마친 그가 장렬하게 산화하는 대목은...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아, 님! 보통의 비위가 아니라면 어찌 그 장면을 이처럼 애무할 수 있겠습니까. 거즘 모든 이들이 치사량에 이를 정도의 민망함으로 인해 고개를 떨궈야만 했던 박상면의 장렬한 배달의 기수적 산화장면을 어찌 이처럼 빨아줄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장렬했단 말인가?


님의 이와 같은 사랑의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의 심금이 울기보다는 제 심금이 분수처럼 눈물을 쏟으며 울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리고, <불후의 명작>! 이 영화에 대한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도 님은 언제나와같이 한결같으셨습니다.








복음 제 3 장
<불후의 명작> 편 중 1절


"심광진 감독의 데뷔작 <불후의 명작>을 보고,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터뜨리고 말았다. 모두가 빠져나가고 없는 시시실 한 켠에서..."


참으로 눈물도 많으신 님. 여튼 이걸로 님은 지면의 두 줄을 후딱 채우셨습니다. 그리고는 영화하고 별 상관없는 영화의 카피, 박중훈 생김새,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한국인 이야기로 지면의 반을 또 채우셨습니다. 그리고는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보태십니다.








복음 제 3 장
<불후의 명작> 편 중 14절


"<불후의 명작>은 한국인의 깊고 그윽한 정서와 심성을 기막히게 잘 포착한 영화다.... 자칫 진부해 질 수 있는 영화가 품격있는 영화로 태어났다."


평론가의 글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는, 무의미의 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지면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님은 이처럼 다시 사랑을 통해 좃도 아닌 영화를 품격있는 영화로 둔갑시키십니다. 마치 죄지은 어린 양을 선도하는 목자와 같이..


또한, 님께선 이 지루찬란하고도 진부찬란한 영화에서 타락한 범인들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한국적인 정서와 심성을 사랑의 눈으로 발견해내고야 마셨습니다. 흡사 사랑의 화신과 같으신 님..


님의 사랑은,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님은 <미인>에 대해서도 이렇게 복음하셨습니다.








복음 제 4 장
<미인> 편


"<미인>은 한국영화와 유럽영화와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한국적인 정서와 유럽풍의 만남이 아주 매혹적이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 중에서 대사 좀 적고, 호흡 좀 길고, 내용이 좀 알쏭달쏭하면 유럽 풍이 되는 것이며, 그래서 <미인>은 높은 수준이라는 님의 이 복음은 가히 How to 애무, 최종 완결편을 보여주시는 듯 합니다.


역시 그러한 말씀의 논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저없이 한 방에 애무해 주시는 님의 현란한 테크닉은 비로소 세치 혀란 어떤 것인지 그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아, 저도 님의 이런 애무의 손길에 한 번 닿아봤으면.. 님의 손끝만 생각해도 벌써 오르가자미가 마구마구 밀려옵니다.


또한, 님은 <청춘>에 대해서도 이렇게 복음하셨습니다.








복음 제 5 장
<청춘> 편


"...<청춘>은 무려 네명의 여배우가 순차적으로 벗었다. 그러나 오해할 필요는 없다. 이 영화만큼 개연성이 타당하고, 정서적인 카타르시스와 설득력을 갖춘 영화도 드물다..."


죄지은 자들은 이 영화에 나오는 빠굴이 별 개연성없는 벗기기 경쟁 같아 보였습니다. 아, 죄인을 용서하소서.. 물론, 화면이 꽤나 아름답긴 했지만, 그토록 만나기 "드물다"는 개연성이나 설득력은 어느 구석에 짱박혔는지 죄인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과감하게도 님은 기냥 "개연성이 타당하고" "설득력을 갖"췄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언제나처럼 아무런 근거제시도 없이.


이런 님의 모습을 뵙고있노라면 참다운 용기란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도대체 세상 그 누구가 만인이 보는 지면에서 이같은 주장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 낼 수 있단 말입니까? 미천한 속세의 인간들은 오금이 저리고, 집에 가다 칼맞을까봐 걱정돼 감히 그런 구라를 칠 수 없습니다.









복음하시는 님의 자애로운 모습


아, 님의 앞뒤 똥된장 안가리는 사랑을 완성해주는 저 용기. 이 역시 감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은 곧바로 영화를 만드는 스탭에 대한 사랑으로 옮아갑니다. 님은 여러 글에서 이렇게 복음하셨습니다.








여러 복음 중에서 발췌


<리베라 메>
"베테랑 카메라맨 서정민과 영화 음악의 신동 이동준은 양윤호 감독에게 완성도 높은 예술적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불과 인간의 동적 움직임이 서정민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면, 초록물고기의 이동준이 만든 음악은 영화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물고기 자리>
"황서식의 촬영은 <섬>에서보다 더욱 섬세하고 긴장감이 보태졌고, 영상이 아름답다."


<미인>
"몸짓의 언어가 돋보이는 <미인>은 촬영(이재호), 음악(노영심), 연기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불후의 명작>
"깊은 시선, 심플한 화면, 애절한 그리움의 영화 <불후의 명작>은 연출(심광진), 촬영(김재호), 음악(전상윤)의 호흡이 일품이다."


회개하지 못하는 죄많은 자들은 님의 이런 사랑의 지루박을, 지면을 채우기 위한 성명 나열법이라고들 비난합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이유없이 스탭들의 이름 앞뒤에 각종 미사여구를 황홀토록 장식하고 나열하는 것은, 한글만 깨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것이 어떻게 영화평이 될 수 있느냐는 천벌받을 비난을 일삼습니다. 아, 죄많은 자들이여..


