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7.24.월요일 딴지 르포르따쥐 이상엽 |
작년 말 인도네시아 정국은 극도의 혼란기를 맞았고, 동티모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다. 인도네시아군과 그의 사주를 받은 친인도네시아 민병대의 만행은 가공할 것이었다. 수많은 민가와 건물들이 불에 타 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원한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그 와중에서 많은 아이들이 집과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본기자가 방문한 살레지오 수녀원의 어린이 행사장에는 그런 아이들로 가득했다. 불타버린 관공서 건물 마당에 모여든 약 200여명의 아이들은, 허름한 옷차림에 대부분 나이 보다 작은 키였고, 가끔 한국에서 구호물품으로 보낸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수녀원에서 준비한 4인조 밴드의 반주에 맞춰 한 아이가 보니M의 바빌론 강가에서를 구슬프게 부른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 외국 노래를 즐겨 듣고 불러왔는데 요즘 아이들은 자유의 상징인 밥말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종일 거리에서 지낼 뿐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냥 방치되고 있었다. 수녀원은 이런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벗이었다. 딜리 외곽에 생긴 띠바르 쓰레기 하치장은 동티모르 아이들의 현재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산으로 둘러 쌓인 5천여 평의 부지에 조성된 쓰레기장은 입구에서부터 부패하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입구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고,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부러 차에서 내려 그 아이들과 걷기 시작했다. 부서진 자동차들과 건물 잔해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내전 당시의 쓰레기들이 상당 부분 이곳으로 옮겨온 듯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약 100여 명의 아이들과 마주했다.
온통 썩는 냄새와 들끓는 파리들... 그 속에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다리에는 대부분 피부병을 앓고 있었고, 쓰레기장에서 아이들이 하는 일은 오전 일찍부터 나와서 유엔의 쓰레기차를 기다리는 것. 그 차가 올 때마다 쓸만한 것을 줍거나 음식물을 찾는다. 생수병에서 남은 물을 모아 그 것을 식수로 사용한다. 어떤 아이들은 전 가족과 함께 나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종일 쓰레기차를 기다린다. 쓰레기차가 오지 않는 동안 아이들은 불타버린 폐차에서 지낸다. 그들의 유일한 놀이터다. 이들은 부모의 보살핌이나 교육과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었다. 이들은 하루종일 쓰레기장에서 시간으로 보내고 쓸 만한 것을 모아 자루에 넣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아마도 유엔의 쓰레기차가 오는 한 아이들의 숫자는 더욱 늘 것이다. 아이들을 취재하고 있는 곳으로 유엔 지프차량과 쓰레기차가 왔다. 순식간에 여기저기 모여있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쓰레기를 쏟아내자 치열하게 자리다툼이 벌어진다. 조금이라고 성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 미군들이 버린 성인잡지도 굴러다닌다. 아이들은 어 잡지를 통해 어떤 미국의 모습을 그릴까... 유엔 지프 차량에 타고 있던 미군들은 내리지도 않은 채 쓰레기를 파헤치는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는 여군 하나가 사탕을 나누어주자 그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든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기분이 씁쓸하다.
산타크루즈 공동묘지에는 늦은 오후의 노란 햇살이 가득했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묘지들. 천천히 걸어서 그 역사적인 현장으로 들어갔다. 대학살이 있었던 곳, 동티모르의 참상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렸던 곳이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서 광주를 떠올린다. 묘지 곳곳에서 죽은 남편을 애통해 하는 미망인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전쟁과 학살이 남긴 깊은 슬픔이다. 죽어간 이를 위로하려는 듯 묘지 위로 수없이 많은 촛불들이 어린 손에 의해 세워지고 있다. 같은 마을 사람들의 손에 죽어간 이들의 분노를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산타크루즈는 이 낮선 이방인에게 그렇게 묻는 듯했다.
하지만 전에는 이런 시설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적십자의 손길은 동티모르 병든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현재 딜리의 초등학교들은 절대적인 교사와 시설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하루 3부제로 교육을 받고있으며 교과서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선생님의 필기를 받아 쓸 노트와 연필이 전부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습은 진지하다. 동티모르의 공용어로 선택된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있다. 물론 식민지 모국어를 다시 공용어로 채택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왕이면 영어가 공용어가 되었으면 하기도 한다. 그나마 학교에 나가는 소수 아이들은 선택 받은 것이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노동을 시키고 있다. 과연 독립 정부는 이처럼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유일한 공공 도서관을 개막하던 날 동티모르의 독립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는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이다. 아이들에게 우선 교육의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리 동티모르의 역사를 알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6.25 전쟁 이후 우리가 그랬듯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비록 어디 있는 지조차 대다수의 국민들이 모를 조그마한 동티모르지만 우리가 거만한 원조국이 아니라 진심어린 친구로 그들을 잊지 않고 도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남들은 몰라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 고통을 말이다...
딴지 다큐전문 기자 이상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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