하지만 님이시여. 저는 알고 있습니다. 거리에 떨어진 담배꽁초 줍기, 가로수 돌보기, 교통신호 지키기 같은 일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님의 글쓰기는 이처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행하시는 말없는 실천궁행,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로지 님의 가없는 사랑의 엑기스만이 가능한 일. 범속한 죄인들은 아무도 님의 진의를 깨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님의 사랑의 여정 중 최고는 뭐니 뭐니해도 바로 <비천무>에 대한 복음에서 가장 찬연히 빛납니다. 모든 죄인들이 씹어제끼기에 여념이 없었던 이 영화에 대한 님의 복음을 들으면 감히 어림 짐작할 수도 없는 님의 사랑의 용량에 거의 공포감마저 들기까지 합니다.








복음 중 그 백미라 일컬어지고 있는
복음 제 10 장
<비천무> 편


어차피 붕붕 날아다니는 홍콩무협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한국무협영화에 대한 다른 욕구를 갖기 마련이다. 그것은 한국적인 정서와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드라마의 문제다.


`비천무에는 무협영화가 갖추어야할 드라마가 모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중략>...운명의 줄타기를 하며 교묘하게 직조된 비극적인 드라마는 원작의 엄청난 힘이다....<중략>.... 하지만 숨차게 몰아치는 후반부에 이은 라스트는 관객들로 하여금 울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신현준과 김희선의 비장한 죽음으로 마감되는 라스트신은 보는 이의 눈물샘을 강렬하게 자극한다...<중략>...


`비천무는 2000년대 한국영화의 야망을 담은 소중한 첫 삽이다. 나는 오랜동안 이런 영화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결과 만족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복음은 전에 님께서 스포찌라시에 친히 썰푼 복음 중 하나입니다. 저는 님의 이 복음을 읽고 님에 대한 상사병이 도져 3일 밤낮을 앓아 눕고 말았습니다.


그 악명이 천년을 잇고, 그 쒯스러움이 만년에 고고할 <비천무> 마저도 이처럼 사랑으로 쓰다듬어 주시는 님의 사랑은 모든 영화에 대한 만민평등 무사안일 정신의 발현체이며, 펜대 굴려 돈 벌어먹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향해야할 득도의 이데아임이 틀림없습니다.








오.. 님! 저를 그렇게도 기나리셨나이까?


미천하고 모자란 저희는 그래서, 그저 함구무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님이 사랑으로 전하신 수많은 복음들을, 어찌 일일이 이 죄많은 입으로 설명할 수 있으오리까!








그 외 기타 복음 중에서 발췌


"최근 한국 영화계의 부익부,빈익빈의 양분이 심화되는 가운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영화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라고 <자카르타>에 대한 복음과,








그 외 기타 복음 중에서 발췌


"현시욕과 욕망의 질서 속에서 꿈꾸기를 포기해 버린 현대인에게 꿈과 사색의 창을 열어주는 이현승 감독의 수작"


....이라고 사발돌리신 <시월애>에 대한 복음 등, 외국 영화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눈물이 강을 이뤄 앞을 가리는 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님의 노심초사 사랑의 한길에도 속죄하지 못하는 사악한 자들이 끊임없는 질시와 헐뜯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앞서서 말씀올린 바대로 님이 설파하시는 복음의 진의를 그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또 다른 이유로도 세상 모든 쒯덩어리들을 몸소 끌어안는 사랑의 화신인 님을 비방합니다.


님이 현재 글을 연재하시는 코너는 프리뷰라는 그 이름처럼 개봉 전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로써, 정확한 정보로 관객이 영화 선택을 하는데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줄 알고 있습니다. 허나 님은 주체할 수 없는 사랑으로 모든 영화를 품어 안기만 하시니, 님의 사랑충만한 칼럼에 인도되어 하염없이 극장을 향한 관객들은 지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흉흉한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치옵니다.


하지만 파리가 꼬이는 곳에는 항상 똥이 있는 법. 님의 사랑의 글들을 그냥 똥이라고 여기시고,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초지일관 하여 주십시오. 세속의 죄인들이 쌩돈 다 날리고 회개할 그 날까지 말이옵니다.


다만 미천한 제가 한 가지 부탁드리고자 하는 바는 그저, 님이 지면에다 사용하시는 영화평론가라는 직함을 모든 영화사랑 진리교 교주로만 개칭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님께서 영화를 사랑으로 애무하시고, 쒯덩어리들과 사랑의 지루박 땡기시고, 몸소 똥꼬를 핥아주시더라도 님의 영화평론가라는 직함에 속아 쌩돈 날리는 관객은 없을 거 아닙니까?


물론, 아예 펜을 접고 그저 홀로 그 드넓은 사랑을 완성하여 주셨으면 그 은혜가 한량 없겠으나, 그건 미천한 죄인인 제가 바라기엔 너무나 커다란 소원같습니다.


불초한 글, 이만 줄입니다.


아무쪼록 그 사랑 영원히 간직하시길 빕니다. 니 혼자서요.


그럼 님의 사랑의 여정에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영화판의 진정한 성자,


양 윤 모 님.



 









오.. 사랑의 아우라가 넘치는 님의 모습



[덧붙여서]
님의 사랑의 복음은
여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님의 복음을 통해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으신 분덜은 필히 손수건 두 구루마 정도 준비하고, 사랑에 삶아져 감동먹을 맘의 준비를 만땅 한 후 가시길 당부드립니다. 




 딴지 영진공
성자 발굴팀장


철구


(chulgoo@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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